2014/02/26

왕이-케리 협상 실패, 격화되는 한반도 위기

[한호석의 개벽예감](102)
자주민보 2014년 02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2014년 2월 14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베이징에서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양측의 견해차이가 너무 커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케리 협상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대북정권전복음모와 대북핵전쟁연습으로 격화되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시키려는 중국의 진지한 노력이 막혀버렸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한반도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미증유의 충돌위기로 시시각각 떠밀려가는 중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직설적인 언사를 주고받은 왕이-케리 회담

2014년 2월 12일 <동아일보>가 눈길을 끄는 보도기사를 실었다. 복수의 소식통이 전해준 말을 인용한 그 기사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아주사(亞洲司) 싱하이밍(邪海明) 부사장(副司長)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외교부 실무대표단이 지난 2월 첫째 주에 방북하였다고 한다. 중국 외교부 아주사는 아시아지역 외교사업을 담당하는 곳이며, 아주사 부사장은 남측 정부기관 서열로 따지면 아시아국 부국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 언론이나 중국 언론에 나오지 않은 중국 외교부 실무대표단의 방북은 2월 12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날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부 출입기자단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중국 외교부 아주사 책임일꾼들이 주조중국대사관과의 내부업무차 방북했는데, 방북기간 중에 조선 외무성 유관부문 일꾼들과 접촉했으며, 중조관계와 조선반도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아주사 소속 관리들이 아시아 수교국들에 주재하는 중국대사관들의 내부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주재국을 방문하는 것은 일상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이번에 방북한 실무대표단은 주조중국대사관의 내부업무를 처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북측 외무성 외교관들을 만나 북중관계와 한반도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는 것이다. 그 실무대표단에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판공실 소속 외교관들이 포함되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목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방북실무대표단에 포함되어 방북한 조선반도판공실 소속 외교관들이 북측 외무성 소속 외교관들과 만나 한반도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는 사실이다. 중국 외교부의 이러한 이례적인 방북은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중국의 외교행보가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미관계와 관련하여 미국과 남측의 언론들이 쏟아내는 왜곡보도만 읽으면, 요즈음 북미관계에 조성된 적대적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게 된다. 북미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현상들만 훑어보면 심각성을 알 수 없지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북미관계의 적대적 분위기는 미국이 2월 24일부터 대북전쟁연습인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기어이 감행한 것으로 하여 더욱 심각해지고 말았다.

요즈음 북미관계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적대적 분위기에 매우 민감해진 쪽은 중국이다. 그러므로 북미관계와 관련된 중국의 최근 움직임을 살펴보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이 베이징에서 진행한 회담이다. 그 두 사람이 회담에서 주고받은 예사롭지 않은 담화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2월 14일 왕이 외교부장은 베이징을 방문한 케리 국무장관과 회담하면서 “우리는 반도에서 혼란이 발생하거나 전쟁이 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 중국의 태도는 엄숙하고 진지하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이 외교부장이 케리 국무장관에게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반도의 혼란’이란 미국이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유발하려는 ‘북의 급변사태’를 뜻하고, 그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반도의 전쟁’이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의 공중핵타격연습과 ‘키 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으로 격노한 북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전면전을 뜻한다.

원래 중국 외교부장과 미국 국무장관이 만나는 고위급 회담에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외교담화를 주고받는 것이 상례인데, 그 날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은 매우 직설적이었다. 그의 직설적 발언을 다시 풀어 쓰면, 미국이 대북정권전복음모를 은밀히 추진하고 대북핵타격연습을 공공연히 감행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격화시킨다면 중국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않겠노라는 단호한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 회담에서 케리 국무장관이 통상적인 외교담화를 하고 있던 중에 느닷없이 왕이 외교부장이 위와 같은 직설적 발언을 꺼냈을 리는 없으므로, 케리 국무장관이 왕이 외교부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먼저 꺼내놓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케리 국무장관의 자극적인 발언이 과연 어떠하였기에 왕이 외교부장이 그처럼 직설적인 발언으로 응수하였는지 알아보려면, 케리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월 13일 윤병세 외무장관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꺼내놓은 발언을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AP> 2014년 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윤병세-케리 공동기자회견에서 케리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을 핵무장국가로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회담을 위한 회담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조선은 비핵화와 관련된 자신의 의무에 관한 협상을 하고 그것을 수행하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북이 더욱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더 심각한 안보문제를 발생시키기 미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을 (중국 방문 중에) 중국 지도자들에게 강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은 군사행동을 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었으므로 대북군사행동을 취하겠다는 미국의 전쟁도발의사를 기자회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케리 국무장관의 위험한 발언에서는 전쟁광기가 느껴진다. 내외신 취재기자들 앞에서 그처럼 전쟁도발의사를 드러낸 케리 국무장관이 이튿날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회담에서도 역시 그런 식으로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의사를 드러냈던 것이 분명하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대로, 대북정권전복음모를 은밀히 추진할 뿐 아니라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같은 핵타격수단까지 한반도 중부상공에 불시에 출동시켜 북을 심히 자극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무력충돌위기로 몰아넣은 도발자가 바로 미국인데,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케리 국무장관은 미국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하면서 대북전쟁도발의사까지 드러냈으니, 왕이 외교부장이 어찌 참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왕이-케리 회담은 어디까지나 고위급 외교관들이 만난 자리였으므로, 그 두 사람이 주고받은 직설적인 언사로 잠시 굳어졌던 회담분위기는 이내 풀렸다. <동아일보> 2014년 2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왕이-케리 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외교발언을 이렇게 이어갔다고 한다.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 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평화와 안전을 지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지지한다. 당장 급한 일은 기회를 잡아 조속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다.”

왕이 외교부장이 “당장 급한 일”이라고 하면서 케리 국무장관에게 촉구한 ‘조속한 대화재개’는 6자회담 재개를 뜻한다. 중국은 미국이 대북정권전복음모와 대북핵타격연습에 계속 집착함으로써 극도로 위험해진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하는 방도가 6자회담 재개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여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시키자는 뜻이 담긴 왕이 외교부장의 촉구발언에 대해 케리 국무장관이 어떻게 응수했는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알 수 없으나, 답변이 궁해진 케리 국무장관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대한 그의 ‘엉뚱한 소리’는 6자회담을 재개하려면 북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기 위한 ‘의무’를 먼저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들고 나온 ‘북의 의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2014년 1월 29일 서울을 방문 중이던 글린 데이비스(Glyn T. Davies)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의 의무’에 대해 말해주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북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9.19 공동성명에서 이행하기로 북이 동의한 것과 유엔안보리가 북의 핵활동, 미사일활동에 대해 결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들고 나온 ‘북의 의무’라는 것은 북이 핵포기를 단행하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이행하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들고 나온 ‘북의 의무’는 북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북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회담재개는커녕 북의 대미적개심만 자극하는 도발망언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북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북의 대미적개심만 자극하게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도발망언을 자꾸 늘어놓는 까닭은 미국에게 6자회담 재개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은 6자회담에 다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평양과 서울에 급파하다

의문이 생긴다. 미국은 왜 6자회담에 다시 나설 수 없는 것일까?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이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늘어놓은 왜곡보도만 읽으면, 미국이 왜 6자회담에 다시 나설 수 없는지 알 수 없다. 이 문제의 내막을 파악하려면 왕이-케리 회담으로 시야를 다시 돌려야 한다.
<동아일보> 2014년 2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 중이던 케리 국무장관은 2월 14일 현지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중 양국이 북한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案)을 제시했다.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앞으로 수일 간 매우 진지하게 (중국과)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 국무장관의 이 발언에 따르면, 왕이-케리 회담에서 양측은 각자 자기들이 작성한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꺼내놓고 협상을 벌였던 것이다.

▲<사진 2> 왕이-케리 협상이 실패한 직후, 다급해진 중국은 류전민 외교부 부부장을 평양과 서울에 급파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이 사진은 2014년 2월 18일 평양에서 박의춘 외무상이 류전민 부부장과 상봉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2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류전민 부부장의 남북연쇄방문 의의에 관해 해설한 글에서 2013년에 격화되었던 한반도 전쟁위기가 올해 또 다시 격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2월 24일 미국은 '키 리졸브'라는 이름의 대북전쟁연습을 올해 또 다시 감행하면서 전쟁 의지를 드러냈다.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은 성공하였을까? 극도로 민감한 외교사안이라서 왕이-케리 협상의 결과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측의 견해차가 너무 커서 몇 차례 협상을 벌이다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 외교부가 류전민(劉進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평양에 급파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케리 국무장관은 2월 14일 취재기자들에게 왕이-케리 협상이 “앞으로 수일 간 매우 진지하게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그렇게 말했던 날로부터 불과 사흘 만인 2월 17일 류전민 부부장이 갑자기 평양에 나타난 것을 보면, 케리 국무장관이 예상한 것과 달리 왕이-케리 협상이 금방 끝나버린 게 분명하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 협상이 금방 끝나버린 것은 협상실패를 의미한다.

류전민 부부장은 2월 17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 머물렀는데, 그의 방북에서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만일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성공하였다면, 류전민 외교부 부부장이 아니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가 타결안을 들고 평양에 갔어야 정상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담당하는 중국측 실무책임자는 우다웨이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인데, 그가 평양에 가지 않고, 독자들에게 이름도 낯선 류전민 부부장이 평양에 간 것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실패하였음을 말해준다.

둘째, 만일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성공하였다면, 박의춘 외무상이 아니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 외교부 방북인사를 만났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담당하는 북측 실무책임자는 김계관 제1부상인데, 그가 중국 외교부 방북인사를 만나지 않은 것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실패하였음을 말해준다.

셋째, 2014년 2월 21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기사에서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류전민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중국 외교부 대표단의 평양방문에 관해 “조중 쌍방은 앞으로도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이 간략한 언급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실패하였음을 암시한다.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이 실패한 직후 중국 외교부가 신속하게 취한 일련의 행동이다. 미국의 대북핵전쟁연습 강행으로 유발된 한반도 전쟁위기가 지난해처럼 격화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으나, 협상실패는 그 가느다란 희망의 가닥마저 끊어버렸다. ‘키 리졸브’ 대북전쟁연습을 불과 열흘 앞두고 서둘러 진행한 왕이-케리 협상에서 실패하여 매우 다급해진 중국은 류전민 부부장을 평양과 서울에 급파하여 전쟁위기격화를 예방할 대책을 협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2월 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동안 평양에 머물렀던 류전민 부부장은 2월 20일 중국 심양공항에서 곧바로 서울행 항공편으로 갈아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2월 22일까지 2박3일 동안 머물렀다. 중국 외교부 고위관리가 이처럼 하루 시차도 두지 않고 평양과 서울을 연쇄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류전민 부부장이 항공편으로 평양을 떠나 중국 심양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2월 20일 오전,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부 출입기자들에게 “각 당사국들이 조선반도의 정세완화국면을 포착하여 융통성과 성의를 발휘하고 실제행동으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왕이-케리 협상은 실패하였으나, 중국은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말이다. 같은 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류전민 부부장은 공항청사에서 <연합뉴스> 취재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노력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2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자기의 홈페이지에 올린 류전민 부부장의 방남활동을 해설하는 글에서 “류 부부장이 한국측에 과거와 같은 긴장국면이 (조선반도에) 다시 조성되는 것을 반드시 방지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조선반도 정세에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하였다. 중국 외교부가 그 글에서 지적한 “과거와 같은 긴장국면”이란 2013년 1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석 달 동안 미국의 대북적대행위로 격화되었던 한반도 전쟁위기를 뜻한다.

왕이-케리 협상이 실패한 이후 더욱 격화되는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해 중국만 그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교도통신> 2014년 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조속히 진행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낡은 쪽배’도 타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미국, ‘쌍발엔진 쾌속선’ 타고 순항하는 북

2014년 2월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왕이-케리 협상은 왜 실패하였을까? 실패원인을 살펴보려면, 중국이 미국에게 어떠한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제시하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요미우리신붕> 2013년 11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는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7개항을 조정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제1항 - 각 참가국들이 6자회담 재개를 동의하고, 9.19 공동성명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것.
제2항 -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것.
제3항 - 비핵화 과정에서 북의 관심사를 해결할 것.
제4항 - 남측, 미국, 일본이 대북관계를 개선하고, 북의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명할 것.
제5항 - 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
제6항 -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유지하면서 5개의 실무회의를 진행할 것.
제7항 - 6개국 협의를 정례화할 것.

중국은 위에 열거한 7개항이 담긴 조정안에서 명시하지 않았지만, 위의 7개항을 실행에 옮기게 되면, 미국은 각종 대북제재를 전면 철회하지 않을 수 없고, 대북전쟁연습을 영구 중지하지 않을 수 없고, 최종적으로는 주한미국군을 완전 철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대북제재의 전면 철회, 대북전쟁연습의 영구 중지, 주한미국군의 완전 철군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대화를 중단시킨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정에서 자기가 이행해야 할 그러한 의무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은 자기의 의무이행과는 정반대로 대북적대행위를 계속하면서 북미관계를 전면적으로 파탄시켰다. 이를테면,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미국은 유엔안보리까지 사주하여 대북제재를 삼중, 사중으로 추가하였고, 공중핵타격수단들까지 동원하여 대북핵전쟁연습을 더욱 광란적으로 감행하였고, ‘미사일방어’와 ‘순환배치’라는 명목을 내걸고 대북적대무력증강에 열을 올렸다.

만일 미국이 중국의 6자회담 재개요구를 받아들이려면, 미국은 대북제재의 전면 철회, 대북전쟁연습의 영구 중지, 주한미국군의 완전 철군을 결심해야 하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런 정책적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서쪽에서 해가 뜨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중국이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자고 촉구할 때마다 미국은 ‘북의 의무’를 선행시켜야 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 <사진 3> 6자회담이 처음 개최된 날로부터 10년이 되는 2013년 9월 18일 중국 외교부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토론회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참석하였다. 그 옆에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그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김계관 제1부상은 국제토론회 참석을 거부한 미국을 절묘한 쪽배 비유로 조롱하였다. 미국은 6자회담이라는 쪽배에 타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조롱한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북은 궁지에 몰린 미국이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은 미국을 이렇게 조롱하였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6자회담 개최 10주년을 맞았던 2013년 9월 18일 중국 외교부가 베이징에서 주최한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취재기자들에게 “6자회담이라는 쪽배를 다시 출항시킬 수 있기 바라며, 우리는 그 쪽배에 먼저 올라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참가국들도 늦기 전에 이 쪽배에 타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미국에게 던진 이 비유는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진퇴양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쪽배’에 타는 것을 거부하는 미국을 조롱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6자회담이라는 ‘쪽배’에 허겁지겁 올라타면 그 ‘쪽배’에 먼저 올라타고 미국이 올라타기를 기다리던 북에게 굴복하여 대북제재의 전면 철회, 대북전쟁연습의 영구 중지, 주한미국군의 완철 철군이라는 북의 세 가지 요구를 모두 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제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북에게 순순히 굴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6자회담이라는 ‘쪽배’에 오르기를 끝내 거부하며 허우적거리는 수밖에 없다.

원래 6자회담은 북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놓은 것인데,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비유에 따르면 미국이 만들어놓은 6자회담은 미국 자신이 올라타지 못할 ‘쪽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6자회담을 왜 그냥 배에 비유하지 않고 하필이면 쪽배에 비유했을까? 6자회담을 쪽배에 빗댄 이 절묘한 비유 속에는 뜻이 담겨 있다.

첫째, 쪽배에 여섯 사람이 모두 타기는 힘들고, 두 사람이 타는 것이 적당하다. 쪽배 비유에 담긴 뜻은 6자회담이 아니라 북미양자회담을 해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쪽배는 물결이 조금만 높게 일어도 뒤집힐 위험이 있으므로, 포구를 떠나 멀리 항해하지 못한다. 쪽배 비유에 담긴 뜻은 6자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며, 쪽배 신세로 전락한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것이다.  

북은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이미 오래 전에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북의 시각에서 보면, 6자회담은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버린 것이고 재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 중국이 그처럼 영원히 끝나버린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자고 미국에게 촉구하는 까닭은, 6자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권전복음모와 대북핵전쟁연습으로 더욱 격화되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조속한 회담재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한반도 전쟁위기가 극도로 격화되었던 2013년 3월 말 북이 6자회담이라는 ‘낡은 쪽배’를 버리고 ‘쌍발엔진 쾌속선’으로 갈아탔다는 사실이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경핵병진로선’을 비유로 말하면 ‘쌍발엔진 쾌속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북은 경제건설이라는 ‘엔진’과 핵무력건설이라는 ‘엔진’을 양쪽에 장착하고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이라는 항로를 따라 ‘마식령속도’로 순항하는 ‘쌍발엔진 쾌속선‘을 2013년 3월 31일에 출항시킨 것이다. 

오늘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비유로 설명하면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6자회담이라는 ‘낡은 쪽배’에 빨리 올라타야 한반도 전쟁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중국의 진지한 권고마저 거부한 미국은 헤어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몸부림치는 광기를 대북정권전복음모와 대북핵전쟁연습으로 연속 표출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 지난해에 ‘낡은 쪽배’를 버리고 ‘쌍발엔진 쾌속선’으로 갈아탄 북은, ‘낡은 쪽배’에도 올라타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져 몸부림치다가 기진맥진해지는 미국을 올해 안에 단숨에 제압하려는 기세다.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인민군 야전부대들을 계속 찾아가 전투동원태세를 점검하고 “싸움준비 완성”을 지시한 것은 인민군이 그런 기세로 최후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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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1

오바마 방한이 승리? 대일외교 실패 자초한 청와대의 오판

<민중의 소리> 2014년 02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1978년부터 28년 동안 미국 국무부 통역관으로 한미정상회담 통역을 맡았던 김동현 고려대 연구교수가 지난해 5월 9일 ‘조선일보’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한미정상회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틀 전 백악관에서 진행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의 숨겨진 내막을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미국에서 정상회담 성공의 기준은 그 회담에 참석한 대통령의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로 갈립니다. 오바마는 일부러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상체를 구부리고, 같이 로즈가든(백악관 정원-옮긴이)을 걷고, 등을 얼싸안는 포즈를 취해요. 다 준비한 행동이지요.”

김동현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준비한 행동을 보여주었으니,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이 펼쳐놓은 ‘화려한 정치쇼’인 것이며, 그런 내막을 모르는 한국 국민들은 ‘화려한 정치쇼’를 바라보며 한미동맹의 환상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정치쇼’로 여겨왔지만, 그런 내막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했는지 아니면 그런 내막을 알지 못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최상의 외교공적으로 여겨왔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한미정상회담을 몇 차례나 성사시켰는가 하는 것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외교공적을 평가하는 기준처럼 되고 말았으니, 이것은 미국 대통령들이 펼쳐놓은 ‘정치쇼’에 상대역으로 몇 번 출연하였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외교공적을 평가해온 것이나 다르지 않다.

역대 한국 대통령, 한미정상회담 횟수로 외교성과 평가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공식환영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공식환영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오바마 대통령이 펼치는 그런 ‘정치쇼’에 자꾸만 더 출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시아순방 일정을 변경시켜 한국도 방문해달라고 간청하여 원래 백악관이 계획하지 않았던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일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지난 13일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4개국을 오는 4월에 순방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같은 날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4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이번 방한이 한미동맹 발전과 한반도, 동북아시아, 범세계적 문제를 양국 정상 간에 심도 있게 논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 중에서 일본방문 일정을 하루 축소시키고 그 대신 원래 예정하지 않았던 한국방문일정 하루를 추가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 일정을 하루 축소시키는 대신 한국방문일정을 새로 잡게 만든 순방일정 변경을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는 것은 한미일 3각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왜 그러한가?

이번에 백악관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에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포함된 것은, 지난해 10월 연방정부의 업무정지사태로 그 두 나라를 방문하려던 일정을 뒤로 연기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문제는, 백악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말레이시아-필리핀 방문일정에 일본 방문일정을 추가하였을 뿐 아니라, 방문의 격도 실무방문이 아니라 국빈방문으로 한껏 격상시켜놓았다는 점이다.

아베는 왜 오바마를 초청했을까?

지난해에 미국 내부 사정으로 연기되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말레이시아-필리핀 방문을 다시 추진하는 동안에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일정을 추가시킨 것은 아베 내각의 외교적 승리라고 부를 만하다.

아베 내각은 왜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을 백악관에 요청하였으며, 백악관은 왜 아베 내각의 국빈방문 요청을 들어주었을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일 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에 걸린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데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한일 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하루빨리 제거하여 한미일 3각 관계가 원상복구 되기를 바라고 있고, 일본은 박근혜 정부에게 한일정상회담을 하루빨리 개최하자고 졸라대고 있다. 올해 오바마 행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는 한미일 3각 관계의 원상복구를 위한 한일관계개선이고, 아베 내각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도 한국에 조성된 반일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한 한일정상회담 개최다.

백악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일정에 일본 국빈방문 일정을 추가한 것은 오바마-아베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강한 의욕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성향을 남김없이 드러낸 아베 내각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을 계기로 독도강탈 야욕을 포기할 리 없으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보상에 나설 리 없으므로,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에게 한일외교 갈등 해결을 위해 일본이 먼저 한국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할 리도 만무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 목적이 한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는 일본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은 왜 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미국의 대한관계와 대일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난 시기 복잡하게 전개되어온 한미일 3각 관계의 외교경험을 들춰보면, 한일외교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은 중립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언제나 일본을 일방적으로 지지, 두둔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정책이 미일관계를 중심으로 편성되었으며, 따라서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부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일 압박에 박근혜 대통령, 한일정상회담 받아들일 것

이런 3각 관계의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이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목적은 한일외교 갈등구도에서 한국에게 유리하게 일본을 설득해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외교 갈등구도를 넘어서려는 데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외교 갈등구도를 넘어선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미국이 서로 외교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각각 ‘자제’를 요구하는 한편, 일본은 미국의 ‘자제요구’를 받아들여 독도강탈야욕을 뒤로 숨겨놓고, 일본군 성노예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박근혜 정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그러한 견인외교의 당면목표는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한일정상회담 개최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뉴시스/AP


그런데 박근혜 정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아베 내각의 견인외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강한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상컨대 오바마 대통령은 도쿄에서 서울로 직행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순방일정을 하루 축소하여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는 성의를 보였으니, 이제는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차례”라고 하면서, “내가 이번에 미일정상회담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자극발언을 자제하겠다는 아베의 약속을 받았으니, 이제는 박근혜 당신이 한일정상회담에 나서야 할 차례”라는 식의 논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요구를 물리칠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오직 하나 뿐이다. 아베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어 아베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미국은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여 자국의 안보이익을 챙길 것이고, 일본은 독도강탈 야욕을 품고 일본군 성노예 범죄사실 부인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한일정상회담으로 끌어당겨 자국의 외교성과를 챙길 것이며, 한국만 미일공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외교적 손실과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정상회담에 나서라고 한국을 압박하면, 한국은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 한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요구를 따라가야 한다. 올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에 감춰진 의도는 일본과 공조하여 한국을 압박함으로써 한일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오판한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방문과 한미정상회담을 구걸함으로써 미일공조로 한국을 압박하려는 오바마-아베의 외교술책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방문일정을 하루 축소하고 한국방문일정을 하루 추가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미일공조 앞에서 자승자박한 외교적 실책이다. 박근혜 정부의 친미사대외교가 불러온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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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북의 세계적 석탄매장량과 석탄가스화공법 실용화

[한호석의 개벽예감](101)
자주민보 2014년 02월 1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요즈음 북의 무연탄수출이 놀라운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2011년의 경우 북의 무연탄수출은 전년 대비 140.7%나 폭증하였다. 이러한 돌비현상은 북의 석탄생산이 급증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북은 21세기의 새로운 에너지원천을 석탄에서 찾고, 주요산업부문에서 석탄을 연료와 원료로 사용하는 최첨단기술개발하여 김정은시대의 '새 세기 산업혁명'을 밀고 나가는 중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북의 석탄생산과 석탄수출

2014년 1월 24일 <연합뉴스>에 주목할 만한 보도기사가 실렸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를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이 2013년 한 해 동안 중국에 수출한 무연탄 총량은 2012년에 비해 39.7%나 늘었다는 것이다. 요즈음 북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북의 무연탄 수출이 보여준 폭발적 증가세도 불가사의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다. 어떻게 1년 사이에 무연탄 수출량이 40%나 급증하였을까?

<연합뉴스> 2013년 12월 23일 보도를 살펴보면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북의 대중국 무연탄수출량과 전년 대비 증가율은 아래와 같은 추세를 나타냈다.

2009년 297만2,000t (17.1% 증가)
2010년 464만1,000t (56.2% 증가)
2011년 1,117만3,000t (140.7% 증가)
2012년 1,180만7,000t (5.7% 증가)
2013년 1,649만4,000t (39.7% 증가)

북이 2013년에 중국에 수출한 무연탄 1,649만4,000t은 얼마나 많은 분량일까? 적재중량 50t급 화물열차 32만9,880량으로 실어 날라야 할 막대한 분량이고, 적재중량 24t급 대형트럭 68만7,250대로 실어 날라야 할 막대한 분량이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북의 무연탄수출이 급증함에 따라, 북이 무연탄 수출액도 급증하였는데, 2010년 3억8,619만 달러, 2011년 11억2,685만 달러, 2012년 11억8천979만 달러, 2013년 13억7,371만 달러다.

지난 몇 해 동안 북의 무연탄수출이 그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니, 북의 무연탄생산은 또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일까? 북의 무연탄생산과 관련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증가세를 알기 힘들지만 당연히 무연탄생산도 무연탄수출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에너지정보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북의 연간 석탄생산량을 아래와 같이 발표하였다.

2008년 3,564만1,000t
2009년 3,478만5,000t
2010년 3,522만7,000t
2011년 3,478만5,000t
2012년 미상

누가 보아도 위의 통계는 엉터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를테면, 2011년에 북의 무연탄수출은 전년에 비해 무려 653만2,000t이나 폭증하였는데, 미국에너지정보청은 2011년 북의 석탄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되레 44만2,000t이나 줄었다고 엉터리로 추산하였으니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에너지정보청이 발표한 위의 통계수치는 무연탄생산량과 갈탄생산량을 합한 석탄생산 총량을 표기한 것인데 비해, 위에서 언급한 북의 대중국 수출량은 갈탄을 빼놓고 무연탄만 수출한 분량이다. 미국의 정부기관들이나 민간연구기관들이 발표한 각종 대북정보자료는 축소, 폄하, 저평가로 왜곡된 자료들이 대부분인데, 미국에너지정보청이 발표한 북의 석탄생산량도 역시 엉터리여서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다.

북에서 ‘주체공업의 식량’이라고 중시하는 석탄은 중요한 연료 및 원료로 사용되는 제1전략자원이므로, 북은 자기 땅에서 캐낸 석탄을 자급자족하고 남은 분량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이를테면, 전력생산부문, 제철공업부문, 비료공업부문, 비날론공업부문, 군수공업부문, 난방연료부문 등에 일차적으로 석탄을 공급하고, 그 밖에 남는 잉여분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북에서 석탄자원이 위와 같이 분배되고 있는 사정을 생각하면, 연간 석탄생산량 가운데 80%를 내부수요에 충당하고, 나머지 20%를 수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비율을 적용하면 2013년 북의 연간 석탄생산량은 7,000만t으로 추산된다. 

세계 10위권에 드는 주요석탄생산국들의 연간 석탄생산량은 1억t이 넘는데, 2012년을 기준으로 세계 10위 석탄생산국인 카자흐스탄의 연간 석탄생산량은 1억1,640만t이고, 폴란드는 연간 석탄생산량 1억4,410만t으로 세계 9위이고, 독일은 연간 석탄생산량 1억9,620만t으로 세계 8위다. 요즈음 북이 석탄생산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자기의 최고생산기록을 해마다 갈아치우고 있는 놀라운 추세를 생각하면, 앞으로 몇 해 안에 석탄생산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과 폴란드가 석탄생산에 힘쓰는 까닭은, 전력생산에서 무연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력생산에서 무연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은 폴란드의 경우 86%이고, 독일의 경우 43%이다. 미국도 2011년까지 무연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42%였는데, 최근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이 증대됨에 따라 2012년에 무연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32%로 줄었다.

북이 화력발전에 많이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정보부족이 빚어낸 오판이다. 발전설비용량을 기준으로 구분한 북의 전력생산 구성비는 수력 58.4%, 화력 41.6%다. 북의 총발전설비용량은 722만8,000kw인데, 그 가운데서 수력발전소 발전설비용량은 421만8,000kw이고, 화력발전소 발전설비용량은 301만kw다.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는 쪽은 북이 아니라 남이다. 한국전력공사 2011년 자료에 따르면, 발전설비용량을 기준으로 구분한 남측 전력생산의 구성비는 석탄발전 30.5%, 원자력발전 23.6%, 복합발전 25.0% 중유발전 11.3%, 수력발전 8.1%, LNG발전 1.1%, 등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몇 해 사이에 북의 석탄생산량이 급증한 것은 북이 석탄생산에 국가역량을 집중시킨 성과다. 이를테면, 북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제2차 국가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수행하였는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연료 및 동력문제를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기간에 해결하는 3개년 계획이 제2차 국가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북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추진한 연료 및 동력문제를 해결하는 3개년 계획에서 중점과제는 석탄을 증산하여 연료 및 동력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북에서 석탄증산은 동력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일 뿐 아니라, 연료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에서는 석탄광산에서 채굴한 무연탄을 각지 화력발전소들에 공급하여 전력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력생산부문 이외에 다른 공업부문들에 필요한 연료문제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3개년 계획에서 무연탄을 화력발전부문 이외의 다른 여러 공업부문들에 공급하는 주요연료라고 언급한 것이다.


남흥의 무연탄가스화공법과 흥남의 갈탄가스화공법

북에서 무연탄을 필요로 하는 산업부문들 가운데는 화력발전 이외에 철생산과 비료생산도 있다. 무연탄과 갈탄을 연료로 쓰는 철생산체계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북의 주체철이고, 무연탄 또는 갈탄을 연료로 쓰는 비료생산체계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북의 주체비료다.

2009년 12월 18일 함경북도 성강군에 있는 성진제강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기업소가 완성한 주체철 생산체계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강괴를 여러 차례 손으로 쓸어보면서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한 것은 제3차 핵시험 성공보다 더 위대한 승리라는 최상의 평가를 주었다. 그런 최상의 평가를 받은 주체철 생산기술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선철을 생산할 때 다른 나라에서 전량 수입해야 하는 역청탄을 연료로 쓰지 않고 북에서 흔한 무연탄을 연료로 쓰는 삼화철 생산기술은 물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새로운 야금기술이다.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새로운 야금기술이란 산소용융로에서 액체상태로 끓는 선철을 식히지 않고 곧바로 정련로에 주입하여 강철을 뽑아내는 생산기술, 다시 말해서 제철공정과 제강공정을 통합시킨 기술을 뜻한다. 주체철 생산체계의 그런 새로운 야금기술을 2009년 12월 25일에 사상 처음으로 완성한 산소용융로와 정련로에 ‘김일성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런데 이런 전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제철공정과 제강공정을 통합시킨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무연탄을 사용하여 삼화철을 생산한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만 언급함으로써 주체철을 삼화철과 동일시하는 착오를 범했다. 주체철은 역청탄 대신 무연탄을 사용하는 새로운 선철생산공정에서 나오는 삼화철이 아니라, 그것에 더하여 제철공정과 제강공정까지 통합시킨 완전히 새로운 야금기술로 뽑아나는 세계 최초의 생산물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북에서 주체철을 생산할 때 역청탄을 완전히 배제하고 무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선철생산공정에서 무연탄을 직접 연소시키지 않고 무연탄을 가스화할 때 발생하는 합성가스(synthesis gas)를 연소시키는 것이다. 무연탄을 직접 연소시키면 철광석을 녹이는 데 필요한 발열량을 얻을 수 없으므로, 무연탄을 가스화하여 발생시킨 합성가스를 연소시켜 큰 발열량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북에서 주체비료를 생산할 때 무연탄을 연료로 쓴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주체철 생산체계에서 무연탄가스화는 철광석을 원료로 하고, 무연탄을 연료로 쓴다는 뜻이지만, 주체비료 생산체계에서 무연탄가스화는 무연탄을 원료이자 연료로 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주체비료 생산체계에서는 무연탄이 연료로 쓰인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무연탄이 원료와 연료로 쓰인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주체비료생산에서 무연탄가스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 것일까?

지난 시기 북은 원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naphtha)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여 나프타가스화공법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여 비료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지금 북에서 나프타가스화공법은 옛말이 되었고, 비료생산체계에 무연탄가스화공법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였다.

무연탄가스화공법에 의한 비료생산체계란 무연탄과 산소를 가스화기(gasifier)에 주입하여 합성가스를 생산하고, 합성가스에서 분리한 수소를 공기 중의 질소와 결합시켜 암모니아를 합성하고, 합성암모니아를 원료로 하여 비료를 생산하는 것이다.
▲ <사진 2> 평안남도 안주에 있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생산현장을 2014년 1월 15일에 촬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사진이다. 이 거대한 기업소는 북에서 '주체공업의 식량'으로 중시하는 무연탄을 가지고 주체비료만이 아니라 각종 기초화학제품들까지 대량생산하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2010년 4월 26일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발표하여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 ‘김일성훈장’을 수여하였다. 이것은 평안남도 안주에 있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가 사상 최초로 주체비료를 생산하는 새로운 비료생산체계를 완성하였음을 뜻한다. <사진 2>에서 보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비료생산시설이 역사적인 가동을 개시한 날은 2010년 4월 29일이다.

2006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는 기존 나프타가스화공법을 접고 새로운 무연탄가스화공법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뒤로 2년 동안 무연탄가스화 기술개발에 달라붙어 마침내 기술설계를 완성하였고, 2008년 5월에는 기존 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공사에 착공하여 2년 동안 여러 가지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마침내 새로운 무연탄가스화공법을 실용화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북에서 이미 실용화된 무연탄가스화는 10여 개의 부분별 공정으로 구성되는데, 복잡한 공정계통에 따라 근 1,000대나 되는 각종 대형설비들이 흐름식으로 맞물려 작동하는 것이다.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는 무연탄가스화공법으로 주체비료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폴리에틸렌, 아닐론, 폴리프로필렌, 탄산소다 등 각종 화학기초제품과 아크릴섬유와 비닐박막도 생산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로동신문> 2010년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는 고도의 컴퓨터수치제어(CNC)기술인 분산형 조종체계(DCS)를 무연탄가스화공정에 도입하여 주체비료생산체계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분산형 조종체계란 자동조절, 순차조정, 경보 및 차단, 자체진단 등을 컴퓨터화한 최첨단 수준의 생산공정조종체계다.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의 연간 비료생산능력은 75만t이다.

<조선중앙통신> 2011년 10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함경남도 흥남에 있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는 무연탄이 아니라 갈탄으로 비료를 생산하는 갈탄가스화공법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무연탄가스화공법을 도입한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와 달리, 흥남비료련합기업소가 갈탄가스화공법을 도입한 까닭은,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가 있는 평안남도에서는 무연탄이 많이 생산되고, 흥남비료련합기업소가 있는 함경남도에서는 갈탄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중국 <신화통신>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2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는 갈탄가스화 제1계열공정을 도입하여 연간 35만t의 비료를 생산하는 능력을 2010년 11월 17일에 갖추었고, 갈탄가스화 제2계열공정을 추가로 도입하는 능력확장공사를 진행하는 중인데, 2014년에 이 공사를 끝내면 연간 비료생산능력이 70만t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 <사진 3> 2010년 4월 29일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는 기존 나프타가스화공법을 완전히 대체한 새로운 무연탄가스화공법에 의하여 주체비료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 새로운 비료생산공정은 분산형 조종체계(DCS)에 의하여 최첨단 수준으로 완성되었으며, 연간 비료생산능력을 75만t으로 확장시켰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백두산대국'이라는 초대형 글씨체의 구호가 자력갱생으로 주체비료를 생산하는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말해주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또한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가스화공법으로 생산설비를 현대화한 남흥화학련합기업소와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주체비료를 증산함으로써 2014년부터는 북의 비료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3>에서 보는 남흥화학련합기업소의 주체비료 생산능력이 연간 75만t이고, 흥남비료련합기업소의 주체비료 생산능력이 연간 70만t이므로, 그 두 기업소에서 생산되는 주체비료만 해도 연간 145만t에 이를 것이므로 다른 비료공장들에서 생산되는 비료까지 합하면 북의 비료수요를 너끈히 충족시킬 수 있다. 

오늘 북의 주체비료 생산능력이 이처럼 비약적으로 장성하였는데, 반북감정에 사로잡힌 수구언론매체들은 2014년 2월 14일 보도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북한의 화학비료 부족사태가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심각하다”고 왜곡하는가 하면, 또 다른 2014년 2월 15일 보도에서 “북한에서는 흥남비료공장, 남흥청년화학공장 등 10여 개 공장이 비료를 생산하고 있으나 대부분 시설이 낡은데다 전력난까지 겹쳐 가동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왜곡하였다. 


위장막을 치고 건설한 평양 인근의 화력발전소

2013년 2월 21일 서울에서 발매된 시사주간지 <시사IN> 제282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32억3,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발전설비용량이 각각 50만kw에 이르는 화력발전소 6개를 3년에 걸쳐 북의 북창군과 순천군 등에 건설하고, 그 대가로 북은 태천군, 동창군, 회창군 등에서 금 100t을 채굴하는 금광개발권을 미국 대기업에게 제공하기로 합의한 양해각서(MOU)가 2012년 9월에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1년에 50만kw급 화력발전소를 두 개씩 건설하여 3년 뒤에는 모두 6개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게 되고, 그에 따라 북은 300만kw에 이르는 전력을 증산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북에 건설해주기로 공약하였다가 파기한 경수로의 발전설비용량이 200만kw였음을 생각하면, 300만kw가 얼마나 큰 발전설비용량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의 양해각서가 체결된 때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2013년 1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만난 북의 투자유치기관 대표단과 미국의 대기업 대표단은 3개월 전에 체결한 양해각서를 놓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2013년 1월 22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고, 그로써 북의 투자유치기관과 미국의 대기업이 체결한 양해각서는 이행될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위성을 마음대로 쏘아올려도 좋지만, 유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 위성을 쏘아올리면 안 된다는 미국의 생억지를 용인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가 북의 산업발전을 얼마나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화력발전소 건설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그처럼 생억지를 부리며 대북제재를 연속 추가하는 광기를 부렸어도, 북은 미국의 광기를 물리치고 화력발전소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미국에게 보복하였다. 미국은 자국의 대기업이 북의 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하는 길을 막아버렸지만, 화력발전소를 증설하려는 북의 의지까지 막지는 못하였다.

미국의 반북관영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 2014년 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평양 인근에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가 거의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이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한때 현장에 위장막을 펼쳐가며 보안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군사시설이 아닌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왜 위장막을 쳐야 했을까? 머지않아 그 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끝나고 조업하는 날, 위장막에 가려졌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화학공업에서 이미 무연탄가스화를 실현한 북은 화력발전에서도 무연탄가스화를 실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무연탄가스화를 실현한 차세대 화력발전소는 가스화복합발전(Integrated Gasification Combined Cycle)으로 가동되는 것이다. 가스화복합발전기술에서 앞서 나간 미국의 경험은 아래와 같다.
▲ <사진 4> 미국에서 최초로 가스화복합발전기술(IGCC)을 도입하여 건설된 차세대 화력발전소가 인디애나주 녹스 카운티에서 2013년 6월부터 조업하였다. 미국은 자국에서 두 번째로 되는 차세대 화력발전소를 미시시피주 켐퍼 카운티에 건설하는 중인데 올해 2014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2013년 6월 미국 인디애나주 녹스 카운티(Knox County)에 완공된 화력발전소가 첫 동음을 울리며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을 도입한 미국 최초의 차세대 화력발전소가 마침내 조업을 시작한 것이다. 인디애나주 녹스 카운티에 미국 최초의 차세대 화력발전소를 완공한 미국은 미시시피주 켐퍼 카운티(Kemper County)에서도 지금 차세대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이다. 2010년에 공사를 시작한 이 차세대 화력발전소는 2014년에 완공될 예정인데, 이 차세대 화력발전소까지 완공되면 미국은 차세대 화력발전소 두 개를 가동하게 된다.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을 도입한 차세대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나라는 미국, 독일, 중국, 네덜란드 등 몇몇 기술선진국들밖에 없는데, 무연탄가스화를 이미 실용화한 북도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을 당연히 개발하였을 것이다. 복잡한 가스화복합발전공정을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산소분리기(oxygen separation unit)에서 공기 중의 산소와 질소를 분리한다.
2. 산소와 무연탄을 가스화기에 주입한다.
3. 고온, 고압상태의 가스화기 안에서 발열량이 큰 화학에너지를 가진  합성가스가 생성된다.
4. 냉각기에서 고온상태의 합성가스를 냉각한다.
5. 냉각된 합성가스를 연소기에 주입하여 가스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6. 배열회수보일러에서 생성된 증기로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위와 같은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이 차세대 화력발전기술로 각광을 받는 까닭은 가스화공정에 투입한 산소가 불충분한 불완전연소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공해물질인 황산화물(sulfur oxides)이나 질소산화물(nitrogen oxides)이 연소 중에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연탄을 직접 연소하여 터빈을 돌리는 기존 화력발전소는 공해물질을 배출하여 대기를 오염시키지만,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을 도입한 차세대 화력발전소는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으므로 지구온난화와 공해물질배출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앞으로 기존 석탄연소식 화력발전소는 가스화복합발전기술을 도입한 차세대 화력발전소로 차츰 대체될 것으로 예견된다.


김정은시대의 ‘새 세기 산업혁명’에 공급되는 새로운 에너지

지난 20세기에 인류는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주요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물질경제적 성장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런 화석연료를 주요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온 20세기 문명은 커다란 결함과 한계를 안고 있었다. 예컨대, 석유자원독점에 따른 공급불안정이나 석탄연소에 따른 대기오염 등이 바로 그러한 결함과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래서 핵에너지, 재생에너지,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새로운 에너지공급체계가 속속 개발되었지만, 그런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데서도 역시 결함 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화석에너지를 대체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핵에너지는 방사능오염이라는 위험을 피할 수 없으며, 풍력에너지, 태양열에너지, 지열에너지는 에너지를 축적할 수 없어서 화석에너지를 대체하지 못하고 보조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고, 생물에너지(bioenergy)의 결함은 생산원가와 운송원가가 높은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늘 과학기술부문에서 앞서 나간 몇몇 나라들이 석탄의 잠재가치를 중시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지난 20세기에 석유와 천연가스에 밀린 석탄은 에너지부문과 화학공업부문에서  ‘후진국의 자원’이라는 푸대접을 받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에너지원 또는 화학공업원료로 공급해온 나라들에서는 석탄광산이 줄줄이 폐광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 석탄은 21세기 인류문명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줄 중요한 자원으로 다시 등장하였으며, 세계 화학공업의 발전방향은 석유화학공업에서 석탄화학공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너지정보청 자료에 따르면,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24.9%, 2005년 24.3%, 2030년 27.1%로 증가하고,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46.6%, 2005년 37.8%, 2030년 33.1%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증감현상은 석탄을 연료 및 원료로 사용하는 가스화공법을 실용화하려는 세계 각국의 노력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 세계의 매장상태를 알아보면, 석탄은 석유보다 훨씬 더 많이 매장되어 있고, 지구 각 지역에 비교적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풍부한 자원이므로, 석탄을 연료 및 원료로 사용하는 새로운 공법을 실용화하면 자원독점에 따른 공급불안정이나 연소과정의 대기오염 같은 결함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난 20세기에 ‘후진국의 자원’으로 푸대접을 받았던 석탄은 21세기에 최첨단기술에 의해 ‘선진국의 자원’으로 변신함으로써 그 가치를 재평가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석탄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석탄가스화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인데, 북이 무연탄가스화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이미 실용화하였으니 북의 산업발전에 비약의 날개가 달리 셈이다. 북에서 실용화된 무연탄가스화기술의 용도는 다양한데,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진 5> 흥남비료련합기업소는 2013년 8월 29일 갈탄가스화공법에 의한 메타놀생산시설을 완공하고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세계 10위의 석탄매장량을 가진 석탄부국인 북에서는 석탄화학공업을 더욱 발전시켜 올해에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하는 전환국면을 열어놓겠다는 포부와 기세가 대단하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로동신문> 2012년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메탄올생산시설을 건설에 착공한지 1년 6개월만에 완공하고 시운전에 성공하여 메탄올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사진 5>는 2013년 8월 29일 메탄올생산시설 준공식을 진행한 흥남비료련합기업소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그 준공식을 보도한 기사에서 메탄올생산시설이 완공되어 “비날론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고 경공업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가 마련되였다”고 지적하였다.

메탄올(methanol)이란 무연탄가스화공정에서 나온 합성가스에서 나오는 화학원료인데, 메틸알코올(methyl alcohol)이라고도 부른다. 북에서는 메탄올을 원료로 하여 주체섬유인 비날론과 각종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한다. 또한 메탄올은 옥수수 또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하는 에탄올(ethanol)보다 생산원가는 싸고 에너지효율은 더 높은, 우수한 대체연료다. 또한 메탄올은 연소과정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내는 청정에너지로 손꼽힌다. 메탄올을 연소시키거나 또는 메탄올과 휘발유를 섞은 혼합연료를 연소시켜 돌아가는 새로운 동력기관을 만들면, 친환경적인 메탄올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

무연탄가스화공정에서 생산되는 것은 메탄올만이 아니다. 가스화공정에서 배출되는 회재(ash)를 집진장치에 넣어 분진을 제거한 다음, 용융된 슬랙(slag)으로 수거하여 환경친화적인 건자재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또한 무연탄 안에 들어있는 유황성분은 가스화공정에서 황화수소가스(H₂S)로 발생되는데, 합성가스정제기에서 황화수소가스를 정제하여 유황이나 황산을 생산할 수 있다. 또한 합성가스에서 분리한 액화수소로 발전효율이 매우 높은 수소연료전지(fuel cell)를 만들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를 연료로, 산소를 산화제로 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북에서 ‘주체공업의 식량’이라 불리는 석탄은 각지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조선중앙년감’ 2004년판에 따르면, 북의 석탄매장량은 227억t이고, 2011년 1월 5일 남측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을 기준으로 북의 석탄매장량은 205억t이다. 북은 312억7,900만t의 석탄매장량을 가진 카자흐스탄에 이어 세계 10위의 석탄매장량을 자랑하는 석탄부국이다. 북한자원연구소가 2011년 8월 23일 보도자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의 석탄매장량 잠재가치는 1,346억8,700만 달러인데, 이것은 남의 석탄매장량 잠재가치 20억2,500만 달러의 67배에 이른다.


북이 무연탄가스화공법을 개발한 것은 전력산업, 금속공업, 화학공업을 발전시키고 북의 농업 및 경공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북에서 기계공업의 CNC화, 정보산업의 컴퓨터화와 더불어 무연탄가스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경제발전에 남긴 3대 유산이다.

김정은시대에 그 3대 유산을 받아안은 북은 지금 세계적인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두뇌전과 기술전을 다그치며 ‘새 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중이다. 북에서 밀고 나가는 ‘새 세기 산업혁명’의 목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3대 유산으로 전력산업, 금속공업, 화학공업을 더 높이 발전시키고 그로써 농축산업과 경공업을 더 빨리 발전시켜 융성하는 ‘백두산대국’, 번영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북이 융성과 번영의 전환국면을 열어놓는 시점을 올해 2014년에 맞춰놓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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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1

북의 불가사의한 모습 바라보는 미국의 공포

[한호석의 개벽예감](100)
자주민보 2014년 02월 1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B-52 전략폭격기     © 자주민보


불시에 무인도 상공에 나타난 B-52H 전략폭격기

지금으로부터 약 11개월 전인 2013년 3월 18일 미국 국방부 대변인 조지 리틀(George Little)은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B-52 폭격기가 ‘독수리훈련(Exercise Foal Eagle)’을 실시하는 중인 3월 8일에 폭격훈련을 실시하였고 3월 19일에 또 다시 폭격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우리가 한국과 맺은 동맹을 확고히 유지한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는 중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폭격기 비행은 한국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증강된 훈련의 일부다. 올해 ‘독수리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B-52 폭격기들의 핵능력과 재래식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언급한 B-52 폭격기는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B-52H 스트래토포트레스(Stratofortress)라 부르는 전략무기인데, 전시에 이 장거리 전략폭격기는 방공포 사거리를 벗어난 15km 고도로 비행하면서 정밀유도기능이 있는 핵폭탄을 적진에 투하하는 공중핵타격에 동원되는 것이다. B-52H 전략폭격기 1대에 싣는 각종 재래식 폭탄, 핵폭탄, 미사일의 총적재중량은 31t이다. B-52H 전략폭격기의 1대당 가격은 8,100만 달러이며, 1시간 비행에 지출하는 경비는 약 1만 달러다.  

미국이 2013년 3월 중에 B-52H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상공에 11일 간격을 두고 두 차례나 출동시켜 핵타격연습을 연속 감행한 까닭은, 당시 북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2012년 12월 12일 북이 자국산 첫 실용위성 ‘광명성 3호 2호기’를 쏘아올린 평화적 위성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위반으로 몰아 대북제재를 추가한 미국의 적대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북은 2013년 1월 초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북측 각지에서 전개하면서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2013년 2월 12일에는 제3차 지하핵실험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3월 5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하여 전군이 전쟁준비태세에 돌입한 상태에서 ‘키 리졸브’가 시작되는 3월 11일부터 정전협정을 백지화할 것임을 천명한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처럼 북이 적대행위에 집착한 미국을 강하게 위협하자, 궁지에 몰린 미국은 B-52H 전략폭격기를 3월 8일과 3월 19일에 한반도 중부상공에 각각 출동시켜 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난 2014년 2월 5일 미국은 또 다시 B-52H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상공에 출동시켜 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다. 미국의 B-52H 전략폭격기가 2014년 2월 5일 한반도 중부상공에 나타나 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다는 사실은, 2014년 2월 6일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세계일보> 2014년 2월 6일 보도에 따르면, 괌(Guam)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1대가 2월 5일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 직도 상공에서 폭격훈련을 “하루 종일” 실시하였다고 한다.

원래 미국은 B-52H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상공에 출동시키는 공중핵타격연습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난해 3월 한반도 중부상공에 나타난 B-52H 전략폭격기가 두 차례 감행한 공중핵타격연습이 언론에 보도된 까닭은, 미국이 북의 핵무력시위에 맞서 자기들도 핵무력시위로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하는 수 없이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북의 핵무력시위로 구겨진 ‘제국의 체면’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013년 3월 한반도 중부상공에서 B-52H 전략폭격기가 두 차례 감행한 공중핵타격연습에 관해서는 2013년 3월 22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B-52는 왜 평택 상공을 날아갔을까?’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한반도 중부상공에서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한 2013년 3월 8일과 19일은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이 실시되는 중이었는데, 미국이 올해 또 다시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한 2014년 2월 5일은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이 시작되기 약 20일 전이다.
<워싱턴자유횃불(Washington Free Beacon)> 2013년 3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B-52H 전략폭격기 출동은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연속적인 폭격기 출현(Continuous Bomber Presence)”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는 비공개 공중핵타격연습의 일환이다. 미국은 이러한 비공개 공중핵타격연습을 2013년에 처음 한반도 중부상공에서 감행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감행해온 것이다. 2009년 3월부터 미국은 서태평양에 떠있는 자국의 군사전략요충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B-52H 전략폭격기 4대를 4개월 주기로 순환시키면서 전진배치하고 있으므로, 이제껏 5년 동안 계속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해왔던 것이다. 
▲ 미국의 핵폭탄     © 자주민보


알고 보면 너무도 소름끼치는 B61-11 모의폭탄 투하연습

주목하는 것은, 지난해까지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 중에 비공개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해왔던 미국이 올해에는 매우 이례적으로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 개시일정보다 약 20일 앞서 비공개 공중핵타격연습부터 먼저 감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미국의 본심까지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이번에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보다 앞서 불시에 감행한 것이 북의 격분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에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이 북의 격분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는 것은, 그 전략폭격기가 지하관통핵폭탄으로 북의 지하군사시설을 파괴하려는 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사진 2>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B-52H 전략폭격기가 이번에 직도 상공에서 모의폭탄 투하연습을 감행한 B61-11 지하관통핵폭탄이다. 400킬로톤급 핵폭발력을 지닌 이 지하관통핵폭탄의 타격오차범위는 110∼150m다. 이번에 미국은 지하관통핵폭탄으로 북의 지하군사시설을 파괴하려는 공중핵타격연습을 우리 민족의 신성한 강토에서 불시에 감행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폭발력이 16킬로톤밖에 되지 않는데, 이번에 직도 상공에서 B-52H 전략폭격기가 투하연습을 감행한 B61-11 지하관통핵폭탄의 폭발력은 무려 400킬로톤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히로시마 원폭보다 25배나 더 강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그 핵폭탄을 단 한 발만 투하해도 상상을 초월한 인류사 최악의 핵재앙이 한반도 전역을 뒤덮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삼천리 강산이 무참히 파괴될 것이다. 미국의 야만적인 핵타격으로 한반도 전역이 무참히 파괴당할 수 있다는, 상상하기조차 하기 싫은 끔찍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면, 미국이 이번에 감행한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에 대해 우리 민족 전체가 격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미국의 ‘확장된 핵억지력’이 자기들을 보호해줄 것으로 보는 ‘정신착란’에 걸린 박근혜 친미정권은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9,200억 원을 미국 군부에게 해마다 ‘상납’하기로 미국과 합의하였고, 이 땅의 국민들은 B-52H 전략폭격기가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 몰아넣을 핵타격연습을 비공개로 불시에 감행하였다는 경악할 소식을 듣고서도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신경마비증상’을 보이고 있다. 

놀라운 것은, 미국의 공중핵타격연습에 대한 북의 반응이 지난해에 있었던 북의 반응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으로 북을 심히 자극하였던 시각으로부터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2013년 3월 26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지금 이 시각부터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군 작전전구 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의 모든 적대상물들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케트군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고 밝히면서 “첫 순간타격에 모든 것이 날아나고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타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미국을 위협하였다.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미국에게 이처럼 무시무시한 위협발언을 퍼부으며 정면으로 대결하는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밖에 없다. 2013년 11월 25일 괌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 상공을 선회비행하며 중국을 심히 자극하였는데도, 중국은 미국에게 위협발언은 고사하고 비난발언 한 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미국이 핵타격연습으로 심히 자극했으나 북의 대응은 너무 차분하였다

이번에 미국은 지하관통핵폭탄 모의폭탄을 무인도에 투하하는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불시에 감행하면서 북을 심히 자극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북의 대응은 너무 차분하였다. 미국이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한 이튿날인 2014년 2월 6일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지난해 미국이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을 때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올해는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발표주체의 격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 더욱이 주목하는 것은, 지난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3.26 성명은 미국에 보낸 것이었는데 비해, 올해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발표한 2.6 성명은 남측 당국에 보낸 것이었다는 점이다. 2.6 성명은 “(남측 당국은) 판문점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과 관련한 합의를 이룩해나가는 그 시각에는 괌도에서 끌어들인 미국의 <B-52> 핵전략폭격기 편대들이 조선서해 직도 상공에서 하루 종일 우리를 겨냥한 핵타격연습에 돌아치게 하였”으며, “남조선의 군부호전광들은 지금도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전쟁연습이 인도주의와는 무관하다며 일정대로 강행할 속심으로 최종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2.6 성명이 미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 성명을 읽어보면, 올해 미국에 대한 북의 발언수위가 지난해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2.6 성명은 “우리의 원칙적인 중대제안과 겨레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공개서한에 핵문제를 가지고 맞서야 한다며 남조선당국을 부추겨온 미국”이고,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우리의 애족, 애민의 적극적인 노력에 유형무형의 갖가지 장애를 조성하고 찬물을 끼얹고 있는 훼방군이 바로 미국”이라고 남측 당국에게 일러주는 식으로 미국에 대해 언급하였다. 북은 지난해에 발표한 3.26 성명에서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태워버릴 미제침략군”에게 격분을 퍼부었지만, 이상하게도 올해 발표한 2.6 성명에서는 “북남관계개선을 가로막는 훼방군”이라고 미국을 가볍게 힐난하였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이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하던 그 시점에 북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로 15년 로동교화형을 받고 실형을 살고 있는 미국 국적 재미동포 수감자를 사면하여 미국으로 돌려보내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2014년 2월 7일 평양에서 수감자를 만나 취재한 <조선신보>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평양에 주재하는 스웨덴대사관 2등서기관이 수감자를 면담하도록 허락하였고, 그 면담 직후 <조선신보> 취재기자도 만나게 하였는데, 수감자는 취재기자에게 “미국 정부에서 자신의 문제를 놓고 제이시 젝슨 목사(제시 잭슨 목사-옮긴이)를 보내겠다고 조선정부에 요청했지만 조선정부에서는 로발트 케인 대사(로벗 킹 국무부 대북인권특사-옮긴이)가 오도록 허락을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스웨덴대사관 2등서기관을 통해 방금)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현 상황을 살펴보면, 지금 북은 자기에게 핵폭탄을 실제로 겨누고 위협하는 미국에게 대응공세를 자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반공화국 적대행위’ 수감자에 대한 사면까지 단행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북의 모습은 정전 이후 지난 60년 동안 적대감만 덧쌓여온 대미관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적대행위에 집착하는 미국에게 북이 대응공세를 자제하며 선의로 대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적대행위를 그만둘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북이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라고 맹비난해오는 숙적에게 그런 기대를 걸고 있을 리 만무하다. 적대행위에 집착하는 미국에게 북이 대응공세를 자제하며 선의로 대해도, 미국은 북의 정권붕괴와 급변사태를 노리며 핵타격연습을 감행하는 극단적인 적대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대북적대행위들을 시간대별로 열거한 아래의 여섯 가지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미군의 공격무기들     © 자주민보


대북적대행위에 더욱 집착하고 있는 미국의 위험한 모습

첫째, 한국군 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아시아경제> 2014년 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한미연합군은 이전에 작성해놓은 타격대상목록을 최근 인민군 군사력의 증강에 따라 대폭 보강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연합군은 선제타격으로 파괴할 ‘합동공격지점(JDPI)’ 700개를 이전에 선정해놓았는데, 그 가운데서 130개 타격대상에 대한 보강검증은 2013년까지 이미 끝냈고, 2014년 1월 안으로 나머지 570개 타격대상을 보강검증한 뒤에 그 검증결과를 2014년 4월까지 한미연합군 전시작전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한미연합군이 보강검증한 700개 타격대상들 가운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 25배나 더 강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지하관통핵폭탄으로 파괴하려는 북의 지하군사시설들도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한미연합군이 700개 타격대상에 대한 보강검증을 2014년 1월에 완료한 것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도발하려는 미국의 흉계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미국의 공군전문지 <공군시보(Air Force Times)> 2014년 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버지니아주의 랭리-유스티스 합동기지(Joint Base Langley-Eustis)에 배치된 제94전투비행대와 제27전투비행대 소속 F-22 랩터(Raptor) 전투기 12대와 공군병력 300명을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 공군기지에 곧 전진배치하게 된다고 한다. 가데나 공군기지는 24시간 전시출격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대북전초기지이므로, ‘세계 최강 전투기’라는 F-22 스텔스전투기 12대를 거기에 전진배치하는 것은 미국이 대북침공준비를 부쩍 다그치고 있다는 뜻이다. 

셋째, 2014년 1월 29일 미국 텍사스주의 육군기지 포트 후드(Fort Hood)에서 육군 제1기갑사단 제12기갑연대 소속 병력 850명을 태우고 이륙한 항공기들이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이들을 무장시킬 M1A2 에이브럼스(Abrams) 전차 40대, M2A3 브래들리(Bradley) 장갑차 40대, 구난차 등 각종 전투장비 400대가 초대형 수송함에 실려 2014년 2월 4일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각종 전투장비 400대로 중무장한 제12기갑연대 소속 병력 850명은 서부전선 최전방에 주둔하는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대북전쟁연습에 동원될 것이다.

넷째, 미국 공군이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하기 하루 전인 2014년 2월 4일 미국 해군은 일본 사세보항에서 해군 7함대 소속 군함 한 척을 출항시켰다. 만재배수량 17,000t급인 초대형 상륙수송함 덴버호(USS Denver)다.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7함대는 원산 상륙전에 동원할 대형 군함 4척, 그리고 소해함 5척을 제주도 서귀포항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사세보항에 전진배치해두고 있다. 2014년 2월 4일 사세보항을 출항한 상륙수송함 덴버호는 오키나와의 화이트 비치(White Beach) 해군기지에 곧 도착하였고, 미국 해병대는 완전무장한 병력 900명과 CH-46 씨 나잇(Sea Knight) 상륙수송헬기 6대를 덴버호에 싣기 시작했다. 선적작업이 끝나면 덴버호는 2014년 2월 11일부터 21일까지 태국에서 실시될 ‘코브라 골드(Cobra Gold)’ 다국적 군사훈련에 참가하게 되는데, 올해 ‘코브라 골드’ 군사훈련에 참가할 미국군 각 군종 병력은 5,000명이다. 상륙수송함에 탑승한 해병대 병력 900명은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3해병원정군에서 차출된 제31해병원정기동부대인데, 이 기동부대는 전시에 오키나와를 떠나 3시간 만에 한반도에 도착할 돌격대로 대기하는 중이다. 
한국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4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한미연합군은 미국 제3해병원정군 5,000명과 한국 해병대 3,000명을 포함하여 10,000명이 넘는 대병력을 참가시킨 가운데 대형수송기, 대형상륙함, 고속상륙정, 공기부양정, 상륙장갑차, 수직이착륙기, 기동헬기 등 각종 상륙전장비들을 총동원하는, 1989년 이래 최대 규모의 연합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을 오는 3월 말에 경상북도 포항만 일대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번 ‘쌍룡훈련’에서는 원산 일대 동해안에 상륙하는 한미연합해병대가 평양으로 진격하여 최단 시간 안에 점령하는 침공시나리오를 연습한다고 한다.

다섯째, <미국의 소리> 2014년 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특전사령부(SOCKOR)는 <미국의 소리> 취재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미국군과 한국군은 지난해에 대북침투 및 보급작전, 북의 급변사태를 일으킬 내부저항세력을 육성, 지원하는 작전 등 여러 가지 특수작전을 훈련함으로써 ‘합동교환훈련(JCETs)을 강화한 바 있는데, 올해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국군특전사령부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들은 북의 정권을 전복시켜 급변사태를 일으키려는 특수전연습을 올해에도 여전히 강행하려는 것이다.

여섯째, 2014년 2월 6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4년 국방업무계획’에 따르면, 북의 핵무력과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하여 작성한 ‘맞춤형 억제전략’을 올해 ‘키 리졸브’,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에 처음 적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가 말한 ‘맞춤형 억제전략’이란 북이 핵무력과 대량파괴무기로 위협하는 상황은 물론이고, 북이 핵무력과 대량파괴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상황을 비롯하여 갖가지 상황들에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대북전쟁전략이라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야전지휘관들에게 남긴 의미심장한 말

위에 열거한 심상치 않은 군사상황을 살펴보면, 미국 군부는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2014년 초부터 선제타격력, 공중무력, 기갑무력, 상륙전무력, 특수전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국지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도 북의 정권붕괴와 무력침공을 노리는 전면전 준비를 다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미국은 대북전쟁준비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며, 그로써 현 정세는 폭발 직전의 위험천만한 위기상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대북전쟁준비를 그처럼 노골적으로 다그치고 있는 현 상황을 그 어느 나라보다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북은 미국의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과 같은 적대행위에 맞선 대응공세를 자제하고 있다. 요즈음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의 그런 자제행동을 대미유화공세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명백하게도, 지금 북은 대미유화공세에 나선 것이 아니다. 만일 북이 대미유화공세에 나섰다면, 미국에게 회담재개문제를 제안하여야 하는데, 2013년 1월 이후 이제껏 북은 북미회담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금 북에게는 어떤 형태의 대미대화나 대미협상도 재개할 용의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미국과 대화나 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북이 미국의 지속적인 적대행위에 맞서는 대응공세를 자제하는 것은 기존 경험이나 일반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모습이다. 북의 그런 불가사의한 모습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014년 1월 15일 미국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열린 해군협회 전국토론회에서 연설한 미국 태평양사령관 새뮤얼 락클리어(Samuel J. Locklear)는 “만일 북이 미국, 한국, 일본을 겨냥하여, 특히 지난해에 여러 차례 가한 미사일 발사위협이나 핵타격 위협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실행하였더라면, 세계적인 대격변이 일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불이 번쩍하며 쾅하고 터지는 건...순식간”이라고 우려하면서, 오늘날 미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예측불가능한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북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북에 대해 그처럼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북이 2014년에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은 미국의 적대행위에 맞서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였으나 실제로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북미관계에 조성된 올해 상황은 지난해 상황과 아주 다르다. 북이 미국의 지속적인 적대행위에 맞서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예측은 이미 2013년 말부터 제기되어왔다. 이를테면, 2013년 12월 17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화상회의로 진행된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이 2014년 1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에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하였다. 또한 2013년 12월 31일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정세전망보고서에서 한미연합군이 2014년 3월 ‘독수리훈련’을 끝낸 직후 북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14년 2월 초순이 위에서 언급한 예상시기와 겹치거나 그 예상시기에 근접하였으니, 요즈음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가 어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이 북을 겨냥한 전략폭격기 공중핵타격연습을 불시에 감행하는 등 각종 적대행위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데도 북이 대응공세를 자제할 뿐 아니라 ‘반공화국 적대행위’로 실형을 살고 있는 수감자를 미국에 돌려보내려는 분위기까지 조성한 북의 불가사의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미국에게는 위협적인 대응공세를 받는 것보다 더 심한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다.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에게 대응공세를 자제하는 북의 불가사의한 모습을 두려움 섞인 눈으로 지켜보면서 대북전쟁연습을 요란한 광고를 내듯이 다그치는 중이다.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은 요란한 광고처럼 소음을 내지만, 북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전력하고 있다. 이처럼 극적으로 대조되는 북과 미국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면서 상기해야 하는 것은,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2월 24일 조선인민군 제526대련합부대 지휘부를 방문하여 야전지휘관들에게 남긴 의미심장한 말이다.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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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4

독도급변사태 노리는 아베신조의 흉계

[한호석의 개벽예감](99)
자주민보 2014년 02월 0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독도     © 한호석 소장 제공



독도 영유권에 관해 알려진 것은 반쪽의 사실

2014년 1월 30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 출석한 총리 아베신조(安培晋三)는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JC)에 단독으로 제소하는 방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대처방안을 검토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케시마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 측에 확실히 전하겠다”고 밝히고, “여러 정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의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아베신조의 이 공식발언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은 일본 극우인사들이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상투적으로 내뱉곤 하는 망언보다 더 악질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로 들리기 때문이다. 아베신조의 그 발언은 일본의 현 극우정권이 노리는 독도강탈도발흉계가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울릉도의 딸린섬인 독도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영토다. 그런데 오늘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복잡한 정세는 어물어물하다가 일본에게 독도를 빼앗길 것이라는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다.

일본 극우정권이 주변나라들을 자극하는 폭언과 악담을 언제까지나 상습적으로 반복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일본 극우정권은 주변나라들을 자극하는 폭언과 악담을 쏟아내는 전방위공세로 혼란을 조성하면서 그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독도강탈을 착착 준비해왔다. 일본은 독도 문제, 댜오위다오 문제, 북방 4개 섬 문제를 놓고 주변나라들을 상대로 영유권분쟁을 벌이는 중인데, 댜오위다오 문제는 자기들이 선점하였으므로 중국의 탈환노력을 저지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북방 4개 섬 문제에 대해서는 2013년 8월부터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일본이 노리는 강탈대상은 독도로 좁혀졌다.

만일 독도를 일본에게 강탈당하면, 동해의 해양거점을 빼앗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해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가 높은 ‘알짜배기 수역’이 일본에게 통째로 넘어가게 된다. 독도와 주변바다에 대한 영유권을 지키려면, 독도강탈을 도발하는 일본 극우정권의 흉계부터 정확히 간파해야 올바로 대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문제는 독도와 주변바다가 한일분쟁수역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일 서울시민들에게 독도와 주변바다가 한일분쟁수역인가 아닌가고 물으면,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독도는 우리 땅이고, 주변바다는 우리 영해”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것이다. 이런 답변은 역대정부들이 독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교육해온 대국민 학습효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독도와 주변바다의 영유권에 대한 그런 인식이 과연 국제법적으로도 확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땅의 국민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고, 주변바다는 우리 영해”라는 불변의 인식을 확인해왔지만, 그런 인식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가 하는 또 다른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였다. 독도 영유권을 수호하려는 열기가 뜨거울수록,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하는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이제껏 이 땅의 국민들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반쪽의 사실밖에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반쪽의 사실밖에 알지 못한 것이 국민들의 잘못이라고 스스로를 탓할 게 아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주변바다는 우리 영해”라는 반쪽의 사실만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교육하면서, 그 반쪽의 사실이 국제법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가 하는 나머지 반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사실을 은폐해온 역대 정부들을 탓해야 한다.

이제 이 땅의 국민들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자신의 기존관념을 뒤흔들 심각한 물음을 꺼내야 할 때가 되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주변바다는 우리 영해”라는 인식이 국제법적으로도 확정될 수 있을까? 객관적 사실을 숨김없이 밝히면, 그 심각한 물음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밖에 나올 게 없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주변바다는 우리 영해”라는 인식은 국제법적으로 확정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아베신조의 도발적 언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금 일본 극우정권이 ‘다케시마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으로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제소준비를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패소할 수밖에 없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서 ‘다케시마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하려는 일본의 독도강탈공작이 본격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독도강탈도발에 광분하는 일본 극우정권이 불러일으킨 경악할 사태와 관련하여 우선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남측 학자들과 사회활동가들은 독도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영토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수많은 역사자료를 발굴하였고, 국민들은 그 역사자료들이 독도 영유권을 확정해주는 근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믿음은 주관적 신념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며, 객관적 현실로까지 확장되는 게 아니다.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하는 법리적 판별근거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각종 역사자료들이 아니라 영유권을 명시한 외교문서들이다. 영유권분쟁을 국제법적으로 해결하는 근거는, 영유권분쟁 당사국들이 분쟁대상에 대해 상호합의한 외교문서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실로 충격적인 것은, 독도강탈도발에 광분하는 일본 극우정권이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사실을 입증해줄,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외교문서들을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극우정권이 독도강탈도발에 광분한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미쳐 날뛰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치밀한 흉계와 준비태세를 알지 못해서 생기는 오판이다. 그런 일본 극우정권과 대비되는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독도강탈도발을 저지, 파탄시킬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외교문서를 한 장도 갖지 못했다는 데 심각성과 위험이 있다.


밀약 체결로 독도 영유권 포기한 친일독재자  

일본 극우정권이 독도강탈에 써먹으려고 움켜쥔 외교문서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1965년 1월 12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서명한 한일독도밀약이 있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밀약이므로 공식명칭을 알 수 없어 한일독도밀약이라 부른다. <월간중앙> 2007년 4월호에 실린 보도기사에 나온 한일독도밀약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한국과 일본은 독도 또는 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라고 각기 주장하는 것을 상호인정하고, 동시에 상대의 그런 주장에 대해 반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차 한일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두 나라가 독도 또는 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관리수역으로 한다.
(3) 한국이 독도 또는 다케시마를 점거한 현상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섬에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건축 또는 증축하지 않는다.
(4) 한국과 일본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한일독도밀약에 따르면,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는 우리 영토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영토분쟁도서(territorial dispute island)다. 다시 말해서, 독도의 국내법적 지위는 우리 영토이지만, 한일독도밀약 체결로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가 영토분쟁도서로 규정된 것이다.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가 영토분쟁도서로 규정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첫째, 국제법상 영토분쟁도서는 영유권을 아직 확정짓지 못해 국적이 없는 섬이라는 뜻이므로, 대한민국은 한일독도밀약 체결에 의해 국제법상 독도 영유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국내법상 독도 영유권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한일독도밀약에 따르면, 한국은 영토분쟁도서인 독도를 일시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나라가 국적 없는 섬을 일시적으로 점거하는 것을 실효적 지배라 한다. 따라서 한일독도밀약에 따르면, 한국은 국적 없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한일독도밀약에 의해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가 영토분쟁도서로 규정되었으므로, 국제법상 독도 영유권을 확정하기 위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불가피하다는 일본의 억지가 합리화되어버렸다.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를 영토분쟁도서로 규정한 한일독도밀약에 서명함으로써 독도 영유권을 포기한 주범은 박정희다. 그가 우리 민족사에 끼친 해악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본에게 굴종하여 한일독도밀약에 서명함으로써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고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를 영토분쟁도서로 만든 것이야말로 가장 큰 해악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극우정권은 박정희가 자기에게 굴종하여 한일독도밀약에 서명하자마자,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급진전시켰다. 일본은 자기들에게 첫 번째 걸림돌이 되어온 ‘다케시마 문제’를 한일독도밀약으로 절반 정도 해결한 셈이었으니 그들이 회담을 급진전시킨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한일독도밀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1965년 5월 14일 일본 외무성 청사에서 ‘한일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가 진행되었다. 2013년 11월 26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그 회의록을 발췌한 내용에 따르면,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에게 일본은 식민지피해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경제협력자금’을 주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로써 일본은 자기들에게 ‘다케시마 문제’ 다음으로 두 번째 걸림돌이 되어온 식민지피해 배상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이 전범국 일본에게서 마땅히 받아내야 할 식민지피해배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이미 그로부터 2년 전인 1962년 10월 20일과 11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도쿄에서 극비로 진행된 김종필-오히라 비밀회담에서 식민지피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하겠다는 박정희의 확약이 당시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김종필-오히라 비밀회담 비망록에 따르면, 일본은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이 식민지피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무상원조 3억 달러와 유상원조 2억 달러를 10년에 걸쳐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고, 수출입은행 차관 1억 달러를 얹어주기로 하였다. 이처럼 일제식민지강점기에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을 쓰며 일제에게 충성한 박정희가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에는 일본 극우정권에게 굴종하여 독도 영유권과 식민지피해배상 청구권을 모두 포기하고 그 대가로 이른바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목의 5억 달러를 받아 챙긴 것은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의 상처를 우리 민족사에 남긴 매국범죄였다.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이 일본 극우정권으로부터 받아 챙긴 ‘경제협력자금’ 5억 달러는 어디로 갔을까? 저명한 재미동포 언론인이었던 문명자 선생이 생전에 쓴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따르면, 박정희는 그 5억 달러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1억5,000만 달러를 김성곤에게 주었다고 한다. 박정희로부터 1억5,000만 달러를 받은 김성곤은 그 자금으로 쌍용그룹을 세워 재벌총수가 되었고, 당시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을 맡으면서 박정희의 친위병을 자처하며 1969년 9월 14일 ‘3선 개헌’이라는 이름의 친위정변을 일으켜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의 수명을 악명 높은 유신독재체제로 연장시켰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4.19민주혁명의 성과를 폭력적으로 짓밟은 박정희의 집권 18년은, 1962년 김종필-오히라 비밀회담에서 식민지피해배상 청구권 포기→1965년 한일독도밀약 체결로 독도영유권 포기→1965년 이후 일본의 ‘경제협력자금’ 유입에 따른 친일재벌 육성과 대일경제예속화→1972년 억압과 부패의 대명사인 유신독재체제 수립과 영구집권 획책 등으로 연장, 확대되어온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악정의 연속이었다. 

▲ 한일 기본 조약 박정희의 서명     © 자주민보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기본조약으로 약칭)’을 체결하였는데, 일본 극우정권은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하기 직전인 1965년 4월 ‘다케시마의 불법점거에 관하여 엄중 항의한다’는 구상서를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에게 보냈다. 일본 극우정권이 그 구상서를 청와대에 보내고 나서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한 것은, 독도강탈흉계에 따라 취한 행동이었다. 다시 말해서, 일본 극우정권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기 전이나 체결한 이후에나 영토분쟁도서로 규정된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에 아무런 변동이 없음을 외교문서로 확인한 것이다. 

박정희가 독도 영유권과 식민지피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한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때로부터 오늘까지 근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남, 북, 해외의 모든 민족구성원들은 박정희의 반민족행위가 산생시킨 치욕과 불행과 고통을 겪어오고 있다. 이 땅에 등장한 자주적 진보정권이 한일독도밀약을 파기하고 그 밀약에 기초하여 작성된 ‘한일기본조약’을 자주적 요구에 맞게 전면 수정함으로써 한일관계의 근본을 바로잡을 때까지 박정희의 반민족행위가 산생시킨 치욕과 불행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밀약 체결로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인정해준 독도강탈공모자

193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던 세계지도에는 한반도 전체가 일본 영토로 표시되었다. 조선이 일제에게 강점되어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 8월 29일부터 일제가 패망하여 조선이 해방된 1945년 8월 15일까지 장장 36년 동안 조선은 자주독립을 열망한 조선민족의 가슴 속에, 자주독립을 위해 피땀을 바친 조선인 항일열사들과 항일혁명가들의 투쟁 속에 살아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은 국제법상 나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었다고 해서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이 국제법적으로 자동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1948년 8월 15일 서울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9월 9일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어 각각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유권을 국내법적으로만 회복한 것이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범국 일본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공식절차를 거쳐야 하였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자주민보


전범국 일본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 공식절차는,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교전국들과 일본 사이에 강화조약을 체결한 것으로 이행되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반도 문제만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그 조약의 체결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포기시키고, 우리나라가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회복하는 유일한 절차였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대일조약 체결을 주도한 미국이 합법정부라고 승인해준 대한민국 정부를 조약체결과정에 끝내 참가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일본과 전쟁을 벌인 교전국이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대일교전국들이 참가자격을 갖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 대한민국을 참가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1941년 12월 9일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하였지만, 처음부터 광복군 통수권을 장악한 중국 국민당 세력이 광복군의 무장을 끝까지 불허하는 바람에 광복군은 일제를 상대로 한 차례도 교전하지 못하였으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다고 발표한 대한민국은 대일교전국으로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 극동국은 1949년 12월에 작성한 문서에서 “대한민국이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반하는 증거들이 더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미국이 일제에게 총 한 방 쏘지 못한 광복군을 교전단체로 인정할 리 없었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대일교전을 끊임없이 벌이며 한반도 북부지대에로 여러 차례 진공한 교전단체는 김일성 주석이 이끈 조선인민혁명군밖에 없었으므로, 항일전쟁세력이 수립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당연히 대일교전국이었다.

그런데 대일강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관련국들의 협의가 막바지에 오른 1950년부터 1951년까지 기간에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회복해야 하였던 결정적 시기에 그 영유권이 회복되어야 할 지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이 격돌한 전면전은 미국에게 극단적인 반북적대감을 안겨주었다. 반북적대감에 사로잡힌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미국이 주도한 대일강화조약 체결과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처럼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하는 대일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남과 북의 두 정부가 모두 미국에 의해 배제되었으니,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포기시키는 문제는 일본의 영토강탈야욕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위험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일강화조약 체결과정을 주도하던 미국에게 일본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에 대한 자기의 영유권을 포기하겠다고 하면서도 ‘다케시마 영유권’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미국은 일본의 그런 독

도강탈야욕에 맞장구쳤다. 독도강탈을 노린 미일공모의 내막은 아래와 같다. 

패전한 날로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은 1946년부터 일본은 자기의 영유권을 포기할 수 없는 섬들을 열거하고, 영유권을 계속 유지할 근거를 밝힌 홍보문건을 작성하여 미국에 전하였다. 그 홍보문건에는 일본이 자기의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섬들이 명시되었는데,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까지 포기불가대상에 포함되었다. 당시 전범국 일본은 자기의 침략전쟁범죄와 식민지강점범죄를 뉘우치는 차원에서 근신하고 있었어야 정상인데, 되레 영토강탈야욕에 광분하고 있었다. 전범국 일본이 근신하기는커녕 되레 영토강탈야욕에 광분하게 된 원인은 미국이 일본 편에 서서 그들의 영토강탈책동을 용인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토강탈야욕에 광분하는 일본 편에 서서 영토강탈책동을 용인하던 미국은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는 경악할 사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1949년 12월 15일 미국 국무부는 그들이 작성한 대일강화조약 초안 2장 제3조에서 일본 영토는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 등 4개 주요섬들을 비롯하여 쓰시마, 다케시마, 오키리토, 사도 등을 포함해 이루어진다고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인정해주었다.  

그런 미국은 1951년 7월 3일 대일강화조약 초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였는데,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부 대일강화조약 담당 수석고문이었던 존 덜레스(John F. Dulles)는 주미한국대사 양유찬을 불러 대한민국이 대일강화조약 체결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하면서 조약 초안만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초안에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었다. 이전 초안에서는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명시하였던 미국이 나중에 작성한 초안에서는 독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표기방식의 변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미국의 대일강화조약 초안작성과정을 파헤치면, 미일공모의 흑막 뒤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독도강탈흉계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초기에 작성한 대일강화조약 초안에서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명시적으로 표기하였다가, 후기에 작성한 조약초안에서는 기존 표기방식을 바꿔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하는 여러 대상들에서 독도를 제외시키는 새로운 표기방식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대일강화조약 초안작성과정에서 미국이 이처럼 독도 영유권에 관련된 표기방식을 슬그머니 바꾼 까닭은,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인정해주려는 미국의 음모를 간파한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이 미국에게 반대요구를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그 반대요구는 이러하였다.

미국으로부터 대일강화조약 최종 초안을 받아본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은 어물어물하다가 독도가 일본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그 조약 초안을 받은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1951년 7월 19일 미국에 요구서를 제출하였다. 그 날 양유찬과 덜레스의 대화내용을 수록한 ‘대화비망록(Memorandum of Conversation)’에 따르면, 양유찬이 덜레스에게 전한 요구서에는 “일본은 대마도, 파랑도(이어도의 옛이름-옮긴이) 및 일본해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할 것. 이 세 개의 섬은 러일전쟁 중 일본이 코리아를 점령하기 전에 코리아의 소유였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요구서에 대한 미국의 답변은 1951년 8월 10일 당시 미국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였던 딘 러스크(Dean Rusk)가 양유찬에게 보낸 서한이다. 그 서한에서 러스크는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바위섬이라는 다른 명칭으로 알려진 섬 독도와 관련하여 우리 측 정보에 따르면,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바위섬은 코리아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지청이 관할하고 있다. 코리아가 이전에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온 적이 없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면서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확정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6.25전쟁 중에 연합군총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특사로 1954년에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을 순방한 뒤 아이젠하워에게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보고서에는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인정한 미국의 공식입장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대일강화조약 초안을 작성할 때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미국은 독도가 일본의 주권에 속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 조약에 따라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하는 섬들 가운데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독도 문제에 대한 입장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는 한편, 한국에게 은밀히 통보하였다. 미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영유권분쟁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의 영유권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당연히 제소되리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며, 제소에 관한 미국의 제안도 한국에게 비공식적으로 전달된 바 있다.” 

미국은 이처럼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적극 인정해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대일강화조약의 영토조항을 작성할 때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에 포함된다는 기존의 명시적인 표기방식 대신에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하는 여러 대상들 가운데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는 새로운 표기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대일강화조약 중에서 독도 영유권에 관련된 조항에는 “일본은 코리아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제주도와 거제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코리아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과 주장을 포기한다”고 표기되었던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포기를 명시하지 않은 대일강화조약의 관련 조항에 대한 법리해석이다. 그 조항에 대한 미국의 법리해석은 일본이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면서도 ‘다케시마 영유권’만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도강탈야욕에 광분하던 일본은 ‘다케시마 영유권’ 포기를 명시하지 않은 대일강화조약의 관련 조항에 대한 미국의 법리해석을 문서화하여 줄 것을 미국에게 요구하였을 것이고, 미국은 당연히 일본의 그런 요구를 들어주면서 그 관련 조항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내려야 할 것이라고 권고하였고 일본은 미국의 그런 권고를 받아들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이 이런 내용을 문서화한 것이 미일독도밀약이다.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밀약이므로 공식명칭을 알 수 없어서 미일독도밀약이라 부른다.

1951년 4월 23일 미국 측에서 국무부 대일강화조약 담당 수석고문 존 덜레스와 친일외교관으로 악명이 높았던 국무부 주일정치고문 윌리엄 시볼드(William J. Sebald)가 참석하였고, 일본 측에서 전범 출신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武), 외무차관 이구치 사다오(井口貞夫), 조약국장 니시무라 구마오(西村熊雄)가 참석한 고위급 회담이 열렸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미일독도밀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이 결정적인 공개시점을 노리며 이제껏 비밀문서고에서 꺼내지 않고 있는 미일독도밀약에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있다. 한 가지 내용은 대일강화조약의 독도 관련 조항에 대한 미국의 법리해석이고, 다른 한 가지 내용은 그 관련 조항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내리기로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일본 외무성이 ‘한일기본조약’에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문서를 공개하면서도, ‘독도 문제에 관한 미국의 견해’라는 소제목을 붙인 문서철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해석에 관한 사항’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문서철만은 먹칠로 지운 채로 공개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자위대 통합막료감부에서 울려나오는 독도무력강탈의 전주곡

신성불가침한 영토인 독도가 미국과 일본의 공모와 농간으로 우리 민족이 모르는 사이에 그처럼 난도질당했던 비극이 시작된 때로부터 일본은 ‘다케시마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해줄 두 가지 결정적인 외교문서를 움켜쥐고 독도강탈도발을 끊임없이 자행해왔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해악은 헤아릴 수 없는데, 지난 60년 동안 독도강탈도발을 끊임없이 자행해온 악랄한 범죄 하나만 보더라도 백년숙적 일본에 대한 화해와 관용은 불가능하다. 

일본은 대일강화조약 영토조항에서 자기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미국이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였음을 법리적으로 해석한 미일독도밀약 문서와 박정희 친일독재정권이 독도 영유권을 포기한 한일독도밀약 문서를 모두 손에 넣었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로 발생한 ‘한일영유권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만 하면 자기들이 승소하여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국제법적으로 확정, 판별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으로 제소해도, 관련국이 제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제관할권’을 대한민국이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단독 제소에 응할 의무는 없으며, 따라서 재판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독도강탈도발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일본의 광기를 보면, 아베 정부는 ‘다케시마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박근혜 정부가 응하지 않아서 ‘한일영유권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일본자위대를 내몰아 독도를 무력도발로 강탈하는 독도 급변사태를 일으킬 위험이 매우 높아 보인다. 쉽게 말해서, 단독제소는 무력강탈의 전주곡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2012년도 ‘방위백서’에서 교토부 마이즈루항에 주둔하는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을 ‘다케시마 관할부대’로 지명하였다고 밝혔다. 헬기탑재 구축함 1척, 미사일구축함 2척, 구축함 5척, 그리고 잠수함들을 운용하는 제3호위대군은 해상자위대에서 최강의 함대라고 알려졌다. 또한 일본은 2012년 8월 26일 자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섬을 점거한 적을 격퇴하는 작전시나리오에 따라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가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일본자위대가 독도무력강탈을 노리고 실전연습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설마 일본이 무력도발로 독도를 강탈하는 급변사태까지 일으키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오늘의 현실은 너무 심각하다. 영유권분쟁이 무력사용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영유권분쟁들이 무력사용의 불가피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영유권분쟁에 남겨진 것은 누가 언제 무력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군대출동의 시기선택문제 뿐이다.

▲ 해상자위대      © 자주민보


일본이 독도를 무력도발로 강탈해도 박근혜 정권은 독도를 탈환하지 못한다.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 해상자위대는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는데, 한국군의 허술한 해군력으로는 일본 해상자위대를 상대하는 독도교전에서 대패할 것이 뻔하다. 2005년 3월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만일 한일독도교전이 벌어지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독도를 빼앗길 것으로 예견한 바 있다. 그 이후 약 9년 동안 한국군이 무력증강에 힘써온 만큼 일본자위대도 무력증강에 힘써왔기 때문에, 양측의 무력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의 무력격차가 일본을 독도무력강탈에로 끌어당기는 결정적인 유혹요인이다.

그런데도 지난 시기 이명박 정부는 2012년 9월 7일부터 나흘 동안 실시한 육해공군 합동 독도방어훈련에 해병대 상륙훈련을 포함시켰다가 일본이 반발하자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병대 상륙훈련을 슬그머니 취소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자고 일본에 먼저 제안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한국해군과 일본해상자위대는 1999년부터 동해 또는 남해에서 ‘수색구조훈련(SAREX)’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한일합동해상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 편, 한국군과 일본자위대 사이에서 무기부품과 연료를 서로 나누어 쓰는 ‘물품-용역 상호제공협정(ACSA)’을 체결하려고 하는 등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군이 독도를 강탈하려고 벼르는 일본자위대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다니, 세상에 이처럼 미친 짓이 또 어디 있을까!

일본자위대가 독도를 무력도발로 강탈하여 동해에서 군사작전범위를 결정적으로 확장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부합되므로, 미국은 일본의 독도무력강탈을 속으로 환영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는 오늘, 대일동맹관계를 이전보다 더욱 강화해야 할 절실한 요구를 느끼는 미국은 일본의 독도무력강탈로 한일관계가 파탄되는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척하면서 막후에서는 일본을 적극 지지해줄 것이다.

2014년 1월 30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 출석한 아베신조는 자신의 야스쿠니진자 참배강행으로 “일미동맹이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독도강탈책동과 결부시키면, 일본이 독도를 강탈해도 미일동맹이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독도무력강탈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지금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은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요즈음 일본 극우정권이 ‘집단자위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들을 서두르며 소동을 피우는 흉계 속에는 독도무력강탈도 포함되어 있다. 아베신조의 ‘집단자위권’ 확보책동이 노리는 일차적 목표가 독도를 무력도발로 강탈하는 독도 급변사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백해무익한 대북적대정책과 망국적인 대일군사협력을 모두 중단하고, 백년숙적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을 저지, 파탄시키는데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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