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7년 11월 0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무산된 대화 살려보려고 안달이 난 트럼프 행정부 2. 트럼프 행정부의 다급한 대화제의 무시해버린 조선 3. 대치상태에 들어간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미국의 스텔스전략폭격기 4. 무선통신애호가가 엿들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의 무선교신 5. 동북아시아 순방길 오른 트럼프의 무거운 발걸음
1. 무산된 대화 살려보려고 안달이 난 트럼프 행정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연거푸 얻어맞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미국은 조선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며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였지만, 핵추진 항공모함을 동원한 대조선전쟁연습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하는 바람에 조선은 지난 10월 말로 예정되었던 대화일정을 취소하였는데, 그로써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조선과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조선과 미국의 실무급 대화가 성사될 전망은 불투명해졌다는 것, 이것이 지난 10월 3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종착점에 다가선 핵대결, 굴복의사 드러내 보인 미국’에 서술된 내용이다. 그 글이 발표된 날로부터 한 주간이 지났다. 이 글에서는 이전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가 <로이터통신> 2017년 10월 31일 보도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북조선과의 직접적인 외교(direct diplomacy)를 조용히(quietly) 추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조미 실무급 대화가 조선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무산된 대화를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살려보려고 안달이 난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는 언론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조선 외무성에게 연락하였다. <사진 1>
위에 인용한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에게 실무급 대화를 또 다시 제의하는 연락선은 ‘뉴욕통로(New York channel)’이고, 연락담당자는 조섭 윤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뉴욕통로’라는 것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주유엔조선대표부를 통해 조선 외무성에 연락하는 연락선을 뜻하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앞세우고 주유엔조선대표부를 통해 조선 외무성에 실무급 대화를 또 다시 제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에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또 다시 제의한 것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로이터통신> 보도기사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는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주유엔조선대표부를 통해 최선희 외무성 북미주국장으로 생각되는 연락상대에게 보내는 대화제의가 “빈도와 내용에 있어서 전혀 제한되지 않았다(It has not been at all, both (in) frequency and substance)”고 하였다. 빈도에서 전혀 제한이 없다는 말은 거듭하여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는 뜻이고, 내용에서 전혀 제한이 없다는 말은 모든 의제를 다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발등에 떨어져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국가안보파탄의 불덩이를 꺼보려고 우왕좌왕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의제들을 논의하는 대화를 조건 없이 시작하고 싶다”는 매우 다급한 제의를 조선에게 계속 보내면서, 조선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된 실무급 대화를 살려보려고 몹시 안달이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제국의 체면을 접어두고 적국에게 그처럼 무조건적인 대화제의를 거듭 보내는 것은, 미국이 건국한 이래 처음 보는 굴욕사건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조선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지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지하는 이른바 ‘쌍중단 중재안’을 제시하였지만, 그 중재안은 조선과 미국으로부터 각각 외면당하는 바람에 존재가치를 상실하였다. <사진 2>
조선과 미국은 왜 ‘쌍중단 중재안’을 외면하였을까? 조선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어떤 경우에도 중지할 수 없다는 강경의사를 밝힌 것이고,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어떤 경우에도 중지할 수 없다는 강경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조선과 미국은 ‘쌍중단’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지하였다고 해도, 조미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조선의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은 아무 때라도 재개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지하였다고 해도, 조미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은 아무 때라도 재개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날 조선은 미사일발사훈련을 중지하였으나 미국이 합의를 깨는 바람에 그것을 재개한 적이 있고, 미국도 지난날 대조선전쟁연습을 한 차례 중지하였으나 이듬해 재개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쌍중단’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조선과 미국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대타결을 추구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무부 고위관리는 위에 인용한 <로이터통신> 보도기사에서 “바람직한 종결점은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외교적 타결(diplomatic settlement)”이라고 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을 향해 외교적 항복이냐 군사적 행동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설정하고 있다는 제안들은 “오도되는 것(misleading)”이라고 지적하고, “외교에는 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Diplomacy has a lot more room to go)”고 말했다. 나는 지난 10월 30일 <자주시보>에 실린 ‘종착점에 다가선 핵대결, 굴복의사 드러내 보인 미국’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10월 25일 보도기사를 인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 특사 또는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하는 계획을 검토하였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는데, 위에 인용한 <로이터통신> 보도기사에 나온 ‘외교적 타결’이라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런 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였음을 뒷받침해준다.
현실이 이런데도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정세를 거꾸로 읽는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외교적 노력들(diplomatic efforts)’은 대통령 특사나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는 ‘외교적 타결’을 뜻하는 게 아니라, ‘최대 압력(maximum pressure)’을 가증시켜 조선을 그 무슨 ‘비핵화협상’에 끌어내려는 것이라는 당치 않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2. 트럼프 행정부의 다급한 대화제의 무시해버린 조선
그런데 미국이 조선에게 ‘조용히’ 그리고 거듭하여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이는 놀라운 일보다 더 놀라운 사변이 일어났다.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건 없는 대화제의를 거듭 받고서도 전혀 응답을 주지 않고 무시해버리고 있다. 위에 인용한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그렇지만 막후연락을 통해 북조선의 핵시험과 미사일시험들로 파란이 일어난 (조미)관계가 개선된 어떤 징후도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미국 국무부가 ‘뉴욕통로’를 통해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거듭 제의하고 있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초강국’이라고 으스대는 아메리카제국이 굴욕감을 간신히 참아가며 모든 의제를 놓고 조건 없이 대화해보자고 조선에게 거듭 간청하는데도, 그걸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시해버리는 조선의 모습에 놀라움의 눈길이 쏠린다.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목소리를 높이는 러시아나 중국도 미국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조심하는 판인데, 미국의 거듭되는 간청을 무시해버리는 조선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진 3>
조선으로부터 무시를 당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하지만, 속에서는 울화가 치밀고, 바작바작 타들어가 거의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미치광이전략을 선호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거의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면, 그거야말로 자업자득 아닌가!
그렇다면 조선은 왜 트럼프 행정부의 거듭되는 대화제의를 그처럼 무시해버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까닭은 아래와 같이 두 갈래로 설명된다.
첫째,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은 조선이 ‘완전하고, 검증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비핵화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그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고집해왔지만, 지금 사정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철군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그들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려는 당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화제의를 받아줄 때가 아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국가핵무력완성사업이) 이제는 그 종착점에 거의 다달은 것만큼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최종목표는 미국과 실제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어 미국 집권자들의 입에서 함부로 우리 국가에 대한 군사적 선택이요 뭐요 하는 잡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두 가지 목표들 가운데,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려는 목표는 앞으로 불과 몇 주가 지나면 달성될 당면목표이고, 미국과 핵무력의 균형을 이루려는 목표는 그보다 더 긴 일정기간이 지나야 달성될 최종목표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하여 국방력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련발적으로 이룩”되었다고 지적하였는데, 국가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조선의 노력은 그 지적대로 올 한 해 동안 엄청난 성과를 내왔다. 이를테면, 올해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인 화성-12형과 화성-14형 발사훈련과 열핵탄두기폭시험 등을 연발적으로 진행하였을 뿐 아니라, 공식명칭이 외부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열병식에 등장시켜 국가핵무력건설이 최종단계에 들어섰음을 실물로 입증하였던 것이다.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7년 11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지금 조선은 고체연료, 로켓발동기 및 로켓엔진부품들, 미사일유도체계의 성능을 향상시켜 기존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더 강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것은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에 마지막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그 작업은 2017년 12월 중에 완료될 것으로 예견된다.
3. 대치상태에들어간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미국의 스텔스전략폭격기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2017년 10월 16일 미국이 제7함대에 배속된 핵추진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한반도작전구역으로 출동시켜 대조선전쟁연습을 또 다시 강행한 것으로 하여 조미관계는 극도의 긴장 속에 빠져 들어갔다. 지난 10월 중순 이후 조미관계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당시에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아래와 같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일본 <아사히신문> 2017년 11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은 조선에서 지난 10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 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대차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중순이라면,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과 구축함이 한반도작전구역에 들어가 대조선전쟁연습을 시작한 10월 16일과 겹쳐지는 시점이다.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지난 10월 27일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던 미국이 10월 16일에 핵추진 항공모함을 한반도작전구역에 출동시켜 대조선전쟁연습을 강행하였을 때, 조선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실무급 대화를 취소해버리고 화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대차들을 각지의 지하기지들에서 꺼내 거의 매일 이동시키며 즉시발사태세에 돌입했던 것이다. 즉시발사태세를 취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대차들이 거의 매일 지하기지에서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으니, 미국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어느 순간에 태평양 상공을 향해 솟구쳐 오를지 알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백악관은 거의 매일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진 5>
지난 10월 중순부터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을 즉시발사태세에 진입시키는 보복을 단행하자, 미국도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을 폭격연습에 동원하면서 그에 응수하였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은 아래와 같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한반도작전구역에 전략폭격기들을 출동시키는 것은 미국 전략사령부(Strategic Command)다. 미국 전략사령부의 작전임무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 각각 속한 6개 사령부들이 수행하는데,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도 그들 가운데 하나다. 지구타격사령부는 미국 본토 루지애너주에 있는 박스데일공군기지(Barksdale AFB)에 자리 잡고 있다.
지구타격사령부는 2017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B-2 스텔스전략폭격기, B-52H 전략폭격기, E-3 공중조기경보기, KC-10 공중급유기, KC-135 공중급유기를 동원한 대규모 폭격연습을 미주리주 상공에서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에만 배속된 기종이고, B-52H 전략폭격기는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 공군전투사령부, 공군군수사령부, 공군예비사령부에 분산배속된 기종이다. 미국이 20대밖에 보유하지 않은 ‘세계 최강 폭격기’라는 B-2는 지구타격사령부 산하 제8공군 제509폭격비행단에 모두 배속되었고, 다른 폭격비행단에는 없다. 제509폭격비행단은 미주리주 화잇먼공군기지(Whiteman AFB)에 주둔한다. <사진 6>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는 화잇먼공군기지에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동원하고, 거기에 더하여 루지애너주 박스데일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2폭격비행단에서 B-52H 전략폭격기들까지 참가시킨 대규모 폭격연습을 2017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미주리주 상공에서 연속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가 핵추진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동원한 대조선전쟁연습을 한반도작전구역에서 시작한 날은 그보다 하루 앞선 10월 16일이었다.
그런데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과 B-52H 전략폭격기들을 동원하고, 공중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들까지 참가시킨 대규모 폭격연습이라도, 미국 본토 상공에서 그런 폭격연습을 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어서, 미국 언론매체들은 그런 예사로운 폭격연습을 특별히 보도하지 않았고, 외부에서는 그런 폭격연습이 진행되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더욱이 미국 전략사령부는 2017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미주리주 상공에서 대규모 폭격연습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므로, 외부에서는 당시 미국 본토 상공에서 대규모 폭격연습이 진행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4. 무선통신애호가가 엿들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의 무선교신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미주리주 상공에서 대규모 폭격연습이 진행된 날로부터 11일이 지난 2017년 10월 30일 미국의 군사항공전문 온라인매체 <비행사(The Aviationist)>가 11일 전에 있었던 대규모 폭격연습에 관한 보도기사를 실은 것이다. 그것이 늑장보도였다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겠는데, 그 온라인매체가 직접 취재한 보도기사가 아니라, 화잇먼공군기지에서 서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캔서스주 동부지역에 산다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민간인 무선통신애호가(ham)의 체험담이 그 온라인매체에 기사화되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좀 이상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비행사> 2017년 10월 30일부에 실린 무선통신애호가의 체험담을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2017년 10월 17일 밤 8시경 그는 아내와 함께 집 밖에 나와 모닥불을 쬐고 있던 중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3대와 KC-135 공중급유기 1대가 25,000피트(7.6km) 고도에서 비행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비행사>측의 지적에 따르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3대와 공중급유기 1대가 참가하는 폭격연습은 평소에 진행되는 표준화된 폭격연습이라고 한다.) 목격이라고 했지만, 캄캄한 밤하늘에서 그가 실제로 목격한 것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공중급유기 동체에 달린 항법등과 섬광등 불빛이었다. (캄캄한 밤하늘 7.6km 고도에서 비치는 항법등과 섬광등 불빛만 보고 그것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KC-135 공중급유기라고 정확히 식별한 것, 그리고 비행고도를 7.6km라고 정확히 지적한 것은, 미국 공군의 작전기종들에 대해 정통한 군사전문가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렇지 못한 민간인 무선통신애호가가 어떻게 그처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2) 그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곧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무선통신기를 켜고 약 30분 동안 추적한 끝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의 무선교신주파수를 찾아냈고, 그들의 교신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사진 7>
(3) 그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무선교신 중에 폭격연습대상위치를 알려주는 좌표를 불러주는 것을 엿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폭격연습대상좌표들을 인터넷에 나오는 구글지도(Google Maps)에서 어느 지점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제퍼슨씨티(Jefferson City)에 있는 격납고를 비롯한 몇몇 대상들에 유도폭탄(GBU)을 어느 시각에, 어떤 방식으로 투하하는 연습을 할 것인지에 관해 무선교신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미주리주에 있는 제퍼슨시티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이륙한 화잇먼공군기지에서 동쪽으로 약 121km 떨어진 지방도시다.)
(4) 이튿날 그는 자신의 무선통신기를 사용하던 중 밤 8시경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주고받는 무선교신을 또 다시 엿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설정한 폭격연습대상들 가운데는 오쎄이지 비취(Osage Beach)에 있는 활주로와 격납고가 포함되었다. (미주리주에 있는 오쎄이지 비취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이륙한 화잇먼공군기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104km 떨어진 지방도시다.)
(5) B-2 전략폭격기들이 주고받는 무선교신을 엿듣던 그의 귀에는 “조선 지도부가 재배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지휘소(a command post possible DPRK leadership relocation site)”라는 말을 들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무선통신애호가가 <비행사>측에 전해준 체험담은 여기서 끝나는데, 그의 체험담을 들은 <비행사>측은 아래와 같은 분석을 보도기사에 덧붙였다.
미국 공군 작전기들은 제3자가 엿듣지 못하도록 암호화된 군용 주파수를 사용하여 교신한다. 이것은 그들 중 누구도 어길 수 없는 군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7년 10월 18일 미주리주 상공에 출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은 암호화되지 않은 일반 주파수를 사용하여 교신하였다. 또한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들은 폭격비행연습 중에 폭격대상위치를 알려주는 좌표에 대해서는 무선교신을 통해 언급하지만, 그 폭격대상이 어떤 실제대상을 가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그들 중 누구도 어길 수 없는 군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7년 10월 18일 미주리주 상공에 출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은 지휘부가 설정해준 폭격대상이 어떤 실제대상을 가상한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미국 공군의 군율에서 벗어난 그들의 이상한 행동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동원하여 조선의 전쟁지휘부를 폭격하는 연습이 진행되었음을 조선에게 알려주려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인다고 <비행사>측은 해석하였다. <사진 8>
그 해석은 틀리지 않았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B-52H 전략폭격기, 공중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폭격하는 연습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부에 알려주는 식으로 조선을 위협한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나중에는 그 스텔스전략폭격기를 태평양 건너 일본 상공으로 출동시키는 계획도 추진하였다.
2017년 10월 30일 미국 전략사령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한 대가 미국 본토 미주리주에 있는 화잇먼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태평양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태평양 상공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일본 <아사히신붕> 2017년 10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략사령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B-1B 전략폭격기를 10월 29일 일본 이바라끼(茨城)현 하꾸리(百里)기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일본 항공자위대 사열식에 보내려고 준비하였으나, 당시 제22호 태풍이 일본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사열식이 취소되어 일본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바라끼현은 도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정보를 종합하면, 미주리주 화잇먼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태평양을 건너 일본 이바라끼현 상공에 출동하려고 준비하였는데, 일본에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일본에는 가지 못하고 북태평양 어느 상공을 비행하고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2017년 11월 2일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en AFB)에서 B-1B 전략폭격기 2대를 한반도 남부지역 상공으로 출동시켜 강원도 필승사격장에서 또 다시 대조선폭격연습을 강행하였다.
5. 동북아시아 순방길 오른 트럼프의 무거운 발걸음
조선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여러 대의 발사대차를 각지의 지하기지들에서 출동시켜 즉시발사태세에 돌입하였고, 미국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B-1B 전략폭격기들을 출동시켜 조선을 위협하는 폭격연습을 진행하였다. 이처럼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첨예한 대치상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대화제의를 거듭 간청하였으나, 조선은 그 대화제의를 무시한 채 국가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2017년 11월 초 극도로 긴장된 조미관계의 현황이다.
그래서 동북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의 발걸음은 너무 무겁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위에 서술한 것처럼,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미국의 스텔스전략폭격기가 첨예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대화제의를 간청하고 있으나, 조선은 그 대화제의를 무시한 채 국가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해 줄달음치고 있으니 동북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 9>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인 2017년 11월 2일 그는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와 대담하면서 여러 주제를 논했는데, 대담 중에 그는 조미관계와 관련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북조선문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북조선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들(조선을 지칭함-옮긴이)이 유쾌하지 못할 것이고, 그 누구도 유쾌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은 세계가 본 적이 없는 불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느니, “조선을 절멸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느니 하며 미치광이처럼 떠들어대던 이전의 광기 어린 폭언들과 비교하면, 위에 인용한 발언에서는 조선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그나마 자제한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에 진행한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조선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투로 간단히 언급하였을 뿐,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담 중에 말하지 않았지만,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져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할 위급한 처지에 있는 미국에게는 지금 선택방안이 단 하나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특사를 평양에 급파하여 철군문제를 결정할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할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한미국군 완전철수와 전략적 핵압박공세 중지를 맞바꾸는 대타결을 이끌어내는 선택방안밖에 없는 것이다.
2017년 11월 2일 백악관에서 <씽클레어방송집단(Sinclair Broadcast Group)>과 단독대담을 진행한 트럼프 대통령은 냉전시기 미국 대통령들이 중국이나 소련의 지도자들과 만났던 것처럼 적국 지도자와 만나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라고 물은 대담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확실히 열려있다. 누구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강점이나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마주 앉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될는지 좀 지켜보겠다. (적국 지도자와 만나는 정상회담을 곧바로 진행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철군문제를 결정하는 것에 상응하여 조선이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는 것은 조선이 핵무력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은 미국의 철군결정에 상응하여 핵시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지할 수 있지만, 핵무력은 계속 강화하는 것이다. 조선은 자기의 핵무력이 그 어떤 경우에도 협상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언한 바 있다.
조선은 2017년 12월 중에 국가핵무력완성사업을 완료할 것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할 것이고, 그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조선의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이 연발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예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파탄에 빠진 미국을 극적으로 기사회생시킬 철군문제를 조선과 합의할 시간은 앞으로 5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백악관에서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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