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7년 10월 3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
2. 매우 다급해진 미국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
3. 대통령 특사나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려는 계획
4. 종착점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멈춰 서겠는가
1.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
산천이 가을빛으로 짙게 물든 지금, 현실은 중대하고 심각한 물음 앞에 마주서 있다.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조미핵대결, 전 세계가 긴장된 시선으로 지켜보는 조미핵대결은 어떻게 끝나가고 있는가?
조미핵대결이 전개되는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면, 2017년 10월 중순 이후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는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서술하려는 목격장면은 2017년 10월 한 달 동안 조미관계 속에 나타났으나, 사람들이 예사로운 일로 여겨 그냥 넘어간 일련의 상황변화다.
그 상황변화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가운데 어느덧 10월이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발사한 이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10월 중 어느 날 반드시 쏠 것으로 예견하고, 조미핵대결 전개상황을 주시해온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과 정치분석가들은 조선이 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더 이상 발사하지 않는지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조선이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가 중지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사진 1>
미국의 숨통을 조여 온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왜 중지되었을까? 조선이 미국에 대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조선의 초강경하고, 연발적인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국제사회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오직 조선에게만 조용히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경우다. 조선은 미국이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일 때, 바로 그럴 때만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해줄 수 있다.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다는 말은,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조선과 무조건 대화하고 싶다고 제의하는 다급한 행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의 허세를 실세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조선에게 ‘최대 압박’을 가하면서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밝힐 때까지 조선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여왔는데, 그처럼 ‘강대한 미국’이 ‘약소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면서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나 우리가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 무지와 편견, 오해와 착각이 만들어낸 조미관계의 허상은 곧바로 깨져버리게 되나니, 그 허상이 깨져나간 공간에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 미치광이처럼 반발하며 발광전략에 허둥지둥 매달렸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2017년 10월 10일 이후 이상하리만치 바뀌었다.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연단에서 조선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극악한 전쟁폭언을 토해놓아 전 세계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렸던 그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었다. 조미관계를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언론매체에 귀띔해준 사람은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외교수장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다. 2017년 10월 15일 틸러슨 국무장관이 <CNN>과 진행한 대담에 시선이 쏠린다. 의미맥락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영어원문을 함께 인용한다.
“대통령은 북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고 한다(The president is trying to motivate action on North Korea). 그는 전쟁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다(He is not seeking to go to war). 또한 대통령은 이것(조미핵대결을 뜻함-옮긴이)이 외교적으로 해결되기 바란다는 점을 내게 분명히 하였다(The president has also made clear to me that he wants this solved diplomatically). 그런 외교노력들은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Those diplomatic efforts will continue until the first bomb drops).”
오해와 편견에 빠져 정세를 언제나 거꾸로 읽는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이 인용문의 전체적인 의미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맨 마지막 문장만 부각시키면서, 외교노력이 실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였다.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한 외교노력을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말은 외교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 <사진 2>
그런데 위의 인용문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더 중요한 문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힌 바로 그 대목이다. 그가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한다면, 그건 어떤 행동인가? 위의 인용문에 나온 틸러슨 국무장관의 말을 빌리면, 그 행동은 “외교노력(diplomatic efforts)”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이다.
이런 의미맥락을 파악하면, 2017년 10월 1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 수뇌부로부터 한반도 철군문제를 보고받고,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 10월 1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트럼프의 발광전략 뒤에 무엇이 보이는가?’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2017년 10월 1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철군문제와 그에 따른 외교적 선택방안이 논의되었으므로, 그 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된 날로부터 닷새 뒤 틸러슨 국무장관의 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연단에서 조선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극악한 전쟁폭언을 토해냈던 미치광이 대통령이 지난 10월 10일 이후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게 된 전향적인 태도변화, 이것이야말로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CNN> 대담에서 위와 같은 징표에 대해 언급하기 이틀 전인 2017년 10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럴 만하다면, 나는 협상으로 향하게 될 것(I would be open to negotiations if plausible)”이라고 답변하였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0일에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계기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매우 다급해진 미국,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
하지만 극도로 과열되었고, 그래서 매우 위태로워진 핵대결국면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틸러슨 국무장관이 꺼내놓은 몇 마디 말에 이끌려 협상국면으로 왈칵 전환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외교절차가 필요하다. 핵대결국면을 협상국면으로 전환시킬 외교절차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조미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급 대화가 그런 외교절차로 될 수 있다.
2017년 10월 23일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은 러시아 쌍끄뜨 뻬쩨르부르크 대학에서 진행된 비공개 연설에서 “조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조미대화라는 것은 회담이나 협상이 아니라 상호연락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미국이 언론의 눈길을 피해 서로 연락하였다는 말이다. 조선과 미국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어느 한 쪽이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고 다른 쪽이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도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조선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집해왔다. 그런 미국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은 미국이 조건을 달지 않고 대화를 제의해올 때, 다시 말해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일 때, 그 제의를 받아주겠다고 응수하였다. 이처럼 상충되는 입장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는 어떤 형태의 대화도 진행될 수 없었고, 어느 한 쪽이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은 실무급 대화를 조선에게 제의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틸러슨 국무장관의 <CNN> 대담에서 언급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노력이라는 것은 조건 없는 대화를 조선에게 제의한 행동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조선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가 종래의 고집스런 태도를 버리고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였다는 사실이다.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조선과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고 다급하게 제의한 것이야말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 연속발사, 괌포위사격계획 발표, 태평양에서의 수소탄기폭시험 예고발언 등으로 차츰 증강되어온 조선의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얻어맞으며 국가안보파탄의 벼랑끝에 아슬아슬하게 떠밀린 트럼프 행정부는 너무 다급한 나머지 제국의 체면은 접어두고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기 위한 협상을 준비할 실무급 대화부터 조건 없이 시작하자고 먼저 조선에게 제의하였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지푸라기를 움켜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런 대화제의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건 없이 실무급 대화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조선에 보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꼴이 드러날까 걱정하였고, 그래서 그 사실을 꽁꽁 숨겼다. 그런 까닭에 최선희 국장이 비공개 연설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었던 것이다. <사진 3>
둘째, 일본 텔레비전방송 <TBS> 2017년 10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급 대화는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과 조섭 윤 미국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2017년 10월 말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다고 한다. 최선희 국장이 10일 동안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지난 10월 26일 모스크바를 떠났으므로, 조미 실무급 대화는 10월 27일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은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자고 조선에 제의하였고, 조선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조미 실무급 대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시아 순방일정이 순차적으로 물려있었음을 주시하면서, 2017년 10월 25일에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 <팍스 비즈니스 넷웍(Fox Business Network)>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며칠 뒤에 있게 될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지칭함-옮긴이)가 나를 데리고 가는 베이징과 다른 곳들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틀 머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일본과 한국에도 갈 것이다. 그리고 바라건대 그것은 역사적이고 긍정적으로 될 거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북조선문제를 해결해야 한다(And it will be, I think -- hopefully it's historic and positive and we have to solve the North Korea problem). 그것은 매우 큰 문제다. 그 문제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어야 했다. 그 문제는 내가 백악관에 들어가기 훨씬 전에, 해결하기 쉬웠을 때 해결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내게 주어졌으니, 나는 그것을 해결한다. 나는 문제들을 해결한다(But it was given to me and I get it solved. I solve problems).”
3. 대통령 특사나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려는 계획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북조선문제(North Korea problem)를 해결할 역사적이고 긍정적인 기회’라고 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해결하지 못했으나 자기는 ‘북조선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한 ‘북조선문제’라는 것은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뜻하는 것이므로, 그는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로 될 것이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과장된 표현을 쓰는 말버릇이 있으므로,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에 대해 말할 때도 과장법을 쓴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로 될 것이라는 말을 그냥 무시해버릴 수는 없다. 그의 말에 덮여있는 과대포장을 벗겨내면, 아래와 같은 실상이 드러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전에 먼저 조선과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도록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지시하였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였고, 조선도 그 제안을 받아들여 2017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이다. <사진 4>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기대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하지 못했으나 자기는 미국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게 하겠노라고 말한 것은,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실무급 대화에서 조미협상의 진행방식 및 의제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2017년 10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전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협상방식과 협상의제는 무엇일까?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 실무급 대화에서 조선에게 제의하려고 하였던 협상방식과 협상의제가 무엇인지 시사해주는 정보는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10월 25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는 조섭 윤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미국 연방의회 보좌관이 전해준 말을 인용하여 작성된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첫째,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연방의회 보좌관은 “그 외교관(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지칭함-옮긴이)은 어떤 종류의 대화라도 재개하려는 매우 절실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The diplomat is searching for a "hail Mary" attempt to restart any sort of talks)”고 지적하였다. 이건 무슨 뜻인가? 지난 10월 1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였고, 조선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조선이 그 대화를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매우 다급해진 미국 국무부가 어떤 종류의 대화라도 재개하려고 안달복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조선이 전격적으로 취소해버린 사연에 대해서는 아래서 논한다. <사진 5>
둘째,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연방의회 보좌관은 조선과 대화하려는 미국의 절실한 시도들에는 “아마도 고위급 특사 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파견하는 것도 포함된다(including a high-level envoy or dispatching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0월 27일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조미 실무급 대화에서 미국은 고위급 특사 또는 틸러슨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하는 문제를 제의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 특사 또는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는 목적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의 조선방문을 준비하는 사전협의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였던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J. K. 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자신의 조선방문을 준비하게 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있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미중정상회담을 추진하였던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1971년 7월 9일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베이징에 보내 자신의 중국방문을 준비하게 하였던 사실도 기억할 수 있다.
4. 종착점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멈춰 서겠는가
백악관이 예상하지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하였다. 조선이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된 조미 실무급 대화를 갑자기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본 텔레비전방송 <TBS> 2017년 10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미국이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전개한 것을 이유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훈련은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과 구축함이 2017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동해와 서해를 오가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한 것을 뜻한다. 로널드 레이건함은 전쟁연습을 마치고 10월 21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들어갔다가 10월 26일 부산을 떠나 한반도작전구역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2017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조선과 합의하였으면서도,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한반도작전구역으로 출동시켜 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니, 조선이 그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은 조미 실무급 대화를 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조선전쟁연습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었고, 대화제의의 속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0월에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출동시켜 대조선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한 것은 그들이 조선에게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기 훨씬 전부터 계획되고 준비되어온 것이지만, 조선과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으면 그 계획을 취소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비록 규모를 축소하기는 했지만 전쟁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연습과 대화를 병행하는 어리석고, 모순되는 짓을 저질렀다. <사진 6>
2017년 10월 24일 헤더 노엇(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취재진에게 “이미 여러 번 밝힌 대로 미국은 북조선과 협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그런데 북조선이 대화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출동시킨 전쟁연습이 진행되는 통에 조미 실무급 대화가 취소된 사정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상황을 오판한 그는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린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되었던 조미 실무급 대화가 무산되었으니, 그 대화가 언제 다시 일정에 오를지 예견하기 힘들다. 대화전망이 불투명해졌으니, 조선이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였던 일시적인 조치를 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할 가능성도 보인다.
“미국과 북조선의 외교노력들은 평양이 대화를 회피하는 바람에 위험에 빠졌다”고 지적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10월 25일 보도기사는, 조선이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당황망조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최근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펼친 외교노력들은 미국의 국가안보파탄을 막아줄 “마지막 버팀대들(last legs)”인데, 조선은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그 마지막 버팀대마저 부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버팀대가 부러졌으니, 벼랑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국가안보파탄이라는 불덩이가 타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2017년 10월 19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국가안보문제토론회에서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시기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가 때를 놓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거의 다달은 것만큼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조선이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해안의 중간쯤 되는 북태평양 상공으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날,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는 조선이 사상 최대 폭발력을 가진 수소탄을 북태평양에서 기폭시키는 날,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7>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은 2017년 10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국제비확산회의’에서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인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출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국이 핵보유국인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든지 또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견된다. 국가핵무력 완성이라는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조선이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그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지난 9월 15일 화성-12형 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이 조선의 핵포기를 유도할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미국에게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2000년 10월 조선과 공동코뮈니께를 발표해놓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이미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는 동안 조선은 국가핵무력건설에 힘을 집중해오면서 미국과 핵대결을 벌여왔으므로, 오늘 미국은 전략적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선과 격돌하는 핵대결정세를 끝없이 오판하며, 실효도 없는 경제제재에나 매달려 어물어물하다가 국가안보가 파탄되자 결국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미국, 그런 미국에게 기사회생의 출로는 오로지 철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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