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27

북의 고위급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사연

[한호석의 개벽예감] (65)
자주민보 2013년 05월 2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어느 쪽이 특사파견을 요청하였을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자신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013년 5월 24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하였다.

최고지도자가 파견한 고위급 특사가 방문국의 최고지도자를 예방하고 친서를 전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외교관례다. 그런 외교관례의 의전절차는 특사파견 이전에 양측 사이에서 합의되어야 하며, 만일 의전절차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특사를 파견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남측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북의 고위급 특사가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런 ‘예측’이야말로 국제적 외교관례도 모르고, 북과 중국의 특별한 우호관계도 모르는 무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중국 국가주석이 파견한 특사가 평양에 가는 경우에도, 김정은 제1위원장을 예방하고 친서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북과 중국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 두 나라 사이의 특사파견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외교관례에 따라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자신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한 것은 국제적 외교관례에 따른 특사파견을 사전에 요청하고 그 요청이 수락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이 특사파견을 요청하였고, 어느 쪽이 특사파견 요청을 수락하였을까 하는 문제다.

2013년 5월 24일 <뉴욕 타임스>는 중국 분석가들의 견해인 것처럼 얼버무리면서 “지난 몇 달 동안 북이 베이징 회동을 요청해왔으나, 중국 지도부가 그 요청을 거부해왔다”고 서술함으로써 마치 북이 중국에게 특사파견을 간청해오다가 이번에 중국의 허락을 받아 특사를 보낸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엉터리 보도다. 그런 엉터리 보도와는 정반대로, 특사파견을 요청한 쪽은 중국이었고, 특사파견 요청을 수락한 쪽은 북이었다.

이번 특사파견을 어느 쪽에서 요청하였는지에 관한 정보는 북에서나 중국에서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아래와 같은 작금의 동향을 분석해보면 중국이 북에게 특사파견을 요청한 것이 자명해진다.

북은 중국에 특사를 파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북은 이미 ‘조국통일대전’을 선포하였고, 그것을 위한 결전돌입태세를 취하고 있으며,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전략노선을 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북의 이러한 단호한 태도와 결심은 북이 중국에 특사를 보내는 외교적 행동단계를 완전히 넘어섰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러한 북과 달리, 중국은 북을 상대로 특사외교를 펼쳐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떠밀려갔다. 중국이 처한 상황은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첫째, 누구나 짐작하는 것처럼, 중국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은 미국의 북침전쟁도 당연히 반대한다.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은 자기의 양비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는 못한 채, 북과 미국이 서로 충돌을 자제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식으로 말해왔다.

그런데 중국은 자기의 양비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이 지난 몇 달 동안 대북적대정책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북을 극도로 자극하였고, 미국의 그런 극단적인 적대행위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북은 미국과 최후 결전을 벌일 태세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최후 결전에 관한 북의 발언들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한 중국은 얼마 전 미국이 두 달에 걸쳐 감행한 대북전쟁연습을 끝내자, 이제 북이 최후 결전을 개시할 때가 임박하였구나 하는 심각한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절감한 당면과제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북미관계에 조성된 전쟁위험부터 일단 막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 처한 중국으로서는 북측 고위급 특사의 중국 방문을 요청하여 물리적 충돌 직전에 이른 북미관계의 살벌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2013년 5월 23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6월 하순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고 발표하였고, 이튿날 청와대도 같은 내용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중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관해 발표하기 하루 전인 5월 2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특사로 파견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우연하게 이어진 시간적 연속이 아니다.

중국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가 자국에 도착한 직후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되었음을 발표한 것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대북관계와 대남관계를 적절히 조절하는 중국의 외교술이었던 것이다.

2013년 5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함께 만찬을 나눈 자리에서 “중국이 방문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중국을 방문하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도 바라고 있었던 일이고 중국도 바라고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만일 북과 중국이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중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아도 북의 6자회담 폐기와 핵보유 문제를 둘러싸고 북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하면서 두 나라 사이를 이간하려는 여론이 미국과 남측에서 일렁이고 있는 판에, 만일 북과 중국이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미국과 남측은 북과 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완전히 깨졌다는 선전공세를 퍼부을 것이고, 중국으로서는 그 공세에 반박할 도리가 없게 될 것이다.

북의 6자회담 폐기 및 핵보유 문제와 ‘조국통일대전’ 선포 문제를 둘러싸고 북과 중국 사이에 심각한 이견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두 나라 사이에서 그런 외교갈등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그 두 나라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비록 전통적인 우호관계라고 하더라도 양측의 국가적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외교갈등을 겪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상사’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시기 북과 중국 사이에서는 오늘 양측이 겪고 있는 견해충돌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갈등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외교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북과 중국이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아니며, 두 나라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저버리고 싶어도 저버릴 수 없는 ‘숙명적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북을 고립상태에 몰아넣으려는 미국은, 이번에 북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난 견해충돌을 전통적 우호관계의 파탄이라고 왜곡선전하여 북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그런 속셈을 모를 리 없으며, 미국의 그런 속셈을 못 본 척하고 방치할 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중국이 남측과 한중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에게 고위급 특사방문을 서둘러 요청한 배경이며, 북의 고위급 특사가 베이징에 도착한 이튿날 중국이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한 배경이다.

셋째, 중국의 <인민일보> 2013년 1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월 23일 박근혜 당선인 특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한다.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당사국들의 관심사가 균형 있게 해결되고 반도의 비핵화와 장기적 안정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넉 달이라는 시차를 두고 있지만, 중국은 자기의 6자회담 재개의사에 대한 동의를 남과 북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넷째,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3년 6월 7∼8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게 되는데, 그 회담은 그가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되는 미중 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첫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미관계에 조성된 전쟁위험을 완화하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시 협상으로 끌어낼 어떤 현실적인 제안을 꺼내놓아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런 제안을 꺼내놓으려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우선 북과 의견을 교환해야 하며, 북으로부터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야 하였다. 그래서 중국은 북에게 고위급 특사파견을 서둘러 요청한 것이다.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인 북의 외교술

위에서 언급한 맥락을 살펴보면, 이번에 남측과 한중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에게 고위급 특사방문을 서둘러 요청한 중국이 북의 고위급 특사방문에서 기대한 것은 북의 고위급 특사가 중국의 6자회담 재개의사에 동의를 표시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중국이 북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북에게 고위급 특사파견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북에게 고위급 특사파견을 요청하였으므로, 베이징에 도착한 북의 고위급 특사를 최상의 예를 갖춰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특별비행기를 타고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중국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공항에 보내 영접하게 하였고, 대외연락부 부장과 회담하고, 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하고,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회담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하는 순으로 방문일정을 진행하였다. 중국으로서는 최상의 예를 갖춘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고위급 특사를 파견해달라는 긴급 요청을 받은 북은 중국이 특사파견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2013년 5월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류윈산 상무위원을 만나 회담하면서 “조선은 중국과 함께 조중관계를 부단히 발전시켜나가기를 희망한다. 중국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의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기울인 거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조선은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국들과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이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북이 최후 결전 태세에 진입한 상태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겠지만,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국이 바라는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발언에 담긴 뜻은, 만일 중국의 건의가 없었다면, 북은 대화에 나설 용의를 표명하지 않았을 텐데, 중국이 대화를 재개할 것을 북에게 건의하였기 때문에 대화에 나설 용의를 표명한다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그 발언은 대화 재개를 요청한 중국의 체면을 세워준 외교적 발언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이튿날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하면서 “조선은 유관국들과 공동으로 노력하여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6자회담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하지 않고,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과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한 것은,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바라는 중국의 입장에 부합되는 게 아니다.

북은 이미 오래 전에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하고, 6자회담에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으므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자국법으로 공고히 하였으므로 미국과 중국이 바라는 북의 핵무기 폐기는 북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다.

그렇지만 북은 6자회담 재개를 절실히 바라는 중국의 요구를 외교석상에서 전면 거부할 수는 없으므로, 문제 해결의 방식을 거론하면서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외교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논거는, 2000년 10월 12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고위급 특사로 미국에 파견한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워싱턴 방문 중에 미국 측과 합의하여 발표한 북미 공동코뮈니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미 공동코뮈니케에는 “쌍방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4자회담 재개는 당시 미국이 북에게 요구한 것인데, 북은 미국의 요구로 진행하다가 미국의 무성의한 태도로 중지된 4자회담을 재개할 의사가 조금도 없었지만, 고위급 특사를 워싱턴에 파견한 외교활동에서는 미국의 4자회담 재개의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라는 문구를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집어넣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2000년 10월의 대미 특사파견에서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대중 특사파견에서도 북은 6자회담을 재개할 의사가 전혀 없지만, 고위급 특사를 파견한 외교활동에서 중국의 6자회담 재개의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째든 중국의 6자회담 재개의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외교적 발언으로 북은 6자회담 재개의사에 동의를 표시해주기 바라는 중국의 기대에 외교적으로 부응한 셈이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외교적 발언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 내용을 사실상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을 대하는 북의 세련된 외교술이 돋보인다.

북은 중국의 기대에 외교적 발언으로 부응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었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며칠 뒤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때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할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로써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정치적 요구를 받게 될 상황으로 밀려간 것이다.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을 움직여 전통적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을 압박하는 북의 세련된 외교술이 돋보인다.

미국이 직면한 양자택일, 정치적 항복이냐 군사적 항복이냐

외교적 발언은 어디까지나 외교술에 한정되는 것이므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외교적 발언을 6자회담 재개의 가능성이 살아났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북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엉뚱한 상상에 빠지는 어리석은 짓이다. 고위급 특사의 외교적 발언이 북측 최고영도자의 결심이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북을 이끄는 조선로동당의 정치노선과 북측 정부의 대외정책이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외교술은 외교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상황을 아전인수 격으로 읽기 좋아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은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외교적 발언으로 마치 한반도 정세가 대결에서 대화로 돌아서는 극적인 전환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과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도 이번에 북의 고위급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하여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2013년 5월 10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조선반도 정세격화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미국 대통령의 궤변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를 그만두고 적의를 버리지 않는 한 긴장의 근원은 없어질 수 없으며 정세악화와 충돌의 위험은 반드시 재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다른 누구의 <변화>를 칭얼거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그릇된 관점부터 제때에 돌이켜보고 교정할 대담성 정도는 가져야 할 것”이라고 따끔하게 책망하였다.

그보다 앞서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013년 4월 18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였다.

북이 미국에게 제시한 첫 번째 전제조건은, 미국이 북에 대한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중지하고 전면 사죄”하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 <제재결의>들을 철회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북이 미국에게 제시한 두 번째 전제조건은, 미국이 북을 “위협하거나 공갈하는 핵전쟁연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하는 것이다. 

북이 미국에게 제시한 세 번째 전제조건은, 미국이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끌어들인 핵전쟁수단들을 전면적으로 철수하고 재투입 시도를 단념할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전제조건은 북이 미국에게 정치적 항복을 요구한 것이다. 세계 정치사에서 미국에게 정치적 항복을 요구하면서 최후 결전 태세에 진입한 나라는 오직 북밖에 없다.

6자회담을 재개하기 전에 북이 먼저 핵무기 포기의사부터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 미국의 전제조건을 북이 받아들일 리 만무한 것처럼, 미국도 북이 미국에게 정치적 항복을 요구하는 세 가지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에서 대화와 협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어느 한 쪽이 정치적으로 항복하는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북에서는 최후 결전 진입태세를 갖추고 모란봉악단과 은하수 관현악단을 내세워 ‘결전의 노래’를 계속 부르는 중이고, 그에 맞선 미국은 북에서 예고한 ‘최후 결전의 날’에 하루하루 다가서는 참으로 고달픈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정치적 항복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쪽이 마지막에 취하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의 정치적 항복 요구를 끝내 거부한다면, 미국에게는 북에서 말하는 최후 결전에서 패하여 군사적으로 항복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직면한 양자택일은 정치적 항복이냐 군사적 항복이냐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2013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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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북의 최후 결전은 사이버전이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63)
자주민보 2013년 05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이 지배하는 인터넷, 그에 맞선 북의 인트라넷

컴퓨터와 정보통신을 세계적 범위에서 하나의 전산망으로 결합시킨 인터넷(internet)이 구축된 때가 1995년이었다. 전 세계 정보통신망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2000년도에 51%이었는데, 2007년에는 97% 이상으로 급증하였다. 2012년 6월 현재, 세계 인구 70억 명 가운데 3분의 1에 이르는 24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을 1995년에 상업화하고 장악함으로써 당시 차츰 약화되고 있었던 미국의 세계지배체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21세기의 미국은 인터넷과 핵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현 시기 인류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시대적 환경에 처해 있지만, 그런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에 들어가지 않은 유일무이한 나라가 있으니 그 특별한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에 들어가지 않은 북은 자기 나라 안에서만 사용하는 일국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해놓았는데, 그러한 내부전산망을 인트라넷(intranet)이라 한다. 미국이 지배하는 인터넷이 구축된 때가 1995년이었고, 그에 대응해 북이 ‘광명’이라고 불리는 일국적 범위의 인트라넷을 구축한 때는 1996년이었다.

미국의 제국주의체제를 전면 배격하는 북이 미국의 지배 아래에 있는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적으로 구축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만일 북이 세계적 범위의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에 들어가면, 북의 정보통신망은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북 사이버공격과 정보통신망 침투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을 적으로 규정한 미국과 추종세력들은 북의 정보통신망을 침탈하려는 의도에서 북의 인트라넷을 인터넷에 연결하여 인터넷 사용을 ‘자유화’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북의 인트라넷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부터 미국과 추종세력들은 북의 정보통신망을 침탈하게 될 것이고, 북측 인민들의 사회주의정신세계를 교란하려는 대규모 선동공세를 펼칠 것이다. 미국과 추종세력들이 북에게 인터넷 사용을 ‘자유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의 정보통신부문을 개방하여 침탈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것이므로, 북은 그런 요구를 전면 배격하고 있다.

북이 인트라넷을 인터넷에 연결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을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기술,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북측 사회주의체제의 안전보장에 직결된 정치, 사상적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북은 앞으로도 세계적 범위의 인터넷과 영구히 단절하고, 일국적 범위의 인트라넷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사이버 자주노선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 온라인 언론매체 <비지니스 인사이드(Business Inside)> 2012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앞으로 인터넷 사용을 중단하고 인트라넷을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반미노선을 추구하는 이란도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이란 사이버공격과 정보통신 침탈책동에 견디기 힘든 나머지, 인터넷을 차단하고 인트라넷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합병증에 걸린 사이버테러범의 망동

2013년 3월 30일 ‘어나니머스 코리아(Anoymous Korea)’ 소속이라고 자처하는 사이버테러범이 북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들과 이른바 ‘친북 웹사이트’들을 사이버테러로 교란하였다. 그들의 사이버테러는 북측 정부, 정당, 단체들이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가며 따라서 북남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전시에 준하여 처리될 것”이라고 밝힌 특별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감행된 것이다.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2013년 4월 15일 제2차 대북 사이버테러를 감행하였다고 주장하였고, 2013년 5월 12일에 제3차 대북 사이버테러를 감행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올해 들어와 북에 대한 사이버테러가 연속적으로 감행되고 있는 것이다.

북이 인터넷에서 운영하는 몇몇 웹사이트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사이버테러범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이버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므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는데, 아래와 같은 정보를 읽어보면 그 정체가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2013년 3월 30일 북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교란하는 사이버테러를 감행하였다고 주장하는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이 온라인에서 <중앙일보> 취재기자와 짤막한 대담을 진행하였다. 또한 <머니투데이> 2013년 4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자기들끼리 내부분열로 ‘어나니머스 코리아’가 해체되었다고 밝혔다. 폭탄테러범과 마찬가지로, 사이버테러범도 자신을 언론에 노출하지 않는 법인데, 이상하게도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자신을 언론에 버젓이 노출하는 어이없는 사태를 벌여놓았다. 그는 왜 그처럼 이상한 짓을 하였을까? 이에 관해서는 아래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머니투데이> 2013년 4월 23일 보도기사에 나온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외환은행 내부전산망에 침투하지도 못하였으면서 거기에 침투하여 1,400명 이상의 고객 관련 정보를 공개하였다고 허풍을 쳤는데, 외환은행은 자기들의 내부전산망이 사이버테러를 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그보다 20일 앞서 2013년 4월 3일에도 하나은행 내부전산망에 침투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그것도 거짓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2013년 4월 15일 제2차 대북 사이버테러공격을 감행하였다고 주장하였고, 2013년 5월 12일에 제3차 대북 사이버테러공격을 감행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4월 15일과 5월 12일 북측의 해당 웹사이트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위에 열거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 ‘어나니머스 코리아’ 소속 사이버테러범은 북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들이나 남측 몇몇 은행들의 내부전산망에 침투하지 못했으면서 침투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처럼 북측 웹사이트들과 남측 은행들에 대한 사이버테러를 감행하고 거짓말을 퍼뜨린 범인은 트위터에서 @Anonsj를 사용하는 동일인이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계속하며 자기의 사이버테러능력을 과시하려는 사이버테러범의 범죄행동에서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과대망상증이다. 과대망상증이란 자신이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착각하거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증상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의 과대망상증에 대북적대감이 더해져 불치의 합병증으로 악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앙일보> 2013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북한의 모든 내부 전산시스템을 점령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떠들어대면서 북을 “인터넷 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 사이버테러범이 걸린 과대망상증과 대북적대감은, 자기가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하여 북의 인트라넷을 인터넷에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북의 정보통신망을 완전히 개방하여 북의 인트라넷 사용자들이 2013년 6월 25일부터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떠들어댄 것에서 극도에 이르렀다. 

그 사이버테러범이 주목한 것은 북의 ‘특수통로’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은 미국이 지배하는 인터넷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과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북에는 인터넷과 통하는 비좁은 ‘특수통로’가 있다. 평양을 방문한 해외동포나 외국인이 사용료를 북측 당국에 지불하면 북측 당국은 그 ‘특수통로’를 사용자에게 열어주고, 사용자는 그 ‘특수통로’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9년 7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둥 사이의 국제통신망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며, 중국 통신회사 ‘차이나텔레콤’으로부터 인터넷 회선을 할당받았다고 한다.

과대망상증과 대북적대감에 빠진 사이버테러범은 북의 ‘특수통로’에 침투하여 북의 인트라넷을 ‘자유화’하겠다고 떠들어댔지만, 혹시 그가 북의 ‘특수통로’에 침투한다고 해도 북이 ‘특수통로’와 인트라넷을 연결해놓지 않았으므로 그가 인트라넷에 침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남측 몇몇 은행들의 내부전산망에도 침투하지 못해 쩔쩔매는 저급한 해킹실력밖에 갖지 못한 사이버테러범이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하여 북의 인트라넷을 인터넷에 직접 연결하겠다고 했으니, 과대망상에 빠진 자가 중얼거린 헛소리로 들린다.

사이버전 강국으로 등장한 북

널리 알려진 대로, 요즈음 세계 각지에서 사이버공방전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끼리 치열한 사이버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2013년 2월 28일 중국 군부 발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외국의 사이버테러범들이 중국의 군사부문 컴퓨터-정보통신 연결망 두 곳에 월평균 144,000회의 사이버공격을 감행하였는데, 그 공격 가운데 62.9%는 미국으로부터 가해진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사이버전 능력이 강한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북의 사이버전 능력은 어떠한가? 2013년 5월 2일 국정원이 작성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오랜 기간 동안 사이버전 능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북의 사이버공격기술은 “고급화되었고”, 북의 사이버공격역량은 “매우 위협적”이라고 한다. 또한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2년 3월 28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해커팀이 북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2012년 10월 22일 워싱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진행한 연설에서는 북이 “상당한 수준의 사이버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정원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북의 사이버공격력이 막강하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그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북의 사이버방어력도 막강하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은 인터넷과 완전히 분리된 인트라넷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므로, 북의 인트라넷은 적국의 사이버공격을 막아주는 금성철벽이다.

미국에 대해 최후 결전을 선포하고 결전돌입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북에게 사이버전은 최후 결전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이므로, 북이 어찌 자기의 사이버전 능력을 비상히 강화해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북은 자기의 사이버전 능력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의 사이버전 능력에 관해 세상에 알려진 정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북의 사이버전 능력은 북이 최후 결전을 벌이는 날 전면적으로 공개될 것이다. 지금까지 몇몇 공개된 자료를 통해 알려진 북의 사이버전 능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북이 500명에서 1,000명에 이르는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사이버전 특수부대를 창설한 때는 1996년이었고, 중국이 ‘넷포스(Netforce)’라고 부르는 사이버전 특수부대를 창설할 때는 2000년이었다. 이것은 사이버전 능력에서 북은 중국보다 앞선 사이버전 강국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2012년 6월 국군 기무사령부가 개최한 ‘제10회 국방정보보호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동훈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사이버전에 대비했고 러시아와 미국에 이은 세계 3위권의 사이버전 강국”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남측 정부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7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해킹능력은 미국 CIA(중앙정보국)에 버금갈 것이란 평가도 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종합하면, 북은 명실 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사이버전 강국인 것이다.

북의 최후 결전은 사이버전이다

<연합뉴스> 2013년 4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산하에 전자정찰국 사이버전지도국(121국)이 있고,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에 장교급 사이버전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지휘자동화국이 있다고 한다. 남측의 공안당국과 군당국에서 흘려준 정보를 인용한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에서는 “유능한 해커들이 연간 1,000여 명씩 지속적으로 배출돼 당, 군, 내각에 분산 배치되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전 전문인력을 해마다 1,000여 명씩 지속적으로 배출하였다면, 북의 사이버전 전문인력은 모두 몇 명이 될까? 2011년 5월 17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는 북의 사이버전 전문인력이 30,000명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이 사이버전 전문인력 30,000명을 보유하였다면, 그에 맞선 남의 사이버전 전문인력은 몇 명이나 될까? <경향신문> 2013년 3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민간부문의 사이버보안 전문인력은 2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사이버전 전문인력은 500명 정도라고 한다. 북의 사이버전 전문인력 30,000명과 남의 사이버전 전문인력 700명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나라가 사이버전을 수행하려면 전문인력이 적어도 3,000명은 되어야 한다는데, 남측 사이버전 전문인력은 군사부문과 민간부문을 다 합쳐도 700명밖에 되지 않으니 사이버전에서 참패할 가능성은 100%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보보호진흥원 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7월 8일 보도에 따르면, 2009년 5월 현재 남측에는 악성코드에 감염된 컴퓨터가 모두 140,000여 대나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하루 평균 4,600대 이상이 사이버공격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측은 전면적인 사이버전이 아니라 국지적인 사이버공격을 받았는데도 큰 피해를 입고 비틀거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이를테면, 2009년 7월 4일 청와대, 국방부, 외교통상부, 외환은행, 농협을 비롯한 12개 웹사이트가 공격을 받아 컴퓨터 12,000대가 감염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또한 2013년 3월 20일 남측의 주요 방송사와 금융기관 전산망들에서 강력한 전산망 장애가 일어나 컴퓨터 32,000여 대가 피해를 입었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박근혜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가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2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사이버위기 주의경보’를 발령하였다. 원님 행차 뒤에 나팔을 부는 격이다.

<헤럴드 경제> 2013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사이버전문가는 “이번 같은 방법으로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교통이나 전력, 가스 등의 공공시설을 공격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신동아> 2013년 5월호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임종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장은 북이 대남 사이버전을 개시하는 경우 남측의 주요시설들이 5분 안에 초토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북한이 스턱스넷 샘플을 구해 변종한 뒤 이를 USB에 담아 국내 주요시설의 컴퓨터를 감염시키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지하철 신호시스템을 통제해 땅 속에서 지하철을 충돌시키고 민간항공기와 군용기를 추락시킬 수도 있”으며, 한국전력과 원자력발전소가 사이버공격을 받으면 남측 전역이 정전되고, 상하수도 체계가 마비되어 식수공급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북의 사이버공격에 남측 정부의 전산망은 속수무책이며, 남측의 군사시설, 전력, 상하수도, 철도, 지하철, 공항, 방송통신 같은 기반시설이 사이버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살펴보면, 사이버전이 벌어질 경우 북의 주적은 사이버전에 매우 취약한 남측이 아니라 사이버전 능력에서 ‘세계 최강’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사이버전 능력을 ‘세계 최강’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추정이라는 사실이다. 사이버전 강국은 국가적 차원의 사이버공격력만 강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국가적 차원의 사이버방어력도 강해야 하는데, 미국의 사이버방어력은 너무 열세다. 2010년 7월 29일 미국 중앙정보국장 출신 마이클 헤이든(Michael V. Hayden)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퓨터 보안문제 토론회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은 사이버공격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고 크게 우려하였다. 실제로 2009년 7월 4일 백악관, 국무부, 재무부, 연방거래위원회, 교통부, 국토안보부, 뉴욕증권거래소, 워싱턴포스트 등 14개 사이트가 정체불명의 사이버테러범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컴퓨터 8,000대가 감염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사이버방어력이 그처럼 형편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은 자기의 주적인 미국을 꺾을 수 있는 강력한 사이버전 능력을 꾸준히 강화, 발전시켜왔다. 남측 정보당국의 말을 인용한 2011년 5월 17일 <팍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은 미국 태평양사령부를 마비시키고 미국 본토의 군사전산망에 심대한 손상을 일으킬 정도의 사이버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군사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대전의 특징은 사이버전과 집중화력전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이버공격으로 적국을 마비상태에 빠뜨리고, 집중화력으로 적국을 신속히 패망시키는 것이 현대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은 집중화력전만이 아니라 사이버전에서도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11월 4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해킹문제토론회에 참석한 외국인 전문가에 따르면, 기존 사이버공격은 분산서비스를 마비시키는 ‘디도스(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라고 불리는 악성코드나 제어체계를 마비시키는 ‘스턱스넷(Stuxnet)’이라고 불리는 악성코드를 몇 달 동안 제작하여 그것을 공격대상 내부에서 오가는 전자우편(email)에 침투시키면, 악성코드가 감염된 전자우편을 통해 악성코드가 공격대상의 내부전산망에 유포되어 전산망 전체를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그보다 진일보한 사이버공격은 해킹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공격대상 내부에서 사용되는 일반 컴퓨터를 통해 공격대상 내부전산망에 직접 침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최후 결전에서 전개할 사이버전은 위에서 언급한 진일보한 사이버공격으로 진행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고도로 훈련된 북의 30,000명 사이버 전문인력이 최후 결전의 시각에 폭발시킬 총공격력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발휘하게 될 것인지 세상은 아직 모르고 있다. 북은 집중화력전을 행동에 옮기지 않고 사이버전만 수행해도 최후 결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2013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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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2

피가 마르는 미국 군부의 고달픈 시간


[한호석의 개벽예감](62)
자주민보 2013년 05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최후 결전 앞둔 북에서 부르는 전시가요들  

2013년 5월 1일은 123번째로 맞은 세계노동절이었다. 북에서는 해마다 5월 1일을 국가적 명절로 성대하게 쇤다. 노동자들이 마련한 각양각색 축하행사들이 북측 각지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평양에 있는 인민극장에서는 은하수관현악단이 펼친 5.1절 기념 은하수음악회가 열렸다.

서방 음악계의 기존 분류법에 따르면, 은하수관현악단은 관현악을 대중화하여 연주하는 팝스 오케스트라(pops orchestra)라고 할 수 있지만, 실은 그런 분류법이 통하지 않는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서양 관현악이 아니라 북의 ‘인민 관현악’을 연주하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독보적인 관현악단이다. 은하수관현악단이 자기의 전용극장인 은하수극장을 운영하는 것만 봐도, 북에서 그 관현악단의 지위와 역할이 얼마나 중한지 직감할 수 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북에서 창작된 수령칭송가요, 혁명가요, 통일가요, 군가, 전시가요, 생활가요, 조선민요 등을 ‘인민 관현악’의 악곡형식으로 연주한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서방 음악계가 알고 있는 기존 음악장르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고유한 조선식 음악장르에 속한 곡들만 연주한다. 전문 성악가들만이 아니라 성악훈련을 받지 않은 근로자나 평양시민들도 출연하여 노래를 부를 정도로 공연형식도 대중친화적이다.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 출연하는 전속 성악가들은 여성 11명과 남성 7명인데 그들은 모두 높은 수준의 성악기량을 자랑한다. 그들 가운데서도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여성성악가들인 황은미, 서은향, 장영옥이 북측 인민들에게서 최상의 인기를 받고 있다. 북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유럽 음악애호가들도 그들의 노래에 매혹되어 애호가 웹사이트를 개설한 것을 보면, 황은미, 서은향, 장영옥은 국제공연무대에 나가서도 높은 평가와 절찬을 받을 뛰어난 성악가들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3년 5월 5일 은하수극장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은하수관현악단에 주는 감사를 전달하는 모임이 진행되었는데, 그 모임에서 은하수관현악단 성원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깊은 밤, 이른 새벽에도 5.1절 기념 음악회의 곡목선정으로부터 작품편곡과 형상, 가수선정과 그 형상에 이르기까지 예술창조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고 하였다. 또한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5.1절 기념 은하수음악회를 마친 직후 공연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전승 60돐(남측에서는 7.27 정전기념일)에 은하수관현악단과 모란봉악단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새로운 과업을 주었고, 5월 8일에는 은하수관현악단이 ‘전승 60돐 경축공연’을 준비 중인 장소에 가서 연주곡목들을 몸소 검토하고 “경축공연의 방향과 사상적 대, 종목과 편성에 이르기까지 공연준비에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고 한다. 위의 보도내용을 읽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악정치를 계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것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에서 국가적 명절마다 열리는 음악회들이 그러하듯이, 5.1절 기념 은하수음악회도 한 차례 공연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연속공연무대를 펼쳤다. 이러한 연장공연은 더 많은 근로자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하는 배려다. 그런데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5.1절 기념 은하수음악회 공연 셋째날인 5월 3일에 사전예고도 없이 인민극장을 찾아 각계층 근로자들과 “꼭 같은 좌석에서” 음악회를 관람하였다. 2012년에 인민극장이 완공되었을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특별석을 없애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에 인민극장에는 ‘인민좌석’밖에 없고, 따라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좌석’에서 각계층 근로자들에게 둘러싸여 공연을 함께 관람한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날 5.1절 기념 은하수음악회에서는 “열광의 박수를 연방 터쳐올리는 관람자들의 거듭되는 재청”을 받아 두 곡이 다시 연주되었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퇴장하지 않고 관람자들의 열렬한 재청을 받아 조금 전에 연주된 그 두 곡을 다시 청하였다고 한다. <유투브>에 게시된 북측 동영상을 보면, 음악회가 끝나 출연자들과 관람자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장내를 뒤흔드는 가운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퇴장하지 않고 은하수관현악단 책임자를 불러 재청곡 연주를 다시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하여 관람자들의 재청에 따라 연주된 곡이 북측 최고영도자의 삼청으로 또 다시 연주되는, 북측 음악공연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펼쳐졌다. 그 날 공연에서 재청과 삼청을 받아 연거푸 연주된 두 곡은 ‘내 고향의 정든 집’과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라는 곡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공연이 끝난 뒤에도 퇴장하지 않고 이미 공연 중에 재청곡으로 연주된 곡을 다시 청하였을까?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날 자신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각계층 근로자들이 열렬히 재청한 그 두 곡이 북측 인민들의 현재 정신과 정서를 선명하게 형상한 노래라고 보았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뒤에 다시 청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음악회가 안겨준 여운으로 하여 격정을 금치 못하는 관람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 두 곡을 다시 청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유투브>에 게시된 북측 동영상을 보면, 황은미가 열창한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라는 노래는 5월 1일에 진행된 첫 공연에서도 관람자들의 열렬한 재청을 받아 다시 연주된 바 있다.

음악적으로 평가하면, ‘내 고향의 정든 집’을 연주할 때는 은하수관현악단 지휘자 윤범주의 열정적인 지휘와 악장 문경진의 뛰어난 바이올린 독주선율이 돋보였고,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를 연주할 때는 인민배우 황은미의 독창이 관람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그 날의 연주는 그런 음악적 평가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 고향의 정든 집’이라는 노래는 1952년 전화의 불길 속에서 창작되어 북에서 널리 불리는 전시가요이며,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라는 노래는 1990년대 총포성 없는 반미대결전 시기에 창작되어 북에서 널리 불리는 전시가요다. 그 창작시기가 말해주는 것은, ‘내 고향의 정든 집’이 1950년대 북의 제1차 반미결전을,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가 1990년대 북의 제2차 반미결전을 각각 음악적으로 형상한 노래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라는 노래는 2013년 4월 2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창건 81돐 경축공연에서 모란봉악단도 경음악으로 편곡하여 연주한 바 있다.

남측 언론매체는 황은미가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를 노래하는 “중간 배경화면에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는 현실적인 상상’이란 붉은 색의 자극적인 문구가 눈에 띤다”고 하면서, 북이 “서울 불바다 위협을 음악회 노래에까지 그대로 담은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 문구는 북이 새로 만든 게 아니라 2010년 12월 2일 <한겨레 21> 제838호 표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5월 9일 ‘총대의 사명을 깊이 새겨주는 명곡’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인민은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하면서 “1990년대에 창작된 가요(작사 정은옥, 작곡 리종오)에는 평화가 아무리 귀중하여도 공화국을 건드리는 원쑤들을 무자비한 총대로 짓부셔버릴 군대와 인민의 결사의 의지가 예술적으로 잘 형상되여 있다”고 평하였다.

북측 인민들이 왜 그 두 노래를 애창하는지 알려면, 가사를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고향의 정든 집’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아 그러나 정든 고향은 불타버리고
젊은이는 총을 메고 결전에 나섰네
둘도 없는 청춘을 조국에 바쳐 싸우리
기다리라 나의 고향 나서 자란 산천이여
원쑤 치고 돌아가면 너를 안아 일으키리
온 세상이 부럽도록 락원을 세우리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침략의 무리 덤벼든다면 우린 용감히 쳐부수리라 ...
평화를 진정 사랑하기에 우린 목숨도 바쳐가리라
평화가 아무리 귀중해도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으리
우리의 총창 우에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평화가 있다”

위의 가사를 읽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 두 곡은 최후 결전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는 인민군과 북측 인민들의 격동적인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하여 비장미가 감도는 전시가요들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연 직후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을 높이 평가하면서, “<내 고향의 정든 집>,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와 같은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가 있기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적들과의 최후 대결전에서 승리만을 떨쳐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각계층 근로자들이 비장미 감도는 전시가요를 열렬히 재청한 것은, 인민군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각계층 근로자들도 최후 결전에 나서겠다는 격동적인 심정을 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로 그런 격동적인 심정을 헤아려본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퇴장하지 않고 전시가요 연주를 다시 청하였던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최후 결전을 앞둔 비장한 분위기가 북에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여론을 조작하고 있을까?

북에서는 최후 결전을 앞둔 비장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북측 외부에서는 엉뚱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엉뚱한 소문은 “한미일 정부관계자”들이 전해주었다는 ‘정보’를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3년 4월 29일 보도를 통해 흘러나왔는데, 북이 “미사일 발사 준비작업을 일단 중단했고” 미국도 대북감시태세를 “한 단계 완화했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준비작업을 몇 주에 걸쳐 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미사일 발사태세라고 해야 옳다.

인민군 미사일부대가 미사일 발사 태세를 중지했는지 아니면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수집능력은 미국에게만 있고, 미국이 대북감시태세를 한 단계 완화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당사자도 미국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아사히신붕> 보도기사의 ‘취재원’은 “한미일 정부관계자”가 아니라 미국 정부관계자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게 보는 또 다른 근거는 미국의 뉴스 전문 텔레비전방송 <CNN>이 2013년 5월 6일 보도에서 미국 관리가 흘려준 ‘정보’를 인용하여 “북이 북측 동부지역에 있는 발사장에서 두 기의 이동식 탄도미사일을 철수하여 보관시설에 들여보냈다”고 보도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CNN>은 이튿날 보도에서 “이런 현상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알려주는 가장 최근의 암시(the latest hint)”라고 ‘해석’하였다.

<아사히신붕>과 <CNN>이 연거푸 그런 보도를 내보내자, 외신 베끼기를 좋아하는 남측 언론매체들도 일제히 같은 내용을 인용보도하거나 더 확대해석하여 보도하였다. 그런 보도내용만 읽게 된 남측 독자들은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 줄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외신들이 북의 미사일 발사태세가 중지되고 그에 따라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오보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외신들은 미국 정부관리의 상투적인 여론조작에 놀아난 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북의 최후 결전 준비태세 돌입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외신들보다 남측 언론매체들이 비할 바 없이 더 클 것이다. 특히 개성공업지구가 폐쇄되면서 일어난 파장은, 외국자본의 남측에 대한 투자심리위축을 불러옴으로써 대외의존적인 남측 경제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상황이 오죽 급박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해달라는 요청까지 해야 하였을까.

그런 상황에서 남측 언론매체들은 외신보다 한 술 더 떠서 미국이 북측 핵무기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식의 황당한 여론조작을 자행하였다. <동아일보> 2013년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부가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이 북한의 핵시설을 장악하고 핵물질을 반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유엔평화유지군(PKF)의 개입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인데, <동아일보>는 미국 군부가 북측 핵시설을 장악할 전담조직을 설립했다느니, 또는 미국이 북측의 비밀핵시설 위치를 상당수 파악하여 제거대상목록을 이미 작성했다느니 하는 황당한 여론조작을 지난 4월 3일에도 자행한 바 있다. <동아일보>의 그런 ‘보도’야말로 아동만화도 되지 못하는 엉터리 여론조작이므로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지만, 미국이 조작해낸 ‘한반도 긴장완화설’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어느 미국 정부관리가 미국 언론과 일본 언론을 상대로 여론을 조작하였다는 것, 바로 이것이 최근 내외언론에 떠도는 ‘한반도 긴장완화설’의 실체다. 미국 정부관리는 왜 ‘한반도 긴장완화설’을 조작하여 내외언론에 퍼뜨렸을까?

한미연합군이 지난 두 달 동안 계속한 북침전쟁연습인 ‘독수리 연습’이 2013년 4월 30일에 끝났는데, 5월 6일부터는 한미연합 대잠훈련이 서해에서 비공개로 실시되었다. 5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대잠훈련에는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한 척, 이지스 구축함 두 척, 대잠초계기 등이 참가하고, 한국 해군의 잠수함, 수상함, 대잠초계기, 대잠헬기 등이 참가한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그 대잠훈련이 끝나는 즉시 핵추진 초대형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를 주축으로 하는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근해에 출동시켜 항모기동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위에 열거한 미국의 전쟁연습일정은 최후 결전을 결심한 북이 언제 그 결심을 갑자기 실행에 옮길지 알 수 없어 극도로 불안해진 미국이 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곤경에 빠져있음을 말해준다. 전쟁연습을 즐기던 미국이 전쟁연습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으니 미국이 좋아하지 않겠느냐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미국의 속사정은 정반대다. 아래의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군부에게 피가 마르는 가장 고달픈 시간이 흐르고 있다

2013년 4월 16일 미국의 온라인 군사전문 웹사이트 <AOL 디펜스(Defense)>는 같은 날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해병대사령관 제임스 에이모스(James Amos)의 발언과 미국 해군 작전참모장 조너던 그리너트(Jonathan Greenert)의 발언을 보도하였다.

해병대사령관 에이모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의 5,000억 달러 군비삭감에 따라 해병대의 기존 27개 보병대대가 23개 보병대대로 감축된다는 것이다.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해병대 보병대대 19개를 전선에 출동시켜야 하는데, 4개 보병대대만 남겨두고 모두 전선에 출동시킬 수는 없으므로 미국 해병대는 군비삭감 이후 전면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크게 우려하였다. 

해군 작전참모장 그리너트가 청문회 직후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바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페르시아만에 항공모함을 1-2척, 서태평양에 항공모함 한 척을 상시적으로 전진배치해두었는데, 군비삭감 이후에는 전진배치 항공모함이 한 척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해군 항공모함의 작전능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전진배치 항공모함 한 척을 페르시아만에 고정배치할 수도 없고 서태평양에 고정배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페르시아만과 서태평양을 뻔질나게 오가는 식으로 왕복배치할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군부를 괴롭히는 진짜 곤경은 그게 아니다.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측 정부 소식통이 흘려준 ‘정보’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5월 11일 부산항에 들어가 사흘을 머문 뒤에 남해와 동해에서 실시되는 항모기동훈련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는 1975년 5월에 취역한 100,000t급 초대형 항공모함인데, 그 이후에 건조한 100,000급 이상의 초대형 항공모함들은 모두 니미츠급(Nimitz-class) 항공모함이라 부른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계열의 제1호인 니미츠호의 모항(home port)은 미국 본토 서북단에 있는 에버릿 해군기지(Everett Naval Station)다. 그러므로 이번에 니미츠호는 에버릿 해군기지에서 출항하여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 근해까지 항해하는 것이다.

미국 해군은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를 전진배치해두었는데, 후방에 있는 니미츠호를 굳이 출동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지금 조지 워싱턴호가 뜻하지 않게 발이 묶였기 때문인데, 조지 워싱턴호가 니미츠호로 대체된 사연은 아래와 같다.

미국 해군이 운용하는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은 주기적으로 ‘핵연료 교체 및 종합정비(Refueling and Complex Overhaul, RCOH)’를 받아야 한다. <AOL 디펜스> 2013년 3월 20일 보도기사,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핵추진 항공모함에 대한 종합정비는 거의 3년이 걸리고,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종합정비는 1-2년이 걸린다. 특히 핵추진 항공모함 한 척에 대한 핵연료 교체 및 종합정비를 실시하면, 총 2,000만 시간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시간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미국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두 개를 건설하기 위해 투입한 작업시간과 맞먹는다.

둘째,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22년마다 한 차례씩 종합정비를 받아야 하고, 핵추진 잠수함은 5-20년마다 한 차례씩 종합정비를 받아야 한다. 이런 종합정비일정에 따르면, 1989년 11월에 취역한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USS Abraham Lincoln)가 올해 종합정비를 받을 차례다.

셋째,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의 종합정비를 맡아보는 정비소는 헌팅턴 잉걸스 산업(Huntington Ingalls Industries)이라는 회사가 버지니아주에서 운영하는 뉴포트 뉴스 건조소(Newport News Shipyard)밖에 없는데 그 종합정비소가 군비삭감조치의 영향을 받아 완전가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넷째,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뉴포트 뉴스 건조소에 종합정비를 받으러 갔더니, 정비소 시설이 완전가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비일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뒤를 이어 종합정비를 받아야 할 핵추진 항공모함은 1992년 7월에 취역한 조지 워싱턴호인데,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종합정비가 계속 연기되는 바람에 조지 워싱턴호의 종합정비가 몇 년 뒤에 시작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시기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침공할 때 앞장에 섰던 미국 항공모함들은 지금 그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으며, 미국 군부는 전면전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군사력이 저하되는 위기에 휘말렸다.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북이 위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할 리 없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요즈음 인민군 부대 연속시찰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인민경제건설부문에 대한 현지지도를 계속하는 것은, 인민군 부대들에 대한 최고사령관의 최종검열을 완료하였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은 최후 결전 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총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미관계의 군사상황은 너무도 대조적으로 바뀌었다. 인민군은 최후 결전 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총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군비삭감의 덫에 걸린 미국군은 전면전을 수행할 작전능력이 심하게 훼손당하여 속이 타고 피가 마를 지경이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보고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북이 추진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하는 국가전략노선은, “국방비를 늘이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큰 힘을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인민군의 새로운 전술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 자행발사대 몇 대를 동해안 지역에 출동시켜 은닉과 전개를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극도로 불안해진 미국군은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을 한반도에 긴급히 출동시키는 ‘출혈작전’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군비삭감의 덫에 걸린 미국 군부에게 있어서 항모강습단 출동과 핵추진 잠수함 출동은 이제 더 이상 군사대국의 무력시위가 아니라 피가 마르는 ‘출혈작전’이다.

북미관계의 군사상황이 너무 대조적이라고 보는 까닭은, 북은 병진노선으로 국방비를 절감하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기울이는데, 그에 맞선 미국은 피가 마르는 ‘출혈작전’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작전’에 매달려야 하는 미국 군부에게 피가 마르는 가장 고달픈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2013년 2월 23일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가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당신들의 시간은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가장 고달픈 시간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했던 그 경고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2013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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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20년간의 비핵화회담이 결렬된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변혁과 진보 (11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지금 한반도는 전략적 전환기에 들어섰다. 국면을 뒤바꿀 전술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전략적 전환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전환이란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비핵화회담이 완전히 결렬된 것으로 하여 일어나게 된 근본적 변화다.
 
100년 만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전략적 전환기에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정세흐름을 예민한 감각으로 주시하면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위한 근로대중의 조직역량을 더 공고하게 축적하고 지지기반을 더 넓게 확장해야 할 것이다. 전략적 전환기에 자기의 역사적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붓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의 모습, 그런 미더운 모습을 기다려 이 땅의 수난 많은 100년 역사가 이제껏 흘러왔는지 모른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은 열정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투쟁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그 투쟁과정에서 승리하고 전진하려면, 예리한 통찰력으로 오판 가능성을 밀어내고 과학적인 심층분석으로 착오를 뛰어넘어야 한다. 진보정치의 정적들은 정보분석과 정보판단을 무엇보다 중시하는데, 그들과 맞서 싸우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한다면,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은 제자리에서 맴돌게 될 것이다. 특히 전쟁재발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오늘,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한 분석과 판단에서 치밀하고 정확한 인식이 요구되는데, 이 문제를 해설하면 아래와 같다.

부쉬의 술책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완전히 폐기된 종전선언 문제
지금 일부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미국에게 종전선언을 촉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견해의 배경에 10.4 선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채택된 10.4 선언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서 주목하는 것은,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노무현 대통령이 요구하여 10.4 선언에 들어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종전선언 문제를 10.4 선언에 집어넣은 것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노무현 대통령의 종전선언 문제를 받아들인 것일까? 그 사연은 아래와 같다.
 
2006년 11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부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종전선언 문제를 처음 언급하였다. 그 회담에서 부쉬가 느닷없이 종전선언 문제를 꺼낸 배경과 의도에 관해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은 2006년 7월 4일 강력한 초음속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불시에 동해로 발사하여 미국에게 충격을 주었고, 10월 9일에는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여 미국에게 연속타격을 가했다. 북의 연속타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부쉬는 자기가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술책으로 종전선언 문제를 불쑥 꺼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부쉬가 그 문제를 꺼내놓은 배경이다.
 
둘째, 부쉬는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할 때 북의 핵포기를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았다. 북이 핵을 포기해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쉬는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려는 얕은 술책으로 종전선언 문제를 꺼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부쉬가 그 문제를 꺼내놓은 의도다.
 
셋째, 위와 같은 미국의 속셈을 파악하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중에 부쉬와 만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부쉬에게 종전선언에 관해 분명히 언급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부쉬는 그 요청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서둘러 회담을 끝내버렸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종전선언이라는 신조어 뒤에 부쉬의 간계가 감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부쉬의 간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원래 종전선언이라는 말은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한다는 뜻이지만, 한반도에서는 불과 불이 오가는 교전상태가 지속되어오는 게 아니라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이 고조된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한반도의 현 정세에서 쓰이는 종전선언이라는 말은 정전상태가 끝났음을 선언한다는 뜻이다.
 
정전상태가 끝났다고 선언하려면, 당연히 전쟁위험의 완전한 해소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전쟁위험은 그대로 남겨두고 정전상태가 끝났다는 허울 좋은 종전선언만 하려는 것이 부쉬의 간계였다. 다시 말해서, 부쉬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지 않고서도 종전선언 정도는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거부하려는 술책으로 부쉬가 조작해낸 간계가 종전선언이라는 신종개념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거의 광적으로 거부하고 필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전쟁재발위험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그처럼 광적으로 거부하고 전쟁재발위험을 계속 유지하는 까닭은,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의 아시아 지배력이 결정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이 땅에서 자기 군대를 철군해야 하고, 미국군대가 한반도를 떠나면 ‘한미동맹’에 깨지게 되고, ‘한미동맹’이 깨지면 미국의 대남지배체제가 무너지게 되고, 미국의 대남지배체제가 무너지면 한반도 평화통일이 실현되어 강력한 통일국가가 출현하게 되고, 미국은 동아시아대륙에서 일본열도로 밀려나게 되고, 그렇게 밀려난 일본열도는 한반도 통일국가의 위세에 눌리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은 가끔 꺼내들면서도 평화실현의 유일한 실천강령인 평화협정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부쉬의 간계를 간파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종전선언 문제를 받아들였을까? 10.4 선언의 구절을 빌려 서술하면,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3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기만 하면 평화협정을 어떻게 해서든지 체결하려는 것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과 의지였기 때문이다.
 
10.4 선언에 나오는 3자 정상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요구하였고, 4자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요구하였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배제한 3자 구도를 택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시킨 4자 구도를 택하였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한 4자 구도는 미국의 요구와 상통한 것이었다. 미국의 목적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북의 핵포기였고,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려는 의도에서 종전선언 채택을 형식적인 유인책으로 여겼으므로, 미국은 당연히 중국을 포함한 4자 구도를 택하였다. 중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북의 핵포기를 찬성하기 때문에, 만일 미국의 요구대로 4자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미국은 북의 핵포기 문제와 관련하여 3 대 1의 구도로 몰아갈 수 있었다. 이런 미국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은 10.4 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4자 정상회담을 고집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그래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난다”는 모호한 표현이 10.4 선언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전략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부쉬가 제안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화답하였던 종전선언 문제는 9.19 공동성명과 함께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런데도 이 땅의 일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부쉬의 술책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완전히 폐기된 종전선언 문제를 다시 꺼내놓는 것은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무지와 오판 으로 보인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추구하면서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간과하고 미국에 대한 경각심이 무디어지면 미국의 술책과 간계에 휘말릴 수 있고, 반제전선의 한 구석이 소리 없이 무너질 위험이 생기게 된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말이 되지 않는 종전선언 문제를 다시 꺼내놓을 게 아니라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요구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미국의 간계이고, 평화협정은 이 민족의 정당하고 절박한 요구다.

 
평화회담 개최가 아니라 즉각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해야 한다
지금 일부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미국에게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를 촉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평화회담을 해야 한다는 말은 지당한 논리처럼 들리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현실 속에서 그 문제를 단순하게 파악하면 낭패다. 세 가지 요점을 논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회담을 시작하려면, 평화회담 구도를 3자로 할 것인지 4자로 할 것인지 하는 심각한 문제를 놓고 북과 미국이 충돌할 것이다. 미국은 4자 구도를 요구할 것이고, 북은 3자 구도를 요구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쌍방이 어떤 타협점을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바로 이러한 요인이 숨어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회담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회담을 시작하려면, 회담 구도만이 아니라 회담 개최지도 합의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 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지역에서 평화회담을 열자고 합의하였지만, 미국은 10.4 선언의 그 합의를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중국을 한반도 평화회담에 참가시키려는 속셈을 품은 미국은 당연히 베이징에서 4자 평화회담을 열자고 고집할 것이다. 미국의 그런 속셈을 간파한 북이 미국의 요구대로 베이징 4자 평화회담 방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바로 이러한 요인이 숨어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회담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셋째, 평화회담이란 전시상황에서 제기되는 정치적 요구다. 예컨대,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과 북베트남은 파리 평화회담에서 밀고 당기는 치열한 협상을 진행한 끝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군은 평화회담 합의에 따라 완전히 철군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일반적인 전시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다. 불과 불이 오가는 전시상황에서는 평화회담을 개최하여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지만, 한반도의 현 정세는 그런 전시상황이 아니다. 한반도의 현 정세는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전쟁재발위험에 매달리고 있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다.
 
미국은 자기에게 패색이 짙어진 교전상태에서는 평화회담을 하지 않고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정전상태에서는 무한정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므로 교전상태에서 진행하는 평화회담은 몇 년 안에 끝날 수 있지만, 정전상태에서 진행하는 평화회담은 무한정으로 시간을 끌 수 있다.
 
북과 미국이 진행해온 비핵화회담이 2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도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채 완전히 결렬되었다. 북은 비핵화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미국에게 때로 요구도 하고 때로 압박도 하고 때로 위협도 하였지만, 미국은 그 모든 국면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20년 동안 비핵화회담을 공전시켰다. 미국의 집요하고 교활한 술책으로 결국 비핵화회담 자체가 완전히 결렬되고 말았다.
 
그처럼 20년 동안 시간을 질질 끌면서 비핵화회담을 결렬시킨 미국에게 또 다시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시 20년 동안 시간을 질질 끌다가 2033년에 가서 결국 평화회담을 결렬시킬 기회를 미국에게 안겨주자는 소리인가?
 
그러므로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미국에게 평화회담을 요구할 게 아니라 즉각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야 한다. 즉각적인 평화협정 체결은 미국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미국은 그런 요구를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겠지만, 비핵화회담을 20년 끌어오다가 결국 결렬시킨 미국에게는 그런 최후의 요구밖에 제기할 것이 없다. 미국의 굴복을 전제로 하는 즉각적인 평화협정 체결, 바로 이것이 비핵화회담 결렬 이후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미국에게 제기해야 할 마지막 정치적 요구다. (2013년 5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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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한반도 명운 결정할 고속기동전

[한호석의 개벽예감] (61)
자주민보 2013년 05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용인전투와 쌍령전투에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

전쟁재발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오늘, 한반도 전쟁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수행의 근본원리는 500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기 때문에, 한반도 전쟁사에서 교훈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부산에 처음으로 상륙한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였다. 포장도로와 자동차가 없던 16세기 말에 하루 평균 40km씩 북상한 왜군의 북진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왜군은 어떻게 그처럼 초고속으로 진격할 수 있었을까? 왜군의 지상전력은 기병, 총병, 궁병, 창검병 순으로 배열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전투대오의 맨 앞장에 선 기병이다.

조선군은 왜군의 조총보다 더 강력한 화약무기들인 총통과 화차로 무장하였으면서도, 왜군 기병의 불시기습전술과 고속진격전술에 맞서지 못해 참패를 당하였다. 경기도 용인에서 벌어진 용인전투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용인전투는 조선군 50,000명이 왜군 1,600명과 맞붙은 전투였는데, 어이없게도 조선군이 참패하였다. 50,000명 병력이 1,600명 병력에게 참패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용인전투에서 왜군 기병들은 조선군의 휴식시간이나 아침식사시간을 골라서 급습하는 전형적인 기습전을 펼쳤다. 또한 왜군 기병들은 쇠로 만든 기괴한 탈을 얼굴에 쓰고 나타나 조선군들 속에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런 괴상한 군장을 한 왜군 기병 1,600명이 칼을 휘두르며 불시에 기습해오자 방심하던 조선군 50,000명은 너무 놀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50,000명이 한꺼번에 달아나면서 넘어지고 엎어져 자기들끼리 깔려죽고, 벼랑에 떠밀려 떨어져 죽었다. 

원래 두 다리로 뛰어다니는 보병은 말을 타고 달리는 기병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법이다. 기병에 맞설 상대는 기병뿐이다. 임진왜란 중에 왜군의 기병전술에 그처럼 치욕적인 참패를 당한 조선왕조 봉건지배세력은 전후에 깊이 반성하고 기병을 키워 국방력을 강화해야 했으나 무능에 빠진 그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선군은 임진왜란에서 겪은 치욕적인 참패를 또 다시 겪었다.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한 청국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무력침공 12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였다. 청국군의 남진속도는 임진왜란 시기 왜군의 북진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 까닭은, 청국군 주력부대는 전투병 대부분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기병군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중에 경기도 광주에서 벌어진 쌍령전투에서 조선군 40,000명과 청국 기병군 300명이 맞붙었는데, 어이없게도 조선군이 참패를 당했다. 청국 기병들은 높은 곳에 진을 쳤고, 조선군은 낮은 곳에 진을 쳤다. 방패를 들고 칼을 휘두르는 청국 기병들이 높은 데서 밀려 내려오자 조선군은 조총을 쏘며 맞섰으나, 조준도 하지 않고 마구 쏘아댄 헛총질이었다.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병들을 보고 겁을 먹은 보병들이 헛총질이나 하였으니, 기병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충격적인 사태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났다. 헛총질을 하다가 화약이 떨어진 조선군은 코앞에 다가온 청국 기병들의 위세에 눌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였는데, 청국 기병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아수라장 혼란 속에서 달아나다가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자기들끼리 밟고 밝히며 무수히 깔려죽었다. 만일 조선군 40,000명이 조총이 아니라 돌팔매로 맞섰더라도, 40,000개의 돌을 던져 청국 기병 300명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던 싸움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참패를 당한 것이다.

용인전투와 쌍령전투의 역사가 말해주는 뼈아픈 교훈은,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기동전이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결정적인 전투방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있었던 때로부터 수 백 년이 지난 오늘 21세기에도 진리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기동전을 펼치는 쪽이 보나마나 이길 것이다.

군사분계선 동서구간 70m마다 전차 한 대씩 배치한 조선인민군

북에서 가장 중시하는 최정예부대가 있다. ‘근위서울류경수 105땅크사단’이다. 부대명칭부터 특별하다. 6.25 전쟁 시기 북에서 말하는 ‘서울해방전투’를 승리로 이끈 당시 105땅크려단을 사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105땅크려단 지휘관의 이름을 붙여 ‘근위서울류경수 105땅크사단’이 되었다. ‘땅크사단’이라 하지만, 실제 규모는 군단급이다.

북에서 105땅크사단을 그처럼 중시하는 까닭은, 105땅크사단이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맨 앞장에서 진격하는 ‘철갑무력’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시나리오로 예상할 때, 특히 기동전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전차→자행포→장갑차→보병차량 순으로 남진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전개할 기동전은 무한궤도 또는 차륜이 달린 기동수단을 대량으로 동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민군의 기동전이 다른 나라 군대들의 기동전보다 한 급 높은 고속기동전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인민군 측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에 급파할 방대한 규모의 증원군이 출발준비도 미처 하지 못하도록, 제주도 서귀포까지 빠른 속도로 남진해야 하므로 그처럼 고속기동전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중에서 비행하는 전투기가 지상에서 진격하는 전차, 자행포, 장갑차, 보병차량보다 비할 바 없이 더 빠르지만, 전투기는 전선을 뚫고 진격하는 적진점령수단이 아니라 적진을 파괴하는 공중타격수단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전투기 공습으로 상대의 전쟁능력을 파괴하는 타격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선을 뚫고 남진하는 점령전으로 전개되는 것이므로, 북은 ‘철갑무력’을 앞세운 고속기동전을 매우 중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현대 기동전에서 중심역할을 하는 전투수단은 강한 화력, 빠른 기동력, 튼튼한 방호력을 모두 갖춘 전차밖에 없다.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인민군의 고속기동전이 전차, 자행포, 장갑차, 보병차량을 그야말로 폭풍처럼 전 전선에 걸쳐 남진시키는 총진격으로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서방측 자료에 따르면, 전차 보유량에서 러시아군, 중국인민해방군, 미국군에 이어 세계 제4위에 오른 인민군은 중전차 6,038대와 경전차 560대를 보유하였다. 그 가운데서 전방부대들에 배치된 전차가 60%에 이른다고 본다면, 중전차 6,038대 가운데 3,600대가 전방에 배치된 것인데, 이것은 군사분계선 동서구간 70m마다 전차 한 대씩 배치한 최고의 밀집도를 나타낸다.

중국, 러시아, 미국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지닌 대국들이므로 그처럼 많은 전차를 보유해야 하지만, 영토도 그들 대국의 영토에 비할 바 없이 좁고, 인구도 비할 바 없이 적은 북이 그처럼 많은 전차를 실전배치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전차사단 1개를 창설하려면 보병사단 2개 이상을 해체하여야 할 만큼, 전차부대 창설과 운영에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전차 1,000대를 거저 받아도 운용하기 힘들다. 그런데 북이 중전차 6,038대와 경전차 560대를 운용하는 전차강국으로 등장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까닭은, 전차를 앞세운 고속기동전에 총력을 기울여 전쟁을 신속히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철갑무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강해야, ‘3일 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군은 전차부대를 보병전의 지원전력으로 배치하였지만, 인민군은 전차부대를 고속기동전의 주력군으로 배치하였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남측의 거의 모든 도로들은 피난을 가려고 쏟아져 나온 수많은 민간차량으로 완전히 막혀버릴 것이고, 교량들도 상당수 파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군 전차는 남측 도로를 질주하려는 생각은 포기해야 하고, 도로가 아닌 비포장 평지 또는 낮은 언덕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강과 하천에 놓인 교량들이 끊어진 경우, 강과 하천을 신속하게 건널 도하기능도 전차에 갖추어야 한다. 북에서 자력으로 만들어낸 성능 좋은 전차들인 ‘천마호’와 ‘폭풍호’는 그런 한반도 작전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전차들이다. 

단위면적당 지상화력 밀집도에서 세계 최강인 인민군 포무력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가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공공연한 군사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조선인민군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포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2011년에 펴낸 자료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1’에 나온 인민군 야전포 보유량과 남측 국방부가 2010년에 펴낸 <국방백서>에 나온 인민군 야전포 보유량을 대조하면서 계산하면, 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 총수량은 25,500문이다.

단위면적당 그처럼 막강한 지상화력을 밀집배치한 군대는 전 세계에서 조선인민군밖에 없다. 단위면적당 지상화력 밀집도를 따져보면, 군사대국이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세계 최강의 지상화력이 북에 있는 것이다.

특히 인민군에게는 야전포들 중에서도 화력과 기동력이 가장 뛰어난 방사포와 자행포가 다른 나라 군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테면, 한국군, 중국인민해방군, 일본자위대가 보유한 다련장로켓포는 모두 합해도 2,700문밖에 되지 않는데, 인민군이 보유한 방사포는 5,100문이다. 또한 한국군, 중국인민해방군, 일본자위대가 보유한 자주포는 모두 합해도 3,652문밖에 되지 않는데, 인민군이 보유한 자행포는 4,400문이다.

2013년 4월 8일 중국 언론 <환구시보> 기사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소장 겸 중국군사과학원 세계군사연구부 부부장은 조선인민군 전방부대들에 야전포 10,000여 문이 배치되었다고 지적하였지만, 좀 더 정확하게 계산하면 인민군 전방부대들에 배치된 각종 야전포는 15,300문이다. 이것은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를 포함한 전체 야전포 25,500문 가운데 60%를 전방에 배치한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인민군이 보유한 전체 야전포와 인민군 전방부대들에 배치된 야전포는 아래와 같이 네 종류로 분류된다.

방사포 5,100문 가운데 60%인 3,060문이 전방에 배치되었고, 자행포 4,400문 가운데 60%인 2,640문이 전방에 배치되었고, 견인포 8,500문 가운데 60%인 5,100문이 전방에 배치되었고, 박격포 7,500문 가운데 60%인 4,500문이 전방에 배치된 것이다. 위의 통계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포병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의 포병전은 고속기동전에 선행하는 선공작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전차 3,600대로 구성된 강력한 ‘철갑무력’을 앞세운 인민군의 고속기동전 시나리오는 간단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전상황에서 전차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도로를 질주하는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한 작전환경을 뚫고 진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장애물’부터 먼저 제거해야 한다.

인민군 전차 3,600대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된 대지공격기(A-10) 30대와 공격헬기(AH-64D) 24대가 인민군에게 첫 번째 ‘장애물’이다. 전차가 지상을 누비는 ‘철갑무력’이라고 해도, 대지공격기나 공격헬기의 대전차미사일 공습을 피할 능력은 없다. 예컨대 이라크와 리비아가 각각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았을 때, 그 두 나라 전차부대는 미국군 전차부대와 맞서 싸운 전차전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대전차미사일 공습을 받아 궤멸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인민군은 주한미국군의 대지공격기와 공격헬기를 불시의 밀집화력전으로 파괴하고 나서 전차 3,600대를 동원한 고속기동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인민군이 주한미국군의 대전차미사일 공습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전방에 배치한 것이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 15,300문으로 구성된 막강한 포무력이다. 위에 언급한 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런 포무력에 더하여, 야전포보다 파괴력이나 살상력이 훨씬 더 큰 금성-1, 금성-2, 금성-3 같은 금성 계열의 지대지 단거리미사일 1,000여 기와 고속무인타격기 100여 대로 구성된 강력한 선제타격체계가 인민군 전방부대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분석 관리가 한 말을 인용한 미국의 온라인 매체 <WMD> 2013년 4월 7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군과 한국군(위치)은 북이 이미 타격좌표로 사전에 입력해놓았기” 때문에, 북이 야전포와 미사일을 일제히 쏘면 “그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밀집화력전과 고속기동전에 관한 시나리오에서 예상되는 두 가지 작전상황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인민군이 펼칠 밀집화력전과 고속기동전에 관한 시나리오에서 두 가지 작전상황을 추가로 예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교전이 벌어지면, 인민군 야전포는 지하갱도에서 튀어나와 초탄을 발사한 즉시 상대의 대응타격을 피하려고 지하갱도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민군이 야전포를 지하갱도 안에서 쏘는 것으로 상상하는 데 그것은 착오다. 만일 야전포를 지하갱도 안에서 쏘면, 엄청난 발사폭음과 화약연기 속에서 포병들이 견디지 못한다. 야전포는 지하갱도 밖에 있는 야외포대로 나가서 발사하는 것이지, 지하갱도 안에서는 쏘지 않는다.

인민군이 보유한 모든 전차, 장갑차, 보병차량, 지원차량은 지하갱도 안에서 출동명령을 대기하고 있다. 인민군 전방부대에 배치된 야전포 15,300문이 지하갱도에서 밖으로 나와 적진을 향해 불을 뿜을 때, 고속기동전에 동원될 인민군 전차 3,600대, 장갑차 3,000대, 보병차량 3,000대, 각종 지원차량들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 전방부대의 대응포격을 피해 지하갱도 안에서 그대로 대기하게 된다. 

그런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에게는 인민군 포격으로부터 자기들의 야전포를 지켜줄 지하갱도가 없다. 이것이 지상화력전에서 나타날 결정적인 차이다. 지하갱도에 대피하지 못하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야전포, 보병차량, 지원차량들은 인민군 전방부대의 야전포 15,300문이 일제히 불을 뿜는 엄청난 밀집화력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 전방부대들에 배치된 전차들은 인민군 야전포의 일제사격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한국군 전차는 모두 2,451대인데, 그 가운데 60%를 전방에 배치하였다고 보면, 한국군 전방부대들에는 전차 1,470대가 배치된 것이고, 주한미국군 전차는 모두 180대다.

그러므로 북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 전방부대의 전차 1,470대와 주한미국군 전차 180대는 인민군 전차 3,600대의 남진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이다. 지상전에서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무기는 전차다. 한미연합군 전차 1,650대가 가로막으면, 인민군 전차 3,600대는 더 이상 남진하지 못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그런 전차전이 벌어지면, 인민군의 고속기동전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군은 한미연합군 전차 1,650대를 제거하기 위해 세 가지 공격작전을 펼 것이다.

첫 번째 공격은 대지공격기(SU-25) 34대, 공격헬기 84대, 폭격기 80대를 동원하여 한미연합군 전차를 대전차미사일과 유도폭탄으로 공습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공격은 남하갱도를 통해 한미연합군 부대 후방에 나타난 인민군 저격병들이 반땅크미사일(대전차미사일)로 한미연합군 전차를 배후에서 타격하는 것이다. 세 번째 공격은 인민군의 대량공습과 반땅크미싸일 공격을 받고서도 용케 살아남은 한미연합군 전차들을 인민군 전차들이 파괴하는 것이다. 전방부대 근무경험이 있다는 탈북자의 발언에 따르면, 인민군 전방부대들이 관리하는 특수포탄창고에 전차에서 사용할 특수탄 보관상자들이 비축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전시상황에서만 상자를 개봉하여 쓸 수 있는 ‘비밀병기’인 비공개 특수탄이 들어있다고 한다. 전차장갑을 뚫을 강력한 열압관통탄인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시각이 왔다고 판단하는 경우,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인민군 전방부대들에게 선제타격 밀집화력전을 즉각 명령할 것이다.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화성-13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기 이전에는, 미국의 보복핵타격을 예상해야 하였기 때문에 한미연합군에게 선제타격을 가하는 밀집화력전을 주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민군이 밀집화력전으로 한미연합군 전방부대를 궤멸시킨다고 해도, 미국의 보복핵타격을 받는다면 전쟁에서 신속하게 완승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은 미국의 핵타격을 억제할,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력을 갖추었으므로,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타격 밀집화력전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만일 미국이 오판하여 북에게 보복핵타격을 가하면, 북도 미국 본토의 주요거점들을 초토화할 섬멸핵타격을 가할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미국은 주한미국군 28,500명이 인민군의 밀집화력전으로 전멸당하는 경우에도 북에게 감히 핵타격을 가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것이다.

전쟁재발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요즈음 인민군이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후 발사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미연합군에 대한 엄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전략적 상황변화를 반영한 발언인 것이다. 그런데도 북의 군사력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이 엄포를 놓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만둘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인민군 전차부대가 진격로를 열어놓으면서 고속으로 남진하게 되면, 그 뒤를 따라 장갑차 3,000대와 보병차량 3,000대에 탑승한 인민군 전투병력이 전 전선에 걸쳐 물밀듯이 진격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3일 안에 제주도 서귀포를 포함한 남측 각지의 주요거점을 거의 무혈점령함으로써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신속히 끝내려는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전쟁을 시나리오로 예상하면, 3일 동안의 지상작전은 밀집화력전→고속기동전→거점점령전 순으로 매우 신속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2013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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