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또 다시 등장한 금성친위부대
2. 원산갈마비행장 상공에 나타난 복엽습격기
3.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4. 긴박했던 2012년 상황에 대한 기억
5. 2012년 상황이 재연되는가?
1. 또 다시 등장한 금성친위부대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1월 17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직속 저격병려단 전투원들의 강하훈련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저격병려단이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들 가운데 하나인 항공륙전려단을 뜻하고, 강하훈련이란 수송기를 타고 가상적진 상공에 침투한 항공륙전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여 습격전을 벌이는 훈련을 뜻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강하훈련은 저격병들이 생소한 지대에 고공침투하여 전투조 단위별로 정확한 점목표에 투하하여 습격전투행동에로 이전할 수 있는 실전능력을 정확히 갖추었는가를 판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경기형식으로 진행되였”는데, “저격병들의 전투행동을 려단장, 정치위원들이 직접 지휘하였다”고 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강하훈련에서는 “조선인민군 제162군부대 전투원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경기형식으로 벌어진 강하훈련에서 제162군부대 전투원들이 다른 부대 전투원들보다 더 높은 판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 제162군부대는 금성친위부대 칭호를 받은 최정예 항공륙전려단이다. 제162군부대와 함께 이번 강하훈련에 참가한 다른 항공륙전려단은 제323군부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4년 8월 27일 항공륙전병 구분대들의 강하 및 대상물타격실동훈련을 지도하였는데, 그 훈련에 제162군부대 소속 항공륙전병들과 제323군부대 소속 항공륙전병들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보면, 이번에도 그 두 부대가 강하훈련에 함께 참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조선인민군에는 수많은 특수작전부대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 특수작전군이다. 조선인민군은 육군, 해군, 항공군 및 반항공군, 전략군에 이어 제5군종으로 특수작전군을 창설하였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창설되었다는 사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서 특수작전군 열병종대가 행진하였다고 보도한 것으로 하여 외부에 처음 알려졌다. 원래 조선인민군에는 ‘폭풍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특수작전군단인 제11군단이 있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군단을 확대, 개편하여 제5군종인 특수작전군을 창설하였다. 전 세계에서 특수작전군을 군종으로 편제한 군대는 조선인민군밖에 없는데, 이런 사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수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말해준다. <사진 1>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의 기본임무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하여 공격대상을 습격, 파괴, 점령, 나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늘에서는 수송기, 습격기, 동력활공기를 타고 침투하고, 바다에서는 고속침투정과 공기방석정을 타고 침투하고, 수중에서는 잠수함과 잠수정을 타고 침투하고, 산에서는 산악자전거와 스키를 타고 침투하고, 지하에서는 남진갱도를 타고 침투하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사령부 직속 특수작전대대의 습격전 훈련을 살펴보면,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인 2016년 1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습격전 훈련이 진행되었는데, 청와대의 절반 정도 규모로 건설해놓은 청와대 모형건물을 습격하여 “역적패당을 모조리 사살”하였고, “심판대에 꿇어앉힐 악당들을 생포”하였으며, 대구경장사정포로 청와대 모형건물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남측 자료에 따르면, 제5군종으로 편제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의 총병력은 10만명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한국군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7개 공수특전려단의 총병력은 4,200명밖에 되지 않는다. 병력규모를 비교하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한국군 공수특전려단에 비해 약 24배나 많다. 수량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격차다.
조선인민군에는 제5군종인 특수작전군 이외에 해군 소속 해상저격려단이 3개 있고, 항공군 및 반항공군 소속 항공륙전려단이 8개 있다. 남측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1개 항공륙전려단 예하에 6개 대대가 있는데, 1개 여단병력은 8,000명이고, 1개 대대병력은 700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륙전려단 총병력은 3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시에 항공륙전려단이 수행하는 임무는 주한미공군기지들과 한국군 공군기지들, 방공레이더기지들을 습격, 파괴하고, 남측 각지에 있는 공항들을 기습적으로 점령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전투원들의 군사복무기간은 12년이다. 한국군 군사복무기간은 육군 및 해병대가 1년 6개월, 해군이 1년 8개월, 공군이 1년 10개월인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군사복무기간은 12년이다. 12년 동안 전술을 연마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전투원들은 특수전을 수행하는 전술과 능력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사정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제대하는 한국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질적 격차를 벌여놓게 된다.
2. 원산갈마비행장 상공에 나타난 복엽습격기
항공륙전려단 강하훈련에는 항공륙전병들을 전투현장까지 실어날으는 수송기가 동원되는 법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이번 강하훈련에 경수송기들이 동원되었는데, 외형이 로씨야산 경수송기 ‘안-드봐(An-2)’처럼 생긴 프로펠라식 단발엔진 복엽기다. 이 기종은 조선이 2015년부터 자체로 생산하고 있는 복엽습격기다. 조선산 복엽습격기의 공식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씨야산 경수송기 ‘안-드봐’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수하다.
조선의 복엽습격기는 57mm 공대지로켓포를 장착하였고, 병력 20명을 태우고 시속 250km로 비행하며, 항속거리는 500km다. 그런 비행속도라면,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서 이륙하여 36분 만에 서울 상공에 도달할 수 있고, 그런 항속거리라면 태탄비행장에서 부산까지 날아갈 수 있다. 조선의 복엽습격기는 활주거리가 약 250m밖에 되지 않으므로, 고속도로, 광장, 경기장, 골프장 같은 공간들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다.
조선의 복엽습격기는 비행고도를 최저 30m까지 낮춰 초저공으로 비행할 수 있다. 복엽습격기가 달빛 없는 무월광 심야에 한반도 동부산악지대 협곡 사이를 초저공비행으로 빠져나가면, 한국군 탐지레이더망을 간단히 뚫을 수 있다. 또한 복엽습격기는 엔진과 외부비행등을 모두 끄고 약 2km를 활강할 수 있다. 이런 무소음활강비행으로 야간에 적진 상공에 조용히 침투하면, 지상에서 탐조등을 비춰도 찾아내기 힘들다. 조선이 2015년부터 생산하는 복엽습격기의 기체 위쪽에는 GPS안테나가 부착되었고, 기체 아래쪽에는 지형탐지레이더가 부착되었다. 야간습격비행에 사용되는 장비를 부착한 것이다. 그런 장비를 부착한 조선의 복엽습격기는 야간습격비행을 할 수 있다.
이번 강하훈련은 낮에 진행되었지만, 원래 항공륙전병 강하훈련은 야간공중침투훈련이다. 무월광 심야에 무소음활강비행으로 적진 상공에 조용히 침투한 복엽습격기에서 항공륙전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소리 없이 강하하여 야간습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항공륙전병의 저공침투강하고도는 지상으로부터 80m 상공이다. 1996년 9월 19일에 발간된 <시사저널> 제360호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지상 80m 상공에서 펴지는 초저공 낙하산을 1991년에 자체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한국군 공수특전사의 저공침투강하고도는 지상 700m 상공이다.
조선인민군은 야간침투비행에 사용할 복엽습격기를 약 700대 보유하였다. 선덕, 만포, 연포, 태천, 곽산 등에 복엽습격기 비행장이 있다. 복엽습격기 한 대마다 항공륙전병 20명씩 탑승할 수 있으므로, 항공륙전병 약 14,000명이 각지 비행장들에서 복엽습격기를 타고 이륙하여 무월광초저공비행과 무소음활강비행으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야간습격전에 돌입할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이번 강하훈련은 원산갈마비행장에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강하훈련이 진행된 원산갈마비행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복엽습격기 비행장은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선덕비행장이다. 선덕비행장에는 항공군 제970군부대(제6비행사단)가 주둔하는데, 선덕비행장에서 정남쪽에 있는 원산갈마비행장까지 직선거리는 64km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강하훈련은 사전에 예고되고, 준비시간이 주어진 훈련이 아니라, “불의에 떨어진 전투명령을 받고 생소한 지대에서” 진행된 훈련이라고 한다. 이런 불시훈련은 원산갈마비행장에 도착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덕비행장에 주둔하는 항공륙전대들과 복엽습격기편대에게 불시에 명령을 내려 강하훈련이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강하훈련에 참가한 항공륙전병들은 “지정된 강하지점에 정확히 착지하여 다음 전투행동에로 이전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들이 다음 전투행동에로 이전할 준비를 갖추었다고만 서술하였을 뿐, 착지한 이후 어떤 전투행동에로 이전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산갈마비행장에 착지한 것을 보면, 비행장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비행장을 점거하는 습격전을 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2>
<조선일보> 2019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함경남도 선덕비행장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폭격훈련장에 실물과 유사한 F-35A 스텔스전투기 모형, F-15K 전투기 모형, 지대공미사일 모형, 야포 모형, 레이더 모형 등을 만들어놓고 항공륙전병들이 습격전을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시기에는 복엽습격기들이 그곳에서 맨땅에 그려놓은 원형표적을 타격하는 폭격훈련을 하였는데, 최근에는 복엽습격기를 타고 침투한 항공륙전병들이 그곳에 설치해놓은, 실물과 유사한 무장장비 모형들을 파괴하는 습격전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요즈음 조선에서는 특수작전부대들이 습격전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억을 되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대결과 남북대결이 격화되었던 2013년 3월부터 2017년 8월까지 15차례에 걸쳐 특수작전부대들의 습격전 훈련을 직접 지도한 바 있다. 습격전 훈련 지도일정을 날짜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2013년 3월 22일 제1973군부대 지휘부 시찰
2013년 3월 23일 제1973군부대 관하 제2대대 시찰
2013년 5월 26일 제291군부대 시찰
2013년 10월 30일 항공륙전병 집단강하훈련이 포함된 종합화력타격훈련 지도
2014년 1월 23일 제323군부대 전술훈련 지도
2014년 1월 19일 항공륙전병 구분대들의 야간훈련 지도
2014년 6월 13일 제863군부대 시찰
2014년 8월 27일 항공륙전병 구분대들의 강하 및 대상물타격실동훈련 지도
2015년 6월 17일 제1차 정찰일군대회 개최
2015년 10월 15일 제350군부대 시찰
2016년 11월 3일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 시찰
2016년 12월 10일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 청와대습격전훈련 지도
2017년 1월 22일 제1314군부대 시찰
2017년 4월 12일 ‘강하 및 대상물타격경기대회-2017’ 지도
2017년 8월 25일 섬점령을 위한 대상물타격경기 지도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들은 조미대결과 남북대결이 격화된 2012년 이전에도 습격전을 훈련했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서 그들이 진행한 특별한 습격전 훈련은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격화되었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기간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비행장에서 항공륙전려단 습격전 훈련을 지도한 것은 조미협상재개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오늘의 긴박한 국면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항공륙전려단 습격전 훈련을 직접 지도한 것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가 2019년 12월 31일로 정해진 조미협상재개시한을 넘기는 경우, 조미협상은 파탄될 것이며, 그에 따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전에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조미무력대결이 2020년에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미국에게 보낸 것이다.
3.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최근 조선외무성 당국자들은 미국이 조미협상파탄을 피하려면 부차적인 문제들을 건드리며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전했다. 이를테면, 김명길 조선외무성 순회대사는 2019년 11월 14일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정세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련락사무소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를 협상에로 유도할 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문제해결은 언제 가도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2019년 11월 17일 담화에서 “앞으로 조미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문제가 대화의제에 오른다면 몰라도 그 전에는 핵문제가 론의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또한 김계관 조선외무성 고문은 2019년 11월 18일 담화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적으로 보는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였다.
같은 날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담화에서 “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기 전에는 비핵화협상에 대하여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길 조선외무성 순회대사는 2019년 11월 19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대화는 언제가도 열리기 힘들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위에 인용된 발언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외무성은 미국이 올해를 넘기지 말고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는 결단을 내려야 조미협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사진 3>
그렇다면 조선외무성이 미국에게 제기한,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는 요구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적대관계와 충돌위험이 가득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로 대체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면 반드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고, 미국은 그 협정에 의거하여 반드시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 평화협정체결문제와 철군문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철군을 공약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게 철회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버티는 한, 조미협상은 영영 재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전에 일어났던 조미무력대결이 재발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올해 연말로 정해진 시한 안에 조미협상을 재개하느냐 재개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결단을 내리느냐 내리지 못하느냐 하는 시급한 정책결정문제로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은 이런 사정을 외면하면서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2019년 11월 20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우리에게는 연말시한이 없다. 그것은 북조선이 인위적으로 정한 것이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그들 스스로가 정한 시한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북조선이 비핵화를 결심하였음을 보여주는 유의미하고 검증가능한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조미협상이 재개되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북조선이 도발로 회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북조선에게 커다란 실수로, 기회상실로 될 것이다. 하지만 외교적 기회의 창문은 아직 열려있다”고 말했다.
4. 긴박했던 2012년 상황에 대한 기억
사람들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과거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이를테면, 2012년 8월 이후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조성되었던 극도로 긴박하고 첨예한 대결상황이 2020년에 조성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조짐에 머물러있지만, 그것은 미국과 한국에게 매우 치명적이고 불길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한국에게 다가오는 치명적이고 불길한 조짐이 과연 어떤 것인지 예측하려면,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2년에 겪었던 경험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야 한다. 그 기억은 다음과 같다.
2012년 2월 17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정례언론설명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대화재개의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그런 전제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는 점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국무부 대변인이 단언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조미협상을 재개하려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조선의 요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은 2012년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조선반도 평화보장의 기본 장애물인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밝혔고,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결정을 내려야 조미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주장을 2012년 내내 거듭했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이 조미협상을 시작하는 전제조건으로 제기한 철군문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조선이 2012년 새해 첫날부터 철군문제를 협상조건으로 제기한 것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과 김정은시대 원년을 동시에 맞이한 바로 그 해에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하여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으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2012년에 집권 마지막 해를 맞은 오바마 행정부는 조미협상을 시작하려면 철군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조선의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는 무대 위에서는 협상의 문을 닫아놓고, 무대 뒤에서는 비공개협상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조선은 오바마 행정부가 조심스럽게 두드린 비공개협상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되어 2012년 4월과 8월 평양에서 조미비공개협상이 진행되었다. <동아일보> 2012년 11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공군 수송기 한 대가 2012년 8월 17일 괌에서 이륙하여 서해항로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고, 나흘 동안 평양에 머무르다가 20일 평양을 떠났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평양에서 3박4일 동안 조미비공개협상이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비공개협상은 2012년 4월 7일 평양에서 진행된 비공개협상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4월과 8월 조선과 미국이 평양에서 진행한 두 차례의 비공개협상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결렬되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이 조선의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당시 비공개협상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요구는 2012년 8월 31일 조선외무성이 발표한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기본장애’라는 제목의 비망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망록에서 조선외무성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핵문제 해결의 선결조건이라고 언명하였다.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려야 조미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7년 전이나 오늘이나 조선이 변함없이 견지하는 비타협적인 원칙인 것이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조선이 7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조선의 대미정책에서 대조선적대정책 폐기와 주한미국군 철수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뜻을 가진 동의어다. 그래서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2012년 9월 7일 담화에서 “미군의 남조선강점은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최대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우리의 전면전쟁맛을 한번 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조선의 견지에서 바라보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침략무력배치, 핵공갈, 전쟁연습, 경제제재, 인권공세, 정권전복공작, 모략선전 등으로 전개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침공무력배치야말로 가장 중대한 적대행위로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으면 전면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조선외무성의 대미위협발언은 말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2012년 4월과 8월에 진행된 조미비공개협상이 미국의 오판과 오만으로 결렬된 직후, 조선은 ‘새로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이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두드린 비공개협상의 문을 열어준 것으로 하여 어렵사리 성사되었던 비공개협상이 결렬된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조선이 미국과 벌인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온 불퇴전의 의지이며 단호한 행동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비공개협상이 결렬된 직후 조선이 택한 ‘새로운 길’은 무력통일이었다. <사진 4>
평양에서 진행된 두 번째 조미비공개협상이 결렬되었던 2012년 8월 20일 이후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를 완료해놓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총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당시 시시각각 고조되고 있었던 급박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동부전선에서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나는 이미 서남전선의 최전방부대들에 나가 적들의 무분별한 추태를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살피며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 령토와 령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수표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결전을 위한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2004년 4월에 제정된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면서 ‘전시선포시기’라는 새로운 항목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전시사업세칙’은 당과 군대와 인민의 역량을 조국통일대전에로 총동원하는 전시행동지침을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조선이 ‘전시사업세칙’에 새로운 항목으로 들여놓은 ‘전시선포시기’는 “미국과 남조선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공화국 북반부에 무력침공을 했을 때”, 또는 “남조선 애국력량의 지원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되었을 때”, 또는 “미국과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개정된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조선은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였을 때”, 또는 “미국과 남조선이 전선과 해상에서 군사도발을 감행하였을 때”, 또는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최고 리익을 침해하는 도발을 감행하였을 때”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다고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3) 미국의 선전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민군 군관들과 병사들은 영어문장 100개를 암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암기하는 영어문장들 가운데는 ‘손 들엇(hands up)’, ‘움직이면 쏜다(Don’t move, you will be shot)’ 같은 문장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2012년에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주한미국군기지를 공격하는 습격전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은 2012년 8월 이후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격화되고 있었던 대결이 준전시상태로 옮겨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고, 준전시상태에서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명백하게도, 2012년 9월 이후 조선은 우발적 무력충돌→준전시상태 선포→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지는 무력통일준비를 완료하였던 것이다.
나는 2012년 9월 3일부터 2015년 7월 31일까지 기간에 조선의 무력통일준비태세를 분석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이 72시간 단기속결전씨나리오에 따라 수행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글 여섯 편을 <통일뉴스>, <자주민보>, <자주시보>에 각각 발표하였는데, 2017년 7월 3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글에서는 조선의 핵무력이 고도화된 것으로 하여 72시간 단기속결전씨나리오를 12시간 초단기속결전씨나리오로 수정, 보완하였다.
5. 2012년 상황이 재연되는가?
사람들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2012년에 펼쳐졌던 상황과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서로 같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년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동일한 현상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2012년 조선이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 철회를 조미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강하게 요구한 것과 똑같이 오늘 조선은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 폐기를 조미협상재개의 전제조건으로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2) 2012년 4월과 8월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비공개협상이 미국의 오판과 오만으로 결렬되었던 것과 똑같이 2019년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조미실무협상도 미국의 오판과 오만으로 결렬되고 말았다. 2012년에 조미협상과 남북대화가 모두 막히고 대결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과 똑같이 오늘도 조미협상과 남북대화가 모두 막혀버렸다. 만일 미국이 오판과 오만에 빠져 2019년 말로 예정된 조미협상재개시한을 넘기면, 조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첨예한 대결상태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3) 2012년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최전방 전투부대들을 돌아보면서 전투준비태세를 검열하였던 것과 똑같이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을 돌아보면서 전투준비상태를 검열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1월 15일 조선인민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항공군의 전투준비태세를 검열하였고, 11월 17일에는 항공륙전려단의 강하훈련에서 특수작전부대의 전투준비태세를 검열하였다. <사진 5>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은 2012년에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날 뻔했던 긴박한 상황을 기억하고 있을까? 2012년은 그들이 집권하기 4년 전이므로, 그들은 당시 긴박했던 위기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비록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전에 전임 대통령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2012년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당시 퇴임을 앞두고 있었던 오바마를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 회동에서 오바마로부터 2012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조미전쟁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몇 차례 거듭했다. 대선 기간 중에 자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겠노라고 언명하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그 언명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조미전쟁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하다가 시간만 허비하였고, 조미협상재개시한이 눈앞에 다가오자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2012년 상황을 알지 못하는 각료들은 조미협상재개시한이 다가와도 무덤덤하지만, 2012년 상황을 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곤경에 빠졌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결정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조미핵대결이 재발되는 상황으로 떠밀려갈 것인가 하는 전략적 양자택일의 곤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곤경에 빠져 고심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평화협정체결문제를 합의할 제3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자신의 친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면 모든 문제는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