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9년 08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019년 8월 16일 응징사격과 절교선언
2. 대북전쟁연습 중지하고 대북핵협상 계속하려는 트럼프
3. 북이 위기관리참모훈련에 격노한 이유
4.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
5. 청와대에 48억 달러짜리 청구서 보낸 트럼프
1. 2019년 8월 16일 응징사격과 절교선언
그것은 응징사격이었다. 대북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는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에게 보내는 북의 대남응징사격이었다.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 한미연합군은 대북선제공격과 평양점령 그리고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를 인용하면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 질서유지 등을 수행하는 안정화작전”을 연습하고 있었다.
광복절 다음날인 2019년 8월 16일 오전 8시 1분부터 15분 동안 군사분계선 동부전선에서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측 강원도 통천군에서 요란한 발사폭음이 울렸다. 저고도비행능력, 극초음속비행능력, 초정밀타격능력을 모두 갖춘 최첨단 비탄도미사일(non-ballistic missile) 두 발이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가 230km 밖에 있는 작은 타격목표에 명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대남응징사격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남응징사격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우리를 상대로 불장난질을 해볼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미연합군이 감행하는 대북전쟁연습을 ‘불장난질’이라고 질타한 것이다. <사진 1>
북에서 대남응징사격이 진행되던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에서 대북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평화를 운운한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표를 두고 “북쪽에서 사냥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력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력력하다”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또는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이라고 지탄하였고,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절교를 선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2019년 8월 5일부터 대북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은 대남응징사격을 또 다시 단행하였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남절교를 선언하였다. 1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대결분위기가 남북관계를 전면파탄으로 몰아넣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였고,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백두산 정상에 함께 올라 평화통일의지를 과시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아름다운 상봉과 대화의 기억은 불과 몇 달 만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불신과 대결만 남았다.
남북관계가 불과 몇 달 만에 대화에서 대결로 뒤바뀐 급변현상을 보며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왜 대화에서 대결로 급전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2019년 3월과 8월에 각각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대화에서 대결로 급전시키면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한 의도와 배경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북전쟁연습 중지하고 대북핵협상 계속하려는 트럼프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공약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거듭 확인하였다. 그것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자기의 공약을 거듭 확인하였다는 사실은 2019년 7월 16일 조선 외무성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고, 한미합동전쟁연습이 또 다시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과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거듭 공약했는데, 왜 이행되지 않은 것일까? 이 글을 집필하기 전까지 나는 이 의문을 풀어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추측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나의 추측은 다음과 같이 두 갈래로 흘러갔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임기응변으로 약속해놓고, 백악관에 돌아가서는 그 약속을 저버리고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려고 하였으나, 각료들이 공약이행을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추측은 빗나간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임기응변으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2019년 8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어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8월 9일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언급할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불쾌하게 여겼다고 하면서,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도 또한 그것(한미합동전쟁연습을 뜻함-옮긴이)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변상을 받아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한국에게 말한 바 있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막대한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한미합동전쟁연습을 반대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 발언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이 북침전쟁연습이므로 반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전쟁연습이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무익한 전쟁연습이므로 반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두 차례나 거듭 공약한 것은, 임기응변이 아니라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무익한 전쟁연습을 중지하고 대북핵협상을 계속하려는 자기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려고 하였으나, 각료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었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각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행에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견해와 주장을 반대하는 불충한 각료들을 줄줄이 해임시켜왔으므로, 지금 남아있는 각료들 속에서는 대통령의 견해와 주장을 감히 반대할 수 없는 억압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에 대응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공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조미핵협상이 완전히 파탄될 것이므로, 각료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핵협상이 파탄되더라도 한미합동전쟁연습을 강행해야 한다고 건의할 상황도 전혀 아니다. <사진 2>
위와 같은 내막을 살펴보면, 지난해 중지되었던 한미합동전쟁연습이 올해 다시 재개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푸는 실마리는 흥미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속에 감춰져 있었다. 2019년 8월 9일 그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멋진 서한(beautiful letter)을 받았다. 그가 멋진, 세 장짜리 서한을 내게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멋진 서한이다. 나는 서한내용을 공개하려고 하는데, 아무튼 그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는 시험들, 전쟁연습들에 대해 불쾌하게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함께 진행한 전쟁연습들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함께 진행한 전쟁연습(The war games on the other side with the United States)”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 담긴 뜻을 파헤치면, 2019년 8월 5일부터 시작된 대북전쟁연습은 한국군이 진행하는 단독전쟁연습이고, 다른 한편으로 한국군과 미국군이 함께 진행하는 합동전쟁연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과 한미연합군의 합동전쟁연습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해준 것인데, 정말 그러했을까?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쟁연습은 위기관리참모훈련(Crisis Management Staff Training, CMST)과 지휘소연습(Command Post Exercise, CPX)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위기관리참모훈련은 8월 5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었고, 지휘소연습은 8월 11일부터 시작되어 20일까지 진행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정황이 눈길을 끈다.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올해 8월 5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기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명칭을 붙인 한미합동전쟁연습은 2017년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마지막으로 진행되었고, 2018년 8월 하순에는 진행되지 않았는데, ‘을지프리덤가디언’중에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없었다.
3. 북이 위기관리참모훈련에 격노한 이유
이번에 처음 진행된 위기관리참모훈련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각종 국지도발과 대테러대응상황 등을 가정한” 전쟁연습이라고 했고, <국민일보> 2019년 8월 12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전면전 발발 전 위기고조단계를 가정한” 전쟁연습이라고 했고, <뉴시스> 2019년 8월 5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전쟁연습이라고 했다. 이런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위기관리참모훈련이 국지전연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기관리참모훈련이 국지전연습이라면, 지휘소연습은 전면전연습이다.
다시 말해서, 2019년 8월 5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대북전쟁연습 중에 한국군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을 붙인 국지전연습을 진행하였고, 한미연합군은 지휘소연습이라는 명칭을 붙인 전면전연습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한국군의 국지전연습과 한미연합군의 전면전연습이 연속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8월 9일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번 전쟁연습은 한편으로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군과 미국군의 합동전쟁연습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은, 한국군이 국지전연습을 단독으로 진행한 직후 한미연합군이 전면전연습을 합동으로 진행한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다.
원래 국지전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무력충돌이다. 그래서 국지전은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진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하게 된다.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군사령관에게 자동적으로 넘어가고, 미국군사령관이 전면전을 지휘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진행된 대북전쟁연습은 미국군이 한국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한 이후에 일어나는 전면전을 가상하여 진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면전연습은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따라가는 새로운 형태의 대북전쟁연습이다.
그러면 한국군이 단독으로 진행한 국지전연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전쟁연습인가? <한겨레> 2015년 7월 6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4월 14일부터 15일까지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제7차 회의에서 한국군 대표단과 미국군 대표단이 말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대표단은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북의 도발원점과 지원세력은 물론 북의 지휘세력까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미국군 대표단은 국지전이 일어나도 확전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진 3>
그 회의에서 한국군 대표단이 국지전이 일어나면 북의 지휘세력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주장한 것이다. 명백하게도, 한국군이 준비한 국지전에서 핵심적인 것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한국군이 2019년 8월 5일부터 8일까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진행한 국지전연습은 군사분계선 또는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한국군이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연습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막연한 추론이 아니다.
국방부가 2019년 8월 14일에 발표한 ‘2020~2024 국방중기계획’에는 특전사령부 예하 제13공수특전여단의 대북침투무장력을 증강하는 비밀계획이 들어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방부는 특전사령부 예하 제13공수특전여단에게 MH-47 특수전 헬기, 소형 자폭무인기, 다련발 유탄발사기, 야간투시경, 신형 저격총 등을 공급하여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강화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 제13공수특전여단이 군사분계선이나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부대다.
국방부는 지난 8월 14일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할 때, 참수작전부대의 대북침투무장력을 증강하는 비밀계획을 슬쩍 빼놓고 공개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 2019년 8월 15일 보도를 통해 그 비밀계획이 세상에 드러났다.
남측 국방부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실제로 연습하고, 참수작전부대증강계획을 담은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북에게 평화의 악수를 청했다. 북에게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군이 참수작전연습을 강행하는 것을 보며 격노한 북은 2019년 8월 16일 참수작전연습이라는 ‘불장난질’을 감행하는 문재인 정부를 위협하는 응징사격을 단행하였고, 같은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다.
여기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올라 평화통일의지를 과시하였는데, 그런 그에게 도대체 무슨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기에 태도가 180도 돌변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연습을 승인하고 참수작전부대무력증강계획을 승인한 것일까?
4.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
2018년 11월 30일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2018년 11월 30일 당시에는 사건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알 수 없었는데, 2019년 1월 25일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건은 이러했다.
2018년 11월 30일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20개국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정상회의가 시작된 11월 30일, 현지에서 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별도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30분 동안 진행된 약식회담이었다. 통역시간을 제외하면 실제회담시간은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처럼 짧은 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뜻밖의 말을 불쑥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2억 달러(1조3,554억 원)를 내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한 것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가 연간 40억 달러인데, 문재인 정부가 6억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2017년에 체결된 분담금협정에 따라 2018년에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게 상납한 연간분담금은 8억3,000만 달러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6억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면서,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액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8억3,0000만 달러를 6억 달러로 착오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게 더 많은 분담금을 강요하려고 일부러 분담액수를 깎아내린 것이다.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없지만, 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문재인 정부가 12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노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협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게 사용하는 협상수법을 보면, 그런 식의 협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강요와 협박을 받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은 경악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가 무너졌다. 만일 12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와 불안이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혔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남북이 평화통일을 실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철군이 남측 정권의 붕괴와 북의 무력공격을 유발할 것으로 착각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비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서둘러 추진한 대비책은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남북관계개선이 아니라 한국군의 급속한 무력증강과 대북전쟁연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두 가지 군사대비책을 마련하였다. <사진 4>
첫째,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요와 협박을 받은 날로부터 40일이 지난 2019년 1월 11일 국방부는 한국군 무력증강비용을 94.1조 원(연평균 증가률 10.8%)으로 급증시키고, 무력운용비용을 176조6,000억 원으로 급증시킨 ‘2019~2023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에는 4~5월 중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오던 국방부가 올해 2019년에는 이례적으로 1월 초로 앞당겨 발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를 받은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음을 말해준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중지되었던 한미합동전쟁연습이 2019년에 재개되도록 힘썼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8월 9일 발언을 들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불이행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올해 대북전쟁연습을 재개한 당사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재개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받을 수 있을 만큼 전쟁준비태세를 갖추었는지 검증한다는 명분을 꺼내놓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전쟁연습재개를 간청하였고, 그 간청에 따라,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따라가는 새로운 형태의 대북전쟁연습이 재개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19-1 동맹’이라는 명칭을 붙인 대북전쟁연습을 2019년 3월 4일부터 12일까지 감행하였고, 명칭을 공개하지 않은 대북전쟁연습을 2019년 8월 5일부터 20일까지 또 다시 감행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국방부는 2019년 1월 11일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놓고, 그로부터 7개월 뒤인 8월 14일에 또 다시 국방중기계획을 중복발표한 것이다. 국방부는 1월 11일에 ‘2019~2023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고, 8월 14일에는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를 받은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다가, 미흡한 점들이 드러나자 이를 보완하여 보정판 국방중기계획을 다시 발표하였음을 말해준다.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에서 무엇을 보완했을까? 2019년 4월 1일 한국 국방부를 방문한 미국 국방장관 대행 패트릭 섀너핸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3월훈련은 아주 성공적이었지만, 가을훈련(8월훈련이라는 뜻-옮긴이)에서 이뤄낼 수 있는 개선점들도 파악했다. 이 문제를 한국 국방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섀너핸의 발언을 들어보면, 문재인 정부는 2019년 3월 4일부터 12일까지 ‘19-1 동맹’이라는 명칭으로 강행한 대북전쟁연습에서 드러난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대북전쟁계획을 수정, 보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쟁계획을 보완하면서 무력증강계획도 함께 보완하였다. 국방부가 2019년 1월 11일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놓고, 그로부터 7개월 뒤인 8월 14일에 또 다시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5. 청와대에 48억 달러짜리 청구서 보낸 트럼프
미국 뉴욕시 근교에 있는 롱아일랜드 써폭 카운티 남쪽에 브리지햄튼이라는 동네가 있다. 2019년 8월 9일 브리지햄튼에 있는 4,000만 달러짜리 쌘드캐슬 대저택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났다. 2020년 11월 3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대선자금모금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행사에는 그를 지지하는 억만장자 재벌총수들이 참석했다. 그 행사에 참석하는 일반입장료는 2,800달러, 귀빈입장료는 11,000달러, 부부동반입장료는 56,000달러이고, 트럼프와 사진 한 장 찍으려면 35,000달러를 내야 하고, 트럼프와 오찬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면 100,000달러를 내야 하고, 오찬석상에서 트럼프의 옆에 앉아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려면 250,000달러를 내야 한다. 상상을 초월한 거액이 오가는 모금행사에 억만장자 재벌총수 50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들이 대선자금으로 내놓은 모금액은 1,200만 달러였다.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기아인구로 전락한 나라에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제3세계의 자원을 수탈하여 긁어모은 검은 돈이 그렇게 탕진되었다.
자기의 대선승리를 위해 억만장자 재벌총수들이 거액을 희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트럼프 대통령은 흥분하였다. 그는 흥분을 안고 연설단상에 올랐다. 그것은 정치연설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농담에 섞어 청중에게 선사하는 정치재담이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백악관 수석보좌관 스티븐 밀러가 써준 원고를 읽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2019년 8월 9일 대선자금모금행사에서는 그런 절차를 따르지 않은 정치재담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재담은 무려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즉흥적인 정치재담은 절제된 언어로 다듬어진 정치연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대통령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런데 아쉽게도, 미국 언론매체들 가운데 오직 <뉴욕포스트>만이 2019년 8월 9일부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재담을 짤막하게 인용하였다. 그 인용보도에 따르면, 정치재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 있는 월세통제아파트에 수금하러 갔던 회고담을 꺼내놓았다. 월세통제아파트라는 것은 뉴욕시가 행정명령으로 월세인상을 통제하여 입주세대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서민아파트다. 회고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에 있는 월세통제아파트에서 114달러 13쎈트를 받아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것이 더 쉬웠다. 내 말을 들어보라. 바로 그 13쎈트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회고담처럼 들리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임기응변에 능한 그가 즉흥적으로 꾸며낸 정치재담의 한 대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 프렛 트럼프(1905~1999)는 자기 아들 도널드 트럼프가 18살이 되던 1964년에 뉴욕 브루클린의 바닷가 코니 아일랜드에 트럼프 빌리지라고 불리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였다. 건설비는 7,000만 달러였다. 이것을 2019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5억8,000만 달러다. 1964년 당시 프렛 트럼프는 5억8,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부동산재벌총수였다. 그런데 그런 재벌총수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 월세 114달러(현재 화폐가치로는 943달러)를 수금하러 다녔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트럼프의 회고담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였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가 114달러 13쎈트를 수금했던 당시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도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1964년에 거래한 금액을 55년이 지난 뒤에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무리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이따금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미국 언론매체들로부터 핀잔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이 55년 전에 있었던 월세수금액의 소수점 아래단위를 기억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재담에서 왜 그런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냈을까? 그는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거액을 문재인 정부에게서 받아내는 자기의 능력을 지지자들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월세수금액의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언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받아내는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한 푼도 깎아주지 않겠다는 갈취의지를 지지자들 앞에서 드러낸 것이다.
그날 정치재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0억 달러를 이미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2019년 2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요에 굴복하여 상납하기로 한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은 10억 달러가 아니라 9억2,500만 달러(1조400억 원)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10개월 동안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 2억7,500만 달러를 깎은 것이다. 그런데 2019년 8월 9일 정치재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10억 달러를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협상과정에서 2억7,500만 달러가 깎였는데도, 10억 달러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얼마나 더 받아내려는 것일까? 그는 2019년 4월 27일 미국 위스컨신주 그린베이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우리가 50억 달러를 내면서 지켜주는 부유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5억 달러만 낸다. 그 나라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겠지만, 나는 전화 한 통으로 올해 5억 달러를 더 내놓게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진 5>
<중앙일보> 2019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문재인 정부에게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7월 24일 서울에 나타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문재인 정부에게 건네줄 지출명세서를 들고 왔다. 그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주한미국군 훈련비용, 전력전개비용, 해외파병수당을 비롯한 48억 달러(5조8,000억 원)의 지출내역이 열거된 지출명세서를 건네주면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위해 1년 동안 쓰는 비용이 48억 달러인데, 이 비용을 한국이 전액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볼턴은 청와대를 방문한 직후 국방부에 가서 정경두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로 연간 48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리 준비해온 지출명세서를 나눠준 뒤,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통해 전달한 ‘분담금 청구서’를 받아본 문재인 대통령은 경악하였다. 2018년 11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2억 달러를 요구했었는데, 이제는 그보다 무려 4배가 늘어난 48억 달러를 요구하였으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맹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돈만 뜯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문재인 대통령이 느끼는 불신과 배신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며, 48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 것이라는 우려와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