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12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트럼프가 철군결정을 내린 사연
2. 트럼프는 매티스를 버렸다
3. 수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한국으로 이어지는 연쇄철군
4. 격론장면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철군의지
1. 트럼프가 철군결정을 내린 사연
세밑을 앞둔 2018년 12월 19일 예상치 못한 일파만파의 충격이 워싱턴을 뒤흔들었다. 미국은 놀라움에 휩싸였고, 전 세계는 놀라움으로 술렁거렸다. 그날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이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신속히 그리고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평소에 파격을 좋아하는 그답게 철군결정을 발표하는 형식도 파격적이었는데, 백악관 대변인이 철군성명을 백악관 기자회견실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직접 오후 3시 10분에 백악관 앞마당으로 나가 자신의 철군결정을 발표하는 1분 19초짜리 동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트위터에 올려놓은 것이다. 미국 언론계를 상대로 정면대결을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철군결정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먼저 알려지는 경우, 미국군 철수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미국 언론계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지 못해서 그처럼 파격적인 형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신속하게,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한 것은, 전란을 겪고 있는 수리아정세를 뒤바꿔놓는 것은 물론이고 중동정세 전반을 변화의 급류 속으로 밀어넣은 사변이 아닐 수 없다. 그 사변 속에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사연들을 들춰내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진 1>
이야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8월 1일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초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재무부에게 미국의 비밀지령에 따라 수리아정부를 전복시키려고 내전을 도발한 시리아반란군을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국은 수리아반란군에게 각종 무기를 대량 공급했고, 국무부는 그 무슨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수리아반란군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주었고, 재무부는 수리아반란군의 국제금융거래를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해주었다. 미국군 특수작전군이 북아프리카 비밀훈련소에서 무장시킨 테러집단을 수리아에 잠입시켜 내전을 도발한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수리아반란군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수리아정부를 무너뜨리려고 광분하였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도이췰란드, 뛰르끼에(터키) 같은 친미추종국들도 수리아반란군에게 무기를 공급하거나 그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거나 수리아전선에 파병하였다. 피냄새를 맡은 승냥이떼처럼 사면팔방에서 몰려들어 수리아를 포위한 제국주의연합세력이 공격을 개시하자, 수리아는 참혹한 전란을 겪어야 했고, 수리아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군 특수작전군과 중앙정보국을 앞세워 수리아내전을 도발한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수리아정부가 제국주의연합세력과 수리아반란군의 포위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길어야 석 달 안에 무너질 것으로 타산하였다. 그래서 그는 2012년 3월 2일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와 회견하면서 “아싸드 정권의 운명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목청을 높였다.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2012년 7월 30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과 진행한 대담에서 수리아정부가 무너진 뒤에 수리아군의 화학무기들이 헤즈볼라(Hezbollah, 레바논에 근거를 둔 이슬람 시아파 정당 및 군사조직)에게 넘어가는 것은 재앙이므로, 정권붕괴 이후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면서, 수리아에 현존하는 군대, 경찰, 보안군을 정권붕괴 이후에도 종전대로 유지시켜 수리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서 역할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횡설수설 지껄였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수리아정부가 석 달 안에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수리아정부는 국가주권을 수호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로 수리아군과 수리아인민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다. 2017년 4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자신이 소유한 초호화 휴양소 마러라고(Mar-a-Lago)에 나타났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을 그곳에 초청하여 정상회담을 진행하려던 참이었는데,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례적으로 마러라고에서 국가안보회의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집중발사하여 수리아군 공군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이른바 ‘군사선택방안(military option)’을 논의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8년 4월 4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200발로 공격하는 방안, 60발로 공격하는 방안, 그리고 공격하지 않는 방안을 놓고 어떤 방안을 택할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여 결정하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사흘 뒤 그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다시 모인 것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은 미국 해군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으로 수리아군 공군기지를 파괴하는 작전계획을 상세히 해설하였다. 해설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방안을 한 바퀴 돌면서 각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런 뒤에 트럼프 대통령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60발을 발사하여 수리아군 공군기지를 파괴하는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공격명령이 작전지휘계통을 타고 지중해에서 대기 중이던 미국 해군 구축함 두 척에게 급히 전달되었다. 그 구축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러라고 휴양소에서 시진핑 주석과 만찬을 나누는 시각에 맞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60발을 수리아군 공군기지를 향해 발사하였다.
그로부터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보좌관들에게 수리아군 공군기지 한 군데를 파괴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서, 바샤르 알 아싸드(Bashar al-Assad) 수리아 대통령을 살해하는 비밀작전을 궁리하였다. 하지만 확전을 두려워한 그는 그 비밀작전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수리아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수리아내전을 일으킨 도발자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리아군 공군기지를 파괴하는 공습명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아싸드 대통령을 살해하려는 비밀작전까지 검토한 도발자다. 수리아정부를 전복시키려고 광분하였다는 점에서, 오바마와 트럼프 사이에는 한 치의 차이도 없어 보인다.
수리아의 국가주권을 짓밟으려고 광분하던 도발자가 어떻게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수리아에 대한 공습도 완전히 중지하겠다는 정반대 결정을 내렸을까?
반란군을 앞세워 수리아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전쟁임무를 수행하던 수리아 주둔 미국군은 아싸드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한 수리아군과 수리아인민의 완강한 투쟁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진 2>
거기에 더하여, 정부전복음모를 꾸미고 내전을 일으킨 미국의 만행을 보고 분노한 조선, 로씨야, 꾸바, 이란, 헤즈볼라는 국가주권을 수호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수리아정부와 수리아군과 수리아인민의 투쟁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지, 성원하였다.
2015년 9월부터 시작된 로씨야군의 참전은 수리아군에게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서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2018년 8월 22일 로씨야 국방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장성급 군사지휘관 430명과 장교급 군사지휘관 25,700여 명을 비롯한 60,000명 이상의 로씨야군이 수리아전쟁에 참전하여 반란군 수괴 830명과 반란군 병력 86,000여 명을 제거했다고 한다.
또한 2013년 9월 이란혁명수비군은 미국이 수리아군을 공습하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보복공격을 준비하였고, 수리아군에게 군사고문단, 전투원, 무기를 보내주었다.
수리아전쟁이 일어났을 때, 수리아정부에게 가장 먼저 군사지원을 보낸 나라는 조선이다. 조선과 수리아는 친근한 우방으로서 상부상조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수리아다. 미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3년 8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아랍어에 능통한 조선인민군 장교 10여 명이 수리아군에게 포격전과 전법 등을 조언해주고 있다고 하였다. 러시아 통신사 <따쓰> 2016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철마-1’, ‘철마-7’이라고 불리는 2개 전투단위를 수리아전선에 보냈다고 한다.
수리아전쟁에서 반란군이 패배를 거듭하며 수세에 몰리자, 미국은 수리아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실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고 다른 전략목표를 붙잡았다. 그 다른 전략목표는 수리아전쟁에 참전하여 수리아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이란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리아에서 차단당한 것은 이란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군사적 음모였다. 수리아전쟁에서 미국은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패하였다. 수리아 주둔 미국군은 더 큰 패배와 망신을 당하기 전에 하루빨리 철수해야 하는 궁지에 몰린 것이다. 철군을 반대하는 각료들의 저지에 가로막혀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정이 좀 늦어지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철군결정을 내렸으니 다행한 일이다.
2018년 12월 말 현재 수리아군은 반란군을 제압하며 국토의 3분의 2를 탈환, 수복하였다. 수리아군이 미국군 철수 이후에도 수리아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허튼 수작을 부리는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반란군 잔당을 제압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2. 트럼프는 매티스를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날인 2018년 12월 20일 매티스 국방장관이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 들어섰다. 철군반대파의 수장노릇을 해온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설득하여 철군결정을 되돌려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기 전에 사직서를 미리 준비하였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기 전에 사직서를 준비한 것은,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지 못하는 호박을 마지막으로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식의 절망적인 시도였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국방장관을 면담한 시간은 45분이라고 한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꽤 긴 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면서 철군결정을 되돌려보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을 바꾸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미국 언론매체들은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정에 반발하여 사임을 결정한 것처럼 일제히 보도했지만,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놓은 오보다. 2018년 1월 19일 매티스 국방장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철군격론을 벌인 뒤 국방부 청사로 돌아가 자기 보좌관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초등학교 5~6학년 애들의 이해력밖에 없으며 그런 애들처럼 행동했다”고 비난하였는데, 누군가 밀고하는 바람에 그 비난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고, 그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를 사임시킬 기회를 엿보다가 이번에 그를 사실상 사임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티스 국방장관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철군결정을 발표한 것은, 그를 신임하지 않고 있으니 장관직을 내놓으라는 일종의 사임압박이었다. <사진 3>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사를 반대해온 미국의 연방의회, 언론계, 전문가들, 전직관료들은 일제히 매티스의 사임결정이 무척 안타깝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그가 물러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커다란 손실로 된다느니, 그가 물러나면 미국의 군사정책에 불확실성이 드리우지 않을까 우려된다느니 뭐니 하면서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하지만 폐쇄집단인 미국 군부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에 집착하면서 수리아 주둔 미국군 철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대통령의 철군의사를 거슬렀던 어리석은 각료가 대통령의 불신임을 받아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야 당연지사가 아닌가.
매티스 국방장관은 철군결심이 확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철군반대파 각료들을 하나씩 제거하였고, 철군을 반대하지 않는 인사를 후임자로 임명해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현실을 외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의 철군의사를 반대하는 각료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 불충한 각료이므로 해임 또는 자진사임으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가 그렇게 물러났고, 백악관 비서실장 존 켈리(John F. Kelly)는 2018년 말에 물러나고, 국방장관 매티스는 2019년 2월 말에 물러나게 된다. 합참의장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는 2019년 10월 1일에 은퇴할 예정이지만, 2018년 12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밀리(Mark A. Milley) 육군참모총장을 그의 후임으로 일찌감치 지명해놓았다. 이것은 던포드 합참의장이 되도록 빨리 물러나면 좋겠다는 노골적인 사임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드러난 것처럼, 그가 새 각료를 선임하는 원칙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충성파 인사를 후임자로 간택하는 것이다. 틸러슨의 후임자로 국무장관에 임명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맥매스터의 후임자로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존 볼턴(John R. Bolton) 등이 대통령이 선호하는 순종형 각료들이다.
3. 수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한국으로 이어지는 연쇄철군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철수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정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2016년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당선되면,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철군공약을 이행하려고 하였지만, 철군을 반대하는 각료들의 저지에 가로막혀 쉽사리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11개월이 지난 오늘 철군을 반대하는 각료들을 따돌리고 자신의 철군공약을 마침내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2년 전에 내걸었던 철군공약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철군공약을 이행하는 첫 번째 대상으로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철수한 다음에 두 번째로 철수하려는 대상은 누구인가?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 2018년 12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수리아 주둔 미국군 다음으로 철수하려는 대상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국군 14,000명 중에서 5,000명 이상을 철수하기 위한 계획을 이미 세워놓았다고 한다. 수리아 주둔 미국군은 2,200명밖에 되지 않아 단번에 전부 철수할 수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은 14,000명이므로 단번에 전부 철수하지 못하고 두 단계에 걸쳐 철수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아프가니스탄전황이 도대체 어떻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곳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철수하려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전황도 수리아전황과 비슷하게 미국군에게 매우 불리해졌다. <사진 4>
1996년 9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건설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인 탈레반(Taleban, 이슬람교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신학도라는 뜻)의 세력권이 최근 급속히 확장되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재건특별보고관이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8년 11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전쟁이 17년 동안 지속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장악한 점령지가 지난 3년 동안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아프가니스탄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은 72%에서 56%로 줄었다고 한다.
2018년 10월 18일 아프가니스탄전선에 나토군 군사고문관으로 파견된 미국 육군 준장 제프리 스마일리(Jeffrey D. Smiley)가 현지 주지사 공관에서 작전회의를 진행하던 중에 습격을 받아 부상하고, 다른 참석자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부쉬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도발한 이후 17년이 지났는데도 전황이 이처럼 미국군에게 매우 불리해지자, 치욕스런 패전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을 그곳에 더 이상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철군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군을 철수한 다음에 세 번째로 철수하려는 대상은 누구인가? 이라크 주둔 미국군이 세 번째 철수대상으로 될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7년 9월 30일 현재 이라크에 미국군 7,400명이 주둔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는데, 국방부 웹싸이트 자료실에 나타나 있던 이라크 주둔 미국군 병력수를 2018년 4월 초에 갑자기 삭제하였다. 미국 국방부 웹싸이트에서 이라크 주둔 미국군 병력수가 삭제된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주둔 미국군을 은밀히 감축하는 것을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 군사전문지 <밀리터리 타임스> 2018년 4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2018년 3월 현재 이라크에 미국군 5,200명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개월 동안 이라크 주둔 미국군 2,200명을 소문 없이 감축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라크에서 은밀한 병력감축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보다 이라크 주둔 미국군이 먼저 단계적 철수를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내막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군문제를 둘러싸고 각료들과 의견마찰을 일으키면서도 자신의 철군의지대로 감축을 단행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미국군을 연쇄적으로 철수하면 그 다음으로 어느 지역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철수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물어보나마나 한국에 주둔하는 미국군이다. 주한미국군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의 두 배인 28,500명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를 결정하면, 세 단계에 걸쳐 철수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5>
돌이켜보면,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3단계 철수계획을 거론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대선기간 중에 주한미국군 철수공약을 내걸었던 지미 카터(Jimmy E. Carter)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77년 4월 미국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비밀보고서가 2018년 11월 25일 기밀해제되어 공개되었는데, 그들은 비밀보고서에서 주한미국군 철수가 전략균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한국군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4~5년 동안 단계적으로 신중히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권고한 바 있다.
중앙정보국의 그런 권고를 받은 카터 대통령은 1977년 하반기에 인도네시아 수도 자까르따에서 “유엔사령부 문제, 기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다른 조치들을 포함한 상호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미 3자회담을 개최하자는 제안을 인도네시아를 통해 조선에게 제안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다른 조치”란 평화협정 체결을 뜻한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1977년 당시 카터 대통령은 남북미 3자회담을 개최하여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려는 정책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카터 대통령이 40년 전에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한 주한미국군 3단계 철수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재개될 수 있을까? 이 중대한 문제를 파악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지가 카터 대통령의 철군의지보다 더 확고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봐야 한다.
4. 격론장면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철군의지
2018년 9월 11일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한 주간 만에 110만부나 날개 돋친 듯이 팔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두려움: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 그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책에는 주한미국군 철수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반대하는 각료들과 벌인 격론장면이 세 군데에 실렸는데, 날짜순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격론장면 1>
2017년 7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을 거느리고 미국 국방부에 나타났다. 국방부 상황실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회의에서 여러 가지 안보사안들이 논의되었는데, 주한미국군 철수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격론장면이 펼쳐졌다.
트럼프 - (성난 목소리로) “우리는 주한미국군을 위해 해마다 35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빌어먹을 것(주한미국군을 뜻함)을 당장 철수해버려! 난 전혀 개의치 않겠다.”
콘 - “한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많이 변상한다. 만일 주한미국군을 빼내면, 더 많은 해군 항공모함집단을 거기에 보내야 안심하게 될 터인데,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10배나 더 들어갈지 모른다.” (개리 콘(Gary D. Cohn)은 당시 백악관 경제정책선임고문이었다.)
트럼프 - (격앙된 목소리로) “35억 달러와 28,000명의 군대. 나는 그들(미국군을 뜻함)이 왜 거기(한국을 뜻함)에 있는 알 수 없다. 그들을 모두 데려오라!”
콘 - “그렇다면 당신이 편한 잠을 자려면 그 지역(한반도와 주변지역을 뜻함)에서 요구되는 게 무엇인가?”
트럼프 - “내겐 그 빌어먹을 것(주한미국군을 뜻함)이 필요하지 않아. 난 애기처럼 잠을 편히 잘 거다.” (이 말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실 밖으로 나가버렸고, 매티스 국방장관은 완전히 허탈감에 빠졌다.”)
<격론장면 2>
2017년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집무실로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불렀다. “대통령은 맥매스터를 또 다시 호되게 꾸짖었다(The president again berated McMaster).”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 - “나는 동맹국들에게 관심이 없다. (조선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알래스카에서 포착하는 데 15분 걸리는 데 반해, 그곳(한국을 뜻함)에서는 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한국에 미국군을 두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격론장면 3>
2018년 1월 18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트럼프 대통령,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켈리 비서실장,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개리 콘 당시 경제정책선임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보회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트럼프 - “한반도에 대규모 미국군을 유지하는 것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뭔가? 그것에 더하여, 대만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뭔가?”
매티스 - “대단한 이익이 있다. 우리는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곳에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준다.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기 위해 이것(주한미국군 유지를 뜻함)을 하고 있다. 우리는 주한미국군을 전진배치함으로써 미국 본토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주한미국군 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핵선택방안이 유일한 방안으로 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와 같은 억제효과를 볼 수 없으며, 비용에 따른 효과에서도 그렇다.”
트럼프 - “그러나 우리는 한국, 중국, 그 밖의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 나는 그 돈을 우리나라를 위해 쓰고 싶다. 우리에게 안보를 맡긴 나라들은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을 가져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매티스 - “전진배치한 군대는 우리의 안보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가장 적은 경비가 드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철군은 우리에 대한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트럼프 - “매우 잘 살면서도 부담을 지지 않는 나라들을 위해 우리가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틸러슨 - “그것은 가장 좋은 모델(model)이다. 세계적인 체계다. 무역과 지정학에서 (동맹국들과) 함께하는 것은 훌륭한 안보성과를 안겨준다.”
던포드 - “주한미국군 주둔비용은 대략 20억 달러다. 한국은 그 중에서 8억 달러 이상 지불한다. 우리는 우리 군대의 주둔비용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해마다 40억 달러의 예산을 받는다.”
트럼프 - “나는 우리가 어리석지 않으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잘 속는 바보처럼 놀아나고 있는데, 특히 나토(NATO)에게서 그렇다. 우리는 중동에서 7조 달러를 썼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기반산업시설을 위해 1조 달러도 끌어 모으지 못한다.” <사진 6>
위에 열거한 격론장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명백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주한미국군 철수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였던 카터 대통령보다 훨씬 더 확고한 철군의지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정책을 생각하면, 이번에 그가 수리아 주둔 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장차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그의 철군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한미국군 철수다.
주한미국군 철수는 장차 개최될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합의한 이후에 실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수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미국군을 연쇄적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평화협정 체결에서 시작하여 주한미국군 3단계 철수로 이어지는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제재를 대폭 완화하지 않으면 지금으로서는 조미협상이 재개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닫아놓은 조미협상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그 문이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한다고 해서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조선에 대한 제재를 대폭 완화해야 조미협상의 문이 열릴 것이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는 그런 이치를 깨달았을지 모른다. 2018년 1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스티븐 비건(Stephen E. Biegun)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서울에 나타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협력사업에 관련된 제재를 ‘면제’해주겠다고 제법 생색을 내면서 마치 선심을 쓰는 것처럼 거들먹거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제재완화로 돌아서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대조선제재를 완화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미국인의 조선여행금지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은 미국이 고작 여행금지조치마저도 해제가 아니라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제재완화라고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조미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제재를 완화하려거든, 그렇게 쪼잔하게 굴지 말고, 좀 더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와 미국의 독자적인 대조선제재를 한꺼번에 해제하기 힘들다면, 미국의 대조선제재부터 대폭 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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