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10월 2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네 2. 신뢰가 먼저고, 회담은 나중이다 3. 구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압박장치들
1.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네
2018년 10월 15일 <자주시보>에 실린 ‘백화원 담판,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선의 협상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었다.
“백화원 담판을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결속하고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는 11월에 개최될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룩하여 한반도 정세를 격변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우세한 협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11월이 왔는데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한 백화원 담판에서 조미협상 교착상태가 풀리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 준비가 시작되리라고 보았던 기대감은 무색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풀려면, 백화원 담판 이후 나타난 몇 가지 현상들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1)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백화원영빈관에서 접견하고 담판을 진행할 때, 팜페오 국무장관 옆에는 그를 수행하던 스티브 비건(Stephen E. Biegun)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앉아 있었다. 2018년 8월 23일 조선정책특별대표직에 취임하였고, 10월 7일 난생 처음 평양을 방문한 비건은 앞으로 조미실무회담이 열리면 자신이 상대할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그 날 상견례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최선희 부상은 2018년 10월 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담하였고, 10월 9일에는 로씨야(러시아) 모스끄바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쿵쉬안유 부부장, 이고르 모르굴로브(Igor V. Morgulov) 로씨야 외무차관과 함께 조로중 3자협상을 진행하였다. 당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로중 차관급 3자협상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최선희 부상이 평양을 방문한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와 상견례를 할 수 없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추측보도를 읽은 사람들은 평양에서 최선희-비건 상견례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이 조로중 3자협상 일정이 지연된 것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선희-비건 상견례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그 원인을 찾아내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석상에서는 제2차 조미수뇌회담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할 데 대하여 합의하고 그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들과 방법들에 대하여서도 론의되였다.” 이 인용구절과 관련하여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22일 보도기사는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에서 합의한 사항들 가운데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스티브 비건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의 회담을 진행하는 문제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최선희-비건 회담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관급 실무회담이다. <사진 1>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백화원 담판에서 조미실무회담에 관련하여 위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할 때, 그 자리에 배석했던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는 조미실무회담이 곧 열리게 되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래서 그는 2018년 10월 16일부터 10월 21일까지 로씨야, 프랑스, 벨지끄(벨기에)를 차례로 순방하면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유럽에서 만나 조미실무회담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조선 외무성은 그에게 아무런 기별도 주지 않았다. <문화일보> 2018년 10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2018년 10월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은 그 합의를 외면하였다고 한다. 팜페오 국무장관과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조미실무회담에 걸었던 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2) 조선 외무성이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을 외면하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는 난감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실무회담에 나서려고 하였다. 그는 2018년 10월 19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진행한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에게 알맞은 (정상회담)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일주일 반쯤 뒤에 나 자신과 북측 상대자가 여기서(미국을 뜻함-옮긴이) 고위급회담을 진행하기 바란다”고 하면서, 미국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진전시킬 진정한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이 열릴 조짐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난 팜페오 국무장관이 차관급 조미실무회담을 생략하고 장관급 조미실무회담을 2018년 10월 하순 워싱턴에서 개최하자는 제의를 조선에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다급하게 보낸 장관급 실무회담 제의마저 응답하지 않고 외면하였다.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한 백화원 담판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관급 실무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고, 차관급 실무회담과 관련된 절차와 방법들까지 논의하였으며, 나중에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차관급 실무회담보다 한 급 높은 장관급 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다급하게 제의했는데도, 조선은 왜 응답하지 않았을까? 조선의 무응답은 그 며칠 사이에 매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사진 2>
조선의 거듭된 무응답으로 백악관이 정신적 압박을 받는 중에 백악관에게 뜻밖의 악재가 생겼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8년 10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앤드루 김(김성현) 총책임자가 연말에 물러나고 싶다는 사임의사를 백악관에 밝혔으나 팜페오 국무장관이 사임을 만류했고,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거취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앤드루 김이 자기 직속상관 지나 해스펄(Gina C. Haspel) 중앙정보국장에게 사임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 사임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을 뜻하므로, 앤드루 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임의사를 밝혔다는 말인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의 사임을 만류한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의 사임을 만류하였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당연히 그의 사임을 만류하였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 산하에 코리아임무쎈터를 창설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리고, 2017년 1월 중앙정보국에서 퇴직하였던 앤드루 김을 다시 불러내 2017년 5월 초에 창설된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로 임명한 장본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2017년 5월에 창설된 코리아임무쎈터는 직원 700명이 근무하는 방대한 국가정보조직인데, 앤드루 김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한반도 정세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으며, 팜페오 국무장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제1차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서부터 지난 10월 7일 백화원 담판까지 조미협상 전 과정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막후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해왔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앤드루 김의 사임을 만류할 만하다.
그런데 조선과의 협상에서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핵심관료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느닷없이 사임의사를 밝히다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스티브 비건을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한 이후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가 조미협상에서 맡아보던 실무책임이 비건에게 넘어갔으므로, 앤드루 김이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생각하지만, 앤드루 김이 조미협상 실무책임을 스티브 비건에게 넘겨주었더라도 조미협상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판단임무까지 넘겨준 것은 아니므로, 앤드루 김이 사임의사를 밝힌 까닭이 비건의 등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는 백화원 담판 이후 조미협상이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사임을 결심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2. 신뢰가 먼저고, 회담은 나중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그 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회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미국의 거듭된 제의를 받고서도 계속하여 응답하지 않고 있으니,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조선이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여 조미실무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상당한 준비시간이 소요된다. 제1차 조미정상회담 경험을 돌이켜보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 준비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어림잡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5월 또는 6월 초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면서 개최시점을 처음 언급하였던 날은 2018년 4월 9일이었고,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에서 열리게 된다고 하면서 개최날짜와 개최지를 처음 발표한 날은 2018년 5월 10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런 경험은 조선과 미국이 두 달 동안 제1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3>
조선과 미국이 제1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면, 2018년 10월 말부터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한다고 가정해도, 2019년 1월 초에나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존 볼턴(John R.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8년 10월 22일 모스끄바를 방문하던 중 <메아리 모스끄바 라디오방송(Radio Echo Moscow)>과 진행한 대담에서 진행자의 질문과 동떨어진 답변을 늘어놓으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메아리 모스끄바 라디오방송>은 대담진행자의 질문과 동떨어진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대답을 빼놓고 다른 대담내용들만 보도하였는데, 모스끄바주재 미국 대사관이 그 발언을 집어넣은 보도자료를 공개하는 바람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이라는 볼턴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졌다.
조미협상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늦어져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꺼내놓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거듭되는 무응답으로 조미정상회담이 자꾸 늦어지는 바람에 겉으로 내색을 하지 못하지만 속은 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백화원 담판을 진행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8년 10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일정을 묻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그것은 열릴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것(회담일정을 뜻함-옮긴이)을 조율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것(회담개최지를 뜻함-옮긴이)을 발표할 것이다. 아마도 (싱가폴이 아닌) 다른 장소가 될 것이다. 싱가폴은 훌륭했으나, 우리는 아마도 다른 장소에서 할 것 같다. 우리는 3~4곳 다른 장소를 거론하고 있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시점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미협상국면은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적 전망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조미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제의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거듭되는 무응답은 의도적인 행동이다. 조선은 왜 응답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증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조선이 백악관의 거듭되는 실무회담 제의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에 관해 서술한 조선의 언론보도를 다시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해결을 위한 방안들과 쌍방의 우려사항들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시였”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해결방안만이 아니라 우려사항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 것인데, 바로 그 우려사항이라는 낱말 속에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들어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상세히 설명한 우려사항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18년 10월 9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모스끄바에서 로씨야 외무성 부상,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진행한 3자협상에서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는데, 그 공동보도문에서 우려사항의 실체가 발견된다. 공동보도문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3자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과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의지를 재확언하였다. 3자는 이러한 과정들이 신뢰조성을 선행시키면서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방법으로 전진되여야 하며 관련국들의 상응한 조치가 동반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공통된 인식을 가지였다.”
위의 인용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수립을 단계적, 동시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신뢰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언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조성이란 조선과 미국 사이의 신뢰조성을 뜻하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전에 미국이 조선과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진 4>
돌이켜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행적인 신뢰구축조치를 취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6월 13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이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립장을 밝히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신뢰구축조치를 선행시켜야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밝혔으므로, 제1차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호상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기된 것이다.
조선이 백악관에게 신뢰구축조치를 선행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천만번 정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조선이 백악관을 믿지 못하는 조건에서 단계적 비핵화가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백악관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함으로써 신뢰를 조성하는 행동을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두 가지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들 가운데 하나가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조치라는 사실은 조선 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외무성은 그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조미 사이의 신뢰조성을 위한 선차적인 요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두 가지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들 가운데 다른 하나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라는 사실은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보도문에는 “3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의의 있는 실천적인 비핵화조치들을 취한데 대해 주목하면서 유엔안보리사회가 제때에 대조선제재의 조절과정을 가동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견해일치를 보았다”고 명기되었다. 2018년 10월 23일 유엔주재 조선대표부는 지난 10월 9일에 채택된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을 유엔 공식문서로 회람할 것을 유엔사무국에 공식 요청하였다.
이제 명백해졌다. 조선은 백악관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조미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백악관의 거듭되는 제의를 받고서도 일체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싶으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를 먼저 취해야 하는 것이다.
3. 구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압박장치들
백악관을 상대하는 조선의 대응책은 마구 날뛰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노련한 조련사의 행동처럼 능숙하고 절묘하다. 조선은 무응답으로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백악관을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의 대조선제재 완화로 끌어내려는 조선의 대응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회전식 연속압박이라고 할 수 있다. 회전식 연속압박의 문자적 의미는, 구심점에 연결된 압박장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대상을 연속적으로 압박한다는 뜻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들은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말해준다.
(1)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회전식 연속압박에서 첫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조중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중국이 미국에게 조선과 신뢰를 조성하라고 압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붕> 2018년 7월 1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에서 조중정상회담을 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조기에 해제될 수 있도록 힘써주기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중국은 유엔안보리에서 대조선제재를 추가로 의결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저지하면서, 조선의 비핵화노력에 상응하여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8년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68돐’에 즈음하여 조선은 평양시 강동군과 순안구역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묘를 렬사릉원으로 개건하고 준공식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조선이 중국과 맺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미국은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도발하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군사대결을 벌이고 있는데, 미국이 중국을 그렇게 압박할수록 중국은 조선과 맺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날로 첨예해지는 가운데 이루어질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은 조선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정점에 올려세울 것이다.
(2)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회전식 연속압박에서 두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로씨야와의 연대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로씨야가 미국에게 조선과 신뢰를 조성하라고 압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안에 로씨야를 방문하여 울라지미르 뿌찐(Wulagimir W. Putzin) 대통령과 조로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된다는 점이다. 2018년 10월 16일 로씨야 크레믈리궁 대변인은 “올해 안에” 조로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다고 밝혔고, 10월 22일에는 “아주 많은 도시들이 조로정상회담 개최지로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5>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대표단을 이끌고 로씨야를 방문한 류명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018년 10월 25일 모스끄바에서 안드레이 뚜르챠크(Andrey A. Turchak) ‘통일로씨야’ 총비서와 함께 ‘조선로동당과 전로씨야정당 <통일로씨야> 사이의 교류와 협조에 관한 협정’에 조인하였다고 한다. 2001년 12월 1일에 창당된 ‘통일로씨야’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우파집권당이다. 이제껏 조선로동당은 다른 나라 사회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으면서도 다른 나라 민족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로동당은 이례적으로 ‘통일로씨야’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조선이 로씨야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로씨야의 미국 대선개입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대로씨야제재를 강화하고, 유럽에서 나토동맹군을 내몰아 로씨야를 압박하고 있으므로, 로씨야가 조선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즈음 로씨야는 서쪽에서 나토군에게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동쪽에서 미일동맹군에게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미일동맹군에 맞서려면 조선,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미로대립관계가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루어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로씨야방문은 조로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쌍방의 노력을 정점에 올려세울 것이다.
(3)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세 번째 회전식 연속압박은 남북의 신뢰조성과 상호협력을 급속히 진척시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우리 민족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그 약속에 따라 지금 남과 북의 상호신뢰가 급속도로 조성되고, 남과 북의 상호협력도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중이다.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두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 완화를 올해 안에 실현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24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길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발표하자고 그를 설득하였다. <사진 6>
또한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기되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말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뜻한다.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올해 안에 실현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5일 프랑스 대통령과 만난 정상회담에서, 10월 17일 이딸리아 총리와 만난 정상회담에서, 10월 19일 영국 총리와 만난 정상회담에서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완화되도록 프랑스, 이딸리아, 영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남과 북이 추진하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긴장완화조치가 너무 급한 것이라느니, 남과 북이 개성공업지구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느니, 남과 북의 철도 및 도로 연결이 대조선제재를 흔들면 안 된다느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이 불만스럽다느니 뭐니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미국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건 말건, 남과 북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신뢰하며, 협력하고 단합하는 민족사적 과업을 더욱 힘있게 수행하여 삼천리강토에 통일공화국을 건설하는 날을 앞당길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실현하려는 남과 북의 다양하고 지속적인 노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방문으로 최절정에 이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방문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최절정에 끌어올림으로써 백악관을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 완화로 끌어낼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한, 중, 로 3자를 대미공조체제에 각각 끌어들여 백악관에게 회전식 연속압박을 계속 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 뿌찐 대통령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전후좌우에서 연속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는 회전식 연속압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이야말로 백악관을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실현하며, 중국 및 로씨야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절묘한 책략이다.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을 얻어맞으며 호흡장애를 일으킨 백악관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백악관은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를 지연시키고 대조선제재에 집착하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치명적인 호흡장애를 일으켰으니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판세는 조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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