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9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만나 9월 20일 삼지연에서 헤어질 때까지 54시간. 70년을 헤아리는 통일국가건설운동에서 처음 보는 격동적인 사변을 민족사에 아로새기며 꿈같은 54시간이 흘러갔다. 5,000년을 함께 살다가 70년 동안 갈라진 민족분열의 통한을 잠시 접어두고, 누구라 할 것 없이 감격과 흥분을 진정하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펼쳐놓은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의 순간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시간 속에서 겨레의 넋은 통일의 기운으로 뜨거워졌고, 민족과 통일이라는 네 글자가 겨레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봉과 회담과 교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메시지, 그 역사적인 사변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1) 2018년 9월 18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9월 20일 오후 3시 30분 삼지연비행장을 출발할 때까지 일정을 수록한 영상기록과 사진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체류일정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특별한 피사체가 눈길을 끈다. 그것은 흰 기폭에 파란색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통일기다. <사진 1>
남측에서는 단일기 또는 한반도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잘못 부르고 있는데, 그 기의 올바른 명칭은 통일기다. 원래 통일기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측 올림픽위원회와 북측 올림픽위원회는 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그 기를 응원기로 사용하였고, 이듬해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선수단이 출전하였을 때 그 기를 선수단 단기로 사용하였다. 당시 남과 북은 그 기의 정식 명칭을 정하지 않은 채 ‘선수단 단기’라고 합의서에 명기하였다.
이처럼 1990년대에 남북단일선수단의 단기로만 사용되던 그 기는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통일국가건설운동이 대전환기를 맞아 남북해외 각계각층 인사들이 회합하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 사용되면서, 남북체육교류를 상징하는 단일선수단 단기에서 겨레의 통일의지를 아로새긴 통일기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통일기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네 차례 진행된 이전의 남북정상회담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섯 번째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은 통일기를 공식 게양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한 통일기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체류기간 내내 내걸도록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체류일정준비를 지도하면서 심지어 식단표까지 세심히 검토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시각매체로 통일기를 선정한 것이다.
그 깃발 아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가 이루어졌다.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와 독도까지 우리나라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그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더 이상 갈라져 살지 말자고, 우리 모두 통일강국 새 나라에서 함께 살자고 뜨겁게 약속했다.
그 아름다운 약속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맞은 북측 인민들이 평양국제비행장에서 공화국기와 함께 통일기를 흔들면서 열렬히 환영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환영하는 예술공연이 진행된 평양대극장에서도, 그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진행된 5.1경기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환영연회가 진행된 국가연회장 목란관에서도, 평양랭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마지막 오찬이 진행된 삼지연 호반의 이깔나무숲 설레는 오찬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 겨레의 힘으로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통일 새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려는 아름다운 약속이 그 기폭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2) 2018년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첫 장에서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통일기가 5.1경기장 상단에 공식 게양되었다. 그 깃발 아래서 연단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 속에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5.1경기장 관람석을 메운 10만명 평양시민들은 폭풍 같은 만세소리를 터치며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그 연설장면을 텔레비전방송화면으로 지켜본 남북해외 모든 동포들도 환호하였다. 남측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그처럼 확실하게 천명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 <사진 2>
(3) 2018년 9월 20일 목요일 오전, 이 땅의 모든 산악을 낳아 키운 백두산이 가슴을 활짝 열었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솟아있는 민족의 성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216개 백두련봉의 전설이 깃든 천지의 잔잔한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두산 천하절경은 수려한 풍치를 넘어 신비롭고 장엄한 세계를 펼쳐보였다.
8천만 겨레에게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약속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 천하절경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등장하더니, 이윽고 굳게 맞잡은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격정의 순간, 통일의 기운은 마침내 최절정에 이르렀다.
선조들이 수수천년 신령한 산으로 우러르며 국태민안을 빌었던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천지의 맑은 물을 굽어보며 두 손을 굳게 맞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수수천년 후대들에게 물려줄 백두산통일강국의 약속을 천지물에 붓을 적셔 백두산정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통일국가건설의 여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두 손을 맞잡고 번쩍 치켜든 순간, 8천만 겨레는 백두산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하였다. 아메리카핵제국의 방해책동을 꺾어버리고 삼천리강토에 끝없이 융성번영할 백두산통일강국을 일으켜 세울 거대한 힘이다. 백두산의 힘이 삼천리강산 휘감으며 저 멀리 한라산까지 죽 내리벋을 때, 우리 겨레는 백두산통일강국의 주인으로 용약 일어서리라!
백두산통일강국에서 함께 살자는 8천만 겨레의 약속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통일기라면, 그 약속을 문서화한 것은 평양공동선언이다. 평양공동선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남북관계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나가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사진 3>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평양공동선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이하 군사분야합의서로 약칭함)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교환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고, 그 합의서를 교환하였다.
군사분야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채택한 것은, 그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전에도 남과 북은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적이 있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이행하려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8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2018년 6월 14일 10여 년 만에 성사된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게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6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찰활동을 중단하고,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4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중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 제안을 받은 남측은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단독으로 검토할 수 없었고, 남측의 작전통제권을 가진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함께 북측의 제안을 검토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다고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9월 13일과 14일에 진행된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하여 ‘군사분야합의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군사분야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부속문서로 채택되었다.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지상평화지대, 해상평화수역, 공중평화구역을 각각 조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합의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 4>
(1) 지상에 평화지대를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5km 안에서 포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감시초소들을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조치로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남북의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였다.
(2) 해상에 평화수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서해에서 남측의 덕적도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초도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그리고 동해에서 남측의 속초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통천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 및 함포의 포구포신에 덮개를 씌우고, 포문을 폐쇄하기로 하였다.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고, 초도는 남포특별시 항구구역에 있으므로, 서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135km다. 속초는 남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에 인접해 있고, 통천은 북강원도 회양군과 안변군에 인접해 있으므로, 동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80km다.
- 남과 북은 2004년 6월 4일에 진행된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에 관련된 사항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복원, 이행해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서해 접경수역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하는 문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안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해상순찰을 하는 문제, 남과 북이 한강(임진강)하구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한 문제 등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3) 공중에 평화구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 구역 안에서 고정익 항공기(전투기나 폭격기)의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 비행금지구역은 다음과 같다. 전투기 같은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4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고,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공격헬기 같은 회전익 항공기의 경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무인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비행선 같은 기구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으므로, 남과 북이 합의한 비행금지구역은 미국군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미국군 고고도유인정찰기 U-2는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2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40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또한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도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5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4) 합의서를 실질적으로 이행한다
주목되는 것은,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남측 차관급 당국자와 북측 부상급 당국자가 공동위원장직을 맡게 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군사분야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방지를 위한 항시적인 연계와 협의를 진행”하는 상설기구다.
이제껏 남과 북은 무려 60여 차례에 이르는 군사회담을 개최하고 수없이 협상해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군사분야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이행을 다그칠 것이다. 남북공동군사위원회는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때까지 군사긴장완화 및 평화체제수립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할 것이다.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과 공중에 각각 평화지대, 평화수역, 평화구역을 조성한 것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첫 걸음이다. 6.25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크고 적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켰던 ‘세계의 화약고’가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5>
(5) ‘세계의 화약고’ 해체되면, 유엔사령부도 해체된다
남과 북이 ‘세계의 화약고’를 해체하는 도중에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것이다. 미국이 유엔 명칭을 도용하여 불법적으로 조작해놓은 유엔사령부는 43년 전에 해체되었어야 한다.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한 표결이 진행되었는데, 그 회의에서 미국이 상정한 3390a호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결의안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 정부는 1976년 1월 1일 유엔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 1975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 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 유의하면서”,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과 더불어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수 있도록 제1단계 조치로서 모든 직접 당사자들이 조속한 시일 안에 협의할 것을 촉구”하고, “유엔사령부가 1976년 1월 1일을 기하여 해체되고, 남코리아에 유엔 기치를 든 군대가 잔류하지 않도록 위에 언급한 협의가 완결되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미국의 사기극이었다. 왜냐하면,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하는데도, 미국은 그 문제를 협의하는 별도의 회담을 진행하려고 획책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미국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만 질질 끌다가 회담을 무산시킬 흉계를 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사회주의국가들은 미국의 주도로 채택된 기만적인 결의안과 배치되는 3390b호 결의안을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그 결의안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엔 기치 아래 남코리아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실제적 당사자들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도록 촉구”하였다. 3390b호 결의안은 채택되었으나, 친미국가들을 동원한 미국의 방해공작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진영이 해체된 이후,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에 상정되지 않았고, 조선만 그 문제를 줄기차게 유엔에 제기하였다. 그런데 2018년 9월 17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엔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사령부의 불법성을 거론하였던 것이다. 마차오쉬(馬朝旭) 유엔주재중국대사는 “유엔사령부는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유엔사령부가 조선반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Vasily Nebenzya) 유엔주재러시아대사는 “유엔사령부가 21세기 베를린장벽인가”고 묻고 나서, 유엔사령부는 1950년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당시 소련은 중국 국민당 정부가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것을 반대하여 유엔안보리 회의에 불참한 시점에 “역사적 맥락을 거스르며 (그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만장일치제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안보리에서는 유엔사령부 해체문제가 상정되어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므로, 유엔안보리에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1975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다수가결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아무 때나 불쑥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없다.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군사분야합의서’가 어느 정도 이행되면, 미국이 6.25전쟁을 위해 조작한 유엔사령부는 존재근거를 상실할 것인데, 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 조선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6>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문재인 대통령과 서로 교환한 뒤에 진행된 기자회견 발언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습니다”고 언명하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립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의지를 거듭 확약하시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미 9월 5일에 천명하였던 비핵화의지는 9월 19일에 채택된 평양공동선언 제5항에 그대로 담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반도에서 핵위협만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핵위협과 핵무기를 모두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 문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를 핵위협이 없는 땅으로 만든다는 말은 한반도에 드리운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우산이란 핵폭발력을 타격대상에 맞춰 조절하는 신형 전술핵탄으로 정밀타격하는 선제핵타격을 뜻한다. 지난 시기의 핵우산은 전략핵탄의 핵폭발력이 너무 커서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핵위협만 가하는 핵공격억제를 뜻하였으나, 정밀타격능력과 핵폭발력조절기능을 지닌 전술핵탄이 출현한 이후 핵우산은 실전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선제핵타격을 뜻하게 되었다.
조선은 미국의 핵우산을 어떻게 철거하려는 것일까?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말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조선이 핵무기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미국이 한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군사동맹체제에서 알맹이는 떨어져나가고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는 한미군사동맹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이 무력화되면, 그 동맹에 근거하여 주둔해온 주한미국군은 존재근거를 상실하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핵위협 없는 조선반도’는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도 철수된 조선반도라는 뜻이다.
(2) 2013년 6월 16일 조선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발표한 ‘중대담화’는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언명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서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한반도 전역에서 상호핵사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에서만 핵사찰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상호사찰은 미국이 사찰단을 조선에 보내 조선의 핵시설들을 사찰하는 것과 더불어 조선도 사찰단을 남측에 보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사찰한다는 뜻이다. 그런 상호사찰을 하려면, 조선이 미국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도 조선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도 마땅히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핵신고서 제출은 일방적 의무가 아니라 쌍방적 의무다.
하지만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이 모두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는 상호핵신고 및 상호핵사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어서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가 없는 조선의 핵시설들을 해체하고 사찰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 없이 미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조선의 핵시설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되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동창리발동기시험장과 로케트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과 위성운반로켓발사대를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한다는 뜻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는 그 이외에도 다른 시설들이 있지만, 그 두 가지 핵심시설이 해체되면, 서해위성발사장은 사실상 폐기된다. 그러므로 위의 합의조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폐기한다는 뜻이다.
또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 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폐기하는 경우,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조선은 녕변핵시설도 해체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녕변핵시설도 서해위성발사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되는 것이다.
이제 명백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하여 폐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8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미정보당국이 파악한 조선의 핵시설 15개소는 대부분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있는데, 한미정보당국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핵시설까지 합하면 약 100개소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양공동선언에 폐기대상으로 명기된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합하면 15개소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미정보당국은 그 이외에도 약 85개소의 핵시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의 15개소를 폐기하는 경우,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가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공동선언에 들어있다. 그 선언에는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라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한 이후 미국이 추가적인 상응조치를 취하면 그에 부응하여 다른 대상들도 추가로 폐기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사진 7>
이 암시는 매우 기묘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당시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조선의 비핵화를 완결하려면 15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잘못된 것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나, 20%를 (비핵화)하는 지점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자기 삼촌 존 트럼프(John G. Trump)와 핵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면서 그런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존 트럼프는 1985년에 별세했는데, 당시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리며 조선의 핵문제에 무관심했던 30대 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 삼촌과 핵문제를 논하고 심층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아마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만 주어지는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정보보고를 통해 그런 심층정보를 파악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시설을 100%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20%만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녕변핵시설은 한미정보당국이 추정하는 조선의 전체 핵시설들 가운데 약 15%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해체되기를 바라는 조선의 핵시설은 약 20%다. 그러므로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의 추가적 상응조치에 따라 몇 개소의 핵시설을 추가로 더 해체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모두 끝나게 될 것이다.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확약하기 이전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서해위성발사장이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완전히 해체되면,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작업은 2018년 안에 완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조선의 종전선언 발표요구에 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올해 안에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8>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2019년 초부터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녕변핵시설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녕변핵시설 해체작업은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견된다. 2019년 여름에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를 폐기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2019년 여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하고, 남과 북은 상호군비축소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20년 말에는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조선과 미국의 공통된 목표다. 그 평화체제 위에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자주적인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8천만 겨레에게 굳게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대사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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