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7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 이상한 회담전략과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한호석의 개벽예감](292)
자주시보 2018년 03월 2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전략, 너무 이상하다

2. 불행한 사태는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3. 조국통일방안을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4. 남북정상회담을 비춰주는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1.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전략, 너무 이상하다

남북정상회담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18년 3월 15일 임종석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기구인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018년 3월 21일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 회의에서 발언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는  그가 구상하는 남북정상회담전략이 담겼으므로, 분석적 고찰이 요구된다. 그의 발언 중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합니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실망과 걱정이 앞선다. 왜 그런가?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조국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다른 나라 국가수반과 비교하는 것은 못마땅한 일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위의 발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래 발언이 매우 대조적으로 투영된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연설에서 “조국을 분열시키는 모든 행위와 수법은 모두 실패할 것이며, 인민의 지적과 역사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고, “조국의 완전한 통일이 중화 아들딸 전체의 공통된 바람이자 중화민족의 근본적 이익”이라고 역설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통일을 중화민족의 염원이고 근본이익이라고 역설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의 ‘통’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1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그의 회담전략을 그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회담전략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조미정상회담 의제를 분별없이 뒤섞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어느 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의제까지 억지로 끌어들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의 통일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중대하고 시급하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0.38%밖에 되지 않고, 대만인구는 중국인구의 1.68%밖에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중화민족의 자주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중국과 달리, 한반도는 국토의 약 절반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민족구성원 가운데 약 3분의 2는 남에, 약 3분의 1은 북에 있다. 이런 분단현실은 통일국가건설이야말로 절박하고 중대하고 시급한 과업이라는 점을 웅변한다. 명백하게도, 우리 민족에게 통일국가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요구이고,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최고과업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의 ‘통’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통일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그런 이상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실망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덕담을 주고받다가 끝마치는 간담회가 아니다. 그 회담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통일국가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을 대전환의 계기로 되어야 한다. 과거경험이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통일국가건설의 원칙과 방도를 명시한 6.15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였고,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강령을 명시한 10.4 선언을 채택함으로서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 달 뒤 판문점에서 열리게 될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당연히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는 중대한 성과가 나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외면하고 다른 생각만 하고 있다. 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위에 인용한 발언에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 말은 한반도가 통일되든 말든 상관없고, 남북이 서로 간섭하지 말고 서로 피해주지 않는 ‘평온한 분단체제’에서 각기 따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에 인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읽어보면, 그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해야 할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면, 도대체 뭘 논의하려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답변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지만 우리는 분명한 구상을 가지고 있고, 또 남북미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와 북미관계의 정상화, 남북관계의 발전, 북미 간 또는 남북미 간 경제협력 등이 될 것입니다. 준비위원회가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담대하게 준비해주기 바랍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남북정상회담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조미관계정상화, 남북관계발전, 조미경제협력, 남북미 3자 경제협력 등 여섯 가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열거한 여섯 가지 의제들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조미관계정상화, 조미경제협력은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들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에서 각각 논의될 의제이고, 남북미 3자 경제협력은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조미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여섯 가지 의제들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관계발전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의 회담전략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조미정상회담 의제를 분별없이 뒤섞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어느 회담에서도 논의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의제까지 억지로 끌어들인 것을 보고, 실망과 걱정이 앞선다. 그는 왜 그처럼 이상한 회담전략을 구상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조미정상회담보다 한 달 정도 앞서 열리게 될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미리 확인해보려는 속셈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한반도 비핵화, 조미관계정상화, 조미경제협력 같은 주요의제들을 어찌 남북정상회담에서 먼저 논의하겠다는 이상한 회담전략을 붙들고 있겠는가.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의 통일염원에 응답하는 중대한 성과를 내올 생각은 하지 않고, 조미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탐색이나 해보려고 생각한다면, 그의 회담전략은 허망하게 공중분해될 것이다.  


2. 불행한 사태는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이번에 뭐 선언문이라고 보도하나?”
김양건 통전부장 - “원래는 선언문을 좀 토론했는데...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공동보도문으로 각기 표기하고 보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 “선언으로 해주십시오.”
김만복 국정원장 - “7천만 국민들이 다 기다리고 있고, 두 분 정상분을 쳐다보고 계십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6.15 선언과 대등한 선언이라는 뜻이지요?”
노무현 대통령 - “그렇지 않습니다. 후속선언이죠.”
이재정 통일부장관 - “6.15 선언에 기초해서 발전되는...”
노무현 대통령 - “선언 많이 합니다. 중소 간에도 선언했고, 한중 간에도 선언하고...”
이재정 통일부장관 - “두 분 정상께서 처음 만나 가지고 이렇게 많은 합의를 하셨는데, 그것을 선언으로 하셔서 6.15 선언의...”
노무현 대통령 - “한 걸음 앞서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무적인 회담은 아니니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 “선언하는데...그저 오늘 합의된 것, 그것 조항에 다 넣으시오.”
김만복 국정원장 - “예 그러겠습니다. 김양건 부장하고 협의해서 넣겠습니다.”
김양건 통전부장 - “이번에 저희들이 선언을 기본 큰 선에서 선언문 제기했더랬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 “조금 실무적인 문제들이 들어가겠구만.”
김양건 통전부장 - “이제 제기된 문제들, 합의한 문제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 “합의한 문제를 무게 있게 문장을 잘 만들어서 희망을 주고...”
노무현 대통령 - “안 되면 또 부속서를 만들어 가십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희망도 주고 신심도 주고...”

위에 서술된 대화내용은 2007년 10월 3일 평양에 있는 백화원초대소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중에 오간 대화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2013년 7월 25일 이 회의록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 대화록을 읽어보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해 공동선언이 아닌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족에게 통일희망과 통일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을 즉석에서 받아들였고, 그로써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육로로 분단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면이다. 당시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반대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종속적 한미관계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사태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속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더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왜 더 중시하였을까? 그 까닭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였으므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그 방안이 재론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조국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진전된 실행방안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진전된 실행방안을 합의하지 못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회의록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께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자꾸 선언을 내자고 제기하길래, 7.4 공동선언 때 우리 민족이 대단히 화해에 넘쳐나서 크게 기대했는데, 이런 저런 정권의 교체와 정세변화로 해서 빈 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제기하는 모든 문제, 또 우리가 합의를 본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문서화해서 내면 이것이 또 빈 종이짝이 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좋은 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그래서 6.15 공동선언, 쌍방이 힘들게 완성을 시켜서, 난 6.15 공동선언이 아주 훌륭한 문건이라고 생각하지만, 6.15 공동선언 5년 동안의 역사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 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공동선언에 아무리 훌륭한 합의를 담아냈어도, 그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남측 정부에게 없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경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지적이 현실로 되었음을 말해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이행하였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그 두 선언을 아예 부정해버렸던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합의했으나,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까닭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그 두 선언의 이행을 반대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발전에 기초하여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그 노력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 통일국가건설은 고사하고 남북관계도 발전될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중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를 고찰해보면, 내 솔직한 심정인데, 우리 민족이 자주성 결여로, 지금 대국들의 장단에 맞추는...정치문제도 그렇고,,,이 자주성 문제로...”라고 말했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처럼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측 정부가 자주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위와 같이 에둘러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사태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한심하게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바로 이런 사정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된다.    





3. 조국통일방안을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로동신문> 2004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장대비가 억수로 내리던 1994년 7월 7일 밤, 김일성 주석은 “부피 두터운 력사적인 문건”을 “자정이 넘도록” 자세히 검토하였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문건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조국통일방략이 수록되어 있었다. 김일성 주석은 그 역사적인 문건을 검토하고, “첫 페지 상단에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아홉 글자의 친필”을 남기고 뜻밖에 서거하였다. 



그 문건에 수록된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방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유업으로 계승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계승한 조국통일방략은 무엇이었던가? 위에 인용한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을 촉진하는 문제, 북과 남 사이의 경제합작을 통이 크게 벌리는 문제 등”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준비하였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유업을 실현하여야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유업에 따라 개최한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다. <사진 3>



▲ <사진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8월 11일 조국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 앞에 친필비를 세웠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7일 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조국통일방략이 수록된 문건에 친필을 남겼는데, 그 친필을 비문에 새긴 친필비다. 친필비 뒷면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인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김일성 주석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친필을 남긴 문건에 수록된 조국통일방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유업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고 하였다. 그 회담에 배석하였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2008년 6월 8일 서울에서 출판된, ‘피스 메이커’라는 제목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는 대화내용이 들어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이번에는 첫째로 민족자주의지를 천명하고, 둘째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되 일단 ‘낮은 단계의 연방제’부터 하자는 데 합의하십시다. 그리고 셋째 항에는 남북당국 간 대화를 즉각 개시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자는 정도로 합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 “2체제 연방제 통일방안은 수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남북연합제라는 것은 2체제 2정부의 협력형태를 의미하는 겁니다. 어째든 통일문제는 앞으로 더 논의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통일 이전단계에서 남과 북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당장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합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연합제가 바로 제가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같은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완전통일은 10년 내지 20년은 걸릴 거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완전통일까지는 앞으로 40년, 5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말은 연방제로 즉각 통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냉전시대에 하던 얘기입니다. 내가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건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처럼 군사권과 외교권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각각 보유하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개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 “통일방안은 여기서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남북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앞으로 계속 논의하기로 합의하면 될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그러면 이렇게 합의합시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뜻이 같은 것이니까, 낮은 단계 연방제로 남북이 협력해나가자고......”

김대중 대통령 - “북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제의했고, 남이 남북연합제를 제의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양자 간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함께 논의해나가자는 것으로 합의합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 “좋습니다. 그럼 그 정도로 합의합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합의하자고 설득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렇게 되어 결국 6.15 공동선언에는 조국통일방안을 다음과 같이 합의한 것으로 명시되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6.15 공동선언에 서명한 직후 악수하는 장면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국가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 두 정상이 우리 민족 앞에 남긴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이 땅에 자주통일강국을 세우는 위대한 승리의 날까지 통일국가건설의 진리를 환히 비춰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공히 인정하였으므로, 6.15 공동선언에 그 내용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데,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서술된 어색한 문장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방향”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며,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그처럼 뜻이 명료하지 않은 문장이 들어간 것은, 두 정상이 조국통일방안을 완전히 합의하지 못하고, 절반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관련된다. 절반만 합의하였다는 말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을 가진다는 것만 합의하였을 뿐이고,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 진전된 통일방안을 합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만일 두 정상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완전히 합의하였더라면, “남과 북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을 합의하였다”라는 식으로 서술되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지 않으려고 버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런 김대중 대통령을 오랜 시간 설득하여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한다는 합의에로 그를 이끌었지만, 그 공통성을 인정한 기초 위에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은 6.15 공동선언에 들어갈 수 없었다.   





4. 남북정상회담을 비춰주는 통일국가건설의 진리



두 정상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지 못한 통일방안, 다시 말해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은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돐’을 맞이하여 열린 평양시 보고대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보고대회에 보고자로 참석한 안경호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국가건설방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우리의 낮은 단계 련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우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리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입니다. (중략) 공동선언의 합의대로 통일방안의 공통점에 기초해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모색하고 민족자주통일실현에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언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6월 17일 <한겨레>와 진행한 단독대담에서 2000년 10월에 자신이 평양시 보고대회에서 언명하였던 민족통일기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민족통일기구는 국가기구다. (중략) 민족통일기구는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기구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민족통일기구에 속하는) 국회와 행정기구 구성은 (남북) 쌍방이 우리 실정에 맞게 창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진전된 통일방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제 명료해졌다. 위에 인용한 발언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들을 얻어낼 수 있다.  



1)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한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한다. 

2) 민족통일기구는 북측이 정한 임시명칭인데,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통일국가기구로 정식화된다. 

3) 민족통일기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정치주체이며, 그 주체의 노력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4) 민족통일기구는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로 구성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는 각각 지방의회와 지방정부가 존재하게 된다.

5) 민족통일기구에 속한 통일국회는 통일국가의 단일국호, 단일국기, 단일헌법, 단일여권 등을 제정하고 그에 따르는 각종 법령을 제정하는 입법권을 행사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의회들은 자기 지역에 적용되는 입법권을 행사한다.

6) 민족통일기구에 속한 통일정부는 남과 북의 두 지방정부들이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통일국가의 국시 및 국익에 맞게 행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정권한 및 조절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한편,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정부들은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행사한다.  

7) 민족통일기구는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낮은 단계 연방제를 높은 단계 연방제로 발전시킨다. 이 발전과정은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지방의회들과 두 지방정부들이 행사하는 입법권,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민족통일기구에 이양하는 과정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05년 8월 14일 서울에 있는 상암경기장에서 50,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막을 올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개막식' 장면이다. 8.15민족대축전에는 남측 대표단, 북측 대표단, 해외측 대표단이 모두 참가하였다. 개막식에서는 북측 대표단 단장 김기남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 정부를 대표하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각각 연설하였다. 그날 나 자신도 해외측 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참석하여 민족의 통일의지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개막싱장에 "해도 하나, 달도 하나, 민족도 하나, 조국도 하나"라고 큰 글씨로 쓴 통일구호가 나붙어 있었던 것이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장장 70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 것이며, 우리 민족이 그토록 열망하는 자주통일강국을 세계가 보란듯이 건설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70년이 넘도록 남북으로 갈라져 불신과 대결 속에 살아왔고,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남북에 각각 고착된 분단현실에서 입법권, 군사권, 외교권, 행정권을 급진적으로 통합하려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은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통일국가건설의 진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오랜 시기에 걸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런 정치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은 100년이 지나도 통합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민족의 통일염원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국가건설에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과업은 남과 북이 각각 자기 지역에서 수행하는 국가권능을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언제,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북연합제라는 방안은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통합시킬 정치주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연합제는 남과 북이 두 개로 분리된 독립국가로 공존하면서 상호협력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남과 북에서 각각 수행되는 국가권능을 하나로 통합시킬 정치주체가 없으면,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을 아무리 지속해도 두 개로 분리된 독립국가를 통합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심중한 문제는, 남북연합제가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독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토가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한반도 전역을 포괄한다고 명시한 남측 헌법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두 개의 독립국가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두 개의 독립국가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남북연합제는 위헌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독립국가들이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예상한다는 점에서 남북연합제는 허황된 몽상이다. 남북연합제는 그것에 내포된 위헌독소와 허황성 때문에 통일방안으로 될 수 없으며, 남측 국민들의 통일인식에 혼란을 주는 위험성을 지녔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3월 5일 평양에 있는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 진달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방북특사단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온 겨레가 바라는 조국통일의 새 력사를 써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고 거듭 천명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강렬한 통일의지를 안고 한 달 뒤에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것이다. 민족의 마음과 세계의 이목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집중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헌적이고 허황한 남북연합제가 통일방안으로 될 수 없으므로,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도는 낮은 단계 연방제밖에 없다. 낮은 단계 연방제를 실현하려면, 두 정상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자고 합의해야 한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통일방안에 관해 논의하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를 논의하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을 그 중대한 문제를 논의할 과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그 과업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하여 어떤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지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2018년 3월 6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남조선대통령의 특사대표단 성원들을 접견하시였다’에 해답의 실마리가 들어있다. 그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5일 방북특사단을 접견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온 겨레가 바라는 조국통일의 새 력사를 써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고 거듭 천명”하였다고 한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를 전진시키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중대합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예견된다. 만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의견차이로 중대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또 다시 열릴 것이다. 두 정상이 통일국가건설의 길을 함께 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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