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7년 11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트럼프의 자화자찬,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과장일까?
2. 중재 요청한 트럼프, 그의 요청 기꺼이 받은 시진핑
3. 중국공산당 총서기 특사가 평양에 간 사연
4.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먼 해법들
5.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트럼프
1. 트럼프의 자화자찬,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과장일까?
러시아 국제텔레비전방송 <RT> 2017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일본 도꾜를 향해 날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순방길에 동행한 취재진과 약식으로 진행한 기자회견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북조선은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큰 문제로 될 수 있지만, 그 나라의 공민들은 근면한 인민이다. 그들은 따뜻하다. 전 세계가 실제로 알고 있거나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 그들은 대단한 인민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일들이 모두에게 잘 되기 바란다.”
취재진 앞에서 조선 인민을 근면하고, 따뜻하고, 대단하다고 찬양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8일 한국 국회의 연단에 올라가더니 태도가 180도로 돌변하여 조선을 저주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토해놓았다. 그는 국회연설 중에 “(조선의) 지도자들이 자기 인민을 폭정과 파시즘과 억압의 기치 아래 감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면하고, 따뜻하고, 대단한 인민이 어떻게 사흘 만에 폭정과 파시즘과 억압 아래 감금당한 비참한 처지로 전락될 수 있는가?
동일한 대상을 두고 어떤 때는 찬양하고, 어떤 때는 저주하며 해괴망측하게 행동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15일 백악관 외교접견실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자기가
아시아순방에서 얻어냈다는 ‘외교성과’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발언 중에서 조선과 관련하여 언급한 부분을 추려내면 아래와 같은 사실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진 1>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순방에는 세 가지 핵심목표가 있었다”고 하면서, 첫 번째 목표는 “북조선 정권이 가하는 핵위협, 이전 행정부들 시기에 꾸준히 증대되어왔고, 지금은 긴급행동을 요구하는 그 위협에 대처하여 세계를 단합시키는 것”이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첫 번째 목표를 아래와 같이 달성하였다고 자평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방문 중에 아베 신조(安培晋三) 총리와 함께 조선을 비핵화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합하는 단호한 결의를 보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일본 방문 직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단독제재가 추가된 것을 ‘외교성과’로 꼽았다. 또한 그는 한국 방문 중에 진행한 자신의 국회연설을 자화자찬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조선에 대한 단독제재조치를 발표한 것과 한국의 미사일탄두중량제한조치를 폐지시킨 것,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최대 압력’에 동참하겠다고 재확인한 것을 ‘외교성과’로 꼽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무슨 ‘외교성과’라고 자화자찬한 것들은 성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순방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어온 것이거나 또는 외교관례에 따른 의례적인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어떤 미국 언론매체도 그가 도꾜와 서울을 방문하여 얻었다고 자화자찬한 ‘외교성과’들을 성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진행한 정상회담에서 얻었다고 자화자찬한,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외교성과’들은 그의 순방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어온 것도 아니었고, 외교관례에 따른 의례적인 발언도 아니었다. 그는 이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1) “시(진핑) 주석은 북조선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들을 성실히 이행하기로 약속하였고, 비핵화된 한반도라는 우리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조선 정권에 대한 자기의 커다란 경제적 영향력을 사용하기로 약속하였다. 시 주석은 핵을 보유한 북조선이 중국에게 큰 위협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미중정상회담에서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는 문제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태도와 견해를 언급한 것인데,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므로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고, 특기할 만한 것도 아니다.
(2) “우리는 지난날 지속적으로 실패하였던 것과 같은 이른바 ‘동결 대 동결’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동의하였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미중정상회담에서 얻어낼 수 있었다고 자평한,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외교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아래에서 정밀하게 분석하려고 한다.
(3) “우리는 우리에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시간의 촉박성을 공감하였다는 말은 앞으로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올해 안에 조미핵대결을 끝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식을 공유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두 정상이 공감한 절박성은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특사를 조선에 파견하게 만든 요인으로 되었다. 특사파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정밀하게 분석하려고 한다.
(4) “모든 선택방안들이 탁자 위에 남아있다.” 이 인용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동의하였거나 공감한 것을 서술한 문장이 아니라, 이제껏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는 안보문제를 거론할 때 자주 꺼내놓았던, ‘전략적 모호성’이 깔린 특유문장이다. 그는 결정하기가 매우 힘든 중대현안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자기 모습을 감추려고 그런 특유한 표현을 써왔다.
2. 중재 요청한 트럼프, 그의 요청 기꺼이 받은 시진핑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 중에서 동결 대 동결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동의하였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나오는 동결 대 동결이라는 말은 중국이 조선과 미국에게 각각 제시한 ‘쌍중단(雙中斷) 중재안’을 뜻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 중국에서는 중단이라는 말을 쓰고, 미국에서는 동결(freeze)이라는 말을 쓴다. 쌍중단 중재안은 조선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단(동결)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동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러시아의 지지를 받아 쌍중단 중재안을 제시하였으나 조선과 미국은 각각 그 중재안을 외면하였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바에 따르면,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쌍중단 중재안을 포기하기로 동의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중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설득으로 생각이 달라진 시진핑 주석은 자기의 쌍중단 중재안을 포기하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 말은 사실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말을 꺼내놓은 직후,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쌍중단이 현 상황에서 가장 실현할 수 있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쌍중단은 현재 긴장국면을 완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국의 가장 시급한 안보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평화적인 회담을 회복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곤경을 벗어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쌍중단은 첫발일 뿐 종착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쌍중단 중재안의 실현가능성과 합리성을 적극 옹호함으로서 시진핑 주석이 미중정상회담에서 쌍중단 중재안을 포기하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이 모순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시진핑 단독회담 중에 쌍중단 중재안과 관련하여 논의했던 비밀스런 대화내용 중 일부를 공개한 것이고, 그런 비밀스런 대화내용을 알 길이 없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 외교부의 기존 입장을 다시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시진핑 단독회담에서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는 절박한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는 비밀이므로, 중국 외교부도 그 비밀을 전부 알지 못한다. 그 비밀 중에 드러난 것은, 트럼프-시진핑 단독회담에서 중재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진 2>
중재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파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달라고 시진핑 주석에게 요청하였고, 진작부터 그런 중재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시진핑 주석은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의 전후맥락을 인식하려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의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연거푸 얻어맞고 국가안보파탄의 벼랑에 매달린 트럼프 대통령은 거기서 벗어나려고 국무부를 통해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거듭 제의하였지만, 조선은 그들의 거듭되는 간청을 번번이 무시해버렸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 11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앞으로 50일밖에 남지 않았다’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대화제의를 거듭 무시해버린 것 때문에 자존심이 무척 상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한 나머지 중재자를 통해서라도 자기 의사를 조선에 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중재자는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V. Putin) 러시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중재자로 적당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조선이 미국의 대화제의를 거듭 무시해버린 것만큼 그에게 중재를 부탁하더라도 성사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더욱이 조선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결의에 동참해온 중국을 멀리 하면서 조중대화마저 끊겼으므로, 중국의 중재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처럼 멀어진 조중관계와 달리, 조선과 러시아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정상회담에서 중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11월 10일 베트남 다낭에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그에게 중재를 요청하려는 행동계획을 세웠다. 바로 이것이 2017년 11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와 진행한 대담에서 “푸틴과의 회동이 있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러시아가 북조선문제에서 우리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푸틴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던 배경이고, 백악관과 크레물리궁이 트럼프-푸틴 회담일정을 조율하게 되었던 배경이다.
그런데 트럼프-푸틴 정상회담 가능성은 언론보도에 오르내렸으나, 정작 2017년 11월 10일에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성사되지 않았다. 두 정상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 함께 어울린 기념사진촬영장에서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이것은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중재문제가 원만히 풀렸기 때문에 트럼프-푸틴 회담이 필요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3. 중국공산당 총서기 특사가 평양에 간 사연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조미핵대결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중재안으로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제시한 바 있다.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이란 조선의 비핵화와 조미평화협정 체결을 병행적으로 추진하는 중재안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쌍중단 중재안은 쌍궤병행 중재안을 실행하기 위한 선행조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쌍중단이 서론이라면, 쌍궤병행은 본론인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시진핑 단독회담에서 쌍중단 중재안을 포기하기로 동의하였다고 밝혔으면서도, 그 중재안보다 더 중요한 쌍궤병행 중재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정상이 단독회담 중에 중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였으므로, 쌍중단 중재안과 쌍궤병행 중재안을 모두 논의한 것이 분명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쌍궤병행 중재안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것이다. 서론(쌍중단)만 논의하고 본론(쌍궤병행)은 논의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쌍중단 중재안을 포기하는 대신, 쌍궤병행 중재안을 채택하고, 그것을 조선에게 제의하기로 합의해놓았으면서도, 그 합의내용을 당분간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두 정상은 조선의 비핵화와 조미평화협정 체결을 병행적으로 추진하는 해법을 중국의 중재를 통해 조선에 제의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이제껏 미국은 조미평화협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회피해오면서 조선의 비핵화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중국은 조미평화협정 체결과 조선의 비핵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쌍궤병행을 해법으로 제시하였는데, 이번에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비핵화만을 요구해오던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면서 중국의 쌍궤병행 해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정이 그러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기존 입장을 버리고 시진핑 주석의 주장에 동의하였다는 사실을 취재진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자기의 쌍궤병행 중재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냈으므로 그 중재안을 조선에 전해야 하였다. 그래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순방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가자, 지체 없이 자신의 특사를 조선에 파견함으로서 트럼프 대통령과 비밀리에 합의한 중재언약을 실행에 옮겼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특사로 조선에 보낸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장이 평양에 도착한 날은 2017년 11월 17일이다. <사진 3>
그보다 이틀 앞선 11월 15일, 쑹타오 특사가 조선에 파견된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보도기사가 중국 <신화통신>에 실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16일 오전 4시 43분(워싱턴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국이 북조선에 특사와 대표단을 보낸다 - 큰 움직임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특사로 조선에 보낸 쑹타오는 중국 중앙정부 고위관리가 아니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고위당료다. 특사파견에는 2017년 10월 18일에 진행된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약칭 당대회) 결과를 조선로동당에 전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고위당료를 특사로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쑹타오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특사가 아니라 중국공산당 총서기 특사로 조선에 간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의 특사파견관례에 따르면, 다른 사회주의국가에는 총서기 특사를 파견하고, 다른 자본주의국가에는 국가주석 특사를 파견한다. 사회주의집권당들끼리 진행하는 외교와 사회주의집권당이 없는 자본주의국가들을 상대하는 외교를 구분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당대회 직후 총서기 특사를 다른 나라 사회주의집권당들에 파견하여 당대회 결과를 전달하는 것은 외교관례인데, 이번에 쑹타오 특사를 조선에 보낸 것에는 제19차 당대회 결과를 전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합의된 쌍궤병행 중재안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2012년 11월에 진행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난 직후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자신의 특사를 조선로동당, 베트남공산당, 라오스인민혁명당 순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번에는 베트남공산당, 라오스인민혁명당, 조선로동당 순으로 파견하였다. 중국이 트럼프-시진핑 회담의 결과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조선에 특사를 파견하는 일정이 뒤로 미루어진 것이다.
2017년 11월 16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적인 대언론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조선, 베트남, 라오스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사전에 상대방과 협상한 결과”라고 하였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지난 10월 하순 조선로동당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특사가 11월 중순 평양에 파견될 것이라는 중국공산당의 사전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먼 해법들
중국의 특사파견은 어떤 성과를 내왔을까? 조선은 시진핑 주석이 쑹타오 특사를 통해 전한 쌍궤병행 중재안을 받아들였을까? 조선이 그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조선이 제시한 해법과 쌍궤병행 해법은 너무 거리가 멀어서,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선의 비핵화와 조미평화협정 체결을 병행적으로 추진한다는 쌍궤병행 해법의 실현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래와 같은 논거를 말할 수 있다.
조선은 자국의 핵무력을 해체하는 비핵화를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약 한 달이 지나 12월 하순이 되면, 조선이 장장 반세기 동안 미국의 압력과 방해와 위협을 물리치고 피땀 흘려 추진해온 핵무력건설이 드디어 완성될 참인데, 그런 조선에게 핵무력을 해체하라는 말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으로 들릴 것이다. 2017년 6월 31일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가 스톡홀름에서 주최한 반관반민대화에 참석하였던 미국 대표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그 대화에 참석한 조선 외무성 산하 군축평화연구소 인사들은 “비핵화는 얘기조차 꺼내지 말라는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고, 심지어 평화협정이 체결되어도 비핵화로 나아갈 것이라는 어떤 징후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의 비핵화는 꿈도 꾸지 말라고 미국에게 경고하는 보도기사를 내보내면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정당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사진 4>
둘째, 조선이 미국에게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는 비핵화는 어떤 경우에도 실현될 수 없지만, 조선의 핵동결은 미국의 태도에 따라 실현될 수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대조선제재조치를 해제하여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면, 조선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단하여 미국에게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더 이상 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미핵대결이 끝나고,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국군이 철수되고,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되는 ‘개벽’이 일어날 것이다.
<중앙일보> 2017년 9월 4일 보도에 따르면, 2017년 5월 8일과 9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조미비공개접촉에서 최선희 조선외무성 북미주국장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대조선제재조치를 해제하고,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미국측 참석자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5.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트럼프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2017년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3척과 이지스구축함 11척으로 편성된 3개 항모강습단이 한국 해군 군함 7척과 함께 울릉도 동남쪽에 있는 동해작전구역에서 대조선전쟁연습을 강행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제껏 미국이 3개 항모강습단을 동해에 출동시켜 한반도 정세를 전쟁폭발위험으로 끌어갔던 전례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64년 동안 세 차례밖에 없었다. 그 세 차례의 심각한 전쟁위기를 열거하면,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 군함들이 원산 앞바다에 잠입하여 조선에 대한 신호정보를 감청하던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탑승자 1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72명 전원을 포로로 사로잡았을 때, 그리고 1969년 4월 15일 조선인민군 요격기들이 청진 앞바다 상공에 잠입하여 조선에 대한 공중정찰을 벌이던 미국 EC-121 정찰기를 공대공미사일로 격추하여 탑승자 31명 전원을 수장시켰을 때, 그리고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국군 경비병들이 조선인민군 경비병들과 공동으로 관리하는 백양나무를 쌍방의 합의도 없이 자르려고 하자 충돌이 일어났는데, 도끼를 던지며 먼저 덤벼든 미국군 경비대장과 육군 중위를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미국군 경비병 4명과 한국군 경비병 2명에게 부상을 입혔을 때였다.
그런데 미국이 얼마 전 3개 항모타격단을 동해작전구역에 출동시키는 요란한 공격징후를 드러내 보이며 1976년 ‘판문점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한 핵공격위협을 가하였는데도, 조선은 그에 대해 아무런 대응행동을 취하지 않고 잠잠하였다. 미국이 3개 항모타격단을 동원한 대조선전쟁연습으로 한반도 정세를 전쟁폭발위험으로 끌어갔던 2017년 11월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에서 핵타격대응작전계획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금성뜨락또르공장이 생산한 80마력짜리 ‘천리마-804’ 신형 트랙터 수 백 대를 살펴보고, 몸소 시운전도 하면서 생산현장 현지지도를 하였다. <사진 5>
미국이 3개 항모타격단을 동원하여 극도로 위험천만한 핵공격위협을 가하였는데도, 조선이 아무런 대응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까닭은 조선이 겁을 먹고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시진핑 회담과 그에 따른 중국의 특사파견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력을 완성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쌍궤병행 중재안을 중국을 통해 전달하였다. 조선이 그런 중재안을 받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6년 5월 7일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한 해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해법을 제시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전략을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로 차단하여 그를 조미직접협상으로 끌어내고, 그 자리에서 철군동의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려는 것이 조선의 전략구상이다. 그러나 전쟁연습과 경제제재와 외교고립을 추구하는 대조선적대정책을 틀어쥔 트럼프 대통령은 실현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쌍궤병행 중재안에 동의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였고, 그런 중재안을 전하려고 평양에 간 쑹타오 특사는 조선의 기존 입장만 듣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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