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6년 10월 10일
<차례>
1. 2012년 3월 9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
2. 미국 일각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 제기된 배경
3. 조선의 핵무장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4. 격동시대가 예고하는 통일씨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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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3월 9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
1989년 9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렉(Donald P. Gregg)은 2014년 9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2012년 3월 7일부터 9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선과 미국이 대화를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 조선측에서 리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과 최선희 당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그리고 미국국 소속 인사 3명이 참석하였고, 미국측에서 연방정부 전직 관리들이 참석하였으며, 대화 마지막 날인 3월 9일에는 존 케리(John F. Kerry)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선희 당시 미국국 부국장은 “만일 미국이 평화협정을 통해 안전보장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무기를 포기하겠노라고 말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말로 들린다.
그런데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파격적인 그 발언은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개인의 발언이 아니다. 당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을 미국에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발언을 들은 존 케리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도널드 그렉의 회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존 케리 외교위원장은 리용호 부상에게 “우리에게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곧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외관계부문에서 국무장관 다음으로 유력하다는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조선 외무성 부상에게 적대관계를 청산할 뜻을 표명하면서 평양을 곧 방문하겠노라고 화답하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들린다.
조선과 미국의 대화에서 그런 파격적인 발언들이 오간 때로부터 어언 4년 6개월이 지났다. 그 기간에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외무상으로 되었고, 존 케리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은 국무장관으로 되었는데, 주목하는 것은 그런 직위상승보다도, 현재 상황이 4년 6개월 전에 대비하여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조선과 미국의 대화통로는 물론이고 기존 연락통로마저 끊어졌고, 조미관계에서는 격심한 적대감과 전쟁재발위험만 감돌고 있다.
4년 6개월 전, 조선은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꿀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미국에게 전한 바 있었으나, 얼마 전 2016년 9월 23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리용호 외무상은 연설에서 “우리의 핵무장은 국가로선입니다.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핵보유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는 오직 믿음직한 핵억제력으로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조선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 4년 6개월 전 미국과 조선은 영원한 적이 아니라고 하면서 평양을 곧 방문하겠다고 하였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몇 달 전인 2016년 5월 24일 베트남 호찌민시를 방문하던 중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위협은 조선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며, 조선의 핵증강활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조선을 맹비난하였고, 또한 2016년 6월 초에는 미국 국무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인권제재명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포함시킨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4년 6개월 시차를 두고 조선과 미국에서 각각 그처럼 180도로 뒤바뀐 인식전환과 태도변화가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2012년 3월 초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대화가 사실상 마지막 대화였음을 알 수 있다. 1993년부터 20여 년 동안 부침을 거듭하며 어렵게 진행되어온 조미대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2. 미국 일각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 제기된 배경
최근 미국 일각에서 조미협상재개론이 들린다. 이를테면, 제인 하먼(Jane Harman)과 제임스 퍼슨(James Person)이 <워싱턴포스트> 2016년 9월 30일부에 공동으로 발표한 글이 손꼽을 만한 사례다. 제인 하먼은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연방하원을 지냈고, 지금은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총책임자이며, 제임스 퍼슨은 그 쎈터의 코리아 역사 및 공공정책부문 연구책임자다. ‘미국은 조선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The U.S. Needs to Negotiate with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그 글의 골자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한반도 비핵화를 뒤로 미뤄두는 대신에,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동결시키는 문제부터 먼저 조선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 글이 나온 때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리언 씨걸(Leon V. Sigal)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 담당국장이 2016년 10월 3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미국이 조선과 협상은 하지 않고 압박만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동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조선과 미국이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합의를 채택하였을 때 미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 이후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사로 일했던 로벗 갈루치(Robert L. Gallucci)도 조미협상재개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2016년 10월 4일 존스 합킨스 대학교 부설 한미연구소와 한국의 통일준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선과 미국의 직접협상이 재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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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전직 관리들과 전문가들이 제기한 조미협상재개론은 조선이 아직 핵무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핵무장 완성이 임박한 것으로 보는 오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지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부터 우선 동결시키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조선과 소통해온 대화통로를 끊어버리고 오로지 압박에만 집착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파산된 가운데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게 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뒤를 이어 2017년에 등장할 새로운 행정부에게 정책대안을 미리 귀띔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미협상재개론은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여 조선이 핵무장을 스스로 해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부터 먼저 동결시키기 위해 조선과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탄도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우선 동결시키기 위한 협상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나온 정책대안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이 몇 번 시도해보았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작이다.
경험과 현실은 미국이 조선과 대화를 재개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음을 말해준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12년 3월 초 뉴욕에서 진행된 대화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마지막으로 전하였던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그 때 미국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만일 미국이 그 때 조선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조미관계는 지금처럼 파국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지배야욕에 사로잡혀 오만방자와 무지몽매의 벽에 갇혀버린 미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조선의 핵무장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의 파격적인 제안에 응답할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만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2016년 10월 6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은 핵시험과 탄도로케트발사활동이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규제한 것이 없는 유엔헌장을 어기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우리의 핵시험과 탄도로케트발사활동을 금지하는 <결의>들을 조작해냄으로써 이미 국제법을 위반한 죄”를 범했다고 단죄하면서, “전대미문의 정치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가하다 못해 핵참화까지 들씌우려고 발광하는 날강도무리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핵무장을 국가로선으로 정하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왔으며 이제는 고도의 핵공격능력을 갖춘 핵강국이 되었다”고 명백히 밝혔다. 이것은 핵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조선에게 티끌만큼도 없으며,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이 앞으로도 중단 없이 계속될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핵강국으로 자인하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침해가 서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3. 조선의 핵무장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조선의 마지막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후 조선이 미국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제의하지 않는 현실은,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도 제의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평화협정 체결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는 말인가? 평화협정 체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평화협정 포기는 조선이 민족의 평화염원을 포기하는 것으로 되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평화협정 포기는 선대수령들의 유훈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수령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조선으로서는 평화협정 포기를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평화협정 포기는 조선이 자기 미래를 전쟁재발위험 속에 계속 남겨두는 것이므로, 조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조선에게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업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조선은 미국과의 평화협정도, 자기의 핵무장도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면 지금 조선은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새로운 정책을 내오고, 그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조선의 새로운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을 찾으려면, 조선이 이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던 다른 나라의 선행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식으로 추진하는 평화협정 체결방식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나라의 선행경험이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끝낸 베트남의 경험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어쩔 수 없이 북베트남과 평화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평화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협상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회담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한편, 무차별 폭격으로 북베트남의 대도시들을 파괴하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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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그처럼 장기화되고, 험난하게 전개된 까닭은, 베트남인민군 전투력과 미국군 전투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전선이 장기교착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트남인민군 전투력이 강했고, 그래서 미국군을 조기에 제압하였더라면, 평화협정은 아주 신속히 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 선행경험을 살펴보면, 북베트남과 미국의 평화회담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강한 군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전상대를 평화회담으로 끌어내어 평화협정을 신속히 체결할 만큼 군력이 강해야 전쟁을 일찍 끝내고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데, 만일 그렇지 못하면 평화를 실현하기는커녕 무력공격을 받아 혹심한 전쟁피해만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1,340번이나 몰살시킬 핵무기를 쌓아놓은 미국은 자기가 ‘세계 최강’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벌려놓는 제국주의핵강국이다. 조선이 그런 미국을 제압할 만큼 막강한 군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은 미국이 가로막아놓은 핵확산저지선을 뚫고 나가 핵무장을 완성하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였다.
조선이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강국의 높이로 끌어올려 기존 조미대결구도를 사회주의핵강국 대 제국주의핵강국의 새로운 대결구도로 대체하고,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막강한 핵타격력을 실물로 입증, 과시하여 미국을 핵공포로 몰아넣는 날, 제국주의핵강국은 사회주의핵강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하게 되리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대미전략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무장을 완성하는 것으로 평화협정체결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무장을 완성하여 조선의 전략적 지위를 ‘동방의 핵강국’으로 끌어올리도록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적극 추동하였고, 그에 따라 조선은 핵무기병기화사업에 박차를 가한 끝에 마침내 핵무장을 완성하였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탄두기폭시험을 진행한 그 날, 조선핵무기연구소는 성명에서 핵탄두기폭시험의 의의를 이렇게 해설하였다.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우리는 여러 가지 분렬물질에 대한 생산과 그 리용기술을 확고히 틀어쥐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의 핵무기병기화는 보다 높은 수준에 확고히 올라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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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핵탄생산에 관련된 각종 공개자료를 종합, 분석하면, 조선은 핵탄의 사용방식을 표준화함으로써 핵탄두, 핵폭탄, 핵어뢰, 핵기뢰, 핵가방으로 표준화된 5종의 핵탄을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은 핵탄의 폭발위력을 규격화함으로써 특대형,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으로 규격화된 5종의 핵탄을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을 마음먹은 대로 생산하여 각종 타격수단들에 널리 장착 또는 탑재하는 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핵무장 완성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의 핵무장 완성을 부정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다. 그들은 처음에 조선이 아직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고 하였다가, 그 다음에는 조선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만들었으나 아직 미사일에 장착하지 못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가, 요즈음에는 조선이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였으나, 아직 실전배치는 하지 못했고 실전배치가 임박하였다고 또 다시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그들이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처럼 여러 차례 말바꾸기를 거듭해온 것은 상투적인 왜곡보도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미국이 핵공포에 사로잡히고, 그에 따라 미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겠으나, 요즈음 조미관계는 그런 예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조선에게 평화협정체결을 요청하려는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더욱 격심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핵공갈과 핵위협을 멈추지 않고 위험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을 보면,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실현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그 의문은 풀린다.
첫째, 2016년 10월 현재 미국은 정권교체기에 들어섰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는 권력누수로 어려움을 겪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내오지 못할 지경이며, 2017년 1월에 등장할 새로운 행정부에게 정권을 인계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심지어 미국의 하위동맹국인 필리핀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으로부터도 “개자식”이라느니 “지옥에나 가라”느니 하는 욕설과 악담을 듣고 있다. 그처럼 처량한 신세로 굴러떨어진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은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는 2017년 1월 이후를 조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973년 1월 17일 북베트남과 미국은 프랑스 빠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는데,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20여 일 전인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B-52 전략폭격기 편대를 대거 출동시켜 폭탄 20,000톤 이상을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베트남 주요도시들에 마구 퍼부었다. 이것이 베트남 민간인 1,624명을 무차별 폭격으로 살육한 제2차 라인백커작전(Operation Linebacker II)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직전에, 다시 말해서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기 직전에, 패전에 보복하려는 앙심을 품고 무차별 폭격을 자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베트남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직전에 자행한 도시폭격만행은 패전을 앞둔 ‘최후 발악’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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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미국의 대결상황을 지난날 북베트남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경험에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조선에게 격심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핵공갈과 핵위협을 멈추지 않는 미국의 행동을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북베트남의 전면공세에 밀려 패전을 앞둔 미국의 ‘최후 발악’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 10월 6일 조선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격심해지는 미국의 핵공갈과 핵위협을 “우리와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련전련패한 패배자의 단말마적 발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조선과 미국의 대결상황을 북베트남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던 경험에 빗대어 다시 말하면, 미국이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격심하게 벌일수록 조선은 미국이 자기에게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할 날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는 것이다. 밤하늘에 어둠이 짙어질수록 동트는 첫새벽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 아닌가.
4. 격동시대가 예고하는 통일씨나리오
만일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한국에게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평화협정 체결, 작전통제권 반환, 핵우산 철거, 주한미국군 철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격동적인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조미관계에서 적대감과 전쟁재발위험이 고조될 적마다 미국이 한국과 맺은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만 들어온 사람들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고 받아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의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다. 그런 엄청난 문제를 몇 줄 문장으로 간단히 서술할 수 없으며, 심층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지면이 제약된 이 글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거론을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한 가지 사실만 지적한다. 그것은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한 날부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해야 할 요건이 드러나기 시작한 반면,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지키는 움직임은 가라앉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조짐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대격변씨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만일 근본적인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는 날,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금융자산이 한꺼번에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조선인민군이 즉각 공격해올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에, 한국의 금융자산은 해외안전지대로 황망히 도피할 수밖에 없다.
금융자산이 거대한 썰물처럼 해외로 빠져나가면, 그 빈자리를 외환보유액이나 통화스와프자금으로 메우지 못하므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금융자산의 해외이탈과 금융시장의 급속붕괴는, 2016년 5월 18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지금 “사상 초유의 늪지형 불황”에 빠져있는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성장엔진이 멈춰버려 막대한 빚더미에 짓눌리는 한국 경제가 약한 외부충격만 받아도 금방 쓰러질 정도로 허약해졌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진단이 들려오는 판에, 그런 치명상을 입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무역중단과 원화가치폭락을 예상할 수 있다. 무역이 중단되면, 수출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에서는 식량수입, 원유수입, 원자재 및 부품수입, 연료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원화가치가 폭락하면, 실물경제가 파탄되어 고액권 화폐를 한 뭉치 싸들고 가야 쌀 1kg을 겨우 살 수 있고, 정부예산집행마저 중지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필품, 식량, 연료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력공급중단으로 교통망과 통신망이 끊어지고, 불빛 꺼진 도시마다 실업대란과 굶주림, 폭동과 약탈이 일어날 것이며, 해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모든 공항과 항만이 마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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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예견할 수 있다면, 재앙으로 입게 될 피해를 극복할 방도도 예견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불러올 재앙을 막을 수는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너진 경제를 재건할 생존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생존방도는 북의 긴급경제지원을 받아 남북경제협력을 전면화하는 것밖에 없다. 유엔국제기구 또는 다른 나라의 경제지원은 우리 민족끼리 상부상조하는 노력을 대신할 수 없다.
남과 북이 상부상조하고 유무상통하는 경제협력원칙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각각 명시되었다. 그 선언들에서 남과 북이 상부상조와 유무상통을 합의하고 민족 앞에 서약하였으므로, 남측 경제가 무너졌을 때 북이 경제지원을 보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북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산, 비축해놓은 막대한 분량의 생필품, 식량, 유류 등이 전기철조망과 콘크리트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땅길, 하늘길, 바닷길로 수송되어 남측 각지에 도착하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만일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 힘들면, 아래에 서술한 내용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남측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1997년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고난의 행군’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던 당시에도 120만t의 식량과 146만t의 유류를 비축하고 있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는 왜곡보도를 내보내지만, <조선일보> 2014년 10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4년도 대중국식량수출을 전년에 비해 35%나 증가시킨 식량수출국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만성적인 유류부족을 겪고 있다는 왜곡보도를 내보내지만, 북측 경제부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5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원유매장량은 세계 8위다. <조선일보> 2001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1999년부터 원유가 연간 30만톤씩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지난 17년 동안 북의 원유생산량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났으니, 지금은 막대한 분량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원유생산으로 크게 고무된 북은 지난 5년 동안 석유화학공업과 경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생산설비를 개조, 현대화하고, 원료와 자재를 국산화함으로써 생필품생산능력을 비약적으로 장성시켰다. 북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며 축성해놓은 자립경제토대가 매우 든든하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 북의 경제지원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붕괴가 정치파국으로 전이, 확대되어 정권을 마비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남측 정치권에서는 경제붕괴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정부가 퇴진하고 국회가 해산되어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남측 임시정부와 북측 정부가 무너진 남측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남북경제협력을 전면화하는 것과 더불어 평화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것이다. 그 국면을 빛나게 장식하는 것이 바로 전민족연석회의 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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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임시정부와 북측 정부는 남, 북, 해외의 각계각층 각당각파를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대표하는 인사들이 총결집하는 전민족연석회의를 소집하여 평화통일의 실현방향 및 실행방도를 토의, 결정할 것으로 예견된다. 마침 이 글을 집필하던 2016년 10월 7일 중국 선양에서 만난 남, 북, 해외 대표단은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 북, 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2017년 3월 1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비록 정당, 단체, 개별인사만 참가하는 미완성 연석회의이지만, 앞으로 머지않아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가 총결집하는 전민족연석회의로 격상될 것이다. 이것은 꿈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다. 전민족연석회의가 소집되면, 통일의회를 구성하는 실행방도 및 선거일정가 토의,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후에 펼쳐질 격동적인 정치일정을 예상하면 이렇다. 함경북도 최북단 온성땅에서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까지 삼천리강산 전역에서 민주선거를 통해 구성된 통일의회는 역사적인 통일헌법을 제정할 것이고, 통일헌법에 따라 통일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통일정부가 통일국 창건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역사적인 날, 전 세계는 막강한 자위적 핵무력을 가진, 어떤 외세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자주통일강국의 위대한 탄생을 경탄의 눈길로 우러러볼 것이다.
남, 북, 해외가 오랜 기간 동안 조국통일운동을 벌여오며 축척해온 정치역량을 평화통일과정에 총집중시키면, 전민족연석회의가 소집된 날부터 통일국 창건을 선포하는 날까지 이어질 정치일정은 급진전을 거듭하며 석 달 만에 결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이 70년을 염원해온 평화통일은 100일 안에 실현되는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오면서 어느 한 순간도 잊지 못해 그토록 열렬히 갈망해온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통일선열들이 숨지는 마지막 순간 가슴에 간직하고 떠난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탄압에 물러서지 않고 싸워온 통일운동가들의 심장마다 사무치는 그리움 안겨준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통일국 수도에서 통일국 창건을 선포하는 감격의 순간, 남, 북, 해외 동포들이 경축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사랑하는 겨레여, 위대한 조국이여”라고 목놓아 부를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온 겨레의 통일염원 속에 다가오는 우리나라 자주통일강국은 위엄 넘치는 힘찬 발걸음으로 승리와 번영의 장엄한 역사를 빛내며 금수강산 창공 높이 통일국기를 휘날릴 것이다. 정녕 생각만 해도 격정이 느껴지는 통일씨나리오를 가슴에 안고 지금 우리는 격동시대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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