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2013년 11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언론보도망 밖에서 은밀히 움직인 제7함대 항모강습단
미국해군 제7함대 공보실은 2013년 9월 30일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 미국해군기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조지워싱턴호 항모강습단이 해상연합작전능력, 전술능력, 기술능력, 절차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9월 30일부터 10월 13일까지 한국해군과 함께 일련의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제7함대 공보실이 발표한대로, 2013년 9월 30일부터 10월 13일까지 14일 동안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오늘까지 근 한 달이 지났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대북전쟁연습이 끝난 때로부터 근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글에서 그 전쟁연습을 다시 논하는 까닭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제7함대 공보실이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대북전쟁연습 개시일과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부산 입항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제7함대 공보실 보도자료는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대북전쟁연습이 2013년 9월 30일에 시작되었다고 밝혔는데, 남측 언론매체들은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2013년 10월 4일에 부산항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대북전쟁연습을 시작한 9월 30일부터 조지워싱턴호가 부산에 입항한 10월 3일까지 4일 간의 움직임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이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나흘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나흘 동안 은밀히 전개한 비밀스런 움직임은 북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013년 10월 7일 북측 언론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가 실렸는데, 그 담화에서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비밀스런 움직임이 드러났다. 담화는 조지워싱턴호가 “지난 9월 30일부터 조선동해에서 비밀리에 우리 공화국을 겨냥하여 감행된 련합해상훈련에 참가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담화에 따르면,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한국해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동해에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나흘 동안 은밀히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전투종심이 매우 짧고 비좁은 공간에서 중무장한 방대한 무력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군사상황에서 은밀한 전쟁연습이 얼마나 심각한 무력충돌위험을 조성하는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제7함대 공보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14일 간의 대북전쟁연습 중에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이중해안 2자연합 반(反)특수작전해상연습(MCSOFEX), 전문가 상호교환, 대잠수함전연습, 대수상함전연습, 교신연습, 대공방어연습, 의료소개연습, 기뢰제거계획, 외부인사 함상방문” 등을 실시하였다. 인용구에 나오는 ‘이중해안(dual-coast) 2자연합(bilateral) 반특수작전해상연습’이란 미국 해군과 공군이 한국 해군과 공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인민군 특수전병력의 기습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실시한 것인데, 남측에 배치된 전투력은 물론이고 일본과 서태평양지역에 배치된 전투력까지 동원하는 실전급 전쟁연습이었다.
현대전 양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항모강습단이 정찰기와 함재기나 출격시키는 제2차 세계대전식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군사상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전투임무가 선제핵타격이라는 사실은 명백하고, 14일 간의 대북전쟁연습에서 그들이 선제핵타격을 집중적으로 연습하였다는 사실도 역시 명백하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항모강습단의 선제핵타격준비를 완성하기 위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기 직전에 북미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중국은 북미관계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키고 대화분위기를 살려내려기 위해 2013년 9월 18일 베이징에서 6자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6자토론회에 참석해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일축하고 제7함대 항모강습단을 대북전쟁연습에 내몰았다. 이처럼 미국이 중재국의 대화요청마저 일축하고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한 것은 누가 봐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다 못해 이제는 그것을 파괴하려는 전쟁광기를 세상에 드러낸 행동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속항진과 야간기습을 결합한 항모강습단 선제핵타격연습
2013년 9월 30일 제7함대 공보실 웹사이트에는 미국 해군 소속 2급통신요원이 촬영한 사진 한 장이 게시되었는데, <사진 2>에서 놀라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 보도사진은 2013년 9월 29일 필리핀해에서 항진 중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촬영한 것이다. 그 보도사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동해에서 14일 간의 대북전쟁연습을 시작하기 하루 전인 9월 29일에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필리핀해에서 작전 중이었다는 매우 중대한 정보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정보를 종합하면 윤곽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미국군 지휘부는 14일 간의 대북전쟁연습을 시작할 때 필리핀해에 대기 중이던 제7함대 항모강습단에게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출동명령을 받은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9월 29일에 필리핀해를 출발하여 전속력으로 북상항진한 끝에 9월 30일 동해의 작전구역에 도착한 것이다.
필리핀 루존섬(Luzon)에서 가까운 필리핀해 북부해상에서 경상북도 포항만 인근 동해해상까지 항해거리는 약 2,300km이고, 조지워싱턴호의 최대속력은 시속 64km이므로,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필리핀해 북부해상에서 포항만 인근 동해해상까지 전속력으로 36시간 동안 항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2013년 9월 29일 오전에 필리핀해 북부해상을 출발하였다면, 9월 30일 밤에 포항만 인근 동해해상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동해의 작전구역에 출동하여 야간기습방식의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2013년 9월 30일 미국은 항모강습단을 전격적으로 동해에 진입시켜 선제핵타격으로 대북전쟁을 일으키려는 야간기습전을 연습한 것이다.
미국이 방대한 핵무력을 틀어쥐고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무력패권을 실현하기 위한 실전연습을 강행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는데, 2013년 9월 30일부터 실시한 4일 간의 실전연습처럼 항모강습단의 전속항진과 야간기습을 결합시킨 선제핵타격연습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미국 해군이 태평양에 배치된 150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 대상국인 북의 입장에서는 자기 집을 향해 대형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육박해오는 것과 같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이 놀라 맞불작전이라도 폈다면 무슨일이 터질 줄 누가 알겠는가.
전쟁광기에 사로잡힌 미국이 전면전에서나 있을 법한 항모강습단의 전속항진과 야간기습을 결합시킨 선제핵타격연습을 바로 자기들 곁에서 강행하는데도, 그리하여 자기들 머리 위에서 불시에 핵탄이 터질지 모르는 실로 위험천만한 위기상황이 조성되었는데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남측 국민들은 전쟁재발위기에 무감각한 불감상태를 넘어 미국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어버리는 친미최면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친미최면은 핵폭발보다 더 무서운 망국병이다.
미국의 전쟁광기는 4일 간의 은밀한 선제핵타격연습에서 멈추지 않았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한국해군, 공군, 해병대를 참가시킨 가운데 동해에서 감행한 대북전쟁연습이 절정에 오른 2013년 10월 2일 미국은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북의 전략거점들을 정밀타격으로 파괴하겠다는 이른바 ‘맞춤형 억제(tailoring deterrence)’를 천명하였고, 이튿날 도쿄에서 진행된 미일안보협의위원회 회의에서는 일본자위대까지 대북전쟁연습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른바 ‘집단적 교전권’을 승인해주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경우 핵전쟁돌격대로 앞장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동해에서 나흘 동안 은밀히 실시한 선제핵타격연습을 끝내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10월 4일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이어 10월 8일부터 남해로 이동하여 한국해군과 일본해상자위대를 참가시킨 3자연합전쟁연습을 10월 11일까지 나흘 동안 실시하였다. 남해에서 3자연합전쟁연습을 끝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는 10월 12일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불시에 서해 남부해상을 통과하였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그처럼 동해, 남해, 서해로 이동하며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하는 와중에 미국 육군은 10월 10일 공격정찰헬기 1개 대대를 부산항에 상륙시켰다.
이처럼 미국이 14일 동안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면서 ‘맞춤형 억제’를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의 ‘집단적 교전권’까지 승인한 일련의 정치군사행동이야말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 전쟁광기를 드러낸 행동이었음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명백하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부산입항과 인민군 총참모부의 긴급지시하달
2013년 9월 30일부터 14일 동안 미국이 제7함대 항모강습단을 동원하여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하고 있을 때, 북은 어떤 반격태세를 취하였던 것일까? 군사기밀이어서 구체적인 사정을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2013년 10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를 읽어보면 당시 북이 미국의 선제핵타격연습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담화는 “10월 5일 조선인민군 각 군종, 군단급 부대들에서는 최고사령부로부터 이미 비준된 작전계획들을 다시 점검하고 미일침략자들과 괴뢰들의 일거일동을 각성 있게 주시하면서 임의의 시각에 즉시 작전에 진입할 수 있는 동원태세를 유지할 데 대한 긴급지시를 접수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인용구에 나오는 “임의의 시각에 즉시 작전에 진입할 수 있는 동원태세”는 인민군이 미국의 선제핵타격연습에 대응하여 대반격에 돌입할 결전태세를 뜻한다. 북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2013년 10월 5일 인민군은 완전무장을 갖추고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결전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반도에서는 총 한 방만 쏴도 전면전이 터질 초긴장상태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인용구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내용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필리핀해를 출발하여 전속항진으로 동해에 진입하고, 야간기습방식으로 선제핵타격연습을 시작한 때가 9월 30일 밤이었는데, 인민군은 10월 5일에 가서야 결전태세를 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는 누가 먼저 공격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법인데,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선제공격연습이 시작된 때로부터 무려 5일이나 지난 10월 5일에 인민군이 결전태세를 취하였다면 그런 전쟁에서는 인민군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궁금증을 풀어주는 중요한 단서는 위의 인용구가 들어있는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10월 7일 담화 안에 있다. 담화를 자세히 읽으면, 두 군데에서 시선이 멎는다. 첫째, 조선인민군 수뇌부는 전쟁재발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3년 3월 26일 최고사령부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그에 못지않게 전쟁재발위험이 극도로 격화된 2013년 10월 7일에는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왜 최고사령부 성명이 아니라 그보다 한 급 낮은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을까? 전쟁재발위험이 지난 3월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낮았기에 그런 것일까? 아래에서 논하겠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둘째,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10월 7일 담화에는 인민군 각 군종, 군단급 부대들이 전투동원태세를 ‘유지’할 데 대한 긴급지시를 접수하였다고 서술되었다. 이러한 서술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2013년 3월 26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지금 이 시각부터 (줄임)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고 밝힌 것과 차이를 보인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13년 10월 7일 대변인 성명에서 인민군 부대들이 동원태세에 ‘진입’하라는 긴급지시를 접수하였다고 표현하지 않고, 왜 동원태세를 ‘유지’하라는 긴급지시를 접수하였다고 표현하였을까? 그런 표현에 담긴 뜻은, 인민군 부대들이 최고사령부의 전투동원태세 진입명령을 이미 받고 전투동원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긴장된 상태에서 총참모부가 전투동원태세를 계속 유지하라는 2차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2013년 3월 26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10월 7일에는 왜 격을 한 급 낮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가 발표되었는지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라는 최고사령부 명령은 이미 10월 5일 이전에 인민군 부대들에 내려졌고, 10월 5일에는 최고사령부 명령을 계속 수행하라는 총참모부의 긴급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2013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나온 북측 언론보도를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시 완공을 앞둔 교육자살림집 건설장을 9월 28일에 시찰하였고, 역시 완공을 앞둔 아동병원 건설장을 10월 5일에 시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선시찰과 현지지도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하는데, 특이하게도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6일 동안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선시찰과 현지지도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이것은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동해에 진입하여 선제핵타격연습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의 공개활동을 중지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전투동원태세를 계속 유지하라는 총참모부 긴급지시가 내려진 10월 5일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의 공개활동을 재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속항진과 야간기습을 결합한 선제핵타격연습을 끝내고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다음날인 10월 5일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최고사령부 명령을 계속 수행하라는 총참모부 긴급지시를 인민군 부대들에게 하달하고, 아동병원 건설장을 현지지도하는 공개활동을 6일 만에 재개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유추해석이 가능하다. 2013년 9월 29일 인민군 정찰부대들은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동해에 진입하기 위해 필리핀해를 출발할 때부터 그들의 전속항진을 감시하고 있었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북상항진을 시작하였다는 정찰보고를 받고 항모강습단이 동해에 진입하기 전에 인민군 부대들에게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전투동원태세 진입명령을 인민군 전군에 내린 것이 아니라, 총참모부 대변인 10월 7일 담화에 따르면 “각 군종, 군단급 부대들”에게만 내렸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항모강습단 공격임무를 수행할 인민군 최강부대들에게만 전투동원태세 진입명령을 내린 것이다. 총참모부 대변인이 10월 7일 담화에서 “미제침략군의 핵타격수단들이 불의에 당할 수 있는 참혹한 참사”를 거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항모강습단 공격임무를 맡은 인민군 최강부대들은 당시 항모강습단을 공격할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였고 최고사령관의 최후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2월과 3월 북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전쟁재발위기는 그 전개상황이 언론에 계속 보도되면서 차츰 격화되었는데 비해, 2013년 10월 초 북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전쟁재발위기는 언론보도망 밖에서 은밀하게 급속히 격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2013년 9월 29일, 왜 아무런 조짐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인민군 최강부대들이 최고사령부 명령을 받고 항모강습단을 공격할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였던 2013년 9월 29일 북에서는 당연히 어떤 전쟁징후가 나타났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북의 전쟁징후를 언급한 남측 언론보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미국군과 한국군은 9월 29일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한 인민군 동향을 포착하였지만, 군사기밀로 처리했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미국군과 한국군은 9월 29일 인민군이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인민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느 군사전문가의 추정이나 상상이 아니다.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인민군의 전쟁수행력에 대해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최고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교도통신> 2013년 3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Jr.)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3월 12일 연방상원 정보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조선군이 사전에 탐지되기 전에 한국 등에 한정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었다”고 밝혔다. 그는 인민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등에 한정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인민군이 남측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에까지 선제공격을 개시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서술해야 더 정확하다. 미국군과 한국군이 인민군의 전쟁징후를 포착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으로 중대한 문제이므로, 이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4월 18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2∼3주 전에는 (우리가) 그 징후를 판단할 수 있다. 한미연합정찰 등으로 충분히 예측, 판단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가 그렇게 장담한 것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을 연결하는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 구축작업이 완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경향신문> 2011년 4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주한미국군과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를 연결하여 대북군사정보를 공유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2010년 11월에 체결하였고,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 구축작업을 2013년까지 완료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전에 미국군은 북측 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 가운데 80%만 한국군에게 넘겨주었고, 그것도 며칠에 걸쳐 한 두 장씩만 넘겨주었는데, 올해 2013년에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가 구축되었다면 한국군은 미국 정찰위성이 북측 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제한 없이 실시간으로 넘겨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하면 인민군의 전쟁징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은 현실과 어긋난다. 월간 <북한> 2005년 7월호 기사에 담긴 정보가 그런 판단을 반박한다. 기사에 따르면, 인민군 총참모부는 러시아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측 지역 위성사진을 러시아로부터 입수하여 정밀분석한 다음, 위성사진에 노출된 지하군사시설 출입구를 다시 은폐하는 공사를 시행하여 미국 정찰위성의 감시망을 무력화하였다고 한다. 명백하게도, 인민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지하군사시설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인민군은 최전방에만 1,800여 개소의 지하군사시설을 건설해놓았고 북측 전역에는 총 8,200여 개소를 건설해놓았다고 한다. 미국과 남측에도 지하군사시설들이 몇 개소 있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은 전시에 대피시설로 사용되는데 비해, 북의 지하군사시설들은 전시에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지하기지로 사용된다. 한국군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05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 각지에 건설된 지하군사시설의 총연장거리는 547km로 경부고속도로의 길이 417km보다 훨씬 더 길다. 지하군사시설만이 아니라 유선통신망도 인민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인민군 지휘부는 무선교신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군과 한국군을 기만하면서 유선통신망으로 각 전투부대들에게 명령을 내리게 되기 때문에 한국군의 통신감청장비로는 그런 유선통신망을 통한 교신을 탐지할 수 없으며, 인민군이 무선교신으로 흘린 거짓정보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군이 운용하는 각종 통신감청장비들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한겨레> 2012년 1월 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해군의 대북첩보함에서 발진하는 통신감청 무인항공기 3대 가운데 2대가 추락하였고 나머지 한 대는 추락을 우려하여 띄우지도 못하고 있고, 북의 통신-전자신호를 감청하는 ‘향백사업’, 신호감청장비를 장착한 ‘백두정찰기’, 전방사단에 배치한 전자전장비(ES/EA)도 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인민군이 자기의 내부교신에서 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정찰위성, 고고도정찰기, 공중조기경보기의 감시정찰성능이 제아무리 우수한들 거의 완벽하게 은폐된 지하군사시설에서 유선통신망을 통해 교신하며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는 인민군의 움직임을 무슨 수로 포착할 수 있겠는가.
북은 자기를 공격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선제타격이란 집중타격과 다른 개념이다. 집중타격은 각종 대량타격수단을 총동원하여 타격대상지점과 그 일대를 전부 소멸하는 것인데 비해, 선제타격이란 타격좌표를 사전에 파악하고 정밀타격수단으로 타격목표를 제거하는 것이다. 선제타격의 목적은 적의 전쟁수행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선제타격을 준비하기 위해 타격좌표를 파악하려면 타격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부터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민군은 모든 주요군사기지를 지하에 건설하였고, 모든 주요군사장비들도 지하에 배비하였으므로 미국군과 한국군은 북에서 지상군사기지들 이외에 다른 타격대상위치를 알아내기 힘들다. 그에 비해, 인민군은 남측, 미국, 일본, 그 밖의 서태평양지역에 산재한 한국군, 미국군, 일본자위대의 모든 군사기지위치를 파악하고 선제타격대상목록을 작성해두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윌리엄 아킨(Willam M. Arkin)이 2005년 5월 15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미국은 ‘개념계획(CONPLAN) 8022-02’이라는 이름의 선제타격계획을 2003년 11월에 완성하였다. 아킨의 글에 따르면, 미국이 정찰위성을 통해 북의 전쟁징후를 포착하면 미국 전략사령부가 북의 미사일기지를 정밀타격으로 파괴하고 특수전병력을 북에 투입하여 핵무기를 탈취하겠다는 것이 ‘개념계획 8022-02’의 주요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의 미사일기지를 정밀타격으로 파괴하려면 타격좌표를 파악해야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지하기지들은 자기 위치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전략사령부가 타격좌표도 모르면서 어떻게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기지들을 정밀타격하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이 대북선제핵타격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인근해상으로 진입시켜야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민군 정찰부대들은 미국의 항모강습단이 한반도 해역에 접근하기 전에 그 움직임을 먼저 파악하게 되고, 그에 따라 인민군 최강부대들이 즉각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 항모강습단이 한반도에 접근하기 전에 북이 먼저 선제공격으로 미국을 제압한다는 것이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라는 사실은 이미 19년 전에 미국 정부가 작성한 비밀문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2013년 4월 11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부설 국가안보문서보관소의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된 비밀문서들을 입수하여 공개하였는데, 국무부 정보조사국이 국무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1994년 3월 29일에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1994년 3월 25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인민군 대표는 “우리가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지만, 당신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지면 (먼저) 공격하겠다. 우리는 미국이 조선반도 주변에 군대를 모아서 우리를 공격할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인민군 대표가 미국군 대표에게 인민군의 선제타격능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 인민군이 선제타격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보면, 지금 인민군은 외부에 자기의 전쟁징후를 전혀 노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적인 선제타격으로 전쟁상대를 ‘뇌사상태’에 빠뜨리고 ‘조국통일대전’을 초단기속결전으로 끝낼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2월 25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에서 “미제침략군의 본거지들과 반공화국 군사소굴들을 우리의 타격권 안에 집어넣고 움쩍만 하면 일격에 짓뭉개버릴 것”이라고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없는 최첨단 타격장비가 (인민군에게)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한 최첨단 사격장비는 최고사령부 대변인이 2013년 3월 5일에 발표한 성명에 나온 “누르면 발사하게 되어있”는 “우리 식의 정밀핵타격수단”을 가리킨 것이다. 미국은 동해, 남해, 서해로 이어진 14일 간의 작전일정에 따라 항모강습단의 전속항진과 야간기습을 결합한 선제핵타격연습까지 감행하기는 하였으나, 북과 맞선 실제대결상황에서는 자기의 움직임을 전쟁연습개시 전에 북에게 노출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선제핵타격연습을 강행하였어도 자기의 움직임을 전쟁연습개시 전에 인민군에게 노출하고 말았으니, 만일 2013년 9월 29일에 미국이 실제로 대북전쟁에 돌입했더라면, 전속항진으로 북상하던 제7함대는 포항만 인근해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하였다는 급전을 받고 갈팡질팡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에 자주 출몰하고 그에 따라 북의 반발이 갈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가 위험천만한 전쟁위기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미대결전이 격화된다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한 북미평화협정체결을 요구하는 우리민족의 목소기가 더욱 크게 울려 나와야할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남녘 정부도 미군이 있기에 한반도에 전쟁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만 하지 말고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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