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오늘 비상시국에서 정세오판은 낭패다
2013년 1월 29일 국회에서 통합진보당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재연 국회의원과 안동섭 사무총장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대북특사 파견을 요구하였다. “위태로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북한과 협의”하기 위해 대북특사를 평양에 보낼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 보도기사를 읽고 이 글을 급히 쓰게 되었다.
지금 한반도에 조성된 극도의 긴장상태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에 근접하였다. 지난 9월 이후 <통일뉴스> 등 여러 매체들에 실린 나의 글들에서 지속적으로 언명한 대로, 북의 ‘조국통일대전’ 개전의지는 확고하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는 것은,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가 전쟁분위기 조성으로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양자협상으로 끌어내려는 기존 전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측 시각에서 보면, ‘조국통일대전’은 국운을 걸고 필연적으로 수행할 최고 전략이므로, 지금 북은 전쟁명분과 개전시기만을 따져보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통합진보당은 ‘조국통일대전’이 불가피해진 현 상황을 지난 시기 여러 차례 반복된 북의 대미압박 정도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그런 오판을 할 때가 아니다.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불가피해진 현실을 정세인식의 중심에 놓고, 전쟁위기상황을 예리하게 주시해야 할 그야말로 ‘비상시국’이 아닌가.
대북특사 파견은 누구에게 요구했어야 하는가?
오늘 조성된 전쟁위기상황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적대정책과 전략적 오판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북적대정책 강행으로 남북관계에 극도의 긴장상태가 조성된 게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적대정책과 전략적 정세오판으로 북미관계에 전쟁위기상황이 조성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략적 오판이란, 이번에 북이 실용위성 발사에 성공하였을 때, 미국이 2012년 4월 북의 실용위성 발사 실패를 두고 그러했던 것처럼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나 내게 하고 넘어간 게 아니라, 중국의 저지선을 뚫고 끝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 채택을 강행한 것을 말한다.
북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오판으로 강행한 제재결의 채택을 북의 자주권을 유린하려는 극악한 적대행위로 규정하였고, 그에 따라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할 대외적 명분을 얻게 되었다. 미국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북이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면, 그에 대해 광란적으로 반발한 미국은 오는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키 리졸브’ 대북침공연습을 지난해 보다 더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더욱 적대적으로 강행할 것이고, 그렇게 북을 극도로 자극하면 북에게 ‘조국통일대전’ 개전명분을 주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이 개최한 기자회견은 마치 다른 데를 바라보며 한 눈을 파는 것처럼 보인다. 통합진보당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반도 평화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해야 할 대상은 박근혜 당선인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며, 청와대의 대북특사가 아니라 백악관의 대북특사를 평양에 보내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미국은 자기의 대북적대정책과 전략적 오판으로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불가피하게 되자, 북미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데서 자격도 능력도 없는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특사를 평양에 들여보내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백악관의 목줄을 조이는 전쟁위기를 넘겨보려는 특유의 회피전술이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이 미국의 회피전술을 추종하여 그녀의 대북특사를 평양에 보내겠다고 북에게 제안해도, 북은 그런 제안을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통합진보당이 기자회견에서 백악관의 위기회피전술을 미리 ‘대변’해준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이거야 정말 낭패치고는 너무 수치스런 낭패가 아닌가.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북미적대관계의 최근 변화동향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관성적 사고방식으로 북미적대관계의 거죽만 훑어보기 때문에 그런 낭패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이 택해야 할 두 번째 경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경로는 두 가지다. 세 번째 또는 그 이상의 다른 경로는 없다. 첫 번째 경로는 북이 ‘조국통일대전’을 벌여 미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평화협정 조인식에 끌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경로는 북이 ‘조국통일대전’을 벌이기 전에 미국이 평화회담을 시작하여 북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로나 두 번째 경로나 모두 미국이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첫 번째 경로는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두 번째 경로는 전쟁을 겪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북은 첫 번째 경로를 택하였지만, 통합진보당은 두 번째 경로를 택해야 하며, 두 번째 경로를 실현하는 문제를 긴급하고 절박한 정치과업으로 제기해야 한다.
북미적대관계에 조성된 전쟁위기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긴급히 대처하여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제기할 정당은 통합진보당밖에 없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민주통합당은 미국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정치행동에서 뒤로 물러설 것이다. 물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함께 나서서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지만, 통합진보당이 정당으로서 앞장을 서야 마땅하다.
진보적 대중과 함께 제기해야 할 절박한 요구
북이 ‘조국통일대전’을 결심한 비상시국에서 통합진보당이 수행해야 할 긴급한 과제는,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악관의 대북특사를 급히 평양에 보내 9.19 공동성명과 10.4 선언에 명시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라고 미국에게 강하게 요구해야 하며, 북을 극도로 자극하여 전쟁위험을 극대화할 ‘키 리졸브’를 실시하지 말라고 미국에게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여서라도, 미국에게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키 리졸브’ 중단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쟁위기상황으로 격화된 모든 책임이 미국에게 있다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미국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오늘의 전쟁위기상황은 진보적 대중과 함께 하는 평화협정 체결 촉구투쟁을 전개하라고 통합진보당에게 요구하고 있다.
오는 7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때까지 북이 ‘조국통일대전’을 벌이지 않는다면, 통합진보당은 7.27 60주년을 조용히 맞을 수 없다. 예컨대, 통합진보당과 진보적 사회단체 성원들이 워싱턴 디씨에 있는 백악관 앞에 몰려가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든가, 아니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서라도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절박한 요구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관성적 사고에 따른 ‘한반도 평화실현’이라는 모호한 요구를 내걸 게 아니라, 전쟁위기상황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고 투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월 16일 ‘변혁과 진보 (107)’에 발표한 나의 글 ‘정권교체 시나리오 재점검과 균열의 쐐기박기’에서 논한 것처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제국주의지배체제를 깨드릴 가장 위력적이고 현실적인 정치과업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단번에 깨뜨리자! 이것이 통합진보당이 절박한 심정으로 들고 나가야 할 투쟁구호다. (2013년 1월 29일 작성)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