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 2012년 12월 24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예상 밖의 이변은 왜 일어났을까?
2012년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108만 표 차이로 문재인 후보의 추격을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여러 정치세력들과 각계각층 대중들은 지난
5년 동안 벼르고 별러온 정권심판과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또 다시 수구정권의 5년 통치를 받게 되었다.
수구정권 통치기간을 5년이나
더 연장시킨 결과를 낳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원인은 무엇일까? 언론보도에 나온 대선결과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에게 쏠린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몰표가 그녀를 당선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50대 장년층 인구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581만
명(15.4%)이었는데, 이번 18대 대선에서는 778만 명(19.2%)으로 197만 명이나 늘었고, 60대 이상 노년층 인구는 680만
명(18.1%)에서 842만 명(20.8%)으로 162만 명이나 늘었다. 그에 비해, 20대 청년층 인구는 793만 명(21.1%)에서 733만
명(18.1%)으로 줄었고, 30대 청년층 인구도 862만 명(22.9%)에서 815만 명(20.1%)으로 줄면서 청년층 인구의 감소폭은
107만 명이나 되었다.
남측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60대 이상 노년층 인구의 증가폭이 커진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또한
노년층 투표성향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수구정당후보에게 쏠린다는 점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50대 장년층에서 일어난 이변이다. 50대 장년층의 투표참가율이 89.9%로 급등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50대 장년층이 박근혜
후보에 몰표를 던진 것도 예상 밖의 이변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과 강남3구 주민의 투표성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부유층 거주지역인 강남3구에 사는 주민들은 새누리당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강남3구 주민들의 투표성향과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비교하면, 50대 장년층 표심이 박근혜 후보에게 얼마나 집중적으로 쏠렸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투표율은 강남3구 주민들이 42.6%, 50대 장년층이 37.4%였다. 강남3구 주민들과 비교할 때, 50대 장년층은 문재인
후보에게 5.2% 포인트나 더 투표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박근혜 후보에 대한 투표율은 강남3구 주민들이 59.9%, 50대 장년층이
62.5%였다. 강남3구 주민들과 비교할 때, 50대 장년층은 박근혜 후보에게 2.6% 포인트나 더 투표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번 대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좀 더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10년 전 16대 대선에서 40대 장년층은 48.1%가 노무현 후보에게, 47.9%가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당시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불과 0.2% 포인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 전 40대였던 그들이 50대가 되어 투표권을 행사한 이번 대선결과에서는 아주 뚜렷한 차이가
돋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는 37.4%가 문재인 후보에게, 62.5%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10년 전의
0.2% 포인트에서 25.1% 포인트로 매우 크게 벌어진 것이다.
같은 연령층의 투표성향이 10년 만에 0.2% 포인트 격차에서
25.1% 포인트 격차로 크게 벌어진 것은, 그 연령층의 투표성향에서 수구정당 대선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50대 장년층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에서 변화를 일으킨 근본원인은, 그 연령층이 사회경제적
위험에 대해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남측 사회에서 민생파탄은 50대 장년층에게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이미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지만, 특히 50대 장년층이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 밑에서 겪어온 민생파탄은 가혹하다고 표현할 만큼 극심하였다. 이를테면,
소득감소, 물가폭등, 실업공포, 가계파산, 노후불안 같은 각종 사회경제적 위험이 특히 50대 장년층에게 집중적으로 몰려들었고, 그로써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50대 장년층에게 사회경제적 위험이 얼마나 극심하게 집중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아래의 분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6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자영업 노동시장 연구’에 따르면, 1995년에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96만 명(22.9%)이었는데, 2007년에는 190만 명(38.1%)으로 급증하였다. 이것은 50대 근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른바
기업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밀려나 자영업자로 변신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2002년의 월평균 실질소득과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월평균 실질소득을 비교한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연령층에서 40대 연령층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40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늘었고, 60대 연령층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도 7만 원이 늘었지만, 유독 50대 연령층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만 14만 원이 줄었다. 모든 자영업자들의 생활만족도는 제16대 대선이 있었던 2002년 이후부터 급속히 떨어지면서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생활만족도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종업원을 두지 못하고 자영업자 홀로 일하거나, 몇몇 가족과 함께 일하는 영세자영업자의
임금 및 소득 만족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및 소득 만족도보다 훨씬 더 낮았다. 주목하는 것은, 특히 50대 여성 영세자영업자와 저학력
영세자영업자가 가계파산으로 몰락할 위험이 가장 극심하다는 점이다.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표심을
움직인 요인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남녀 성별로 구분하면, 50대 남성 투표자들은
40.4%가 문재인 후보에게, 59.4%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는데, 50대 여성 투표자들은 34.7%가 문재인 후보에게, 그리고
65.7%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그와 달리, 20대 여성 투표자들은 69.0%가 문재인 후보에게, 30.6%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고, 30대 여성 투표자들은 65.1%가 문재인 후보에게, 34.7%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고, 40대 여성 투표자들은 52.0%가
문재인 후보에게, 47.8%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이러한 여성계층의 연령별 투표성향을 살펴보면, 50대 여성 투표자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몰표를 던졌음을 알 수 있다. 50대 여성의 투표성향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50대 여성
투표자들은, 가계파산으로 이미 몰락한 이른바 ‘신빈곤층’에 속한 빈민층 여성이거나, 또는 가계파산으로 몰락할 위험에 빠져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거나, 몰락위험에 빠진 영세자영업자의 배우자들인 중년 가정주부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이 땅에서 궁핍과 빈곤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광범위한 신빈곤층 여성들이다. 바로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향해 열광하였고, 기표소에 몰려들어 그녀에게 ‘결정적인 몰표’를
던진 것이다. 이에 관해서 아래의 두 가지 사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50대 연령층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총력안보 대통령’에 대한 오래 전의 집단기억을 다시 끌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이를테면, 새누리당은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하면서, 대중들이 그의 정치적 후예인 문재인 후보에게서 ‘안보불안감’을 느끼도록 대선용 여론조작을 벌였고,
그와는 정반대로 ‘총력안보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집단기억을 불러내 그것을 박근혜 후보에게 덧칠하면서 대중들이 그녀에게서 ‘안보안정감’을
느끼도록 대선용 여론조작을 벌였다. 이러한 인상조작술책은 청년층에게는 별로 먹혀들지 않았지만, 장년층과 노년층에게는
먹혀들었다.
대선용 여론조작이 그들에게 쉽게 먹혀든 까닭
그런
여론조작이 특히 50대 장년층에게 쉽게 먹혀든 까닭은, 그들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반공주의 안보교육’으로 장기간 세뇌를 받으며 성장한
불행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학교에서 ‘승공통일의 길’이라는 정규과목을 배우며 ‘반공궐기대회장’에 동원되는 등 소름끼치는 반공광기에
노출되었고, 이른바 ‘대간첩작전’이나 ‘간첩망 일망타진’ 같은 사건을 전하는 긴급보도를 들으며, ‘박정희식 총력안보’에 세뇌 당한 세대다. 그런
세대가 기억하는 박정희에 대한 인상은 폭압을 자행한 악질 독재자가 아니라 ‘총력안보’를 실현한 믿음직한 대통령이고, 그런 세대의 시야에 비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인상은 친일파 독재자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아니라 ‘북방한계선’에 대한 북의 ‘도발’을 물리치고 ‘안보’를 튼튼히 지켜줄
‘총력안보 대선후보’인 것이다.
둘째, 취임 후 6개월 만에 있었던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성공시대를
넘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국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명박식 감언이설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5년 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연평균 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을 늘어놓으며 이른바 ‘747 공약’이라는 감언이설로 이 땅의 대중을 속이더니, 이번에는 박근혜 후보가 ‘민생안정’과
‘국민행복’이라는 감언이설로 이 땅의 대중을 속인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그런 감언이설은 20대와 30대 청년층에게는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지만, 50대 장년층에게는 아주 잘 먹혀들어갔다. 그렇게 된 까닭은, 50대 장년층이 반서민적 재벌경제를 무슨 ‘성공적인
산업화’라고 왜곡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교육과 선전으로 장기간 세뇌를 당하며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식의 국민선동가를 따라 부르며 박정희식 재벌경제에 대한 환상을 간직해온 세대다. 그런 세대가
기억하는 박정희에 대한 인상은 폭압적인 독재자가 아니라 ‘경제건설 대통령’이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50대 장년층의 집단기억
속에 들어있는 ‘새마을 노래’와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다시 끌어내면서, 그들의 표심을 꼬드겼다. 새누리당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귀가
아프게 들었던 ‘잘 살아 보세’라는 선동구호를 다시 들려주었고, ‘민생안정’이니 ‘중산층 70% 재건’이니 하는 귀에 듣기 좋은 말만
꺼내놓으면서 ‘민생대통령’을 뽑아달라는 대민선동에 열을 올렸다. 표심을 현혹시키는 새누리당의 선거용 감언이설은 이른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고, 18조 원에 이르는 ‘국민행복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공약발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대선에서 청년층은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였던 반면, 50대 이상 장노년층은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였다. 문재인 후보가 제기한 정권교체라는 선거구호는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청년층에게는 먹혀들었지만,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는 50대 이상 장노년층에게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50대 이상 장노년층 시야에서 바라보면, 문재인
후보가 주장한 정권교체는 사회적 안정을 뒤흔들 정치혼란 이외에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고, 그 요구에
화합하여 문재인 후보가 정권교체를 더 큰 목소리로 외칠수록,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정권교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그들은 박근혜 후보가 외친 ‘민생안정’과 ‘국가안보’에 더 깊이 현혹되면서 새누리당의 정권연장을 지지했던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대선후보 3자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은 것과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가
전격 사퇴하고 문재인 지지로 돌아선 것이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안보심리’를 자극하여 그들의 표심결집을 촉진하였고, 그것이 이번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런 분석은 한 측면만 바라본 단견이다. 만일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공세도 없었고, 안철수 후보의 문재인
지지도 없었다면, 청년층의 투표 참가율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며, 그에 따라 두 후보 사이의 득표격차는 108만 표 이상 더 벌어졌을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공세와 안철수 후보의 문재인 지지가 청년층의 투표열의를 끌어올려 득표격차를 108만 표로 좁혀놓았다고 분석해야 옳으며,
또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안보교육’ 중독증과 박근혜 후보의 ‘민생안정’ 감언이설이 상호협동작용(synergy)을 일으켜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표심을 움직이면서, 이번 대선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해야 옳다.
<타임>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전한 불길한 예언들
이번 대선 선거일 직전에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지칭하였던 미국의 유력한 주간지 <타임>은 2019년 12월 19일에 나온 아시아판 온라인 보도기사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앞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moving forward won't be easy)”이라고 썼다. 이건 무슨
뜻인가?
첫째, <타임> 보도기사는 “한국의 민주투사들에게 박정희의 딸은 권위주의적 과거의 상징”이라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정권이 ‘국론분열’이라는 난관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것은 앞으로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유신독재 부활을 저지하려는
민주정치세력과 유신독재 부활을 획책하는 수구정치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둘째, <타임>
보도기사는 남측에서 2013년도 경제성장율 전망치가 3.8%밖에 되지 않고, 빈부격차가 계속 확장되고, 가계부채는 증대하였고, 경제현실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경제위기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았다.
<타임> 보도기사가 전망한, 박근혜 정권의 앞길에 놓인 난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치대립 격화와 경제붕괴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근혜 정권은 정치대립 격화와 경제붕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념과 정책과 인맥에서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극소수 재벌들을
세계적 수준의 대부호로 만들어주고,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서민은 궁핍과 빈곤으로 몰아넣어온 그야말로 민생경제파탄의 가혹한 현실을 무슨
‘민생안정’이니 ‘국민행복’이니 하는 감언이설로 덮어버린 교묘한 술수를 생각하면,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방한계선’을 사수하여 ‘안보’를 튼튼히 한다고 하면서 북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남북관계를 파탄시키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정신착란성 반북대결을 생각하면,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입으로는 ‘화합’과 ‘상생’과 ‘국민대통합’을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국가보안법’과 종북모략소동으로 진보정치세력을
탄압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을 진압하여 기존 정치대립을 더욱 격화시키는 것은,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권의 앞날을 이처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까닭은, 이 땅의 현실이 아르헨티나의
현실과 너무도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의 54.1% 득표율과 박근혜의
51.6% 득표율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 이 땅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되었는데, 아르헨티나의 현 통치자도
집권당 ‘승리전선(FPV)’의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키르쉬너(Cristina Kirchner)다. 두 여성 대통령은 나이도 비슷해서, 박근혜
당선인은 1952년생이고,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은 1953년생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전 대통령의 딸이고, 크리스티나 키르쉬너는 이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녀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쉬너(Nestor Kirchner)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고, 2010년
10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는 2007년 10월 선거에서 4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1년
10월 선거에서는 54.1%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그녀의 득표율은 4년 만에 8.8% 포인트나 더 올랐다.
2011년 10월
선거에서 사민주의 정당인 사회당(PS)의 후보로 출마한 에르메스 비너(Hermes Binner)의 득표율은 16.8%였고, 자유주의 정당인
급진시민연합(UCR)의 후보로 출마한 리카르도 알폰신(Ricardo Alfosin)의 득표율은 11.1%였다. 제1야당과 제2야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을 합해도 27.9%밖에 되지 않아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가 얻은 득표율 54.1%에는 대비되지 않는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이 그처럼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아르헨티나의 장노년층이 1970년대에 자기 나라를 휩쓴 남미형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arism)인 페론주의(Peronism)에 집단적으로 감염된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하였으므로, 전형적인 페론주의
정당인 ‘승리전선’의 선거용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이 청년기에 페론주의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 박근혜 당선인도 청년기에 유신독재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아르헨티나의 장노년층이 1970년대의 페론주의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한 것처럼, 이 땅의 50대 이상 장노년층도 1970년대의 유신독재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 장노년층이
‘승리전선’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처럼, 이 땅의 50대 이상 장노년층도 새누리당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박근혜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도 그렇고,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런 것처럼 경제파탄의 절망과
고통이 너무도 깊고 혹독하다는 점이다. 1997년에 밀어닥친 사상 최악의 외환위기로 이 땅의 경제가 치명적인 파탄상태에 빠진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2001년에 밀어닥친 사상 최악의 재정위기로 아르헨티나 경제도 치명적인 파탄상태에 빠진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월 말 현재, 아르헨티나 빈곤층은 30.9%이고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극빈곤층은 10.6%이며,
인플레율은 2007년 18.7%, 2008년 22.2%, 2009년 15.0%, 2010년 26.4%로 급증해왔다. 2012년 12월 3일
브라질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민생파탄으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빈곤인구가 급증하고 그들이 몰려든
도시빈민지역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의 경제파탄
비극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2012년 10월 2일 세계 각국을 순항하면서 훈련을 실시하던 아르헨티나 해군 프리깃함 한 척이 아프리카
가나의 어느 항구에 입항하자, 가나 정부는 미국 투기자본의 요청에 따라 그 군함을 전격 억류하였다. 미국 투기자본은 10여 년 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당시 3억7,000만 달러를 빌려주었는데, 그 동안 아르헨티나 경제가 파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빚을 갚지 못했다. 2012년
11월 16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른 나라 해군 군함들과 합동훈련을 하던 또 다른 아르헨티나 군함이 외채상환을 하지 못한 탓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법당국에 억류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외채총액은 1,300억 달러인데, 미국 투기자본의 독촉을 받다 못해, 군함까지 억류되는
치욕까지 당하였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정권이 무사할 리 만무하다. 선거용
감언이설이 먹혀들어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녀는 지금 반정부 대중시위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몰락위기에 내몰렸다. 이를테면,
2012년 9월 13일 아르헨티나 대도시들에서 20만 명이 참가한 동시다발적인 반정부 대중시위가 일어났고, 11월 8일에는 50만 명이 참가하여
반정부 대중시위가 격화되었고, 11월 19일에도 10만 명이 참가한 반정부 대중시위가 있었고, 11월 20일에는 아르헨티나
전국노동자총연맹(CGT)과 아르헨티나중앙노조(CTA)가 전국적 총파업에 돌입하였고, 같은 날 아르헨티나 남부지역에서는 폭동을 일으킨 주민들이
대형매장을 약탈하면서 진압경찰과 충돌하였다. 대형매장 약탈폭동은 이튿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진압경찰과 충돌하여 유혈사태를
빚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12년 10월 26일 <연합뉴스>는 남측 경제가
“L자형 저성장에 돌입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이 땅의 암울한 경제현실을 밑창에 구멍이 뚫려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으로 비유하였다.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땅에 밀어닥친 경제파탄위기는 극소수 재벌총수들에게는 금융자산증식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극대화한 호기로 되었지만,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는 가계파산, 실업공포, 가정해체, 동반자살, 질병감염, 범죄만연 같은 그야말로 끔찍한 절망과 고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예컨대, 2010년 12월 15일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세계 임금 보고서(World Wage Report)’에
따르면,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땅에서 실질임금 증가율은 2006년 3.4%, 2007년
-1.8%, 2009년 -3.3%로 계속 악화되어왔다. 또한 2012년 1월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이 땅에서 3가구 가운데 1가구는 상대빈곤층으로 몰락한 적이 있고, 4가구 가운데 1가구는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으로 몰락한 적이
있으며, 5가구 가운데 1가구는 절대빈곤층으로 몰락한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2년 1월 5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구조로는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저학력 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 등 빈곤계층은 그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이 땅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쌍둥이형 닮은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반정부 대중시위, 전국적 총파업, 대형매장 약탈폭동이 벌어지고 있는 데 반해, 이
땅에서는 그런 폭발적 대중투쟁이나 대규모 약탈폭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폭발적 대중투쟁이나
대규모 약탈폭동이 이 땅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땅의 암울한 경제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민심의 ‘시한폭탄’
초침을 재깍재깍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선거용 감언이설에 속아 크리스티나 키르쉬너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대중들이
그녀의 감언이설에 속았음을 깨달았을 때, 민심의 ‘시한폭탄’이 폭발하였다.
2011년 10월 대선에서 54.1% 득표율로 당선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은 불과 1년 뒤 민심의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지금 몰락위험에 빠졌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51.6%
득표율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인의 앞길이 매우 불안해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18대 대선처럼 다사다난했던 이 땅의 365일은 암울한
경제현실과 불안한 정치현실을 ‘시한폭탄’처럼 안은 채 또 다시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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