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1

미얀마에 던진 미국의 추파, 그리고 미얀마식 사회주의의 험로


변혁과 진보 (10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은 왜 미얀마에 추파를 던지고 있을까?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해 2011121일 미얀마를 공식 방문하더니, 2012711일에는 미국이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폭 완화해주었고,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1119일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미국과 미얀마의 관계개선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빨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세계 각국의 수구언론매체들은 이번 오바마의 미얀마 방문에서 그가 아웅산 수치와 만나는 장면만 대서특필하여 보도하였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공식 방문하는 경우, 당연히 그 나라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 언론보도에 크게 나와야 마땅한데, 미국 대통령의 이번 미얀마 방문에 대한 수구언론매체들의 보도행태는 야당대표와의 상봉만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이것은 미얀마 정부를 사실상 모욕한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웅산 수치의 자택을 방문, 대화를 나눈 뒤 수치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 (AFP 보도 사진)


수구언론매체의 그런 편향보도는 미국이 미얀마에게 관계개선의 추파를 던지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문제의 핵심은 수구언론매체들의 이상한 편향보도에 있는 게 아니라 미얀마에게 관계개선의 추파를 던지는 미국의 이상한 행동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정권에게 독재인권탄압을 자행한다고 비난을 퍼부으며 경제제재를 가해왔던 미국이 지금은 태도가 돌변하여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이 미얀마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미국이 미얀마 반정부세력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아웅산 수치를 자유인권의 화신으로 미화분장해놓은 미국이 그녀를 우두머리로 하는 미얀마 반정부세력에게 뜨거운 추파를 던지는 것은, 미국이 반정부세력을 지원하여 미얀마 정권을 퇴진시키고 아웅산 수치를 내세워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결국 미얀마 사회주의체제를 자본주의체제로 변질시키려는 음흉한 정권교체와 체제변질의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미국은 2008년에 아웅산 수치에게 미국 연방의회가 주는 최고 훈장인 의회금메달을 안겨주었고, 20129월 오바마는 그녀를 백악관에 불러들여 환대해주었다. 미얀마에서 친미정권 수립과 사회체제 변질을 노리는 미국의 공작은 중학생들도 알 수 있을 만큼 너무 노골적이다.
 
 
미얀마의 주요산업 국유화, 무엇이 문제였을까?
 
196232일 미얀마에서 진보적 성향의 군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집권하였다. 군사정변을 이끈 18명의 군부인사로 구성된 단합혁명협의회(Union Revolutionary Council)’가 집권주체로 등장하였다. 196274단합혁명협의회가 집권당으로 확대개편되었으니, 그 때 창설된 사회주의집권당이 바로 미얀마사회주의강령당이다.
 
이 당은 당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정당이다. 미얀마사회주의강령당이 추구하는 강령은, 군사정변 직후인 1962428단합혁명협의회가 제시한 버마식 사회주의의 길(Burmese Way to Socialism)’이라는 사회주의강령이다. 이 사회주의강령은 서구식 사회주의가 아니라 미얀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공동소유와 공동계획에 의한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국가경제의 중앙계획화가 그 강령에 명시되었다. 미얀마에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란 국가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를 뜻한다.
 
둘째,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역사적 실패로 규정하고 사회주의적 민주국가(socialist democratic state)를 창설하였다. 이것은 다당제에서 일당제로 전환한 것을 뜻한다.
    
셋째,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과도기 강령(programme for transition to socialism)’을 제시하였다. 미얀마식 과도기 강령에 포함된 전략적 과업을 열거하면, 미얀마 인민의 낡은 사상관점을 개조하는 문제, 관료주의 행정의 병폐를 제거하는 문제, 국방력을 강화하는 문제,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문제,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문제, 보건 및 문화수준을 높이는 문제, 소수족들과 다수족 사이의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문제, 노농대중조직을 강화하여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문제 등이다.
 
 위와 같은 사회주의강령에 따라 미얀마 정권은 196361기업 국유화 법령을 선포하고 약 15,000개에 이르는 사유기업들을 국유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급진적인 주요산업 국유화를 단행하였고, 자본가가 새로운 기업이나 공장을 세우지 못하게 금지하였다. 미얀마 정권은 그러한 급진적인 주요산업 국유화로 미얀마 석유산업을 장악하였는데, 석유자원을 갈취해온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을 미얀마에서 쫓아내고 그 대신 국유기업인 버마석유회사를 창설하였다. 미얀마 정권이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자, 미얀마의 시장경제를 좌우하던 인도계 자본들과 화교자본들이 한꺼번에 국외로 빠져나갔다. 이처럼 급격한 해외자본이탈은 취약한 미얀마 경제를 난관에 빠뜨렸다.
 
동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쌀수출국인 미얀마에서 쌀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쌀수출이 동반적으로 하락하자, 외환보유고마저 급격히 고갈되었다. 물가폭등과 소비품 부족으로 암시장이 창궐하게 되었다. 가격통제정책을 실시하였으나, 암시장 확산을 막지 못했다. 미얀마 국가경제에서 암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80%까지 높아졌다는 자료도 있다.
 
미얀마의 주요산업 국유화 정책이 그처럼 심각한 난관에 빠져들게 된 까닭은, 주요산업 국유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똑같이 주요산업 국유화를 추진하였지만, 미얀마에서는 사실상 실패한 반면에 베네주엘라에서는 성공한 까닭은 미얀마의 주요산업 국유화가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주엘라에서는 주요산업 국유화의 비중을 30%로 제한하였으나, 미얀마의 주요산업 국유화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좌경급진주의 오류가 사회주의를 망친다는 말은 미얀마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진실로 입증되었다.
 
주요산업 국유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주요산업 국유화를 요구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1960년대 미얀마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은 주요산업 국유화를 요구할 만큼 성숙되어 있지 못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사회주의정치세력이 주요산업을 급진적으로 국유화하였으니, 실패를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얀마식 사회주의의 한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사회주의계획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인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정권이라야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1962년에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미얀마 정권은 그런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미얀마에서 사회변혁을 추진한 미얀마사회주의강령당 자체가 원래 대중정당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고, 미얀마 인민들로부터 커다란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미얀마 정권은 1962년부터 1974년까지 계엄통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정권이 무려 12년 동안이나 계엄통치를 계속하는 것은 사회주의 발전원리와 맞지 않는 것이다.
 
 베네주엘라식 사회주의는 베네주엘라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시작되어 그 지지를 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미얀마식 사회주의는 미얀마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처럼 인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미얀마 정권은 반사회주의세력의 준동에 대응하여 계엄통치로 자신을 유지해왔으나, 미얀마 인민의 정치적 불만은 계속 쌓여갔다.
 
그런 정치적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 198888일 미얀마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이다. 미얀마 정권은 유혈진압으로 폭동을 진압하였으나, 그것은 반정부세력을 진압하기는커녕 그 세력의 준동을 더욱 자극한 결과를 낳았으며, 반정부세력의 구심점인 아웅산 수키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사회주의의 길은 정권이 인민에게 강제로 시켜서 가는 길이 아니라 인민이 자발적으로 함께 가는 길인데, 미얀마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바로 이것이 미얀마식 사회주의가 뛰어넘지 못한 한계였다.
 
또한 베네주엘라의 우고 챠베스 대통령이 그러한 것처럼, 인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추앙을 받는 지도자가 있어야 인민을 사회주의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는데, 미얀마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오늘 미얀마에서 인민으로부터 지지와 추앙을 받는 쪽은 사회주의 정권의 지도자인 테인 세인 대통령이 아니라 그 정권을 반대하는 친미주의자이며 시장주의자인 아웅산 수키다. 인민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미얀마식 사회주의가 뛰어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차츰 복잡해지는 미얀마의 현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권이 진보와 변혁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2012111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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