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9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집권
2012년 10월 7일에 실시된 베네주엘라 대통령선거에서 우고 라파엘 챠베스 프리아스(Hugo Rafael Chavez Frias) 대통령이 엔리케 카프릴로스 라돈스키(Herique Caplrilos Radonski)를 55.25% 대 44.13%의 득표율로 꺾고 승리하였다.
이로써 챠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PSUV)이 2019년 2월까지 6년 동안 집권을 연장하게 되었다. 우고 챠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때는 1999년 2월이었으므로, 그가 2019년 2월까지 집권하게 되면 집권기간은 20년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고 챠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되어가는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들고 전진해온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정착되었다.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그와 매우 유사한 혁명이 일어났고, 또 현재 진행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쿠바 혁명이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공인되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공인된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에는 쿠바 혁명을 계승한 측면도 있고, 쿠바 혁명을 새로운 시대환경에 맞게 더욱 발전시킨 측면도 있다. 쿠바 혁명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상호관계는 매우 중요하므로,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별도로 상론할 필요가 있다.
암투병 중에 57번 째 생일을 맞은 2011년 7월 28일, 챠베스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어온 볼리바리안 혁명의 투쟁구호를 새로운 투쟁구호로 바꾸었노라고 말했다. 이전에 제시하였던 '조국, 사회주의냐 죽음이냐'라는 투쟁구호를 "사회주의조국과 승리, 우리는 살아갈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라는 새로운 투쟁구호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혁명의 지도자가 혁명의 투쟁구호를 새로운 구호로 바꾼 것은 의미심장하다.
챠베스 대통령이 볼리바리안 혁명 초기에 제시한 '조국, 사회주의냐 죽음이냐'라는 투쟁구호는, 대미예속과 우익독재로 망해가던 베네주엘라를 자주적 사회주의로 살리지 못하면 베네주엘라는 죽는다는 절박한 인식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 변혁을 죽음을 각오한 투쟁으로 실현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볼리바리안 혁명이 12년째 접어들었던 2011년에 그 혁명의 최고지도자는 "사회주의조국과 승리, 우리는 살아갈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라는 새로운 투쟁구호를 제시한 것이다. 이 새로운 투쟁구호는 무슨 뜻인가? 새로운 투쟁구호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베네주엘라를 '사회주의조국(socialist motherland)'으로 변화발전시킨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그와 더불어 베네주엘라 민중이 앞으로도 계속 사회주의로 살아갈 것이며, 사회주의조국의 최후 승리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혁명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챠베스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베네주엘라 민중이 자기 조국을 사회주의조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볼리바리안 혁명이 베네주엘라 민중과 베네주엘라 국가의 상호관계를 변화발전시켜 사회변혁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새로운 단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단계적으로 발전해가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발전수준을 파악하려면, 새로운 정치방식의 실현, 새로운 사회적 생산양식의 도입,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의 창조라는 세 가지 발전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실현한 새로운 정치방식
볼리바리안 혁명이 실현한 새로운 정치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그 혁명이 반제자주화를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인민주권을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각각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오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주엘라가 대미예속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주성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반제반미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반제자주화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런 베네주엘라를 반제자주화의 길에서 이탈시키려고 기회를 엿보던 미국은, 2002년에 베네주엘라 우익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챠베스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급변사태를 일으켰고, 급변사태가 실패로 끝나자 군사적 압박을 가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은 무인첩보기를 베네주엘라 영공에 침범시키고, 베네주엘라에 근접한 네덜란드령 섬들에 미국 공군 전투기를 전진배치하여 베네주엘라 영공을 침범하고, 베네주엘라에 인접한 친미예속국 콜롬비아에 미국군 기지를 건설하고, 중남미지역을 관할하는 제4함대를 재창설하면서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좌절시켜보려고 미쳐날뛰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제국주의깡패국가의 무력침공에 맞서 싸우며 국가적 자주성을 수호하는 물리력은 군대이므로, 베네주엘라에서도 볼리바리안 혁명 이후 군대를 강화하는 문제는 매우 중대한 혁명과업으로 제기되었다. 군인 출신인 챠베스 대통령은 베네주엘라군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베네주엘라는 국방공업의 자립화를 아직 실현하지 못하였으므로, 모든 무기와 군사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이란, 브라질, 스페인, 캐나다에서 무기와 군사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국방공업의 자립화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다.
둘째, 어느 나라에서나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정치과업은 진보정당 또는 혁명정당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므로, 베네주엘라에서 인민주권을 어떻게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려면, 볼리바리안 혁명을 수행하는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은 2010년 4월에 개최한 임시전당대회에서 자기의 지위와 역할을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치전위(political vanguard)"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이 자신을 혁명적 전위당으로 자인하였음을 말해준다. 혁명적 전위당이란 대중정치조직을 이끌어가는 정당이다.
베네주엘라에는 인민생활향상과 사회환경개선을 책임진 베네주엘라식 대중정치조직인 코뮨협의회(Commune Council)가 2만개나 조직되었다. 150∼400가구로 구성된 도시의 코뮨협의회와 약 20가구로 구성된 농촌의 코뮨협의회는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를 코뮨적 협동생활로 이끌어가는 대중정치조직이다.
이처럼 베네주엘라 각지에 조직된 2만개의 코뮨협의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약 600만명 당원으로 조직된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은 혁명적 전위당으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베네주엘라에서 인민주권은 전사회를 코뮨협의회로 조직하려는 투쟁과 그 투쟁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는 베네주엘라 사회주의연합당의 정치적 영도에 의거하여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도입한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어떻게 도입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지배와 착취를 유지해온 낡은 생산방식을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문제는, 전략산업(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라는 두 가지 정치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베네주엘라에서 2007년 5월 1일에 시작된 전략산업 국유화는 계속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주엘라의 석유, 석유화학, 철강, 전력, 통신, 공항 및 항만, 금융, 시멘트, 제약, 식품가공을 비롯한 전략산업부문에서 국유화를 실현하였다. 현재 베네주엘라 경제부문에서 국유화 비율은 약 30%에 머물러 있다.
전략산업을 국유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유화된 기업의 노동자들이 생산활동을 민주적으로 경영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전략산업 생산활동의 민주화에서 이룩한 성과는, 베네주엘라 노동자 대표 600명이 오랜 토론과정을 거쳐 2009년 6월 9일 챠베스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2009 - 2019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Plan Socialist Guayana)'으로 집약되었다.
국유화된 전략산업부문의 노동자들이 챠베스 정부와 협력하여 생산활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동자들 스스로가 작성한 이 역사적인 보고서는, 베네주엘라 국유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생산활동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정치방침을 담은 것이다. 보고서 내용을 이 짧은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이 제시한 아홉 가지 목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노동자의 생산 통제(control of production by the workers)
둘째, 혁명적 이론과 행동의 개발(development of a revolutionary theory and action)
셋째, 기업체의 거대기업체로의 통합(integration of industries into a mega company)
넷째, 노동자의 사상적, 정치적 발전과 기술적, 생산적 발전(ideological-political and technical-productive development of workers)
다섯째, 노동자의 집단적인 기술 소유(collective ownership of technology by workers)
여섯째, 건강한 노동조건의 보장(guarantee of healthy working conditions)
일곱째, 노동자가 제기한 사업에 대한 재정적 실현가능성(financial viability of projects proposed by workers)
여덟째, 새로운 사업을 위한 에너지 사용능력을 확보하는 것(to ensure energy availability for new projects)
아홉째, 노동자 생산관리의 공적 책임성을 위한 법령을 제정하는 것(to establish codes for public accountability of the woker's management)이다.
이러한 아홉 가지 투쟁목표는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을 높이 들고 전략산업 생산활동을 민주화하기 위해 투쟁하는 베네주엘라 노동계급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의 창조, 그리고 혁명의 후계문제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어떻게 창조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객관적 지표로 나타내기 힘들지만, 사회환경을 살펴보면 사상문화생활 형편을 가늠할 수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대미예속과 우익독재로 망해가고 있었던 베네주엘라의 암흑기에 마약, 납치, 살인 같은 흉악범죄가 만연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흉악범죄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시작된 이후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유엔 산하 마약 및 범죄국이 발표한 보고서는 베네주엘라의 살인범죄율이 챠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첫 해인 1998년과 비교하여 2010년에 2.5배나 더 높아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베네주엘라의 범죄감시단체가 2011년 12월 28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베네주엘라에서 살해된 사람은 19,336명이다. 농지개혁을 요구하는 농민활동가들이 살해되는 경우도 있는데,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살해된 농민활동가는 약 300명이나 된다.
베네주엘라에서 흉악범죄가 그처럼 횡행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범죄자가 경찰, 판사, 검사 등에게 뇌물을 주고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한 사법체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흉악범죄를 근절하기 힘들지만, 사법체계 개혁하여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 해결방도는 법적 제재 강화를 요구하는 낡은 사상문화생활을 넘어서 도덕적으로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진전되는 나라에서 흉악범죄를 뿌리뽑지 못한 것은 그 혁명이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역사적 임무를 아직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낡은 사상문화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것은 혁명과업들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어렵고, 장기성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새로운 문화, 새로운 예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혁명의 요구에 맞게 창조해야 하는데,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아직 그러한 발전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낡은 사상문화에 사로잡힌 기성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상문화 속에서 자라난 새 세대가 등장하는 세대교체는 약 30년을 요구한다. 시대 흐름만을 따져본다면, 지금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그러한 세대교체기간의 절반쯤에 이른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에서는 지난 15년보다 다가오는 15년이 더 중요하다.
챠베스 대통령이 승리한 베네주엘라 대통령 선거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2년 10월 10일, 대통령은 외무장관 니콜라스 마두로 모로스(Nicolas Maduro Moros)를 부통령에 임명하였다. 마두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버스운전사로 전투적 노동운동을 이끌어었던 노조지도자였으며, 챠베스 대통령이 1998년에 당을 창당할 때 그를 보좌하여 창당사업을 추진하였던 최측근이다.
올해 50세인 그가 부통령에 임명된 것은, 볼리바리안 혁명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사실상 지명된 것이다. 암투병 경력이 있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챠베스 대통령이 자기 뒤를 이어 볼리바리안 혁명을 이끌어갈 후계자를 지명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만일 챠베스 대통령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더라면, 볼리바리안 혁명은 초기에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가 20년 동안 집권하면서 혁명을 영도해오고 있고, 이제는 후계문제까지 해결하였으니 볼리바리안 혁명의 미래는 창창하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최후 승리를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 있다. (2012년 10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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