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이다.
사상의 심사위원 진중권 교수에게
이병창
지금 낡은 진보를 척결하고 새로운 진보를 세우는 작업이 혁신이라는 미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혁신의 흐름에 자발적으로 참가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몽둥이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 곳곳에서 낡은 진보를 고백하고 참회하라는 사상전향의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
그 선두에 선 자, 그가 바로 진중권 교수이다.
진중권 교수는 이제 국회의원의 사상을 검증하자고 한다. 북한에 대해서, 북핵과 천안함과 삼대세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그것을 밝힌다면 그에 따라서 그가 종북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공직자의 의무에 이웃나라의 내정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을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그러면 공직자는 의무적으로 일본의 자민당에 대한 입장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관한 입장과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도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누가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른다. 진중권 교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건 나는 모른다. 내가 맡은 임무는 그저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기야 그 다음은 진중권 교수가 맡은 일은 아니다.
그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리고 아마 두둑한 찬사를 받으면서 심사석을 떠나간 다음에 그 자리로 찾아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먼저 조중동이 나타날 것이다. 조중동은 준엄하게 선언할 것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종북파인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라고. 이 땅에서 떠날 때까지 우리는 나발을 불어 당신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라고.
그리고 조중동이 떠난 그 다음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번이라도 안기부에 끌려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지 않을까?
70년대 초 박정희에 의해 자행된 사상전향 공작의 그 끔찍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더 잘 알 것이다.
물론 오늘 진중권 교수가 심사하는 대상은 국회의원이라는 공직자에 제한될지 모른다. 참으로 심사 대상을 공직자로 제한하는 진중권 교수의 너그러움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 선풍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심사받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면 내일은 공무원과 교사들일 것이며 모레는 노동자이며 그 다음에 온 국민일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진중권 교수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진중권 교수,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은 지금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물어 볼 생각은 없소? 그들도 공직자 아니요? 그들에게 제발 한 번 물어 보시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 소고기를 계속 수입해도 아무 문제없는가를. 그러면 당신이 그가 한국에서 넘치고 넘친다는 종미파인지를 아니 한국에서 암약하는 미 CIA 에이전트인지를 판단해 주겠다고. 아마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대답하지 못할 것이요.
그때도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소? 양심을 고백하지 못하는 떳떳하지 못한 인간이라고.
진중권 교수, 당신은 자랑스러울 것이요. 당신의 양심을 항상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서 말이요. 당신이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자유와 민주만 보면 되니까. 그러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이면이 조중동이고, 안기부이라는 것은 아시오? 이 땅에 비비린내 나는 억압을 보지 않아도 되는 당신은 정말 행복하겠소.
그러나 이 땅에는 남북 간의 긴장해소를 위해 북한을 하나의 공인된 국가로 인정해야 하며 상대를 해치지 않는 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소. 그 사람들은 자신의 평화주의 때문에 종북파로 몰리고 종내는 감옥에 가야할까를 두려워하고 거꾸로 자신의 침묵 때문에 남북의 긴장이 강화되고 종내는 전쟁이 터지지 않을까도 두려워 하고 있소. 그들은 침묵이냐 감옥이냐 이 선택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이 두둑한 찬사로 배부르게 잠들 때,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기나 하는 것이요? (2012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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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는 간접선거인가?
이병창
검찰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문제를 국법의 이름으로 척결하겠다고 한다. 필자는 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정의가 법의 기초라고 볼 때 검찰의 행위가 정의에 기초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검찰의 논리는 간단하다. 비례대표 경선은 간접선거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헌법이 정한 직접선거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니 비례대표제를 폐지해야 한다. 검찰은 헌법을 모르는 것인가?
도대체 간접선거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뽑는 경우를 말하는가? 아니면 사법부의 수장을 판사들이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를 말하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것은 간접선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제도의 전형적인 예가 있다면 유신정권 때 대의원들이 체육관에서 모여 대통령을 뽑던 선거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도 유사한 예이지만 유신정권의 체육관 선거와 달리 미리부터 대의원의 의사가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간접선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제도의 전형적인 예가 있다면 유신정권 때 대의원들이 체육관에서 모여 대통령을 뽑던 선거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도 유사한 예이지만 유신정권의 체육관 선거와 달리 미리부터 대의원의 의사가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간접선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의 선출구조가 우리나라에서 간접선거의 방식인가. 즉 국민을 대신하여 당원들이 비례대표를 뽑는다는 것인가? 물론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아는 일이다. 비례대표 역사 변형된 것이기는 하지만 직접선거에 속한다. 비례대표란 일종의 전국대표라고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당은 다만 그 추천권을 행사할 뿐이다.
비례대표의 추천은 당의 자율적인 권리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를 경선에 의해 추천하는 정당은 통합진보당 하나뿐이었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등 어떤 정당도 비례대표를 경선하지 않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선순위를 규정하는 내부 규정이나 있는 것일까? 필자의 인상으로는 대부분 정당의 당권을 가진 집단이 거의 임의로 추천해온 것이 아닐까?
물론 정당도 국민의 기본권인 주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공무담임권도 분명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따라서 어떤 인종, 여성, 종교를 이유로 어떤 정당이 공무담임권을 박탈할 수 없다. 비례대표도 이런 공무담임권 중의 하나인데, 이런 비례대표가 만일 돈으로 거래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기본권의 침해에 해당된다.
이런 기본권 사항은 네가티브의 조항이다. 적어도 이런 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포지티브한 규정은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비례대표를 어떻게 추천하는가는 당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런 기본권 사항은 네가티브의 조항이다. 적어도 이런 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포지티브한 규정은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비례대표를 어떻게 추천하는가는 당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그래서 만일 가정이지만 통합진보당의 당내 비례대표 선거에서 부정과 부실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네가티브한 공무담임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당의 자율에 맡겨진 부분에서 일어난 문제이다. 당내 규율에 따르면 이 사람이 추천되어야 하는데 저 사람이 추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당의 규율의 위반이며 그렇다면 이것에 대해서 당은 당원들에게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잘못 추천한 결과 국민들은 좋은 후보가 아니라 보면서 이미 그만큼 제한된 선택을 했던 것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까 이미 국민이 판단한 것이기에 비례대표가 선출된 이후에는 당이 임의로 대신 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당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고, 그 결과 당에게 중대한 침해를 가했으니 엄정한 책임을 당에 대해 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국민이 판단한 것이기에 비례대표가 선출된 이후에는 당이 임의로 대신 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당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고, 그 결과 당에게 중대한 침해를 가했으니 엄정한 책임을 당에 대해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당의 규율 위반 즉 포지티브한 조항에 대해 국법이 개입한다면 그것은 당의 자율권에 대한 국가의 침해이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비례대표 선출 규정을 잘 모르지만 거기에 보면 우리 철학자들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다. 통합진보당에 철학자들은 전혀 없을까? 소수이겠지만 나를 비롯해 여러 명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철학자들은 당의 선출 규정들을 국법에 고발해야 할까? 이것은 철학자들을 차별한 것이며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우리 철학자가 고발한다면 검찰인 당신들은 웃지 않겠는가?
이렇게 당내 자율에 맡겨진 부분이기에 심지어 당의 대표들의 합의에 의해서 비례대표의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또 일부 후보들에게는 경선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당내 합의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는 국가의 법이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의 법이 개입할 수 있더라도 한정적으로 개입한다. 생각해 보자. 형제들 간의 재산 싸움이라면 국법이 개입할 수 있다. 소유권은 국법이 정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제들 간에 서로 제사를 맡은 책임을 보자. 이것은 형제들 간의 합의에 맡겨져 있고 설혹 그들이 합의하지 못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국법이 개입해야 할 일인가? 서로 싸우며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형제들을 지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법은 개입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런데 형제들 간에 서로 제사를 맡은 책임을 보자. 이것은 형제들 간의 합의에 맡겨져 있고 설혹 그들이 합의하지 못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국법이 개입해야 할 일인가? 서로 싸우며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형제들을 지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법은 개입할 수 없지 않는가?
마찬가지이다. 당내 규율 위반으로 비례대표 부정과 부실을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법이 칼을 빼들고 이 문제를 척결하겠다면 이는 명백히 정치탄압이다. (201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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