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3

과학적 인간관과 진보의식화

변혁과 진보 (6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신념의 생물학과 인간의 운명문제

미국의 유명한 세포생물학자 브루스 립튼(Bruce H. Lipton)이 쓴 흥미로운 책이 2005년 5월 미국에서 출판되어 세계 생물학계를 뒤흔들었다. 그 책의 제목은 '신념의 생물학: 의식, 물질, 기적의 힘을 풀어내다(The Biology of Belief: Unleashing the Power of Consciousness, Matter, and Miracles)'이다.

브루스 립튼이 그 책에서 논한 새로운 학설은 유전자 정보가 세포의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세포의 활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가 세포생물학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한 이 새로운 학설은 세계 생물학계를 100년 동안 지배해온 DNA 결정론을 뒤집어버렸다.

유전자는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고, 사람의 사상의식이 그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과학적 진리가 생물학적으로도 또 다시 밝혀진 것이다.
 
사람과 세계의 상호관계에서 물질세계를 자기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변화시키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철학적 세계관의 진리, 그리고 사람의 사상의식이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는 오래 전에 해명되었는데, 브루스 립튼의 새로운 학설은 그러한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를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남아있다. 2010년 6월 21일 중국 랴오닝성 푸순에 있는 전범관리소 기념관이 2년 동안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전범관리소 기념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까닭은, 청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1950년부터 9년 동안 전범으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운명전환의 흔적이 그 전범관리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푸이는 1908년 세 살 때 청국 제12대 황제로 등극하였고,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하였는데, 만주사변을 도발하여 만주를 무력강점한 일제가 1934년에 괴뢰국을 조작할 때 그는 만주국 황제로 변신하였다. 1945년 8월 초 그는 소련군이 만주전투에서 승리하자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전범관리소에서 생활하던 푸이는 처음에 자기 옷의 단추도 낄 줄 몰랐으나 나중에는 제 손으로 빨래도 하고, 바느질도 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운명의 극적인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1959년에 석방된 그는 1964년 제4기 전국정협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문사관 관원으로 일하다 1967년에 곡절많은 생을 마쳤다. 그의 극적인 운명전환은,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뇌활동과 사상의식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어떤 사람은 진보적인 사상의식을 가졌고, 또 어떤 사람은 수구적인 사상의식을 가졌다. 왜 그런 격차가 생겨난 것일까?

사상의식은 허공에 떠도는 영혼 같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뇌활동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대뇌반구의 겉부분을 피질 또는 회색질이라 하고 속부분을 수질 또는 백질이라 하는데, 피질에는 신경세포체가 있고 백질에는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망이 있다. 사람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1조 개의 신경아교세포가 있다. 신경섬유망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전기신호가 일어나는데 이를 시냅스라 한다.

그런데 시냅스라는 뇌활동은 사상의식활동 자체가 아니라, 사상의식활동의 생물학적 기초다. 뇌활동은 뇌를 가진 모든 동물들의 생물학적 활동이지만, 사상의식활동은 오직 세계의 주체인 사람에게만 고유한 사회적 활동이다.

사람과 동물의 뇌활동에 대해서는 뇌과학이 해명하지만, 사람의 사상의식활동에 대해서는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동물의 뇌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생물학적 문제는 뇌과학이 해명하지만, 사람의 사상의식활동이 왜 진보적으로 또는 수구적으로 전개되는가 하는 사회적 문제는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의 사상의식은 뇌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되어 뇌의 기억장치에 저장되어 외부 정보에 대한 반응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내용의 경험과 학습을 받는가 하는 사회적 요인이 사상의식활동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군집생활은 해도,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자연계에서 자연본능에 따라 생활하는 동물의 뇌활동은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나'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사회역사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나'만을 생각하는 자연본능적 뇌활동을 뛰어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사상의식활동으로 질적 비약을 이루었다.

'우리'를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는 자연본능적 뇌활동에 의존하며 그런 내용의 경험과 학습에 노출된 사람은 당연히 개인주의적 사상의식활동을 하게 된다. 그와 달리,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상의식활동에 따라 생활하며 그런 내용의 경험과 학습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집단주의적 사상의식활동을 하게 된다.

2010년 12월에 발간된 '관심, 인식, 정신물리학 휘보'에 실린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방향을 계속 따라가는 강한 신호반응을 보였으나, 수구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은 그런 신호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진보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와 수구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진보적 사상의식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포함한 '우리'의 세계로 사회구성원을 이끌어가지만, 수구적 사상의식은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나'의 세계에 사회구성원을 가두어버린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형성된 두 종류의 상호대립적인 사상의식이 각기 뇌구조를 일정하게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2010년 12월 29일 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영국 런던대학교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게라인트 리스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도하였는데,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과 수구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구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뇌 가운데 편도체와 전측 대상회가 각각 사상의식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자주와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는 전두엽 한가운데에 있는 전측 대상회가 두꺼운 반면, 굴종과 불평등을 용납하는 수구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는 편도체가 두꺼운 것이다.


'나'의 오늘은 비록 짧을지라도

오래 전에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하였음을 물론이고, 최근에 세포생물학과 뇌신경과학으로도 진리성이 확증된 과학적 인간관을 공부하면, 어떤 사회변혁론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하며, 사람을 바꾸려면 그의 사상의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과학적 인간관에서 배우는 우리식 사회변혁의 근본원리다.

그러한 사회변혁의 근본원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우리'를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는 수구적인 사상의식을 버리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상의식을 갖는 진보의식화에 관한 것이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애국자,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가를 사회적으로 우러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귀한 삶을 본받으려는 까닭은, 그런 애국자와 그런 혁명가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아낌없이 희생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사회 각 부문에서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투쟁하는 이 땅의 정치활동가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바치는 진보의식화된 변혁주체들이다.

그런 진보의식화된 변혁주체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어 강력한 정치역량을 발휘할 때, 이 땅의 민중이 바라는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되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 땅의 변혁주체들이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진보당을 건설한 것 아닌가.

이 땅의 변혁주체들이 전진하는 우리식 사회변혁 발전과정을 축약하면, 진보의식화→진보정당 건설→자주적 진보정권 수립→사회성격 개조와 통일공화국 건설→사회체제 변혁→사상의식 개조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이다.

이 땅의 변혁주체들은 그처럼 길고 복잡하고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 '나'의 오늘은 비록 짧을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그 변혁의 길에서 영원할 것이다. (2012년 1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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