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2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당의 변신과 민주노동당의 고민
2011년에 들어서면서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담론이 증폭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11년 1월 6일 민주당 의원총회는 5년 안에 국민의 의료비 자기부담률을 현행 49%에서 10%로 낮추고, 자기부담 상한액을 현행 40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줄이는 의료복지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러한 의료복지정책이 시행되면 무상의료에 근접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주가 지난 2011년 1월 13일 민주당 의원총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 이하 모든 어린이에게 보육시설이용비 전액을 정부가 지급하고, 그런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양육지원수당을 정부가 지급하는 무상보육정책을 채택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대학생 반값 등록금 정책'도 채택하였다. 이 정책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연소득 1,238만 원 이하 빈곤층 대학생의 등록금, 그리고 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연소득 3,270만 원 이하 저소득층 대학생의 등록금을 정부가 전액 지급하고, 연소득 3,270만 원 이하 저소득층 대학생의 등록금 50%를 정부가 지급하고, 연소득 3,816만 원 이하 소득층 대학생의 등록금 30%를 정부가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결정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위한 완전한 복지정책은 되지 못하지만, 그것에 아주 근접한 복지정책을 당론으로 확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자기들이 당론으로 채택한 복지정책을 추진할 의사를 입증하기 위해 당 안에 '보편적 복지재원조달 기획단'을 설치하였다.
민주당의 이러한 변신은, 지난 시기 우파정당과 대동소이하였던 그 정당이 사회민주주의 색채를 뚜렷이 드러낸 중도우파정당으로 발돋움하였음을 말해준다. 민주당의 변신이 명색 뿐인 변신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변신인지는 앞으로 민주당의 행동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변신은 민주노동당에게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까지 자기의 특유한 정책으로 꺼내들었던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관한 담론은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바람에 그만 빛을 잃고 말았다.
"3-5세의 유아교육을 공교육체계에 포함시키며 단계적으로 이를 현실화한다"고 씌여있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보육정책은 무상보육이라는 개념을 쓰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주당의 무상보육정책에 비해 정책적 선명도가 떨어진다.
또한 민주노동당 강령의 무상교육정책은 "중등교육을 통합학교체제로 개편하며 이를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씌여있기는 하나, 대학생을 위한 무상교육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의 무상교육 근접정책에 비해 대중적 호소력이 떨어진다.
또한 민주노동당 강령의 무상의료정책은 "보건의료 취약계층에게는 무상의료를 실현한다. 궁극적으로는 본인 부담금제도의 폐지를 추진한다"고 씌여있으나, 무상의료정책을 시행하는 방안을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주당의 무상의료 근접정책에 비해 정책적 구체성이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유사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꺼내놓는다 해도,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보다 더 진보적인, 그리하여 사회복지강령에서 다른 정당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전략적 차별성을 지닌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기의 독자적인 사회복지강령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뛰어넘는, 민주노동당 특유의 진보적 복지정책은 무엇일까? 민주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뛰어넘으려면,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발목을 잡힌 결정적인 한계를 파악하고 그 한계를 극복할 정책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지닌 결정적인 한계를 파악하는 방도는 그 복지정책이 실패한 역사적 경험을 성찰하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것처럼, 역사는 미래를 여는 무진한 지혜의 창고다.
'남미의 스위스'가 창조한 '성공신화'
이른바 복지국가(welfare state)가 세계 정치사에 등장한 때는 1930년대다. 복지국가라는 말만 들어도 금방 머릿 속에 떠오르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같은 북유럽 나라들, 그리고 독일, 영국, 네덜란드 같은 서유럽 나라들이 1930년대에 복지국가로 등장하였으니, 그 나라들을 1세대 복지국가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예외가 눈길을 끄는데, 1930년대에 등장한 1세대 복지국가대열에 비유럽 국가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나라가 바로 라틴 아메리카의 우루과이다. 제3세계에 속하는 우루과이가 1930년대에 유럽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며 1세대 복지국가로 등장한 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복지담론은 스웨덴을 본보기(model)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웨덴=복지국가라는 등식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듯하다.
그러나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은 우리 사회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 자체가 이미 쇠락의 길에 들어섰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복지제도가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2010년 11월 22일 '변혁과 진보'에 게시된 나의 글 '555만 배 빈부격차와 우리식 복지사회담론'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한 여러 나라들 가운데 우리 사회에 가장 근접한 사례를 고른다면, 스웨덴보다 우루과이가 훨씬 더 근접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우루과이가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로 한때 고도성장을 이룩하였고,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정치를 겪었으며, 경제파탄과 구제금융조치 수용으로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시기와 우루과이가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우루과이는 우리 사회가 겪은 역사적 경험과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실현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근본문제를 파악하려면, 우리 사회가 겪은 역사적 경험과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우루과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어떤 경로를 밟아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루과이가 1930년대에 유럽 나라들과 함께 1세대 복지국가대열에 들어서기에 앞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경제적, 제도적 준비기간이 있었다. 그 준비기간에 등장하는 것이 1911년부터 1915년까지 호세 바뜰레 이 오르도녜즈(José Batlle y Ordóñez, 1856-1929) 대통령이 이끌었던 바뜰레 정부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바뜰레 대통령은 열렬한 사회민주주의자였고, 바뜰레 정부는 전형적인 사회민주주의정부였다. 바뜰레 정부는 자본가, 노동자, 중산층의 요구를 포괄적으로 수렴한다고 하면서, 기존 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색채를 더하였다.
그에 따라 우루과이에서는 1914년에 실업수당제를 시행하였고, 1915년에는 8시간 노동제를 시행하였고, 1916년에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시행하였고, 1919년에는 은퇴적금제를 시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한 정치이념을 가리켜 바뜰레주의(Batllism)라 부른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여 피눈물을 흘리던 20세기 초에, 우루과이가 비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루과이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첫째, 비록 불완전하였지만, 우루과이에서는 주요산업이 국유화되었다. 바뜰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1911년에 우루과이 중앙은행(BROU)을 국유화하였고, 1912년에는 국가전력회사(State Electric Power Company)를 세워 전력부문을 국유화하였고, 우루과이 융자은행과 석탄 및 수자원 탐사부문을 국유화하였고, 화학부문과 어업부문을 국유화하였다. 1914년에는 철도부문을 국유화하여 국가철도청을 설치하였다. 토지개혁도 실시하였으나 대토지 소유주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제압하지 못하여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그 대신 농업기술개발부문을 국유화하였다.
둘째,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의 호황으로 국가재정이 크게 늘어났다. 당시 우루과이는 육류와 모직물을 수출하여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를테면,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에 우루과이의 연간 육류수출량은 사상 최대 규모인 206,000t에 이르렀다. 우루과이의 육류수출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을 깨지 못하였다.
우루과이는 이처럼 주요산업 국유화와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의 호황으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고, 193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복지국가를 건설하였고, 1930년에 세계축구경기(World Cup) 제1회 개최국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남미의 스위스'라고 부러워할 만큼 '성공신화'를 창조하였다.
1세대 복지국가가 후진국으로 전락한 과정
그러나 우루과이의 '성공신화'는 20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까닭은 1950년대부터 수출이 급격히 정체되면서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가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의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가 파산상태에 빠지자, 우루과이 정부는 심한 재정압박에 시달렸고, 그에 따라 기존 사회복지정책은 사실상 마비되었고, 민생은 피폐화되었다. 이것은 우루과이 사회민주주의의 파산을 뜻하였다.
사회민주주의가 파산된 우루과이에서 계급모순이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 폭풍의 중심에 있었던 민중투쟁조직이 1960년대 초에 결성된 뚜빠마로스(Tupamaros)다. '민족해방운동(Movimiento de Liberación Nacional )'이라고도 부르는 뚜빠마로스는 '농민지원운동(Movimiento de Apoyo al Campesino)'과 노동조합 일부세력이 결합하여 창설되었다. 1967년 12월에 출범한 빠체코 정부가 민중저항운동을 극렬하게 탄압하자, 뚜빠마로스는 종래의 비폭력투쟁노선을 접고 도시유격전 형태의 무장투쟁노선으로 전환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CIA) 고문이며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우루과이 우파정부의 폭압통치를 적극 지원하였던 대니얼 마이트리온(Daniel A. Mitrione)을 처단한 것도 뚜빠마로스였다. 그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그리스 출신의 저명한 영화감독 코스타 개브라스(Costa-Gavras)가 만들고,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유명한 영화배우 이브 몽땅(Yves Montand)과 이탈리아의 성격파 배우 레나또 쌀바또리(Renato Salvatori)의 명연기가 돋보인 1972년작 영화 '계엄( tat de Si ge)'이다.
민간독재정권의 폭압으로 우루과이 민중저항운동을 막아낼 수 없게 되자, 미국은 우루과이 군부를 전면에 내세웠다. 1973년 7월 우루과이 우익군부세력이 무혈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틀어쥐었고, 그에 대응하여 뚜빠마로스는 아르헨티나의 인민혁명군(Ejército Revolucionario del Pueblo), 칠레의 혁명좌파운동(Movimiento de Izquierda Revolucionaria), 볼리비아의 민족해방군 (Ejército de Liberación Nacional )과 함께 혁명조정평의회(Junta Coordinadora Revolucionaria)를 조직하여 다국적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남미 전역이 투쟁의 불길로 타오르자 당황망조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1975년 11월 25일 당시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rry Kissinger)를 배후조종자로 임명하고 남미 각국의 우익군부세력을 결집하여 이른바 '콘돌 작전(Operación Cóndor)'을 개시하였으니,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남미의 진보적 정치활동가 6만 명 이상이 학살당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에 따라 학살만행을 저지른 우루과이 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한 때는 1985년이다.
우루과이에서는 1985년 이후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하였으나, 1930년대 복지국가의 '성공신화'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우루과이도 신자유주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우루과이는 1999년과 2002년에 각각 경제위기에 빠졌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지금 우루과이 형편은 어떠할까?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하는, 2010년도 우루과이 1인당 국내총생산은 13,600 달러다. 2010년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우루과이 순위는 전 세계에서 85위다. 그러나 그것은 'GDP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2010년 현재 우루과이 실업률은 7.4%이고, 2006년 현재 우루과이의 빈곤층은 전체 가구의 27.4%를 차지하며,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Gini index) 지표는 45.2를 기록하였다.
1세대 복지국가들의 지니계수를 보면, 스웨덴 23, 노르웨이 25, 독일 27, 덴마크 29, 핀란드 29.5, 네덜란드 30.9, 영국 34, 뉴질랜드 36.2로 나타났는데, 1세대 복지국가인 우루과이의 지니계수가 45.2를 기록하여 다른 1세대 복지국가들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우루과이에서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입증한다.
복지 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를 넘어서
우루과이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우루과이는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의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도 그러하지만, 우루과이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도 자본주의세계시장이 작동되는 기간 동안만 살아있는 시한부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자본주의세계시장이 파산위기에 빠지는 순간, 거기에 의존한 우루과이 경제도 파산위기에 빠지게 된다.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를 유지한 채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실패를 예고한 것이나 다르지 않다.
둘째, 우루과이는 신자유주의 광풍을 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의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상극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고서는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
셋째, 우루과이는 주요산업 국유화를 매우 불철저하게 시행하였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의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주요산업 가운데 일부만 국유화하였고, 목축업과 모직물 생산이 발달한 나라에서 토지개혁도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할 재원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우루과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현존 경제체제에서는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땅의 경제체제는 우루과이의 수출주도형 대외의존경제보다 더 악화된 수출주도형 대외예속경제이고, 우루과이보다 더 심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이 땅에 몰아치고 있으며, 주요산업 국유화는 전혀 공론화되지 못하였다. 이처럼 극도로 열악한 조건에서 무슨 수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이 추구해야 하는 복지정책은, 이미 우루과이의 역사적 경험에서 실패로 판명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식 복지정책이 요구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식 복지정책이란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체제에 부합되는 복지정책이다. 이 특유한 복지정책의 공식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진보적 복지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복지정책은 수출주도형 대외예속경제노선에서 벗어나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청산하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실현할 때 가능한 복지정책이다.
민주당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은 결국 복지 자본주의의 울타리 속에 갇혀버리지만,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복지정책은 자립경제노선 확립, 신자유주의 완전 청산, 주요산업 국유화를 실현하여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수당, 실업수당, 노후보장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복지정책으로 될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가장 높은 단계의 진보적 복지정책을 단번에 급진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중간단계를 거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은 진보적 복지정책을 위한 중간단계로서 의의를 갖는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복지정책은 우리식 두 단계 사회변혁담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복지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자립경제노선을 확립하고, 신자유주의를 완전 청산하고,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여 사회적 관계에 대한 시장의 지배를 결정적으로 축소시키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실패로 판명된 복지 자본주의를 넘어서 민주노동당 특유의 복지정책을 실현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 거기에 있다. (2011년 3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