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2012년의 격변을 앞둔 2011년
2011년의 존재의의는 2012년의 변화를 준비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의 지각변동이 2012년에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2012년 한반도가 어떠한 지각변동을 겪는다는 말일까? 더 많은 변화요인이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중대한 변화요인 세 가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첫째, 널리 알려진 대로, 2012년 4월에 총선이, 12월에 대선이 실시된다. 국회와 청와대에서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 아니면 집권을 연장할 것인가 하는 최대 정치일정이 2012년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둘째, 북측은 오래 전부터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해놓고 그 준비를 다그쳐 왔다. 북측에서는 2012년에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7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면서, 후계체제를 공식화할 것이다. 북측에서도 남측과 마찬가지로 최대 정치일정이 2012년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 정세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주변 네 나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2012년에 정권교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남측과 북측은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 4개 나라들까지 중대한 정치일정을 한꺼번에 치르는 시대적 격변은 일찌기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12년은 말 그대로 격변기다. 이미 예정된 세 가지 변화요인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강한 힘을 발산할 때, 사람들이 이제껏 상상치 못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를 두고 어찌 2012년 한반도 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랴.
2012년 한반도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세 가지 변화요인들 가운데서 특히 중시해야 할 것은, 이명박 정권이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될 것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권이 재집권에 성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 문제를 논하면서 갑론을박하게 되지만, 이 글에서는 진보정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세전망을 논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일 2012년에 정권을 교체하지 못하는 경우 한반도 정세의 진보적 발전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설혹 2012년에 정권를 교체하지 못하더라도, 5년 뒤인 2017년에 정권교체 기회가 또 오는데, 왜 그처럼 비관적으로 전망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진보정치의 시선으로 현 정세를 바라보면 정권교체 기회를 2017년으로 미룰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정권교체 기회는 5년마다 실시되는 대선에서 주기적으로 다가오지만, 격변기의 정권교체 기회는 5년마다 실시되는 대선에서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딱 한 번만 주어진다. 2012년이 바로 그러한 격변기의 정권교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주목하는 것은, 격변기의 정권교체 기회를 눈앞에 둔 2011년에 한반도에서 정치적 격돌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2012년 격변기의 정권교체 기회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끌어당기려는 세력들이 서로 격돌하고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 정치적 결돌과 군사적 충돌에서 이기는 쪽이 2012년 한반도 정세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끌어갈 것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10년 11월 23일 서해 분쟁수역에서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포격전이 일어난 것, 그리고 미국이 그 포격전을 빌미로 7함대 항모강습단을 서해에 출동시킨 것은, 2011년에 한반도 정세 전반에 정치적 격돌과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은 2011년의 정치적 격돌과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하였는가?
2. 정권교체기의 북미관계 전망
북측이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한 배경에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한반도 근본문제를 2012년까지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지 못하여 미국군의 북침작전연습에 대응해야 하는 나라를 가리켜 강성대국이라 할 수 없다.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라는 말 속에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전략목표가 담겨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된 뒤에 미국군이 여전히 남측에 주둔하면서 북침작전연습을 벌이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만일 주한미국군이 그처럼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면, 북측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필요도 없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필요도 없다. 북측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목적은 명백하게도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북측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그토록 중시하는 까닭은, 주한미국군이 철군해야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제국주의 군사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북, 해외를 막론하고 전민족이 바라는 자주적 평화통일은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제국주의 군사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인데, 그 과업을 수행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고리’가 바로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측은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기 위한 두 가지 선행조치들인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실현할 돌파구를 2012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뚫어놓으려고 전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2011년에 북미관계에서 정치적 격돌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에서 북미 공동코뮈니케(DPRK-US Joint Communique)가 채택되고, 그에 따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상황에까지 갔었는데, 그러한 지각변동을 2012년까지 다시 일으키려는 것이 북측의 의도인 것이다.
북측은 그렇게 의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을 취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그 동안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최첨단 비밀병기들을 최근에 공개하는 것이라든지, 소형 경수로 건설에 착공한 것이라든지, 초현대적인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이라든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또 다시 갱도굴착작업을 벌이는 것 등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북미 양자회담으로 끌어내려는 강력한 압박공세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미 양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하루빨리 실현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은 북측만을 위한 일도 아니고, 남측만을 위한 일도 아니다. 그것은 남, 북, 해외에 살고 있는 민족 전체의 최고 공동이익을 위한 역사적 위업이다. 인류사에 출현한 가장 큰 제국주의나라인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실제로는 남측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북측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도구’가 주한미국군이므로, 그 ‘도구’를 이 땅에서 치워버려야 남측이 제국주의 군사지배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고, 북측도 제국주의 군사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심대한 긴장과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근에 북측이 전격적으로 재개한 대미압박 총공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빠져나오기 힘든 궁지에로 몰아넣고 있다. 그 동안 북측이 6자회담에 우선 복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북미 양자회담을 회피하기 위해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고집해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강도 높은 압박공세를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이 남측에서 제기되는 2012년 정권교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북측의 대미압박 총공세로 북미 외무장관급 회담이 성사되어도, 만일 한나라당이 2012년에 재집권하는 경우,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측의 대미압박 총공세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은 북미 양자회담에 결국 끌려나가겠지만, 재집권에 성공한 한나라당 정권이 결사반대한다는 핑계를 들면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조성되면 북측도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미국의 전술에 말려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선결하자고 요구하면서 북미관계 정상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나라당의 2012년 재집권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차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귀결될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한나라당의 2012년 재집권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3. 세상을 갈아엎는 써레질
언론매체들은 ‘불황의 그늘’이라고 표현하고, 이명박 정부는 허위통계로 국민의 눈을 속이려 들지만, 사회적 고통과 절망의 체감도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증가율, 노동시간 증가율, 빈부격차 증대율, 빈곤층 증가율, 생활물가 증가율, 자살 증가율, 각종 범죄 증가율, 정신질환 확산률, 출산 저하율, 이혼 증가율 등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겪는 생활고가 얼마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파탄상태에 빠진 근본원인은, 1997년 말에 몰아닥친 외환위기 이후 남측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는커녕, 그 뒤로도 계속 몰아치고 있는 자본주의세계시장의 전반적 파산위기에 휘말려 버린데 있다. 지금 우리 국민대중이 겪고 있는 파탄상태는 어떤 주기적으로 발생하곤 하는 불황과 일시적인 불안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전반적이며 구조적인 파탄위기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최악 상태로 굴러떨어진 사회를 두고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라고 칭송하는 것은 궤변이며 헛소리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 시달리는 그런 가짜 민주주의가 절대로 아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여겨온 무지몽매에서 하루빨리 깨어날 필요가 있다.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판에, 참가율마저 저조한 선거나 자꾸 실시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선거를 실시하는 목적은,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는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런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보이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지만,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민대중이 직면한 가장 큰 사회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런 방도가 있으되, 우리 국민대중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는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도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농사에 비유하면, 농민이 묵은 논밭을 깊이 갈아엎는 써레질을 잘해야 봄을 맞아 농작물을 심어 수확할 수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잘 짓는 이치와 똑같이, 낡고 썩은 세상을 깊이 갈아엎는 써레질을 잘 해야, 다시 말해서 사회체제를 바꿔야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는 써레질을 민주주의변혁(democratic revolution)이라 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명백하다.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여야 우리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변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를 수없이 하여 정권을 바꿨어도 국민대중이 절망과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4. 정치적 혼돈 속에서
그러면 낡아빠진 사회체제를 참신한 사회체제로 바꾸는 민주주의변혁은 또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단답형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정당이 집권하여 정권을 교체하면, 그 새로운 정권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이다. 사회체제를 바꾸는 민주주의변혁의 발전과정은 멀고 험하지만, 그 시작은 낡은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바꾸는 정권교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변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는 한나라당은 민주주의변혁을 무조건 반대하고 배격한다. 그래서 반민주적인 정치집단으로 될 수밖에 없다. 야당들 가운데서 당세가 가장 강한 민주당도 민주개혁(democratic reform)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민주주의변혁에는 고개를 돌린다.
비유로 말하면, 민주당이 추구하는 민주개혁은 써레질을 하기는 하지만 얕게 잘못 해서 농작물 수확에 실패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변혁은 써레질을 깊게 잘 해서 풍년을 맞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민주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지금 남은 것은 거의 없고 허탈한 심정 뿐이다. 이러한 경험은 민주개혁이 해답이 될 수 없고, 민주개혁을 추구하는 민주당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민주주의변혁의 써레질을 할 수 있는 정당은 어느 당일까? 당세가 너무 약한 것이 흠이지만, 따지고 보면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국민참여당과 창조한국당은 민주당처럼 민주개혁을 추구하지,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진보신당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개혁(European-style social-democratic reform)을 추구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통틀어 진보정당이라고 하지만, 진보정당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국민대중이 민주주의변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에 대해 무관심하므로, 당연히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에게도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5%를 밑돈다. 그렇다고, 민주개혁을 추구하는 민주당에 지지율이 왈칵 쏠리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혼돈(political anomie)이 출렁이고 있음을 말해 준다.
물론 정치적 혼돈은 요즈음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간 이 땅에서 일어난 진보정치가 탄압, 학살, 전쟁으로 좌절한 이후 우파정당의 단독집권이 60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생겨난 불행한 현상이다. 그 불행한 현상을 타파하고,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2012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느냐 벗어나지 못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만일 시대의 격변기에 딱 한 번만 주어지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권교체의 기회를 놓친다면,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60년 묵은 정치적 혼돈은 지속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5. 범야권 정치연합체 결성과 공동정부 수립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반대할 것만이 아니라, 2012년에 출현할 참신한 정권의 멋진 영상을 그려보며 정권교체를 향한 희망과 의욕을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2011년을 맞는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에게 주어진 최대, 최고 과제다.
만일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이 당세가 가장 강한 야당이라면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무척 간단히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5%를 밑도는 저조한 여론지지율밖에 받지 못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전혀 그릴 수 없다. 2011년 한 해 동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어떤 ‘정치적 기적’이 일어나 민주노동당의 여론지지율이 30% 선으로 급상승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러한 현실은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분산된 정치역량을 결집시키는 수밖에 없음을 말해 준다. 만일 다섯 야당이 ‘각개전투방식’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출전하는 경우, ‘지각변동’은 불발되고 한나라당의 ‘당선사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섯 야당이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한나라당과 1대 1로 맞붙어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승산이 보인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한나라당의 2012년 재집권은 이전처럼 단순히 우파정당의 집권연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격변기에 일어날 정치적 지각변동을 가로막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다섯 야당의 정치연합만이 2012년의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도다.
그런데 당면한 문제는, 다섯 야당의 정치연합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섯 야당이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방도는 세 가지다.
첫째, 선거연합이다. 선거연합으로 총선은 치를 수 있다고 해도, 대선을 선거연합으로 치르게 되면, 다섯 야당 후보들끼리 경선을 해보나 마나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야당단일후보로 나가게 된다. 따라서 선거연합은 민주당 집권 시기로 돌아가자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이 이미 실패로 판명된 민주개혁을 재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다. 다섯 야당의 선거연합을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야당통합이다. 다섯 야당을 한꺼번에 단일야당으로 통합하는 급진적 통합이 있을 수 있고, 다섯 야당을 먼저 두 개 야당으로 통합한 뒤에 그 두 개 야당을 다시 단일야당으로 통합하는 단계적 통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에서 분당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당권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각자 정체성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다섯 야당의 강령을 하나로 담아내는 것이 난제 중의 난제라는 점이다.
그러한 난제 중의 난제를 2011년 한 해 동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야당통합을 실현하려고 시간과 정력만 소모하다가 2011년을 그냥 흘려보내고 기회를 놓치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셋째, 범야권 정치연합체 결성이다. 야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면, 범야권 정치연합체가 결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각 당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권교체와 집권이라는 공동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물론 범야권 정치연합체에는 야당들만이 아니라 사회단체들,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개별인사들까지 폭넓게 참여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야당, 사회단체, 개별인사들이 공동행동을 취하고 공동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연합체를 결성하고, 그 정치연합체에서 공동집권전략과 공동정부구성을 합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2011년에 진보정치세력이 떠맡아야 할 가장 중대한 과업이다.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는 목적이 선거연합을 실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동정부를 수립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선거연합과 야당통합은 사실상 무의미하므로, 2012년 정권교체의 기회를 살릴 유일무이한 방도는 범야권 정치연합체 결성과 그에 따른 공동정부 수립밖에 없다.
공동정부 수립방안에 따라 세워질 정권의 성격은 당연히 중도연립정권이 될 것이다.
범야권 정치연합체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해산하는 것이 아니라, 중도연립정권이 자기의 임무를 마칠 때까지 그 정권을 계속 유지해 주는 정치전략거점으로 구심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협의체라 하지 않고, 정치연합체라 한다.
6. 변혁과 개혁의 중간선을 향하여
2012년의 정권교체를 전망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연립정권이다. 연립정권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정치현실에는 좀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그 개념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원래 연립정권의 유형은 세 가지다. 우파연립정권은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한 것이고, 좌파연립정권은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한 것이다. 우리가 전망하는 2012년의 정권교체는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하는 중도연립정권 수립을 지향하게 된다.
유럽의 정치지형에 자주 등장하는 중도연립정권은, 사회민주주의정당(social-democratic party)과 녹색당(green party)이 공동으로 집권하는 이른바 적록연립정부(red-green coalition government)를 뜻한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 적록연립정부가 집권한 나라들은 이렇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공동집권하여 적록연립정부를 세웠고,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프랑스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이 공동집권하여 적록연립정부를 세웠고, 2005년에 노르웨이 노동당, 사회주의좌파당, 중도당이 공동집권하였는데 2009년에 집권연장에 성공하였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와 핀란드에서도 적록연립정부가 집권한 사례가 있다. 비록 집권하지는 못했어도, 적록동맹(red-green alliance)을 형성하여 차기 집권을 준비하는 나라들도 있다.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등이 그런 나라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세계 각국에 그리 흔한 사회민주주의정당도 없고 녹색당도 없다. 진보신당을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녹색당은 없다. 그러므로 유럽식 적록연립정권은 우리 정치현실과 인연이 아주 멀다. 우리 정치현실에 맞는 중도연립정권은 어떤 것일까?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개혁을 추구하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연립정권을 구성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신당도 연립정권 구성에 참가해야 마땅하나,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해 지금으로서는 참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진보신당이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연립정권 구성에 참가하는 경우에도, 그 당의 당세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연립정권 구성에서 사회민주주의개혁이 중대한 요소로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 정치연합체가 승리하여 중도연립정권을 세우는 경우, 그 정권의 성격은 민주주의변혁강령과 민주개혁강령이 공존하는 중도적 성격으로 될 것이다. 이것은 중도연립정권의 정치노선이 민주주의변혁과 민주개혁 사이의 어느 선에서 결정될 것임을 말해 준다. 변혁과 개혁의 중간선, 바로 그곳이 우리식 중도연립정권이 설 자리다.
진보정치의 시선으로 보면, 변혁과 개혁의 중간선에서 변혁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진 중도연립정권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간선에서의 기울기 문제를 결정하는 요인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에 달렸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정치사업을 잘 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면 그만큼 중도연립정권 안에서 정책추진력이 더 강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중도연립정권을 민주주의변혁 쪽으로 기울어지게 할 수 있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중도연립정권의 모습을 그려보면, 변혁과 개혁의 중간업무를 추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를테면,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지지하며,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평등한 국제관계로 전환하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안으로는 신자유주의정책을 전면 중단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하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고용정책과 노동정책을 시행하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소수자 인권을 옹호, 신장하는 정치개혁을 시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남북 정치회담을 추진하는 훌륭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 모든 정책적 변화가 바로 변혁과 개혁의 중간선에서 일어나는 행복한 변화다. 진보정치의 길은 우리 국민대중에게 행복한 변화의 길이다. (2010년 12월 26일 작성)